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이 일이 된다

이만우展 / LEEMANWOO / 李萬雨 / painting   2021_1022 ▶ 2021_1119 / 월요일 휴관

이만우_부활을 꿈꾸는 논바닥의 새순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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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우 블로그_blog.naver.com/artleem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붓질이 일이 된다』에서 '일'은 그간 이만우 작가가 행해온 '수행적 회화'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그간 쌓아온 회화의 노동 행위를 반영하며, 예술과 노동의 복합적인 사유로 안내하는 기축이 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만우 작가의 붓질은 그의 고향 충청도의 논바닥을 그리는 행위로부터 시작하며, 사유의 비물질적인 확장과 재귀를 맴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을 도왔던 개인적인 경험은 그림의 대상이 논바닥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게 되었다. 어린 그에게 손모 작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매우 기본적인 행위이자, 농업기술이 발달로 상실해버린 추억을 동시에 동반하게 되었다. 그의 논바닥 회화에서는 트랙터가 지나간 자국들을 그리는 흔적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손 모내기 작업이 쓸모가 없어진 후의 풍경을 반영한 것이다.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트라우마는 강박에 가까운 붓질과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가장 주변적인 풍경, 그리고 강박에 가까운 노동 행위 등을 복합적으로 회화 작품에 작동시킨다.

이만우_붓질이 일이 된다展_스페이스몸미술관 제2전시장_2021
이만우_황금 볏짚에 드리운 그림자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21

작가에게 있어 '그린다'는 행위는 미술사가 회화에 부여해 온 많은 짐들로부터 자유롭다. 이만우에게 그리는 행위는 어떤 철학적 당위나 실험으로부터 구애받지 않고 다만 수행적인 '붓질'로 이어지며, 이것은 단지 '노동'이라는 행위와 가장 가까이 결부시킬 수 있는데, 예술과 노동이 갖는 사회적인 함의들이 내포되고 때로 예술 행위와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그는 "왜 그림을 그리세요?"라는 비평가의 길 잃은 질문에 "시간 죽이기 가장 좋으니까요"라는 단순한 대답을 한다. 이렇게 비평 활동은 더욱 길을 잃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회화 붓질에 대한 수행과 실행을 설명하는 가장 솔직한 작가의 언어로 해석된다. 이만우 작가가 세필 화법으로 그려나가는 농지화는 노동집약적이며 '손 모내기'의 예술노동 버전이다. 또한 작가가 예술과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이만우_붓질이 일이 된다展_스페이스몸미술관 제2전시장_2021

예술 노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외적으로 특수한 몇 가지 성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노동의 대가가 경제적으로 책정되거나 환원되는 것이 어렵다. 회화, 붓질을 포함하여 예술적인 행위를 내포하고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은 사회적으로 노동의 강도나 표준을 측정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인 대가를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 두 번째로 예술 노동은 예술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과정을 수반하며, 때로는 과정 자체 역시 예술 행위의 중요한 부분으로 포섭된다는 점이다. 이만우 작가는 예술 노동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회귀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자극한다. 예를 들어 2017년 대전 모리스 갤러리에서 열린 「흔적 지우기」의 경우, 작가가 경제 활동을 위해 벽화를 칠하는 행위와 그 행위에서 수반된 사유들을 전시로 치환한다. 작가는 벽화를 칠하는 강도 높은 행위를 수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벽 틈에 자라난 잡초들이 벽면에 자신의 흔적, 레이어를 남기고, 작가는 강도 높은 롤러 노동 행위를 통해 이 흔적을 없애는 노동을 반복한다, 이것은 논바닥의 생명을 그리는 작가의 기존 행위들을 배반하는 측면이 있다. 작가는 이런 모순을 전시와 작업을 통해 미술판으로 들여오며, 잡초 자국을 없애는 폭력적인 붉은 색채의 그림은 미술과 노동이라는 테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만우_Rice paddy Landscape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9 이만우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11

2020년 공주 갤러리 쉬갈다방에서 열린 전시 「이만우의 일터·소비·채집」 전시는 예술과 노동에 대한 테마적 사유나 표피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자신의 예술관을 밀어붙인 전시이다. 전시장에 놓인 부자재, 톱밥, 나무 부스러기 등은 작가가 인테리어 노동 현장에서 남은 자재들을 전시장으로 들여놓은 것으로, 이것들은 전시장에서 오브제로 탈바꿈한다. 철거 현장에서 버려진 폐나무, 고철, 포장용 끈, 페트병 등은 노동의 배설물과 같은 형태로 전시장에 나뒹굴면서 다시 예술적인 생산으로 순회한다. 이것은 이만우 작가가 '예술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예술적인 노동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라는 일종의 선언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여 진다. 이것은 예술이 화폐가치로 환원될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닌, 예술 노동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설파하는 작가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이만우_Rice paddy Landscape_캔버스에 유채_120.5×216cm_2014

이번 스페이스 몸 전시 『붓질이 일이 된다』에서는 다시 작가의 농지화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예전 농지화에서 보여준 치밀한 세밀화 기법에서 벗어나 큰 규모의 화폭에 전반적인 풍경의 서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농지화의 음영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이번 농지화에서는 그의 작업실 주변 농지 풍경을 그리되, 빛이 들어오는 시점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푸르게 자라나기 시작한 벼를 비추는 포근한 햇살, 논을 찍는 작가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비추는 음영의 논 풍경, 햇살이 논에 비출 때 작가의 눈에 교란되어 보이는 보랏빛 논의 풍경들은 작가의 눈에 비춘 '빛'의 상대적인 기준들과 주관적인 표현을 고스란히 나타낸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또한 이런 특징들은 작가의 기존 농지화가 가지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작가가 지역 화가에 머무르며 단순히 '농지'의 풍경과 그에 결부된 어린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다루는 데 그치는 작가가 아니라, 외려 작가의 회화는 농지의 단순한 재현이나 사실적인 묘사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붓질을 뻗어 왔음을 시사한다.

이만우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4×130.3cm_2010

이만우 작가의 회화는 주변의 풍경(논과 밭)을 다루고 있되 작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수행적인 붓질로 실천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작가의 사유와 노동과 예술이라는 테마로 발전되고 심화되었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가로서 예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표현하려 했다는 데 현대미술 작가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이 사유는 반복적인 예술 행위와 실천을 통해 예술 노동 자체의 정당성과 변칙적인 외부 관점들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다시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농지화의 정통 회화를 통해 예술가의 주관성과 상대성, 취식과 선택, 소화와 배설 등 예술 행위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만우 작가의 농지화는 예술과 노동에 대한 일반적인 현대미술의 논점과 동시에 작가의 개인적인 사유와 감각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 ■ 조숙현

Vol.20211022i | 이만우展 / LEEMANWOO / 李萬雨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