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_서울특별시 협력 / 탈영역우정국
관람시간 / 01:00pm~07:00pm
탈영역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구 창전동 우체국) Tel. +82.(0)2.336.8553 www.ujeongguk.com www.facebook.com/ujeongguk
영화감독 김경묵이 어느 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그것도 미술대학으로. 그의 이 '선언'은 다소간 놀라움을 안겨주었는데, 영화가 아닌 미술을 택했다는 것도 그랬지만, 학교가 싫어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었던 그가 제도권 교육 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게다가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택한 뒤 감옥에서 끔찍한 규율 사회를 경험하고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제도 교육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그의 선택에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가지고 그가 학교를 마친 후 하게 될 작업을 기다렸다. ● 뜻밖에도 그가 선택한 매체는 VR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 도구로 삼았던 물성의 카메라는 이제 '렌즈 없는 카메라'로 형태 변환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영화를 떠난 것일까? 그의 영화적 세계의 근간이 되었던 사진적 리얼리즘은 완전한 환영주의로 전환된 것일까? 현장의 카메라와 편집실의 손의 노동은 전자 매체의 매뉴얼화된 작업으로 대체된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가 『QUARANTINE: 독방의 시간』에 담겨 있다.
감시체계 ● 1층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가로 1.5m, 세로 3.5m의 블랙박스가 놓여 있다. 작품의 제목 「5.25㎡」와 정확히 일치하는 크기의 이 공간은 작가가 2015년 2월 4일부터 2016년 3월 30일까지 1년 2개월여간 머물렀던 독방의 시간을 재현한 VR 설치 작품이다. 헤드셋을 장착한 관객은 작가가 수감되었던 통영 구치소의 독방을 가상적으로 경험한다. 칙칙한 감옥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 방은 의외로 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법무부가 제작하고, 윤형주가 작사, 작곡한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이라는 익숙한 노래가 방의 분위기를 한층 밝게 한다. 노란 벽으로 둘러싸인 방 한 구석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 개켜진 담요, 벽에 붙은 수용자 생활 안내문과 연간 달력, 구매 가능 목록표, 책상 위 빈 편지지가 눈에 들어오고 독방 한편에 있는 화장실도 볼 수 있다. ● 2평이 채 되지 않는 방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법은 어렵지 않아요~”라는 노랫말은 여전히 귓가에 울리고 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벽면에 조그맣게 쓰여진 낙서들을 발견하고 보물찾기하듯 하나하나씩 낙서들을 찾아 읽어간다. 그러는 사이 경쾌한 법무부 캠페인송은 명상 음악으로 바뀌고 작가 자신을 3D 스캔한 영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독방의 시간이 시작된다. 양심적 병역 거부와 그로 인한 수감생활을 경험했던 작가가 독방의 시간을 재현하기 위해 선택한 VR 작업은 '군대'와 '감옥'이라는 두 개의 규율 사회를 효과적으로 엮어내는 매체다. 가상세계 시뮬레이션의 밑그림을 그린 이반 서덜랜드가 '궁극의 디스플레이'로 상상한 VR은 또 다른 '궁극의 디스플레이'를 꿈꾸던 근대적 시각장치 '파노라마'와 종종 연결된다. 1792년 영국의 미술가 로버트 바커에 의해 최초로 명명된 것으로 알려진 파노라마는 애초에 군사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망루에 올라 점령지에 대한 정보를 한 눈에 파악하기 위해 설치된 파노라마는 이후 대도시 관람객들의 시각적 쾌락을 위한 근대 오락 장치로 널리 활용되었다. ● 한편 로버트 바커의 파노라마가 등장하기 1년 전인 1791년, 제레미 벤담은 파놉티콘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근대 감옥의 시초로 알려진 파놉티콘은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용자를 감시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파노라마가 중심의 망루에서 원통형의 벽면을 바라보던 것과 유사하게, 파놉티콘은 중심에서 원형의 감옥을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목적은 다르지만 파놉티콘과 파노라마 둘 다 근대적 시각성의 발전에 힘입어 발전했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all, every, whole)'과 '보다'를 뜻하는 'horama (view)', 'opticon'의 결합이 각각 파노라마와 파놉티콘이다. 모든 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근대 시각 체계의 광포한 포식성이 VR의 초석이 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박해천은 가상세계의 인터페이스를 '회피할 수 없는 이미지'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관람객은 이미지로부터 회피할 수 없고, 대상은 응시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러므로 VR 매체는 참여하고 있는 관람객에게 일상화된 감시의 경험을 일깨운다. ● 이러한 감시체계의 회피 불가능성은 VR 작품 옆에 전시된 3D 애니메이션 「폐쇄회로 Closed Circuit」 속 감시카메라의 눈으로 연결된다. 폐허가 된 감옥 이곳저곳을 유영하며 떠다니는 감시카메라의 시선은 완전한 보기를 꿈꾸는 근대적 시각 체계의 구현이다. 닫힌 철창 안을 뚫고 들어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한때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절대적 주권자로서 감시당하는 대상에게 허락되지 않는 자유를 과시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폐허의 공간을 떠도는 카메라의 시선은 감시 대상을 상실했기에 쓸쓸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텅 빈 응시만이 유령처럼 감옥을 떠돈다.
지표 없음 ● 영화감독 김경묵은 필름 시대 영화의 자장 안에서 성장해 디지털로 영화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미술작가 김경묵은 3D 게임 엔진, 가상 시뮬레이션 엔진 등을 이용한다. 필름처럼 뚜렷한 주소지를 갖는 이미지에서 코드화된 저장매체인 디지털을 거쳐 물성화된 스크린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물론 저장매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VR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은 점점 더 지시체로부터 멀어져간다. 이런 지표 없음의 감각은 그의 전작 영화들에서, 그리고 이번 전시에 소개된 다른 작품에도 공통되는 정서다. ● 감옥에서의 경험은 분명 실제적 경험이지만, 수감 경험의 재현은 온전히 기억에 의존해서만 가능하다. 자신이 기거했던 공간을 다시 찾아갈 수도, 사진으로 남길 수조차 없다. 실재하는 공간과 시간이었지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감옥은 현실reality인 동시에 가상적virtual 시공간, 즉 가상 현실이 된다. 특히 독방은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타자의 존재도 없는, 온전히 작가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독방의 시간은 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닌 관통함으로써만 지각 가능하다. ● 이것은 VR 영상 속 작가의 등장으로 분명해진다. 3D로 스캔된 작가의 영상은 실루엣은 있으되 입자로 이루어져 명확한 형상을 알아챌 수 없는 환영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영상 속 작가는 방바닥에 앉아 명상을 하기도 하고, 좁은 방 안을 끝없이 서성이기도 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다 방바닥에 시체처럼 누워 있기도 한다. 인터렉션이 없기에 관객은 작가의 움직임을 하릴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방 안은 좁고 눈을 돌릴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방심하는 사이 작가는 관객을 관통해 지나가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관람객의 좌표에 맞춰 미리 계측된 이미지가 우리의 뇌신경을 자극해 '통과'라는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환영, 그리고 관통. 이것이 독방의 시간을 함축하는 키워드들이다.
발신과 수신 ● 1층 전시장의 벽면에는 작가가 감옥 안에서 밖으로 내보낸 서신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2015년 1월 14일 수감되었다. 2015년 2월 4일 혼거방에서 독방으로 옮겨졌고, 이후 서울 남부 구치소에서 통영으로 이감되었다. 감옥 안에선 전자 서신을 받아볼 수 있지만, 보낼 수는 없다. 수기로 쓰여진 서신은 그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이번에 전시된 서신들은 통영에서 지인들에게 보내진 서신들이다. 서신에는 통영으로 이감된 뒤의 고립감과 군대나 다를 바 없는 감옥의 규율 체계로 인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서울이나 통영이나 외부 세계와 차단된 1평 반의 좁은 독방 생활이라는 점에서 실제 감옥의 지리적 위치는 내부에서 체감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통영과 서울이라는 공간은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1년 2개월여의 독방'이라는 시공간은 그 전후와 외부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상상되지 않는다. 발 닿은 곳과 닿아야 할 곳의 괴리는 시간과 공간의 왜곡된 경험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잊혀진 과거는 불현 듯 생생한 현재처럼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먼 미래처럼 아득해져 가기도 한다. ● 또한 특정 주소지를 향해 발신하는 편지는 그가 유일하게 명확한 지표성을 가지고 말걸기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전시장인 탈영역우정국의 과거 금고 속에는 주소가 명기된 편지봉투가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그마저도 수신인의 상태를 알 수 없기에 언제나 도달 불가능성을 안고 있는 매체라고 말한다. 분명한 주소지가 있음에도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지하에 전시된 「소리산책 Sound Walk」에서도 반복된다. 「소리산책」은 환풍기와 라디에이터, 엘리베이터 등 건물에서 나는 기계 소리들을 전자 장치로 증폭시킨다. 여기에 아폴로 7호의 발사 시그널이 담긴 나사NASA 담당자의 육성을 덧입혀 가로막힌 공간과 대비되는 발사체의 비행에 대한 상상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아폴로 7호가 목적지에 당도하기 전까지 그 도착을 확신할 순 없다. 물론 사후적으로 아폴로 7호가 성공적으로 임무 완수를 마친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출발의 순간 도착 가능성은 언제나 의심받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로켓 발사는 수신 불가능성을 담보한 발신이라는 점에서 옥중서신의 연장선에 있다.
격리의 시간 ● 이번 전시의 제목은 『QUARANTINE: 독방의 시간』이다. 작가가 수감생활을 마친지 6년이 다 되어가지만, 출소 이후의 시간은 바로 이 '격리'된 시간의 의미 속에서 재구성되기를 요청한다. 발터 벤야민이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것으로 현재를 재정의했던 것처럼 '격리'의 시간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에 기입해 사유–그 속에서 생각의 정지마저 포함하는 사유–를 요청하는 '지금 시간'이다. 이번 전시는 그 사유(의 연속으로서 정지)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배주연
Vol.20211106b | 김경묵展 / KIMKYUNGMOOK / 金炅默 / installation.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