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의지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   2021_1110 ▶ 2021_1123

최은경_계산무진(谿山無盡) 1_캔버스에 유채_162.2×260.6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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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블로그_blog.naver.com/sunnyroomc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보통의 의지와 촉지적 형상성 ● Once Upon a Time. 언젠가. 옛날에. 왕년에. 한때. 라떼는... 특정한 시간대를 표상하지 않는 구절. 이 어구가 최은경의 작품을 설명하는 1차 수사로 적당하다고 느낀 건, 그녀의 그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 바로 그녀만의 묘한 시(공)간적 감수성이(라고 느꼈)기에 그렇다. 그림엔 낮과 밤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제의 모호함이 중층적으로 감지되는 이상한 현상. 그러니까 그림 내에서 작용하는 빛에 따라 낮/밤/초저녁 등의 공간적 조건은 당연히 구별되나, 적어도 그게 몇 년도 인지 또는 그녀가 몇 살 때 그린 그림인지, 또 어디를 그린 건지 좀처럼 단서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화면의 소재들은 일상을 포괄적으로 담지하고 있기에 시간성은 그녀가 소요하는 시간을 뭉뚱거린 스냅(변화하는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고 재빨리 촬영-기록)으로, 형상은 다큐적 사건이나 특정한 내용에 대한 지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시제가 불분명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 그런 바탕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잔잔하게 물처럼 흐르는 완만함이다. 완경사를 타고 천천히 흘러온 그 물이 멈추고 고인 곳에서 수면은 일정 기간 수평을 이룬다. 표표하다거나 유유히 흐르는 편안함만은 아닌 그런 수평감으로. 짧은 위안과 안심. 그러나 안락하지만은 않을 정도의 균형이다. 흔들리는 일상에 부대끼면서도 직립으로 서려는 태도가 반영된 자세라고나 할까, 형상들은 누벨바그의 카메라1)처럼 그 경계가 여러 겹으로 겹치면서 초점을 유지한다. 걸으면서 보는 시선의 흔들림과 오차를 줄이며 바로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려는 조형적 의지가 읽힌다. 만만찮은 내공. 작가 또한 지천명에 비례하는 삶의 굴곡 또한 여럿 있었을 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반영한 것이 결국 작업이기에, 본인이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생의 숱한 결절점에서 축적된 실존의 체중이 작품에 온전히 얹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생득적 무의식, 혹은 후천적 의식이 견인한 균형감이 바로 최은경만의 붓질로 구축된 조형인 형상성, 즉 회화적 상징의 토대라 하겠다.

최은경_계산무진(谿山無盡) 2_캔버스에 유채_145.5×224.2cm_2021
최은경_물 바라보기_캔버스에 유채_60.6×50cm_2021

이번 전시는 그런 그녀의 삶과 그녀에게 보인 타자들의 삶이 뭉뚱그려져서 그려진 작품들이다. 그녀가 본 노동하는 사람들, 쉬는 사람들, 노는 사람들, 그리고 여타의 일상적 풍경들을 두루 엮어서 '보통의 의지'란 수사로 주제화했다. 여기서 '보통'은 그녀의 시선에 포착된 대상들과 자연스레 조우한 상황에 대한 소탈한 비유이고, '의지'는 그들과 자신이 공유한 삶에 대한 능동적 기운의 비유다. 현실적 상태나 상황을 반영하면서 좀 더 구체적 지향성을 가늠하는 의미론적인 어휘다. '의지'는 '보통'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므로 그녀의 기술대로 '보편적 정서'에 해당하는 레토릭이다. 화가인 자신도 '지금, 여기'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녀 그림에 등장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동일한 실존임을 피력한 것이기도 하고. '보통'이란 보통명사 그대로 특별한 사회적 사건이나 동시대적 의제를 내세우지 않고, 작업을 통해 자연주의적 시각에서의 일상성과, 그 일상성을 자연스레 반영하려는 회화적 형식에 방점을 찍은 태도로, '보통'의 일상 너머에 존재하는 여타 구조적 논점으로의 확대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 과거 최은경은 수유리, 양주, 정읍, 군산, 대부도 등을 거쳐서 지금은 군포에 정착했다. 작업공간의 필요성에 의해 피동적으로 낯선 곳에 이주했으되 정주하지 못했던 현실이었던 셈. 최은경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소는 바로 그녀가 거주했던 기간 생활과 발로 소요했던 곳이다. 당연히 각 지역의 풍경이겠지만, 그런 풍광과 마주한 그녀 내면의 회화적 컨버팅이 더 중요한 논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본 세상과 피부로 스며든 삶의 편린에 대한 작가의 경험-사유-표현의 연대기이자 기록이므로, 느리게 소요하되 세상과 마찰하고 부대낀 현실이 각인된 내면의 촉지2)적 질감이니까 말이다.

최은경_새벽 산책길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21
최은경_가로질러 횡단보도를 건너는 왼쪽의 밤 2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21

그 촉지성은 대상을 이미지화하는데 적절한 붓질로부터 유래한다. 전통 문인화의 일획처럼 민감하게 작업의 과정과 결과적 이미지를 동시에 담보하는 그런 붓질이다. 일반적으로 회화작품에서 그림의 표면은 안료의 물질성(Matter)이 두드러지는데, 최은경 그림의 표면은 바탕(Plate)인 캔버스의 텍스처와 접촉한 붓의 흔적이 동시에 도드라지는 질감이다. 안료의 물질감보다 붓의 운행을 중시한 결과다. 그래서 거기엔 캔버스 면에 얹히며 캔버스를 덮어버리는 유화물감의 기름진 두께가 없이 건조하고도 투명한 효과만 남는다. 이런 경우 화면은 물감의 질료적 촉각성을 거세하고, 붓질과 바탕과 이미지에 대한 시각정보를 동시에 담지한 촉지성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촉감적이되, 시각적 감촉에만 머물지 않고 형상 너머 형상성을 추적할 수 있게끔 유도하면서. ● 이처럼 캔버스 표면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최은경 특유의 얇은 붓질은 그 자체로 그림을 구성하는 주요한 단서고 어법이다. 이런 촉지성은 그녀의 체질적 반응 일수도, 혹은 그리기 방식의 의도적인 변주 일수도, 그도 아니면 관객이 자신의 화면에 좀 더 깊숙하게 반응하게끔 만드는 전략일 수도 있다. 대상을 다듬으면서 재현하지 않고, 간단한 붓의 운행과 그 궤적으로 대상의 특성을 단번에 드러내기 때문에 마치 골법용필骨法用筆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인체의 동세나 균형 속도감 등을 유연하게 표현하는데 썩 잘 어울리는 결과를 얻기에도 적절하고. 전동보드를 타는 사람을 그린 「쌩쌩」이나 길거리에서 발차기 장난을 치는 청년을 그린 「바람처럼 훅」의 동적인 형상에서, 「블루 스카이」의 일하는 노동자에게서도, 「물 바라보기」와 같은 정적인 인물의 표현에서도 그 필치는 효과를 얻는다. 이에 비하면 풍경의 처리는 붓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문지르는 방식이다. 땅, 건물,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의 무기물에서는 대부분 균질하게 반복적인 문지르기로 처리한다. 필치는 사라지고 부드럽고도 얕은 색면이 더 건조해진 배경적 기능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아스라하고 소극적인 표정으로 스스로를 중성화 시키면서 등장인물이나 나무와 같은 살아있는 주제를 보조한다.

최은경_지나가는 봄의 주황과 신록 2_캔버스에 유채_145.5×224.2cm_2021
최은경_길 위의 포물선 2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21

최은경이 대면한 모든 외부 대상의 구체성과, 촉지적인 그리기 방식은 결국 그녀 내면으로부터 기인하고 발화된 몸짓인 붓질이자 이미지다. 물론 최은경은 자연주의적 시선으로 외부세계를 가감 없이 반영했다. "나름의 형편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보통의 의지'와 보편적 정서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회화로 기록(작가노트)"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다만 다른 여러 삶의 모습 중에서 '보통의 의지'를 선택적으로 포착하고 서술하려는 의지는, 결국 그 대상이나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공통분모3)를 갖기 때문에 가능하다. ● 최은경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와 작가의 이분법을 넘어선 주/객 동일시는 초기작인 그녀의 방이나 작업실 풍경과 소품들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화면에 제시된 소재들의 형상을 빌려온 그녀 내부의 회화적 욕동의 기록이자 실존적 표현으로 전환한 형상적 프로세스를 통한 동일시로 진술된 것들이다. 다소간의 쓸쓸한 서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주정적인 틈을 메우면서 거리두기 식의 관찰과 사유를 거친, 그녀의 주지적 태도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쉽게 규정할 수 없는 특성들로 인해 최은경의 회화가 단순하지 않은 맛과 여운을 남기는 것일 게다.

최은경_탄 불_캔버스에 유채_각 73×60.6cm_2021
최은경_오늘부터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1

신작 「지나가는 봄의 주황과 신록」을 보자. 군포로부터 서울로 외출했을 때 포착한 장면. 조계사 앞 횡단보도 풍경을 그린 구작 「낯빛, 2019」과 유사한 진술 방식이다. 삼청동 경복궁 돌담길을 걸어가는 시위대 행렬의 시내 쪽으로 '흐름'-왼쪽에서 작은 스쿠터를 타고 시위대를 '역류'하는 젊은이 둘 - 그리고 화면 오른쪽 가운데 꼿꼿하게 서서 교통정리 하는 경찰관의 '정지'. 흐름(수평)-역류(긴장)-정지(수직)의 역학적 균형. 작가에게 우연히 포착된 스냅의 순간인지, 작가가 설정한 화면 배치인지에 따라 이 화면의 해석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맑고도 한가한 날 대낮 도심의 햇살과 신록이 주는 배경적 조건으로부터 일상을 가로지르는 어떤 상황 한 장면을 회화적 표지로 번안하는 그녀의 작업 과정은 단순한 풍경에 역행한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포착하고 재현한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회화야 정지된 시간, 즉 시간의 한 단면만을 평면에 남길 수밖에 없는 한계(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나 미래파 화가들이 이에 대한 일탈의 시도를 했으되, 그 또한 평면이란 물리적 한계에 속한 일류전 아닌가)에 조건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물리적 한계 조건을 넘어서는 것은 결국 화면을 형성하는 조형적 문법과 배치의 운용이다. ● 최은경의 작업에서 이는 시간의 단편적 정지(찰라성)를, 소재들의 상대적 배치(와 표현)를 통해 대상성 너머 형상적 긴장 관계로 이끈다. 그것을 작가는 "언제나 이후에(사후적으로) 그것의 뒤안길, 혹은 뒷모습의 주름, 주름의 '잔상'으로만 재현될 뿐. 재현할 수는 없지만, 또 알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구체적 현실성에 대한 요약 불가능한 총체성 같은 것(들)"이라는 진술로 이미지의 지시적 관계에서 일탈한 회화적 상징의 형상성으로 피력한다. 그것은 곧 "좌절과 상실이 반복되는 '지금'과 다시 나아갈 수도 없다는 희망 없음의 '여기'에서 예기치 않게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열망(욕망)은 어떤 형태로 올까?"라는 그녀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그녀 스스로의 회화적 답이기도 한 것이겠다. 물론 그 답은 명료한 인식적 세계에선 없다. 그녀 말대로 "어떤 여지와 있지도 않은 가능성"의 영역일 확률이 높고, 그것은 결국 그림쟁이로 평생을 바쳐 깨달아야만 할 화두와 같은 것일 터이니. 다만 경복궁 담벼락을 덮은 신록의 녹색이 싱싱하게 붓질을 변주시키며 나무의 생기를 드러내는 시도에서, 어떡하든 삶을 긍정하려는 그녀의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호출한 삶에 대한 능동적 그리기의 건강성이다. ● 이런 와중에 그녀가 어떤 판단이나 인식적 태도를 내려놓고 무심중간에 그린 듯한 「물 바라보기」란 12호 크기 소품이 눈에 든다. 부감(俯瞰)으로 도심의 천변에서 탁족하는 사람을 내려보며 그렸다. 이번 전시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제작한 작품으로 추측된다. 「오늘부터」라는 TV 뉴스의 코로나 선제 검사 장면을 캡쳐해서 그린, 작업에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과 상반되는 그리기 방식이다. 그녀의 눈과 기호가 선호하는 "드로잉적이고 몽글몽글한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곁든" 이미지이자, "우리 집 거실에도 걸어두고 싶"어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실개천 다리 그늘 밑에서 무더위도 식힐 겸, 일상의 시름을 한 템포 미루며 가만히 물 바라보기"라는 간단한 작가 노트가 덧붙여진 일종의 문인화 같은 작품이다. 자신도 모르게 축적된 "흉중청고고아4)"의 내공이 고된 삶과 작업에의 무게 사이로 부지불식간 삐쳐나온 그리기의 한 단면 같은 간결함도 돋보이고. '보통의 의지'라는 전시 제목에는 살짝 어긋나면서도 전시의 주제를 강화하는 감초의 역할로 눈을 잡아끄는 작품이기도 하다.

최은경_블루 스카이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1
최은경_쌩쌩_캔버스에 유채_65.5×53.5cm_2021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최은경이 머물며 작업하는 공간인 소도시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거기에 있는 존재들이다. 건축 현장, 노동하는 사람, 쉬는 사람, 젊은이들, 노인들, 밤 풍경… 거기에 더해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에서 본 보도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있고. 모두 시제와 공간을 특정할 순 없다. 다만 그 모습들이 우리 시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경험할 수 있는 서민의 삶이 있는 공간의 전형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최은경의 시선이 지향하는 지점이 드러난다. 그녀의 노트대로 "보편적 정서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동시대적인 모습을" 회화라는 형식으로 기록하려는 "보통의 의지" 말이다. 그것은 또한 담담한 시선과 더불어 개인적 내러티브를 추구하는 최은경의 작업에의 의지이기도 하고. 이는 작가의 자기 회화방식에 대한 철저한 되새김질을 바탕에 둔 순수한 작업 의지와 반성적 태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프로세스라 하겠다. ● 다만 대상에 방점을 찍고 거기에 주관적 형식을 보태는 방식에 더해서, 시선의 방향과 지향성이라는 작가의 진일보한 형상적 주제 의식, 즉 '형상성'이 강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현실적 현상의 '제시'를 넘어서서 작가-관객 사이에서 메시지의 '교감'이 좀 더 강하게 발생할 수 있는 통로를 작가가 제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자신의 미디어로 실천할 수 있는 미술 행위는 결국 관객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작가의 열린 태도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것 또한 작가로서 '보통의 의지'에 다름 아닐 것이니 말이다. ■ 김진하

* 주석 1) Hand Held Camera.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현장 촬영을 위해 경량의 소형영사기를 들고찍기 하는 방식. 카메라가 등장인물과 같은 호흡으로 움직임으로 동적인 현장성이나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영상과 음향을 얻을 수 있다. 누벨바그 영화 작가들이 선호한 찍기 방식이다. 2) 觸知. 김진하가 회화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조어. 일차적으로 시각과 촉감(觸感)에 기인하되 감각과 이성이 동시에 작동하며 면밀한 생각을 동반하게끔 만드는 회화적 오성(悟性)의 의미. 메를로 뽕띠의 지각적 현상학과 비슷하되. 작가뿐 아니라 회화를 감상하는 관객에게도 동시에 시각-촉각-사유의 궤적이 경험으로 작동하는 더 적극적 교감의 상태를 이르는 용어. 3) 그러나 엄밀하게는 동일시에 머물지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자기로부터의 외부 세계이되 결국은 바로 자기 눈앞의 거울(라깡)과 같은 것인데, 다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볼 때는, 타자가 나를 보는 것과는 좌/우가 반대로 보인다. '나는 너다'라는 문장처럼 주체/객체를 동일시했으되, 그 형상은 결국 반대로 보이는 차이를 띈다. 마치 '나/너'란 주어/목적어의 기능과 품사적 거리처럼 말이다. 이 지점이 생각과 형상의 차이다. 4) 胸中淸高古雅. 마음에 청정하고 고아한 뜻이 있어야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추사 김정희의 서법론.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에 이 '흉중청정고아'가 함께해야 비로소 예서를 쓰는 기본이 된다고 했다.

Vol.20211110b |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