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11월2일_12:00pm~02: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갤러리 담에서는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김은현 작가의 『명상-꽃비』 조각전을 준비하였다. 작가의 작업은 흙을 주물려서 공기를 빼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흙이라는 물성과 손이 만나서 치대면서 흙덩어리에서 주는 순간을 포착하여 속을 파내서 얼굴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 약간의 손자국으로 얼굴의 눈과 입의 윤곽을 만든다. ● 평론가 박영택은 김은현의 작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졸박한 미감과 무작위적인 세계, 동심의 세계 같은 것이 이 작가의 작업에 깊숙이 잠겨있다. ● 흙이라는 재료, 물성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서 이루어진 그 얼굴은 다시 불에 맞고 재를 뒤집어 쓰고 나앉았다. 가마의 불 속에서 그려진 흙의 마음이자 흙에서 걸어나온 부처의 미소 같은 것이 서려있다. 그런가하면 어린아이의 얼굴같기도 하다. 흙을 빚고 주물러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고 이를 뜨거운 불로 구워내 만든 이 조각, 도조는 특정한 이의 얼굴이기 이전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누구의 얼굴도 아니지만 결국 모든 이의 얼굴로 다가온다. 더없이 무심하기도 하고 그지없이 소박하면서도 한 얼굴이 지을 수 있는 평화와 휴식, 안온과 정신적인 충만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수식과 치장을 거둔 자리에 그저 흙이 불과 만난 응고되고 결정화된 형태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미소만으로도 이 얼굴은 충일하다. 미소가 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은 무엇보다 미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런가하면 흙의 몸으로 성불한 듯한 이 얼굴은 삼국시대 불상의 천진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신비롭고 따뜻하면서 자비로운 미소를 떠올려준다. 당시 사람들이 지닌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자 장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경험이 어우러져 빚어낸 힘과 생명력이 있는 얼굴이 그것이다. 그것은 작위와 무작위의 중간에서 나온 얼굴이자 소박한 마음의 행로가 읽히는, 격조를 잃지 않는 얼굴이다. 김은현은 흙이란 대상, 물질 안으로 들어가 온전히 그것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 같다. 흙의 진면목을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흙이 되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은 인간이 포착해낼 수 있는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 특질을 직각(直覺)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대상 속에 몰입시켜야 획득된다. ● ………………… ● 이 작고 아담한 크기에서 형태의 요철은 물론 중량, 양감, 질감 등이 촉각적으로 감촉된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인위성을 최소화한 결과 형태는 단순, 소박하지만 원만한 표정을 통해 조화와 안정이란 미적 특질은 물론 종교적 차원의 여러 의미 역시 자연스럽게 고양되고 집중되어 있다. 그 얼굴이 보여주는 미소는 다소 신비스럽고 영성을 지닌 미소다. 만들어지고 조각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서 몽상에 잠긴 듯한 미소다. 대부분 길고 가는 눈이 감겨 있고 마치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몽상에 잠기거나 참선에 든 듯, 적멸의 순간인 듯, 깨달음의 정점인 듯 그렇게 멈춰있다. 그 얼굴들은 ‘명상’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명상에 잠긴 다양한 얼굴, 흙으로 빚은 명상이다. 작가의 얼굴은 그런 면에서 마치 화두처럼 우리에게 던져져 있다. 어떤 각성의 상태, 무아無我라고 표현할 수 있을 내적 인식의 상태를 보여주는 일종의 화두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구원과 관련된 미소일 것이다.
흙으로 표현된 김은현의 얼굴에는 삶을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과 해탈을 향한 보살의 얼굴이 다 담겨있다. 무심하게 주물려서 나온 덩어리에 간결한 손자국으로 나온 얼굴의 형상에서 고졸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작품제목도 『기쁨』, 『꽃비』, 『아픔』, 『나는 마음입니다』, 『나 아닌 것이 없다』 등 명상과 관련된 작업들로 명상에서 느끼는 희열과 갈등을 흙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들이 고요한 명상의 작업으로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로 표현한 것에 비하여 최근 작품에서는 좀더 거칠고 속도감있는 손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근간에 몸의 고통을 겪으면서 느꼈던 삶의 격정과도 같은 내면의 변화처럼 보인다. ● 김은현은 서울대학교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고 이번이 여덟 번째 개인전이며, 『명상-꽃비』 전시에는 신작 20여점이 출품될 예정이다. ■ 갤러리 담
꽃비 // 존재에 대한 수치와 / 근원적인 두려움으로 / 아프고 힘겨운 시간들이다 // 애쓰고 집착하던 것들로부터 / 얼마간의 자유와 치유를 / 작업을 통해 맛본다 // 꽃비 / 생명 에너지가 내린다 / 존재 자체가 사랑인 것을... ■ 김은현
흙에서 나온 미소 ● 김은현은 하염없이 흙을 쳐댄다. '꼬박밀기'로 흙의 공기, 산소를 빼면서 손과 마음에 걸려드는 순간, 흙을 치다가 적절한 느낌 때 문득 생긴 이미지, 얼굴을 멈춰 세웠다. 그것은 흙과의 충분한 교감의 산물이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흙을 친다고나 할까, 또는 자연을 범하지 않는 경지에서 만든다고나 할까. 적당한 크기로 자신의 손아귀가 허용하고 납득하고 감당할 만큼의 양을 주무르고 만지작거려서 얼굴, 두상을 빚어 놓았다. 치다가 나온 이미지, 반죽을 하고 던지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흙의 어떤 상태, 맛에서 얼굴을 찾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생긴 흙의 상황들이 얼굴을 받치고 좌대처럼 자리했다. 그것은 차분하고 격조있는 얼굴과는 다른 파격의 미를 안긴다. 작가는 분청토, 산청토, 잡토 그리고 옹기토 등의 다양한 흙을 사용하면서 그 흙의 맛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코일링, '라쿠'기법, '쪽가다'기법 등 여러 가지 방법론을 동원한다. 도예의 전통적 기법과 현대조각의 조형체험을 접목하고 아울러 불상과 불화이미지를 통해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환생하고자 한다. 흙덩어리가 얼핏 타원, 원형을 만들고 손으로 주물러댄 자취가 고스란히 흔적처럼 놓여져 있는 상황 위에 간단한 붓질에 의해 빠르게 스쳐 지나간 자취가 눈썹과 눈, 코와 입술의 윤곽을 그려보인다. 그것은 마치 분청에서 보는 붓놀림이자 이름 없는 도공들이 옹기나 그릇의 표면에 아무렇게나 휙휙 휘갈긴 선들의 자치를 연상시킨다. 무심하면서도 더없이 세련되고 경쾌한 그 선은 흙의 물질성과 질료성을 일거에 휘발시킨다. 오로지 미소가 모든 것을 대신해 자존한다. 작가가 무심하게 그려놓은 선은 마치 무욕과 무목적성의 순연한 장식 같다. 노자는 도를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원목인 박(樸)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장자는 예속에 구애 받지 않는 품성을 천진(天眞)이라 했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지혜가 생기고 기교를 배우며, 예속에 적응하면서 본래의 천진함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보고 그 천진함을 보존하는 것을 진정한 도로 파악한 것이다. 도가에서 최고의 이상적 인간을 진인(眞人)이라 했는데 이 진인은 지혜와 기교가 발달하지 않은 태초의 역사를 동경하고, 예속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어린이의 경지를 추구한다. 여기서 천진이란 결국 동심을 일컫는 말이고 그 동심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졸박한 미감과 무작위적인 세계, 동심의 세계 같은 것이 이 작가의 작업에 깊숙이 잠겨있다. 흙이라는 재료, 물성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서 이루어진 그 얼굴은 다시 불에 맞고 재를 뒤집어 쓰고 나앉았다. 가마의 불 속에서 그려진 흙의 마음이자 흙에서 걸어나온 부처의 미소 같은 것이 서려있다. 그런가하면 어린아이의 얼굴같기도 하다. 흙을 빚고 주물러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고 이를 뜨거운 불로 구워내 만든 이 조각, 도조는 특정한 이의 얼굴이기 이전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누구의 얼굴도 아니지만 결국 모든 이의 얼굴로 다가온다. 더없이 무심하기도 하고 그지없이 소박하면서도 한 얼굴이 지을 수 있는 평화와 휴식, 안온과 정신적인 충만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수식과 치장을 거둔 자리에 그저 흙이 불과 만난 응고되고 결정화된 형태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미소만으로도 이 얼굴은 충일하다. 미소가 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은 무엇보다 미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흙의 몸으로 성불한 듯한 이 얼굴은 삼국시대 불상의 천진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신비롭고 따뜻하면서 자비로운 미소를 떠올려준다. 당시 사람들이 지닌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자 장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경험이 어우러져 빚어낸 힘과 생명력이 있는 얼굴이 그것이다. 그것은 작위와 무작위의 중간에서 나온 얼굴이자 소박한 마음의 행로가 읽히는, 격조를 잃지 않는 얼굴이다. 김은현은 흙이란 대상, 물질 안으로 들어가 온전히 그것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 같다. 흙의 진면목을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흙이 되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은 인간이 포착해낼 수 있는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 특질을 직각(直覺)하는 것이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대상 속에 몰입시켜야 획득된다. 작가는 흙을 반죽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흙덩어리를 치댄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형태를 가다듬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여 최소한의 얼굴 형상만 나오도록 손질을 가했다. 이 작고 아담한 크기에서 형태의 요철은 물론 중량, 양감, 질감 등이 촉각적으로 감촉된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인위성을 최소화한 결과 형태는 단순, 소박하지만 원만한 표정을 통해 조화와 안정이란 미적 특질은 물론 종교적 차원의 여러 의미 역시 자연스럽게 고양되고 집중되어 있다. 그 얼굴이 보여주는 미소는 다소 신비스럽고 영성을 지닌 미소다. 만들어지고 조각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서 몽상에 잠긴 듯한 미소다. 대부분 길고 가는 눈이 감겨 있고 마치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몽상에 잠기거나 참선에 든 듯, 적멸의 순간인 듯, 깨달음의 정점인 듯 그렇게 멈춰있다. 그 얼굴들은 '명상'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러니까 명상에 잠긴 다양한 얼굴, 흙으로 빚은 명상이다. 작가의 얼굴은 그런 면에서 마치 화두처럼 우리에게 던져져 있다. 어떤 각성의 상태, 무아無我라고 표현할 수 있을 내적 인식의 상태를 보여주는 일종의 화두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구원과 관련된 미소일 것이다. ■ 박영택
마음의 풍요를 지향하는 온화한 미소 ● 아담한 크기를 지닌 김은현의 도조(陶彫)를 보노라면 무심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때, 무심한 아름다움이란 꾸미지 않은 소박함에의 동화란 측면을 주목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업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의 결과를 수용함으로써 작품에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도록 질료의 성질에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형태적 특징으로 흙을 반죽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흙덩어리를 치댄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형태를 다듬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여 최소한의 얼굴형상만 나타나도록 손질을 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더욱이 별도의 작업실을 갖지 않고 모든 성형작업이 주택의 안방이란 제한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약은 작품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이 오히려 그의 작품에 단아한 성격을 부여한다. 즉 손아귀에 들어오는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형태의 요철은 물론 중량, 양감, 질감 등을 촉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 내재한 고유한 가치, 곧 그의 작품이 지닌 미적 특질이다. 김은현의 작업에서 우리는 잔잔하면서 고요한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은근한 미소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이나 경주 삼화령에서 발굴된 미륵삼존불상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하면서 해밝은 미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만들어놓은 얼굴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부처나 보살을 닮아있다. 어떤 작품은 국보78호나 83호인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의 온화하지만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표정을 떠올리게 만들고 또 어떤 것은 이름 없는 장인이 오로지 불심으로 조성한 이른바 민불(民佛)의 고졸하지만 넉넉한 미소를 연상시킨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인위성을 최소화한 결과 형태는 단순, 소박하지만 원만한 표정을 통해 조화와 안정이란 미적 특질은 물론 관용과 배려란 종교적 차원의 의미는 더욱 집중적으로 고양된다. 작가의 손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뒤통수 부위나 혹은 흙의 중량에 의해 바닥에 눌려 평탄해진 부분을 다듬지 않은 형태는 흙의 가소성(可塑性)을 잘 살린 결과로서 이 또한 작품에 장식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 만약 그의 작품에서 굳이 장식적 요소를 지적한다면 얼굴의 관자놀이나 머리카락 부위에 새겨놓은 문양(文樣) 정도일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종교적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알리는 표지(標識)일 뿐 장식욕구의 발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는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러한 얼굴을 제작한다고 했다. 주부인 그녀에게 흙은 밀가루처럼 일용한 양식일지 모른다. 그것을 반죽하는 과정은 가족에게 제공할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멋을 부리기보다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신선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작업 또한 호들갑스럽고 교조적인 신앙을 증명하기 위한 고백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그의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매너리즘이란 함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그는 옛날 암벽에 불상을 새겼던 석공들의 고귀한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이 작고 소박한 형태를 통해 아름다움의 신전에 바치는 봉헌물을 제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이처럼 소박하지만 진지하기를 기도하는 태도의 소중함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역시 종교와 맞닿아 있음을 그는 이러한 일상의 과정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지 모른다. 원대한 세속적 성취가 아니라 일상의 평화로운 자기반성에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 최태만
Vol.20211020c | 김은현展 / KIMEUNHYUN / 金恩賢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