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은주 그래픽 / 물질과 비물질 에디터 / 김효정 설치 / 김연세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디스위켄드룸 This Weekend Room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42길 30 (한남동 789-9번지) 1층 Tel. 070.8868.9120 thisweekendroom.com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 全져 재 녀러신고요 / 어긔야 즌ᄃᆡ를 드ᄃᆡ욜셰라 / 어긔야 어강됴리 / 어느이다 노코시라 / 어긔야 내 가논ᄃᆡ 점그ᄅᆞᆯ셰라 /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1) ● 몇 해 전 「정읍사」를 다시 읽으면서 이 시가에서 연상되는 장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달 아래 있을 옛 여인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담긴 사랑이, 무엇보다 후렴구의 음성어가 주는 목소리의 공명감이 그러했다. 백제의 구전가요로 추정되고 있는 「정읍사」 속 여인의 목소리가 시대를 넘어 나에게도 공명하는 그 느낌은 축약된 시가 가지는 고도의 함축된 정서를 현재의 것으로 되살아나게 했고, 옛 인간의 감정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새삼스러운 감회를 느꼈었다. 과거의 목소리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야말로 전통과 현대화에 대한 여타의 논의에 앞서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지점이 아니겠는가. ● 내가 느낀 그 시적 장면에 작가들의 자의적 해석을 덧붙여서 시각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과 '전통'의 뿌리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 온 김보민, 김지평, 최수련 작가와 만나 「정읍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었다. 무엇보다도 학술적인 분석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작품들을 통해 「정읍사」와 공명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정읍사」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우리 안의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통해서, 멀리 떨어진 전통적인 것 안에서도 여전히 현재를 향해 발화되는 그 무엇을 붙잡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목소리에 대한 집단적 공감이야말로 과거에 구전가요가 이어졌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며, 오늘날 박제화된 전통을 탈각하고 전통과 현재 사이에 길을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의 소리는 집단적으로 구전되면서 무수한 변용을 거친다. 그 소리가 전혀 다른 시간대와 문화권을 가진 현재의 미술작가들과 만남으로써 시각 이미지라는 또 다른 몸을 얻게 된다면 어떨까? ● 「정읍사」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 의 「악지(樂志)」 편에서 언급된 바 있었고, 그 가사가 조선의 의례와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에 한글로 기록되었다. 이 전시의 제목인 '아으 다롱디리'는 『악학궤범』에 수록된 「정읍사」의 마지막 후렴구에서 따온 것이다. 「정읍사」의 후렴구 '아으 다롱디리'는 고려가요 「동동」의 후렴구인 '아으 동동다리'와도 유사하며, 「서경별곡」의 후렴구인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후렴구들은 뚜렷한 의미가 없는 음성어로서 시에 통일성과 운율을 부여하여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함으로써, 구전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2) 최초의 발화자가 누구였던간에, 이러한 구전가요들은 개인의 화법을 넘어 집단적인 울림으로 확장되면서 오랜 기간 계승될 수 있었다. ● 「정읍사」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고려사』의 「악지」에 따르면, 이 노래는 정읍에 사는 한 여인이 행상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여, 산 위의 돌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3) 백제의 노래가 고려에까지 전승되면서 불리워졌기에 『고려사』에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인 나례(儺禮)에 활용되면서 그 가사가 한글로 『악학궤범』에 수록되기에 이른 것이다. 4)「정읍사」가 백제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었다는 점은 노래 속 여인의 목소리가 분명 시대적 차이를 넘어서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높이 떠 있는 달이 삶의 "즌ᄃᆡ" 즉 진 곳에 빠지지 않도록 밝은 빛을 비추어 주고, 상처를 입을지 모를 불안에서 구원해줌으로써 사랑하는 이가 무사귀환하듯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불운을 정화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리라. 「정읍사」에 담긴 최초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구전된 원동력은 그 감정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정읍사」가 조선시대 궁중의 주술적인 의례에 활용되었다는 점은 이 목소리에 담긴 소망이 집단적인 공동체의 그것과 일치했음을 시사한다. ● 한편으로, 『고려사』에 수록된 「정읍사」에 대한 설명에서는 여인이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보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후대에 전해진다고 언급하고 있다. 5) 이러한 망부석 설화는 「정읍사」를 남편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기다림을 미화하는 동아시아 열녀 이데올로기 맥락에서의 해석 틀을 제공했고, 이후 「정읍사」에 대한 많은 연구들 역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규정해왔다. 6) 「정읍사」의 발원지로 추정하고 있는 전북 정읍시에는 지자체에서 건립한 '정읍사공원'이 있는데, 두 손을 모으고 남편을 기다리는 돌로 된 '망부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정읍사 여인의 숭고한 사랑과 아름다운 부덕(婦德)"을 기리는 목적으로 '정읍사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열녀상을 장려해온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관광자원으로서 소비되는 여성 이미지가 기묘하게 결합된 사례로서, 「정읍사」의 발화자의 목소리가 공명을 멈추어 버린 채 전형적 클리셰가 되어버린 상황을 드러낸다. 「정읍사」는 어느 시점부터 더이상 구전되기를 그치고 기록된 자료로서의 전통 안에서 이처럼 전형화되어 버렸다. 정읍사공원의 망부상은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 숱한 기념비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미 여기에 없는 것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목소리는 무엇일까? ● 구전가요의 원동력인 목소리, 말과 이야기의 힘은 집단 무의식에 의해 공유되고 문화적 차이와 시대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된다. 그 힘이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문화권의 특성을 더해가며 서로 다른 목소리와 얼굴로 이야기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정읍사」가 각자에게 공명되는 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제각기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고자 했다. 작가들 각자가 모색해온 그간의 작업의 맥락에서 시작하여, 공유되면서도 개인적인 「정읍사」와의 연결점을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김보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여성들의 자료사진, 옛 설화들 안에서 그 자신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을 이미지들을 호출해왔다. 이번 전시의 경우 이전 작품 「좁은 강」(2017)이 「정읍사」와 그를 잇는 단초가 되었다. 이 작품은 사랑의 감정을 상상의 지형도로 구현한 17세기 프랑스의 '부드러움의 지도(Carte de Tendre)'를 활용하여, 사랑을 경험하는 작가 자신의 감정적 상태와 신체 감각을 풍경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김보민은 이 작품을 통해 오랜 과거 속 「정읍사」의 여성 화자를 자신의 모습에 이입하여 되살려냈다. ● 또한 그는 이 전시를 위해 개화기 기녀들을 찍은 사진들을 재현한 그림, 서예가인 작가의 어머니가 쓴 「정읍사」의 후렴구를 함께 배치하여, 흡사 공간적 시서화와 같은 장면을 구성하고 역사와 현재의 시간을 잇는 장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자료로만 남아 있는 옛 여인들의 이미지에 부여되었던 가부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맥락을 걷어내고, 조선의 나례에서 「정읍사」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을 기녀들의 세계를 향한 상상의 경로를 연다. 이 여인들의 세계에 동화된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기록 사진 너머에 있었을,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며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존적인 인간 여성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김지평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정읍사」 나례 의식의 무보(舞譜)에서 착안하여 집단적 원무(圓舞)를 8폭의 낮은 병풍으로 형상화했다. 전통적 병풍 형식이 인체 키높이를 반영한다는 점을 역할용한 이 낮은 병풍은 인물의 발 부분만을 남김으로써 열려있는 공간 속에서의 동적인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고, 과거의 정령들을 불러오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바라춤, 남사당놀이, 굿, 탈춤 등의 이미지를 부분부분 연결한 이 집단적 원무는 위계 없는 축제의 장면을 연상시키며, 집단적 춤을 통해 인간 안에 있는 자유롭고 신성한 힘을 해방시킴으로써 공동체의 문제를 치유하는 의미를 지닌다. 역병이 도는 오늘날의 팬데믹 상황에서 악운의 퇴치를 위한 집단 의식이 갖는 의미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 한편으로 김지평은 「정읍사」의 전승과정에 개입되었던, 열녀 이미지를 유포하는 가부장적 망부석 설화의 해석 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는 최근까지 여성의 옷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 족자의 형식에 착안하여, 고딕 소설과 같은 이야기 속 여성 주인공들의 초상화를 동양화 족자로 표현해왔다. 7) 이 전시를 위해서 그는 「정읍사」의 전승과 관련된 돌이 된 여인의 족자 초상화를 구현했다. 「정읍사」 속 여인뿐 아니라 장자못 설화 등 구전설화 속 여인이 될 수도 있을 이 흥미로운 돌 초상화는 기이한 모양의 돌 이미지를 그려왔던 김지평의 '기암(奇巖)' 연작과도 연결된다. 즉 열녀 이야기 맥락에서의 망부석 설화와는 그 의미를 달리하여 돌을 신성한 힘을 지닌다고 보는 애니미즘에서 출발한 것으로, 고통을 견디어냄으로써 믿음의 주체인 인간이 믿음의 지향인 돌 그 자체로 승격된 것으로 해석했다.
최수련은 귀신과 정령에 대한 전설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서사 안에서도 언제나 특정한 프레임이 개입된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동아시아의 설화에서 선녀나 염라대왕 서사에서조차 가부장적 징벌체제와 같은 세속적인 규범이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 서사구조 안에서 재현되는 여성 이미지를 다룬다. 최근에는 중국 전래설화를 집대성한 송나라의 『태평광기(太平廣記)』, 청나라의 민간 설화에서 채록한 이야기 집 『요재지이(聊齋志異)』 등을 마치 교본을 학습하듯 해독하고 써내려가며 그 부조리한 구조를 되새기는 동시에, 그 안에서도 기존 규범에 저항하는 여성에 대한 구절과 이미지들을 찾아 그려나가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최수련은 「정읍사」의 "내 가논ᄃᆡ 점그ᄅᆞᆯ셰라(내가 가는 곳에 저물세라)"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여인의 심경을 자기 생존의 감정으로 읽어냈다. 이러한 감정을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남성을 기다려온 여인들의 울분과 절망, 저항의 감정과 연결시키면서, 중국 한나라의 아름다운 황후이자 악녀로 기록된 조비연 등의 여성 이미지와 『태평광기』, 『요재지이』에서 가져온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수의 구절들을 오버랩시켰다. 또한 인간과 사랑에 빠진 선녀 이야기를 다룬 중국 사극 드라마에서 하늘의 뜻에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표정의 여성 이미지를 참조하여 재현함으로써, 「정읍사」를 애처로운 기다림으로 해석하는 전형성에서 탈피하여 절망하고 비난하고 분노하는 역동적 여성의 이야기로 이어가고자 했다.
이처럼 「정읍사」의 목소리를 화두로 시작된 세 작가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모였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제안한 책들을 같이 읽었는데, 김보민은 구전되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한 타에 켈러(Tae Keller)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김지평은 한무숙의 「돌」이 포함된 단편소설집, 최수련은 논문모음집인 『동아시아 여성의 기원: 열녀전에 대한 여성학적 탐구』를 추천했다. 각자의 기호가 반영된 이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작가들이 그간 해왔던 작업들과 「정읍사」의 연결점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졌다. 달이 떠 있는 풍경 아래 있는 옛 여인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공명이 세 작가가 그간 제각기 탐색해온 작업의 맥락들과 이어지면서, 필자가 처음 「정읍사」에서 발견했던 것과 다른 레이어들이 추가되고 더 풍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전시도록 에디터로서 대화에 함께 한 김효정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이 전시는 그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져 나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정읍사」의 목소리에 작가들이 더한 것들이 누군가에게 다다라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며 더 멀리 공명되기를 기대한다. ■ 이은주
* 각주 1) 조선시대 『악학궤범』에 한글로 수록된 백제가요 「정읍사」 원문이다. 뜻풀이는 아래와 같다.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 / 어기야차 멀리멀리 비추어 주옵소서 / 어기야차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 저자에 가 계신가요 / 어기야차 진 곳을 디딜세라 / 어기야차 어강됴리 / 어느 것에다 놓고 계시는가 / 어기야차 나의 가는 곳에 저물세라 / 어기야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박병채 역) 2) 「정읍사」와 유사한 후렴구를 가진 「동동」의 경우, '아으 동동다리'에서 '동동'은 북소리의 음성을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와 '영(靈)'을 뜻하는 주술 용어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3) "井邑 全州屬縣 縣人爲行商久不至 其妻登山石以望之 恐其夫夜行犯害 托泥水之汚以歌之 世傳登岾望夫石云", 『高麗史』 권71, 「樂志」 2 4) 이 노래는 중종 때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 하여 궁중에서는 폐지되었다. 5) 하경숙, 「「정읍사」의 후대적 전승과 변용 양상」, 『동양고전연구』, 제47집, p.80 참조. 6) 이수곤은 고대 시가에 적용되는 이러한 해석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읍사」를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했다. 그는 여성 화자의 기다림을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적 속성으로 보고, 시적 화자가 어둠으로 인해 발생된 스스로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달을 불러들여 긴장과 갈등을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것으로 해석했다. 이수곤, 「「정읍사」의 여성 화자 태도와 그 의미에 대한 시론적 고찰」,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14호, 2007, pp.385-416 참조. 7) 병풍과 족자에서 비단을 덧댄 하단은 치마, 윗부분은 저고리, 양쪽 띠는 소매라고 불리는 관습이 있다.
Vol.20211021e | 아으 다롱디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