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여진 풍경

최혜연展 / CHOIHYEYEON / 崔惠淵 / painting   2021_1108 ▶ 2021_1117

최혜연_밤의 곁_한지에 혼합재료_162.2×260.6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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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연 인스타그램_@choiiye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국립인천대학교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0:00am~05:00pm

아트스페이스 인 ART SPACE IN 인천시 연수구 아카데미로 119(송도동 12-1번지)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교수회관(2호관) 1층 Tel. +82.(0)32.835.8560 finearts.inu.ac.kr

인상의 풍경 ● 세상이 침묵으로 잠겨 든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을 채우는 것은 시선이다. 방 안으로, 거리로, 자연으로 내던져진 시선에, 천이 드리우듯, 세상의 실체와 환영이 깃든다. 최혜연의 그림은 일상의 부산함이 증발해버리고, 오로지 시선으로만 남아버린 세상의 흔적 같다. ● 유난히도 뽀오얀 그의 그림에서 '여백(餘白)'도 아닌, 저, 하얀 덩어리는 무엇일까, 가만히 그 형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은 지친 저녁의 거리 같다가도, 메마른 들판 같기도 하고, 장롱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어린 날의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지, 실생활의 어떤 편린을 가져온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에게 보이는 것은, 차라리 뇌리에 남겨진 형상들이 만들어내는 조합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 처음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작가는 동묘시장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었다. 보름쯤 지난 후 다시 본 그림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스케치 위로 나뭇가지가, 계곡이, 아니 그냥 '인상'이라고 하여야 할 콩테의 선이, 붓의 터치가, 잉크의 번짐이 덮어지고 있었다. 구체성이 소멸해가는 이 과정을 작가는 "그냥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실사(實寫)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의 작업에서 사물의 딱딱하고 뾰족한 경계가 닳아 없어지고, 유연한 곡선으로 멍울지는 것은 시인이 싯구를 고르는 과정과 같이 보인다. 시선에 담기는 것들을 걸러내고, 다듬어서 담아내고, 다시 거르다 보면 그 본디 형체는 남지 않더라도, 시선의 흔적이 남아서 한 폭의 풍경을 이룬다. 그것은 시공간을 벗어난, 인상의 풍경이다. 또렷한 형태 대신, 안개처럼 뭉그러진 이미지가 아련하게 여운을 남긴다. ■ 김소라

최혜연_밤의 곁_한지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21
최혜연_밤의 곁_한지에 혼합재료_162.2×130.3cm_2021

감정이 지나온 자리의 풍경 ● 우리의 내면을 이루는 감정은 우리가 바라보고 접하는 모든 외적인 것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매일같이 보는 대상일지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그들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며 나아가 외형적 형상까지 왜곡되어 재조합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렇듯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우리는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감지하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갑자기 가슴으로 와 닿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최혜연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며 그로 인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 안의 세상을 바라본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내면에 따른 외부의 인식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객체를 발견한다. 우리가 쉬이 접할 수 있는 사물 혹은 풍경들은 최혜연의 그림 속에서 감정이 투영된 채 낯설게 인식되며 작가가 남긴 흔적은 그대로 화면에 고이게 된다.

최혜연_불면하는 겨울_한지에 혼합재료_각 163×65cm_2021

최혜연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느린 시선과 호흡을 잃지 않는다. 온전한 작가의 시선으로 관통된 풍경에는 작가만의 경험과 감정이 머무른다. 현실에 있을 법한 풍경은 우리에게 특이하거나 이색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평범한 풍경 속에는 작가의 감성이 지닌 가느다란 울림이 있으며 이는 그림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느리기 때문에 깊어지는 감흥은 대상에 내재한 의미 또한 더욱 깊어지게 한다. 그렇게 작가가 천천히 음미하며 바라본 풍경은 비로소 특별해지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뒤덮여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았던 곳까지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세상의 구석진 곳들을 낱낱이 살피는 작가는 작은 상황과 소재 하나하나에 따스한 관심을 두며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되새겨본다. ● 반복과 변화가 가벼우면서 단단하게 쌓인 작품은 단순히 붓 자국이 중첩됨을 넘어서 시간의 중첩 또한 표현해준다. 기억 속 자리한 풍경은 겹치고 겹쳐져 흐릿한 잔상으로 남는다. 작가에게 풍경은 뿌연 인상으로 내면에 존재하고 있기에 오브제들은 전체적으로 선명한 형체와 색을 띠고 있지 않다. 이것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은 감정의 유동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순간의 감정에 따른 잔상만이 남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은 추상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매우 복합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점을 빌려 작가는 그림에 완전한 형태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 특유의 채색법 또한 빛바랜 감정과 추억을 대변하는 듯 보는 이들에게 여운을 남겨준다. 담한 색채로 종이에 스며들며 점차 얇게 올라온 색은 유약함을 띠며 아련한 감성을 배가시켜준다. 딱히 사물을 묘사하려 들지 않은 추상적인 붓질이지만 왜인지 모를 섬세함을 지닌 점은 감성적 측면을 내세웠지만 감정과 본능에 치우치지 않은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인한 것이며 이로 인해 여운은 더욱 짙어지게 된다.

최혜연_뜰의 구석_한지에 혼합재료_130.3×162.2cm_2019
최혜연_뜰의 구석_한지에 혼합재료_85×100cm_2019
최혜연_하루_한지에 혼합재료_90.9×72.5cm_2015

작가는 현실 속에서 판타지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풍경을 내면의 이야기를 거쳐 받아들일 뿐이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의 여지를 준다.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로 꽉 채워진 작품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큰 힘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관객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을 제한하는 경향도 있다. 이와 반대되게 최혜연은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주관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얗게 김이 서린 것 같은 부분들이 주는 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감정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최혜연의 작품을 보며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일상으로부터 놓치기 쉬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 김문빈

일상 풍경이 주는 울림을 느린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나와 맞닿아있는 풍경은 그들만의 속도를 가지고 표정과 흔적을 만들어 낸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풍경에 대한 반응이다. 여러 장면을 중첩시키고 형상의 숨김과 드러냄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화면과 마주한다. 스케치를 따라가기보다는 작업을 하며 변화하는 이미지에 반응해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형상은 작업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반복적으로 쌓아올린 하얀 덩어리는 생략과 변형의 결과물이자 나의 감정의 울림을 거쳐 걸러진 내적 풍경의 한 조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업의 과정은 화면에 모두 기록되며 가늘고 여린 흔적들조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화면 위에 드러나게 된다. 우연한 효과나 작은 흔적들은 작업을 끌고 가는데 좋은 안내가 되기도 하는데 뽀얗게 흘러가는 연기나 소복이 쌓인 눈 등으로 표현되며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 작업의 주재료인 먹과 호분은 스미는 성질의 한지에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들어 순간적인 붓 터치로 감정을 담아내기 적합하고 여러 겹의 한지는 흡수하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긴 시간의 작업을 버텨준다. 고운 백자와 같은 호분의 겹과 투명한 먹의 겹이 반복되며 스며듬의 정도에 따라 한지 위로 미묘한 차이의 두께감과 재질감, 빛깔을 나타내는데 호분을 이용한 숨김이 가장 큰 드러냄이 되기도 한다. ● 「밤의 곁」연작은 어두운 밑 배경을 만들고 호분을 사용해 옅은 톤부터 차곡차곡 겹을 쌓아 밝음을 찾아갔다. 끊어질 듯한 선, 속도감 있게 뻗어 나가는 선, 두께감 있는 선, 맺히고 흘러내리는 선 등 여러 선적인 요소를 교차해 밤의 식물들의 리듬감을 표현했고 잠이 오지 않는 여러 밤,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의 시간을 담아냈다. 「불면하는 겨울」은 매서운 바람에 하얀 상고대가 핀 나무와 겨울 풀이 주는 울림을 통해 내적 풍경을 표현했다. 생략과 변형을 거쳐 이미지를 재조합했고 5개의 풍경은 조금씩 다른 작업순서로 기법을 실험해 보았다. 분채와 파스텔을 더해 컬러감을 주고 파스텔의 포슬거리는 재질감과 호분의 두께감을 조합시켜 본 작업이다. ■ 최혜연

Vol.20211108a | 최혜연展 / CHOIHYEYEON / 崔惠淵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