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민지&김준서_송주형_신덕칠&조은용_이능재
주최,기획 / 수주문학제운영위원회 (재)부천문화재단_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문의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Tel. 070.4108.5858
관람시간/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부천아트벙커B39 BUCHEON ART BUNKER B39 경기도 부천시 삼작로 53 1층 Tel. +82.(0)32.321.3901 blog.naver.com/b39-space
다시 만나기 위하여 ● 코로나19 시대의 문학제는 어떤 모습일까. 1년이 넘는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시대의 만남이란 어떤 것일까요. 올해 수주문학제의 테마는 수주 변영로(卞榮魯, 1897-1961)의 시 「중얼거림」의 시구인 '만나리'에서 출발합니다. 시 속의 정신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 우리와 마주하며 미래를 꿈꾸게 합니다. 문학과 예술이 만난 전시인 『마침내 만나』를 만나기에 앞서 과거-현재-미래를 이어내는 한 편의 시를 통해 문학이 가진 창조적 원천을 다시 생각합니다. 어떠한 고난이 있을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만남을 온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 홍기돈
중얼거림 ● 환한 대낮에 잃었던 그 길 / 밤이면 내 홀로 헤매는 그 길! // 들끓는 사람 틈 놓치인 그대 / 어쩌다 꿈에나 만나는 그대 // 내 어이 말하랴 애틋한 그를 / 내 혼자 그리다 시어질 그를 / 끓이고 태우다 잦아질 시름 / 고이구 붓나니 쌓이는 시름 // 낮밤에 못 잊는 불명의 영상 / 큰 번개 치는 날 만나리 만나리 ■ 수주 변영로
마침내 만나 ● 수주문학제 특별전으로 기획된 『마침내 만나』 전시는 시인 수주 변영로(卞榮魯, 1897-1961)의 시 「중얼거림」에서 드러난 '만남'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 「중얼거림」에는 끊임없이 밤낮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대와의 만남을 간곡히 호소하는 수주의 마음이 마침표로 찍혀있다. 일제강점기 속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조국의 해방. 그러나 해방의 환희도 잠시, 우리 민족의 해방은 온전히 자주적인 독립이 아니었기에 수주 변영로는 광복 이후에 조국이 다시 맞이할 어두운 역사를 예견하며 「중얼거림」과 같은 일련의 시를 써 내려갔다. ● 「중얼거림」에서 시인이 절절히 부르는 '그대'는 추측건대 조국, 민족, 시인의 내면이 될 수 있는 복합적인 대상일 것이다. 그리고 '만남'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민족애와 조국의 통일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희망을 나타내는 상징 언어로 보인다. 깨어진 공동체로 남은 이 땅의 아픔은 여전하다. 하지만 시인이 시를 통해 어지러운 세상을 희망적인 미래의 만남으로 역설한 시대 통찰은, 동시대의 예술과 우리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대목이다. ● 특히 코로나 19로 만남이 두려운 시대를 보내는 우리에게 만남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의 시정신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와 재회하듯이, 예술은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자유롭게 이행하며 예술가가 염원한 만남을 성사시킨다. 이처럼 문화 예술에 스며져 있는 '만남'이라는 화두는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니다. ● 이번 『마침내 만나』에 참여한 작가들은 단순히 시각 예술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연극, 애니메이션, 순수 미술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로 구성되어있다. 예술가들은 문학과 만남을 모티브로 예술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넓고 다양한 조형 언어로 관람객과 예술적 만남의 확장을 시도한다. 수주의 시대와 예술이 그러했듯, 이번 전시 역시 개인의 내면과 일상사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예술을 통해 앞으로 새롭게 도래할 만남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시인은 흩어진 단어를 선별하고, 선별된 단어를 행과 연으로 조합하고 이어 한편의 시를 짓는다. 강민지, 김준서의 「언어의 형태」는 이러한 시 작법의 구조와 유사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들은 흩어진 이미지의 조각들을 프레임에 수집하고 배치하여 영상의 언어로 공간속에 띄운다. 원형 형태의 설치물을 구성하고 있는 54개 장면의 애니메이션 모듈은, 한쪽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작동한다. 단어들이 문장이 되고, 시가 되는 모습처럼, 「언어의 형태」에 재현된 12개의 프레임에 재현된 애니메이션 장치는 640개의 프레임으로 확장되고, 다시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응축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운동하는 이미지들은 시인이 한 글자씩 써내려간 원고지의 단어들처럼 시각적 운율을 만들며 전시장의 공간을 채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망과 끝없는 추구는 물질적 가치에 권위를 부여하고 차별적 계급질서를 정당화시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비워내고 정신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노력은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초월하여 마음의 위안을 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송주형의 「流 류 The Flow」는 바로 경외의 대상이자 초월적 존재인 자연을 바탕으로 한 이상향의 형상을 통해 정신적 자유로움의 만남을 매개한다. 그의 영상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처럼 순환하며 목적 없이 객관성을 지닌 절대적 의미의 자연의 이미지가 근대적 성취와 열망, 물질 숭배의 상징인 도시, 그 속에서 필요에 의해 쓰이다 버려진 것들을 은폐하던 소각장에 송출됨으로써, 이상적 자연의 풍경이 소각장과 중첩돼 펼쳐진다. 이는 물질화가 만들어낸 현대 도시의 이면과 정신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逍遙遊(소요유)"의 공간이 결합되고 모순적인 풍경이 만나 재탄생한 장면이다.
「서 대신에, 돌은 되었건만」은 연기자와 미디어 예술가로 만난 신덕칠 배우와 조은용 작가가 변영로의 시를 통해 받은 서로의 예술적 감동을 신체와 음성, 자연 등을 활용하여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영상의 첫 번 째 섹션에는, 시인이 과거 조선의 식민지 시절에 쓴 「서 대신에」를 바탕으로 한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마치 꿈에 등장한 정령처럼 보이는 인물이 조선의 마음을 찾아 사방을 헤매고 있다. 또한 두 번 째 섹션에는, 광복 이후 시인이 창작한 「돌은 되었건만」의 시 구절을 신덕칠 배우가 곱씹으며 낭송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본 작품은 시인이 문자로 기록한 '조선의 마음', 그리고 돌이 된 '아기'를 신체의 능력과 감각을 사용하여 형상화함으로써 과거 민족의 혼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두 예술가들이 사유화한 시인의 시는 일차적으로 과거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현재로 이어주는 역할은 물론, 시공간을 너머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통찰과 감각을 일깨워 주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본 작품은 관람객 참여형 전시의 일환으로, 관람객이 원작 옆에 비치된 시를 직접 읽거나 낭독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리플렛 p. 00 참고)
이능재 작가의 「지금 여기 – 만나리」는 작가가 본래 진행 중이던 기원(origin)과 기원(prayer)에 대한 주제 작업이 변영로의 「중얼거림」과 연결되며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바람은 다르지 않고, 그 바람이 다르지 않아야 각 존재들의 만남이 순수한 상태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온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 만남에는 현재 우리와 미래의 인간과의 순수한 만남을 기원하는 진심어린 바람 또한 새겨져 있다. 이러한 작가의 바람은 시인이 표현한 언어에도 함축적으로, 미학적으로,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이 채택한 시적 언어에는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우리 민족의 길고 깊은 아픔이 함축되어 있는데, 그 함축된 메시지가 간파될 때 독자는 본래 서사보다 더욱 강력한 메시지의 힘을 느낀다. 시에서 드러난 다양한 층위의 메타포는 이능재 작가의 작품에서도 시각적으로 동반된다. 예컨대, 작품에 '비어있는' 여백의 공간은 시 작법에서 고유한 특징으로 꼽히는 생략, 은유, 행간을 형식화 한 것이다. 또 종이에 적용된 '오방색과 간색'은 수주가 언급한 민족적 색채를 비유하며, 각기 다른 다섯 방향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러한 은유적 의미들이 내포된 작품의 형식은 궁극적으로 「지금 여기 - 만나리」에서 종이에 파여진 시를 관람자가 읽고, 글자로 파여진 구멍 너머의 공간에서 시인이 꿈꾼 '만남'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 임소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수주의 시를 읽다 ● 수주 변영로(1898~1961)는 1918년 『청춘』에 영시 「Cosmos」를 발표해 찬사를 받았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폐허』와 『장미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본격적인 시단 활동은 1921년 『신천지』 1호에 「꿈 많은 나에게」, 「나의 꿈은」 등의 시를 발표하며 시작했다. 그는 1924년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을 평문관에서 출간했는데 그 시기는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이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의 출간 시기보다 빨랐다. 수주 변영로는 김억, 김동환, 김소월, 한용운, 이상화, 박종화, 임화 등과 함께 1920년대 시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이후 1959년에 두 번째 시집 『수주시문선』을 경문사에서 간행하여 생전에 두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 밖에도 『명정사십년』(1953), 『수주수상록』(1954) 등의 수필집을 남겼고 영문학자로 활동했다. ● 대표작 「논개」로 인해 수주 변영로에게는 '민족 시인'이라는 명명이 따라다녔는데 그의 시적 출발의 자리가 민족의식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식민지가 된 조국을 늘 안타까워했고 그의 첫 시집 『조선의 마음』 수록시들은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이가, 난다」와 「동대문경찰서」 같은 수필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시인으로서 겪는 울분을 술로 풀어내며 일본 순사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 변영로의 초기 시에서는 화자가 청자를 향해 발화하는 대화 구조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1920년대 시에서 '님'은 빼앗긴 조국을 상징하는 존재로 호명되곤 했는데 변영로의 첫 시집에서도 '님'을 향한 갈구가 두드러진다. 그의 시에서 님은 "생시에 못 뵈올 님"(「생시에 못 뵈올 님을」)으로 그려진다. 살아서 못 본다는 것은 '님'과의 해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절망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그러나 절망감이 깊어질수록 '님'을 향한 그리움도 커진다. 생시에 못 볼 '님'을 꿈에라도 볼까 하여 꿈으로 들어가는 '푸른 고개'를 넘어 보지만 꿈조차 흔들리고 흔들려 그리운 그대는 가까울 듯 멀다. ● 변영로의 대표시 「논개」는 1922년이라는 발표 시기를 고려할 때 우리 시문학사에서 상당히 앞자리에 오는 시이다. '거룩한 분노', '종교', '불붙는 정열', '사랑' 등의 관념어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인물인 논개와 그의 죽음, 이 시가 쓰인 일제 식민지라는 당대의 상황이 더해져 이 관념어들을 자연스럽게 지탱한다. 거룩한 분노가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이 사랑보다도 강하다는 비유가 설득력을 지니는 까닭은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 그리고 식민지 조선이라는 당대의 현실이 후경화되어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강렬한 색채 이미지가 관념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렵의 변영로 시에서 '님'을 붉고 푸른 색채 이미지로 그려내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는 '님'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이렇듯 논개의 시인, 민족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변영로의 시 중에서 최근에 새삼 눈에 띄는 시가 바로 「중얼거림」이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2021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시는 묘한 울림을 준다. 「중얼거림」은 『사상계』 1957년 9월호에 발표되었는데, 마치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환한 대낮에 잃었던 그 길/밤이면 내 홀로 헤매는 그 길!"이라고 말을 건넨다.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들끓는 사람 틈 놓치인 그대/어쩌다 꿈에나 만나는 그대"라고 시의 화자가 말할 때 2년 가까이 만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가리키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보고 싶은 이를 보는 기쁨을 누리고 살았던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우리 모두 체감하고 있다. 보지 못해서 더 애틋하고 그리운 그 마음을 변영로의 시는 알아주고 다독인다. 사실 변영로의 시는 '그대'라는 대상과 그대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그려 왔는데 「중얼거림」이라는 시도 그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끓이고 태우다 잦아질 시름/고이구 붓나니 쌓이는 시름" 속에서 우리들의 시간도 2년 가까이 흘러가고 있지만 머잖아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보고 싶은 이를 반갑게 마주할 날이 우리에게도 멀지 않았음을, "낮밤에 못 잊는 불멸의 영상"을 만나게 될 "큰 번개 치는 날"이 다가왔음을 이 시는 들려준다. "큰 번개 치는 날 만나리 만나리"라고 소리 내어 가만히 중얼거려 본다. 중얼거림의 힘으로 그날이 좀 더 빨리 다가오기를 빌어 본다. 아울러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가 배우고 깨달은 경험이 우리의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좀 더 오래 지속 가능하게 해 주기를,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들을 멈춰 세워 옆과 뒤도 돌아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선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변영로가 노래한 "큰 번개 치는 날"의 깨달음과 마주침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 이경수
Vol.20211015g | 마침내 만나 Finally, We meet-2021 수주문학제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