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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광주광역시_광주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HORANGGASINAMU ART POLYGON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47번길 20 Tel. +82.(0)62.682.0976 www.horang-c.com
제작의 공정에서 발현되는 요소들의 결합, 앙상블 ● 천영록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제작 과정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가 한지(韓紙)를 재료로 한 작품 경향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다 보면 대화의 상당 부분은 제작 공정이 된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왜 한지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재료라 할 수 있는 한지를 비롯하여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최종적인 작품 형태가 되기까지 오래 기다리고 여러 단계가 필요로 함을 밝힌다. 그렇다면 그가 작품의 철학적 의미보다 어떻게 제작을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작가의 제작 동기와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유추해보고, 작가의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선, 작품은 요소와 요소들이 만나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자 앙상블이다. 최근에 제작된 작품들을 보면, 하나의 작품이 이루어지기까지 여러 공정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작가가 대학교 시절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 한지 제조 공방의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종이에 매료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가는 종이를 기본으로 한 작업을 하였고, 자신이 마주하는 자연 풍경과 매일 접하는 날씨를 보며 그것들을 작품 속으로 가져와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작가가 섬유예술 전공을 하면서 접한 '실'이란 재료와 실을 직조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작품 제작에 이용되었다.
한지를 이용한 작품의 경우 작가는 이미 만들어진 한지를 다시 물에 담가 섬유질로 해체시킨다. 그리고 작품의 본체인 틀에 지그재그로 실을 걸고 중간 중간에 나무로 만든 심을 지주로 대어 구조를 만들고, 그 위로 펄프가 자연스럽게 얹어진 상태에서 건조시킨다. 종이 섬유질이 실에 얹어진 상태로 마르면서 실이 촘촘하게 교차되는 부분은 종이로 막히게 되고, 펄프가 무거워 떨어지면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는 종이 자체가 습을 머금은 상태에서 염료를 올리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마치 불에 타다 만 흔적과 같은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작가는 하늘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이용하여 종이에 구멍을 만들어 유사한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공정을 여러 틀에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하면서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모아 층층이 쌓아 하나가 되도록 겹쳐 작품을 완성한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작가가 자연에서 관찰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종이, 실과 같은 요소들을 여러 번에 걸쳐 결합시킴으로써 하나의 앙상블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질료가 가진 상(相)을 공정에 의해 다른 상태로 전이시키는데, 그것은 마치 구름 속에 물입자가 무거워져 땅으로 떨어지면서 비나 눈으로 상전이(相轉移) 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작가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상전이 되는 과정을 거꾸로 생각하여 자신의 작업에 적용한다. 자연에서 관찰한 어떤 현상을 해체하고 해체 후 분절된 요소들을 조합하여 다른 상태의 개체로 만든다. 집중하여 관찰을 하는 순간에 결국 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대상과 관찰을 하는 주체(작가)와의 관계가 발생하고 네트워크 발생한다. 관계의 시작이 되면 요소(element)들이 하나씩 발생하고 그 공정이란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요소들이 하나의 개체를 이루고 개체들이 모여 앙상블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즉 관찰, 관계의 발생, 관계 속에서 재 위치되는 요소들, 그리고 그 재 위치되면서 상태가 변하는 요소들의 결합이란 공정을 거치는 것이다.
근래에 작가는 이와 같은 과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앙상블의 요소이자 종이 질료들을 구축하는 매개인 '실'은 최근에 들어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로, 세로로 직조되는 실의 궤적이 화면에 남아 수많은 사각형을 만들어내고 그 사각의 공간에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수많은 작은 원형의 구멍들이 축적되어 깊이를 만들어낸다. 중력으로 만들어진 빗방울의 무정형 타공과 여러 방향에서 사선으로 그어진 실들로 발생된 무정형 타공은 이제 작가의 원형 타공으로 바뀐 것이다. 자연의 낙엽, 눈, 비가 만들어내는 카오스적인 요소들은 작가의 행위를 매개로 하여 전체 앙상블을 구성하는 개체들로 발전된다. 작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수직선, 수평선, 원형이란 추상적 요소들을 엮어 궁극적으로 개체들의 앙상블을 이끌어내며, 때로는 그 앙상블을 다시 하나의 단위로 사용함으로써 또 다른 더 큰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천영록 작가가 작품 제작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관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인 낙엽, 눈, 비와 같은 자연을 비롯하여 작가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실, 종이와 같은 어떤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태도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관찰이란 행위를 통해 이러한 카오스적인 비인간(nonhuman) 요소들 간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작은 공간 안에 새로운 우주(universe)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유영아
Vol.20211020e | 천영록展 / CHEONYOUNGROK / 千咏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