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단위

임동식展 / RIMDONGSIK / 林東植 / painting   2021_1022 ▶ 2021_1119 / 월요일 휴관

임동식_친구가 권유한 풍경-죽림리_캔버스에 유채_53×73cm_2005~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413e | 임동식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임동식의 전시 『풍경의 단위』는 그간 작가가 선보여온 풍경들의 근원에 대해 설명하는 전시이다. 임동식의 풍경화는 크게 세 갈래로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주 고등학교 미술부에서 야외 사생을 통해 그린 풍경화이다. 이는 임동식 풍경화의 가장 먼 과거이자, 출발점이다. 두 번째는 1993년 공주 원골마을에 입주한 시점으로, 작가가 자연과 풍경 속으로 본격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문맥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원골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꽃 심기 등에 심취하여 10년 이상 추진했던 '원골마을미술제 프로젝트'로서, 이것은 임동식 예술관 '예즉농, 농즉예'를 완성한 계기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예즉농, 농즉예'는 예술이 농사이고 농사가 예술이라는 논리로 완성되며, 이것은 자연예술이 마을단위의 자연친화적 삶의 생태와 그 테마와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예즉농 농즉예 사상을 마을미술제를 통해 드러냈다. 농사를 짓고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예술가'라고 하는 미술의 수평구조를 이루는 예술론적 문맥을 대내외에 드러냈고, 이는 과거 그가 기획한 금강현대미술제(1980)와 야투(야외미술 스터디그룹)에서 심화하여 다가갔던 자연과 미술을 잇는 문맥을 극대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야외 미술에 투하된 30여 년의 활동은 1945년 임동식의 친구이자 해방둥이동갑네 우평남을 만나면서 농경 이전의 채집생활을 이해하며 본격적인 풍경화 그리기로 전환된다. 운전을 못 하는 작가는 친구 우평남의 도움으로 산과 들로 버섯 채취, 미꾸라지 잡기 등의 야외 활동을 함께 하며, 그때마다 친구의 권유로 좋은 풍경을 소개받아 풍경화 시리즈를 완성하게 된다. (임동식 풍경화 제목에 등장하는 '친구가 권유한 풍경'의 친구는 우평남이다.)

임동식_방흥리 고목 드로잉_종이에 색연필_38×52.5cm_2003
임동식_기억의 풍경-한적한 방앗간_캔버스에 유채_ 31.8×40.9cm_1962(2002 재제작)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그림들은 작가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억들로 출발한 풍경화의 궤적을 담고 있다. 「기억의 풍경 : 한적한 방앗간」(1962-2002)은 작가가 공주고 미술부 2학년 재학 시절 서울 홍익대학교 앞 홍익화방에서 사온 유화도구로 처음 그림 유화 작품인 한적한 방앗간을 회상하며 재현한 그림으로, 이번 전시의 주제인 '풍경의 단위'에 맞추어 제시되었다. 「원골풍경」(1993)은 원골마을로 입주한 임동식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마을의 지형을 담은 그림으로, 그의 풍경화가 친구 우평남이 권유한 풍경 시리즈 이전의 필치를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친구 우평남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임동식의 풍경화는 처음에는 수채연필화로 시작했다. 「방흥리 고목 드로잉」은 '친구가 권유한 풍경' 시리즈의 첫걸음이며, 화면 속에 또렷하게 묘사한 부분과 의도적으로 흐려 놓은 분위기를 병행시켰다. 친구가 권유한 「눈 내리는 풍경」은 이름 모를 장소, 즉 무명성과 익명성이 담긴 그림으로 어느 곳에서나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화가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고목이 보이는 풍경」은 고목의 한 끝자락이 보이는 설정 속에 앞의 풀밭이 보이는 특정한 고목의 몸체를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써 그의 풍경화가 드러내는 무명성과 익명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화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목의 몸체를 일부러 감추고 끝자락만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는 임동식 풍경화의 중요한 의도로 작용한다.

임동식_고목이 보이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3~7

또한 이번 전시에는 임동식이 풍경화를 대하는 태도가 다분히 반영되어 있다. 「친구네 집 장독대」는 친구 우평남의 집수리 전 풍경을 그림으로써 그림의 소재를 먼 곳에서 찾지 않고 늘 주변과 가까운 곳에서 포착하는 화가의 특성을 보여준다. 임동식은 중요한 것은 어느 곳이나 바로 여기, 이 때, 지금 존재한다는 생각을 이후에도 정립해 나가게 된다. 한편 「친구가 권유한 풍경 – 봄비」는 같은 풍경을 마주하는 다른 시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임동식의 공주고 미술부 첫 번째 은사님의 고향 논길을 그린 그림으로써, 우평남과 함께 찾은 풍경을 감상하던 중, '어디를,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방향을 우평남이 정하게 함으로써 친구와 자신의 대상에 관한 시각의 차이를 담았다. 그러므로 같은 풍경을 그렸으되, 논길과 나무 등 주목하는 대상의 차이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표현하는 풍경화의 묘미를 볼 수 있다. 이 작업을 포함하여 '친구가 권유한 풍경' 시리즈는 미술 전문가인 작가의 시각과 판단보다 일반인 친구 우평남의 관점과 선택에 더욱 큰 흥미와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를 지속적으로 내비친다. 이와 같이 '풍경' 이라는 대상을 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 차이에 관심 두고 다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임동식_풍경의 단위展_스페이스몸미술관 제3전시장_2021
임동식_풍경의 단위展_스페이스몸미술관 제3전시장_2021

임동식의 작업은 풍경화를 그리는 일반적인 회화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 아트 활동을 통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예술 행위가 단순히 장르적인 표현과 발표에만 머물지 않고 예술 활동주의를 통해 확장하려는 작가의 사유와 실천을 보여준다. 「마을 정주나무 밑에서 그리기」는 임동식이 원골마을 체류 중 행했던 대학생들의 야외수업 장면을 담았다. 당시 작가는 작업장 부근에 수 만 송이 수선화를 심고, 이를 그의 예술 활동의 일부로 포섭했다. 이 작업은 마을 위 정주나무 밑에서 야외 실기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림 속에는 한복 입은 동네 할아버지가 이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포착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는 사생대회 풍경을 보고 '지금 이 학생들이 뭘 하고 있지?'라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순간의 포착이야말로 이 그림과 임동식의 그림 철학에 담긴 총체적인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즉, '미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작가의 질문이다. 작가에게 미술은 모태적 당위를 갖지만, 도대체 일반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다가가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끝없이 탐구하는 작가의 생각이 바로 이 그림에 반영되어 있다. 「세거리 은행나무」는 충남 연기군 남면에 위치한 '세거리'라고 불리는 수령 육백여 년 이상의 은행나무를 그렸다. 왜 이 나무를 그렸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선대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이기 때문에 그렸다는 대답을 내놓고, 이것은 그의 회화 제작의 한 가지 근원적이 당위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내용이다.

임동식_마을 정주나무 밑에서 그리기_캔버스에 유채_105×45cm_2013
임동식_세거리 은행나무_캔버스에 유채_105×45cm_2014

이렇듯 회화가 담을 수 있는 종횡의 단위에 접근하여 풍경화를 이루는 임동식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결코 낯설지 않으며, 친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무엇을 그릴까?'라는 회화 작가의 원초적인 질문에 어느 정도 작가의 대답이 반영되어 있다. 자연에 가까운 삶을 이루어왔던 우리들의 과거를 일깨워주는 동시에 회화의 내일은 어느 곳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들로 『풍경의 단위』는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조숙현

Vol.20211022g | 임동식展 / RIMDONGSIK / 林東植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