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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울산광역시_울산문화재단 기획 / STUDIO 1750 기술감독 / 이병옥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물성에 담긴 욕망과 텅 빈 것에 관한 이야기 ● 팀 STUDIO 1750의 전시 제목, 『MARINE SNOW』는 역설적이다. 제목은 먼저 신비와 환상의 느낌으로 우리를 설레게 한다.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심해에 내리는 눈은 그 이름이 주는 느낌만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설치된 작품은 감성을 어루만지는 색깔과 움직임으로 판타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작업 형식 또한 놀이하듯 이질적인 재료를 섞고, 이어붙인 채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러한 유쾌한 놀이 뒤에는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손길과 시선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에 이끌려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어가는 생태와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 깊은 바다에 내리는 눈의 실체는 바다 표층에서 죽은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사체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용해된 나머지인 알갱이 형태의 유기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덩치가 큰 고래가 한낱 티끌로 내리는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 우리에게 바다눈은 가벼운 설렘을 어둠과 적막의 무게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STUDIO 1750의 시선은 그러한 죽음에 있지 않다. 죽은 생물은 분해되고 분해되어 작은 입자로 내릴 것이다. 그런 바다눈은 해저 생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생태의 순환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업은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며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향해 있다. 심해에서 발견된 것은 바다눈만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만큼이나 질긴 쓰레기가 함께 있고 그것들로 인해 펼쳐지게 될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 투명하고도 질긴 플라스틱 알갱이가 바다눈처럼 내려 생태계를 순환하든, 바다 깊은 곳에 쌓이든 알 수 없음이 주는 공포는 죽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STUDIO 1750은 삶조차 죽음으로 바꿀 수 있는 세계, 욕망이 빚어낸 세계를 재료가 가진 물성으로 표현한다. 이종적인 것의 결합은 양날의 칼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생성의 길로 향하게 할 수 있지만, 혼성이 빚어낼 미지의 세계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다의 상징성이 생명이 거듭나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자신을 삼켜버리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플라스틱 알갱이가 눈처럼 내리는 심해는 더는 생명의 공간이 될 수 없다. 제목은 이렇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세계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키워드이다. 생물의 사체는 부패와 해체의 과정을 통해 생태계를 순환의 고리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러나 바다눈이 쌓인 해저에서 함께 발견된 쓰레기는 삶의 필요와 그 필요를 넘어선 것으로 향해 있던 욕망의 찌꺼기들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있거나 그 존재의 실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일상에 깊이 들어와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그런 존재다.
물성으로 번지는 욕망 ● 높이가 5미터 가까운 대형 설치작품 「1=10」(천, 송풍기, 170X170X470(H)cm, 2020)은 거대한 벌레로 변한 카프카의 그레고리 잠자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설치된 송풍기로 바람을 불어 넣어 잔뜩 부풀어 오르게 될 때 작품은 온전한 형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바람을 불어 넣지 않으면 부피감이 사라지면서 생명체가 숨을 쉬듯 느리게 부풀어 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촉수처럼 갈래져 뻗은 작품의 붉은 표면은 부풀어 오른 욕망처럼 기름지다. ● STUDIO 1750은 플라스틱을 재료로 하여 플라스틱의 가변성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도록 활용한다. 이들은 천에 플라스틱이 더해진 방수천을 이용하여 평면을 입체 형태로 변형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런 방법은 대형 입체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크기와 형태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작업이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1=10」와 「소리 스펀지」(천, 자작나무, 스피커, 송풍기, 180X180X160cm, 2020), 「노란 돌기를 가진 주머니」(천, 자작나무, 송풍기, 155X155X250, 2020)는 박음질한 방수천에 바람을 불어 넣음으로써 입체로 표현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1=10」처럼 불어 넣는 공기 상태를 조절함으로써 작품은 단단한 형태감을 지닌 입체와 부피감이 없는 상태로 되돌려지면서 움직임을 표현하기도 한다. ● 「LMO 3116」(혼합매체, 가변설치, 2016~)는 「1=10」와 달리 방수천이 아닌 얇은 플라스틱 재질을 이용한다. STUDIO 1750은 설치작품의 재료로 방수천, 페트병, 합판 등을 사용하는 데 지지대나 좌대 형태의 구조물을 제외하면 플라스틱이 주된 재료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료는 생태와 혼성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질기며, 원하는 형태와 색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쓸 수 있는 편리한 재료다. 인간 욕망의 결정체인 셈이다. 천에 플라스틱의 불투과성을 더해진 방수천은 다양한 형태로 재단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면서도 어떤 것도 빠져나갈 틈 없는 단단함을 지닌 재료가 된다. 이러한 불투과성은 타자를 차단하고 배제함으로써 존재하는 분리와 소외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할 것이다. 플라스틱은 어떤 형태로든지 형성될 수 있다.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얇은 막의 형태에서 어떤 복잡한 덩어리 형태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조형력만 아니라 플라스틱은 투명하게 모든 것을 내어놓고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투명성은 주변의 세계를 왜곡 없이 담아낼 듯하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근본적으로 차단과 거부의 속성을 지닌 재료이다. 플라스틱이 처리된 천이나 플라스틱 볼 또는 얇은 막으로 된 막대로 있든 그것은 드나듦에 대한 거부, 소통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STUDIO 1750은 자신에게 속한 것을 내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는 물성을 통해 작품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들의 주제의식은 재료가 가진 물성으로부터 이미 실현되고 있다.
작품「1=10」과 「LMO 3116」 이 송풍기의 작동으로 차오름과 비어짐의 형태로 반복되는 것과 달리 「소리 스펀지」, 「노란 돌기를 가진 주머니」는 일정한 형태를 유지한 채 설치되어 있다. 부피를 지니지 않은 재료를 가지고 형태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플라스틱의 성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천이 본래 지닌 틈을 막는다. 그로 인해 설치작품들은 송풍기를 통해 흡입되는 공기로 말미암아 단단한 독립체를 이루게 된다. 작품들은 오로지 흡입할 수 있는 장치와 흘러나가는 것을 차단함으로써만 유지되는 존재가 된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욕구를 자극하고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유지되는 축적된 자본의 모습이 있다. 생태 환경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 생태계와 상호작용할 수 없는 욕망으로 거대해지는 세계의 모습이다. ● 자본주의 사회는 생존을 초과하는 욕망을 생산함으로써 지탱된다. STUDIO 1750의 작품에서 물성은 이러한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설치작품은 달콤한 색으로,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움직임과 소리를 더해 감각적인 자극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진열장을 채운 상품들처럼 어떤 작품은 부드럽고 달콤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전시작은 놀이마당처럼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이 만들어낸 허상을 떠올리게 한다.
빈 존재들 ● STUDIO 1750의 설치작업은 없는 것으로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무, 플라스틱 볼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작품은 보이지 않는 공기로 채워진 텅 빈 사물이다. 껍질, 즉 표면으로 존재하는 작품이다. 그것은 지칭할 대상 없이 기호로만 떠도는 이미지의 세계와 같다. 물체의 속 내용물을 싸고 있는 질기거나 단단한 물질을 껍질 또는 껍데기라고 한다. 이렇게 껍질, 껍데기, 표피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이미지화된 세계를 즉물적으로 보여 준다. 기 드보르가 말하는 스펙터클, 이미지가 된 축적된 자본은 삶의 내용을 은폐시키는 표상이며 허위의식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삶을 한갓 외양이라고 단언하며 외양의 지배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욕망처럼 뿐이다. STUDIO 1750는 이렇게 재료의 물성을 통해 그리고 즉물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허위의식을 보여 준다. 작품은 이미지로 있는 세계, 스펙터클의 세계, 벗겨내면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 ● 껍질 뒤에는 어떤 구체성을 띤 것도 없다. 단단한 껍질은 있음과 없음, 안과 밖, 내용과 형식을 나누고 분리하여 배제의 경계를 지칭할 뿐이다. 껍질로 이루어진 작품은 껍질만으로 존재하는 세계, 상품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포장지가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상품 사회의 허구성은 볼거리 뒤로 내용과 관계를 사라지게 한다.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지만 정작 손에 쥐는 것은 허상에 불과한 껍데기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갖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 사회에서 그 껍질은 어떤 것보다 더 단단한 실체를 지닌 존재로 인식된다. 이렇게 생태에 관한 STUDIO 1750의 문제의식과 물성이 연결된 지점에서 우리는 삶을 만나게 되고, 자본주의 체제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물로 향하게 된다. ● STUDIO 1750 에게 껍질은 피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삶과 이어져 있다. STUDIO 1750의 구성원인 손진희는 유학 전 디자인 회사에 다녔고 그때 내용물보다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더 중요했던 시간을 경험한다. 이 경험은 STUDIO 1750의 작품 구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포장지는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세계이다. 상품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는 기 드보르가 말하는 거짓 세계이자 관조의 대상이다. 기호가 증식되는 사회는 관계망을 횡단하며 생성되는 삶의 세계가 아니다. 자본의 관심은 삶의 내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미지를 소비시킴으로써 몸집을 불려 나간다. 하지만 그것은 내용 없이 텅 빈 존재일 뿐이다. STUDIO 1750가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판타지는 삶의 내용을 도려낸 자리에 놓인 역설과 위트이다. STUDIO 1750의 작업은 이렇게 삶으로부터 길어 올린 이야기다. ● 혼성은 STUDIO 1750가 오늘의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이자 작업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작품은 방수천을 이용해 만든 입체에 나무 좌대 형태로 결합 되거나 「핑퐁트리」(우레탄비닐, 자작나무, PVC 300X300X320(H)cm, 2020)의 경우 자작 나무합판과 플라스틱)와 같이 플라스틱에 나무로 지지대형태의 구조가 더해진 형태이다. 말하자면 인공과 자연의 결합이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방수천은 플라스틱과 천의 혼종이다. 플라스틱은 고분자 합성물이다. 그리고STUDIO 1750이 만든 작품들은 플라스틱과 바다 생명체의 혼종에 대한 그들의 상상일 수 있다. 자본의 축적을 위해 전력 질주하도록 조건 지어진 사회와 그것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소외와 분리를 안고 있다. 자본을 목적으로 한 혼성은 고립과 분리를 극복하는 것으로 나아가기보다 소통하는 틈을 왜곡하여 막는 것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연과 생태와의 관계망에 대한 생각 없이 혼성으로 빚어낸 사물이 삶을 위협하기도 하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 쌓아 올리는 것 뒤에서 삶의 붕괴에 직면하기도 한다. STUDIO 1750이 바라본 세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욕구가 욕망으로, 다시 탐욕으로 변해가면서 부풀어 오른 혼종의 세계다.
하찮음, 그 가볍지 않은 가벼운 이야기 ● 플라스틱은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아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흔한 재료이다. 우리의 기대에 맞추어 너무도 쉽게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 있는 합성물질이다. 그것은 단단하면서 가볍고, 유연하면서 질기다. 한없이 투명하게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어떤 것도 투과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속성을 지닌 꿈의 소재이다. 하지만 빠르고 쉽게 만들어내는 만큼 쉽게 버려지는 하찮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소함과 가벼움으로 있던 것에 의해 일상의 균열이 일어난다. STUDIO 1750의 작품은 그 달콤하고도 쌉쌀한 경계에 서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대와 지지대 위에 텅 빈 존재로 있는 입체를 배치해놓고 그들이 벌이는 감각의 놀이는 가볍고도 심각하다. 놀이와 놀이 아닌 것의 경계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달 표면보다 더 알 수 없다는 미지의 세계인 심해에 미세플라스틱이 눈처럼 내린다." ● 바다눈이 내리지 않는 세상 대신 미세플라스틱 눈이 내리는 세상. 생태계의 순환과 변화를 거부한 세상은 환상과 낭만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우리의 삶이 남긴 찌꺼기들, 죽지 않고 남은 욕망의 흔적이 바다를 거쳐 다시 우리가 사는 뭍으로 돌아온 곳. 그곳으로부터 STUDIO 1750의 가볍지 않은 가벼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의 작업은 하찮은 것으로 버려둘 수 없는 삶을 만나기 위해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부른다. (20201129) ■ 배태주
MARINE SNOW-심해에 내리는 눈, 마린스노우 ● 달 표면보다 더 알 수 없다는 미지의 심해, 미세플라스틱이 눈처럼 내린다. ● 'Marine Snow'는 넘쳐나는 쓰레기로 고통받고 있는 바다 그 아래의 이야기다. 바다눈이라 불리며 바다에 사는 생물들의 사체나 배설물들이 눈처럼 심해에 내리는 것으로 심해생물들에 중요한 양식이다. 바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매번 바닷속을 탐사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고 한다. 심해는 우주보다 다다르기 더 힘든 곳으로 그 상상 속 세상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미국 해저탐사전문가 베스코보는 2019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 있는 챌린저 해연 1만928m 지점까지 도달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탐사선이 도착한 곳에서 만난 여러 종의 심해생물과 4종의 새로운 생명체 그리고 어림잡아 짐작하는 심해 생물체 수만큼의 쓰레기들이 발견되었다. ● 우리는 심해로 가라앉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심해생명체들의 몸에서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들 그로 인해 우려되는 변이종의 생성과 멸종 종들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 이번 전시는 동작으로 소리로 빛으로 새로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수 창작 재전시 지원작으로 지난 전시에서 보이지 못했던 부분을 협업작업을 통해 진행하였고 역량 강화와 가능성을 확장하고 동시에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 상상으로 통하는 매개자가 되기를 희망하며 관람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 STUDIO 1750
Vol.20211111d | STUDIO 1750(김영현+손진희)展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