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xis

최진연展 / CHOIJINYOUN / 崔鎭涓 / video.installation   2021_1017 ▶ 2021_1030 / 마지막주 월요일 휴관

최진연_Hammering III-i_혼합재료(유리)_가변설치, 00:00:15_2021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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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연 홈페이지_thebbreka.wixsite.com/choijinyoun 인스타그램_@choijinyou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1삼각산시민청 신진예술가 지원사업 『삼각산아트랩』

관람시간 / 09:00am~09:00pm / 마지막주 월요일 휴관

삼각산시민청 Samgaksan Citizens Hall 서울 강북구 삼양로 595 1동 2층 미디어글라스 Tel. +82.(0)2.900.4300 sg.seoulcitizenshall.kr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관한 헛된 행위의 유효한 가치 ● 년 간 약 1만 5천여회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 일부를 제외하곤 방문객 대부분은 전시 주최자의 지인내지는 미술관계자들이다. 작품 판매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누군가에게 낙점되는 것의 다수는 '취향'에 의존하는 것들이다. 소위 실험적이라고 불리는 작품 혹은 벽에 걸거나 공간설치가 용이하지 않은 작품들은 주목받기 힘들다. 보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엔 그만큼 무심한 것이 현실이다. ● 실제로 많은 이들은 미술작품을 재화획득을 위한 고급콘텐츠로 인식한다. 소비되는 미술의 적지 않은 수는 현실과 개인 삶의 관계를 지각과 감수성의 층위에서 창조적으로 표현하여 세계와 연결시키는 미술의 본원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예술인들마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회와 인류공동의 화두에 끝없이 질문한다는 것을 망각할뿐더러, 미술의 상징가치를 상품가치로 탈바꿈시키는 동시대 소비시스템에조차 저항하지 않는다. 1) ● 그럼 소유되지 않는 것들,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될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작업실 한편에 쌓이거나 해체되는 수순을 밟는다. 모르긴 해도 한해 제작되는 작품의 대다수는 그와 같은 운명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만들고 버려지고, 다시 만들고 폐기됨으로서 예술이란 쓸데없는 상상, 비생산적 노동으로 매듭지어진다. ● 작가 최진연의 근작은 바로 그 쓸모없는 상상과 비생산적 노동을 통해 쓸데 있는, 생산적 노동을 소환한다. 작가 스스로 '근력작업'이라 칭하는 행위2)를 통해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불어넣는다. 불편한, 거북한, 불쾌한 것들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고 기록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상은 미술에서부터 사회, 정치, 경제, 행정, 종교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최진연_Hammering II-x_혼합재료(캠벨 토마토 스프)_가변설치, 00:00:15_2020_부분

가까이는 미술에 질서를 낳고 예술가의 등급을 매기며 미적이지 않음을 보편적 미로 치환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에서, 멀리는 규정된 모든 것에 관한 것을 포괄한다. 「Squeeze」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마냥 형식은 매우 짧거나 「Painting」 연작처럼 지루하도록 길다. 그러나 시각과 심리의 동요와 조형의 사고 층위의 접목을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구체적 적시는 아니지만 인간 삶을 풍요롭게 이끄는 예술의 긍정적 순기능을 옹호하며 몇몇 오브제는 '의사표시'로서의 미술의 경제성을 보여준다. ● 재밌는 사실은 근래 대표작인 「Hammering」 시리즈를 비롯한 일련의 근력작업은 방법적 측면에서 에두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파괴하며 메시지를 창출하고 예술의 긍정성을 위해 특정 사물에 원초적인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3) ● 예를 들어 크고 작은 망치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시대의 미적 아이콘인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캠벨스프 통조림을 내리치고, 국경과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보를 소비하는 대형 플랫폼인 휴대폰과 텔레비전, 그리고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올라선 지폐(돈) 등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때린다. 단단한 벽돌, 연약한 두부, 생명체인 가재 등도 포함된다. 모두 무언가를 대변하는 오브제들이다. ● 그의 이 같은 오브제에 완력을 가하는 행위는 물질에 대한 물리적 반응이 아니다. 기호의 소멸이요, 상징의 해체이다. 이를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베이유(Weil, Simone) 식으로 말하자면 기호와 기호 내용의 관계를 퇴출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건 집단성의 죽음을 일컫는다. 즉 기호와 내용이 직접 맞닿지 않고 형식, 제도, 시스템이라는 사회적 요소가 지나치게 간섭함으로서 기호들 간 주고받는 유희가 유희를 위한 유희가 되고 복잡해져 아예 기호의 기호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행위 내에 담고 있는 셈이다.4)

최진연_Hammering II-xi Ver.B&W_혼합재료(아이폰 6)_가변설치, 00:00:15_2020_부분

최진연은 집단적 사고에 틈을 내지만, 소급할 경우 그의 행위는 동시대 문화의 심미화마저 비튼다. 역설적이게도 뭔가 결핍을 메우려는 듯 비교적 단순하고 거친 방식, 응어리진 힘의 적용이 우선하나 알고 보면 상징적 거세를 지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5) 특히 그의 행위는 미학적인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의 문제와 대면하여 현실의 삶을 고찰하도록 주문한다. 여기엔 허무성, 즉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예술의 음모』에서 주장한 것처럼 가치 없음을 가치로 환산하는 시스템,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게 해석-산파함으로서 권위(특정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헤게모니의 확보)를 획득하는 구조적 기생6)에 관한 시선이 개입되어 있다. ● 따라서 최진연의 행위는 욕망을 소비하는 장에 불과한 시스템의 민낯, 이중성7)을 보여준다. 가치란 시스템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현실에 관한 나름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일례로 과거 작품인 「태(態)」가 생명과 인간, 본질, 진리를 나무라는 오브제로 시각화 했다면 「Hammering」 영상 연작은 일종의 생성과 소유 가치의 모순, 즉 파르마콘(pharmakon)을 드러낸다. ● 그러나 작가는 그와 같은 저항, 즉 행위를 '노크'라고 표현한다. 그 '노크'에는 분노가 담긴 근력작업을 통한 미술계 혹은 사회 전반에 드리운 인식과 사고, 구조에 대한 (어쩌면 헛되고 헛된, 보드리야르의 허무적) 도발이 들어 있다. 작가의 발언을 옮기면 "사회의 기만적 시스템이 인간 이성의 결과로 구축된 폐단이라 여김으로, 이성적 인간 위치가 아닌 원초적 동물의 위치에서 이러한 불편한 상황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사회의 기만적 시스템'이라는 발언이다. 문장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듯 최진연이 관심을 두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시각은 미술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정치‧사회‧경제‧행정‧종교 등 우리네 삶(또한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과 무관하지 않은 다양한 것들에 주목한다.

최진연_Hammering II-xiii Ver.B&Wi_혼합재료(돈)_가변설치, 00:00:15_2020

그건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 행정 정책에 의해 오히려 훼손되는 정치 행정 시스템, 믿음으로 진리를 강요하는 종교 시스템 등이다. 어렴풋하나 미술의 생산·유통구조 뒤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도 포함된다. ● 작가는 이를 '외부상황'이라 정의한다. 나를 둘러싼 상황의 모든 것이다. 지난 7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진행된 개인전 프락시스(Praxis)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당시 공개된 자료에는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용 지출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인 '삼포세대'의 분노를 근력 작업 행위로써 저항해 표현한다."고 적혀 있다. 물론 미술도 열외는 아니다. 예술이 가지는 노동의 의미와 사회 시스템 속 예술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다. ● 그런데 눈에 띄는 건 '도로'(徒勞)이다. '도로'는 일련의 행위가 보람 없이 헛되이 수고함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토막에 해머를 쉼 없이 내리치거나, 어쩌면 실재와는 무관한 프레임 내 공간 속 행위의 연속을 담은 영상 「Painting」 시리즈도 '도로'와 관계된다. 결의 차이는 존재하나 동물의 형상(「Combine; The Deer Hunter」)을 제거(「Hammering」)함으로서 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에너지로의 회귀를 표현한 작업,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를 찌그러트리는 프로젝트였던 「ELEMENT」 등도 매한가지이다. 어떤 사물의 기능을 거세시켜 낯선 모습의 예술품으로 재창조하는 미적 해석은 유효하지만 궁극적으론 현실세계에선 무가치한 행위로 매듭지어진다. 더 이상 목적적 사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최진연_Hammering II-xv Ver.B&W_혼합재료(프로젝터)_가변설치, 00:00:15_2020_부분

그러나 최진연의 작업은 헛되지 않다. 일정한 공간을 채우는, 행위를 함으로서 존재의 상실을 극소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미학적으론 공백을 채움으로써 무의미의 의미를 창조한다. 그의 작업에 있어 전반적 특징인 해체의 방법적 절차를 통해 의미를 재생산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더구나 그의 근력행위는 그 자체로 의미로부터 해방된 무의미의 확장을 거듭한 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도구다. ● 이러한 역설적이고 비고정적 행위는 어떤 대안(혹은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더라도 시각을 통한 다른 각도에서의 의미를 잉태한다. 때로 그것은 언어학적, 문학적 구현으로 발화된다. 그럼에도 의미화 한다는 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 존재 자체는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도로'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반면 예술이 사유하거나 서술하는 사건은 근원적으로 무의미의 덩어리이지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내재성의 사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에서 의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는 작가의 근력행위라는 단순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복잡함이다. 그건 때로 원초적 동물의 위치를 고의 혹은 전략적으로 삼는 이성적 인간 위치와 다름 아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건 '도로'(徒勞)이다. '도로'는 일련의 행위가 보람 없이 헛되이 수고함을 뜻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토막에 해머를 쉼 없이 내리치거나, 어쩌면 실재와는 무관한 프레임 내 공간 속 행위의 연속을 담은 영상 「Painting」 시리즈도 '도로'와 관계된다. 결의 차이는 존재하나 동물의 형상(「Combine; The Deer Hunter」)을 제거(「Hammering」)함으로서 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에너지로의 회귀를 표현한 작업,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를 찌그러트리는 프로젝트였던 「ELEMENT」 등도 매한가지이다. 어떤 사물의 기능을 거세시켜 낯선 모습의 예술품으로 재창조하는 미적 해석은 유효하지만 궁극적으론 현실세계에선 무가치한 행위로 매듭지어진다. 더 이상 목적적 사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최진연_Hammering II-xvi Ver.B&W_혼합재료(롤렉스)_가변설치, 00:00:15_2020_부분

그러나 최진연의 작업은 헛되지 않다. 일정한 공간을 채우는, 행위를 함으로서 존재의 상실을 극소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미학적으론 공백을 채움으로써 무의미의 의미를 창조한다. 그의 작업에 있어 전반적 특징인 해체의 방법적 절차를 통해 의미를 재생산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더구나 그의 근력행위는 그 자체로 의미로부터 해방된 무의미의 확장을 거듭한 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도구다. ● 이러한 역설적이고 비고정적 행위는 어떤 대안(혹은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더라도 시각을 통한 다른 각도에서의 의미를 잉태한다. 때로 그것은 언어학적, 문학적 구현으로 발화된다. 그럼에도 의미화 한다는 것은 하나의 해석일 뿐, 존재 자체는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도로'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반면 예술이 사유하거나 서술하는 사건은 근원적으로 무의미의 덩어리이지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내재성의 사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에서 의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는 작가의 근력행위라는 단순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복잡함이다. 그건 때로 원초적 동물의 위치를 고의 혹은 전략적으로 삼는 이성적 인간 위치와 다름 아니다. ■ 삼각산시민청

* 각주 1) 트렌드를 지향하거나 자연스럽게 함몰된 예술은 시장에서의 성과를 획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의 예술과 차별화되어야 할 이유와 방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의 삶과 커뮤니티의 정체성,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공공재의 성격 보다는 시장 소비재로써 무게에 국한된다. 2) 행위엔 여러 결을 동반한다. 은유적이지만 노골적이다. 오브제가 등장하는 영상을 통해 가치를 재조명하는 반면 처음부터 가치자체를 거세시키는 방식도 보여준다. 3) 보다 보면 다소 화가 난 느낌, 지친 여운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 또한 형상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4) 넘치도록 돈이 많은 이들이 수백~수천억원에 달하는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들이 작품을 고가에 사들이는 건 문화적 소양을 위해서라기보단 남과 다른 '부의 차별화'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적 유희성이다. 5) 일례로 상징재화인 예술작품은 문화예술적 부당성에 반대해야만 하며, 이 부당성이 통상의 경제적 기준에 대립할수록 예술의 가치는 상승한다는 것을 우회하지 않는 식이다. 6) 이를 미술계로 한정지어 보면, 기생은 가치가 달라지면 가격도 달라지기 마련이고, 가격이 달라지면 가치가 달라지는 상징재화인 미술을 적극 이용해 시스템을 구동시킨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의해 조작된 가치는 미술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예술가는 그 질서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계급을 얻는다. 기생의 주체는 명확하다. 가격의 신화를 창조하는 경매사나 갤러리, 허영과 욕망-부의 차별화로 고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 슈퍼스타를 모시고 싶어 하는 미술관, 엉터리 같은 작품에 창의성과 독특함을 지닌 멋진 작품이라 평가하는 평론가, 비판 없이 나팔수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언론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이중성을 미술에 적용할 경우 보드리야르는 같은 책에서 무가치한데도 무가치를 지향하는 현상을 현대미술이 지닌 이중성이라 지적한다. 가치를 알 수 없음에도 가치 없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예술의 음모라고 말한다. 물론 음모의 배경은 미술이 무가치하거나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에 불과함에도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그 직조되는 시스템에 기생하는 이들을 범죄자라 칭한다.

최진연_Hammering II-xvii Ver.B&W_혼합재료(텔레비전)_가변설치, 00:00:15_2020_부분

저항정신을 담은 도로徒勞(a 수고함)의 행위로 신체적 근력 사용하는 작업 ● 작업이 가지는 비 생산성 노동과 결과물의 비 자본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게 되었다. 생존과 생산을 위해 행해지는 노동은 미술 작업을 통해 사회적 경제 생산성에서 벗어나 있는데 작업의 방향성이 사회에서 정하는 규제나 규범을 비틀어 저항하는 행위 자체로 변형된 것이다.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 학연, 지연을 이용하고 전시를 위한 기획서를 만들어내고 마치 경제적으로 가치를 생산할 것만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더 많은 금전적 이득, 더 큰 가치, 희소성에 대한 갈망, 스테이터스 심벌, 상실한 기업정신, 기업들의 과장과 거짓, 그리고 예술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생산성 노동이라는 현시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

The work on the use of physical strength as an act of lost labor that represents resistant spirit ● I have continued to be concerned about the non-productive labor of the work and the non-capitalization of the result. The labor that is carried out for survival and production is deviated from social economic productivity through artwork, and the direction of the work is transformed into the act of resisting by twisting regulations and norms set by society. Using school ties and regionalism found in societal systems, creating a plan for exhibitions, and giving meaning to them as if they would produce economical values reflect more money, more value, the desire for scarcity, a status symbol, lost entrepreneurship, the exaggeration and falsehood of corporations, and the current era of non-productive labor which is inherent in art. ■ CHOIJINYOUN

Vol.20211017a | 최진연展 / CHOIJINYOUN / 崔鎭涓 / vide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