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展 / PARKJIHYUN / 朴志賢 / painting   2021_0817 ▶ 2021_0822

박지현_모란무늬화현_한지에 목탄_160×100cm×4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505e | 박지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수원시_수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푸른지대창작샘터 Pureunjidae Changjak Saemteo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55 소전시실 Tel. +82.(0)31.228.3475 www.swcf.or.kr/?p=214

다양한 '틈'을 지닌 표면 ● 박지현의 작업은 한지를 컷팅 해 모란꽃 형상을 만들고 이를 중첩시킨 후 목탄이 침윤 해 이룬 색채와 한지의 색층이 어우러져 만든 미묘한 레이어, 겹으로 구성되었다. 오묘한 느낌의 색채의 맛과 함께 중층적인 표면의 결들이 이 그림의 힘이다. 그런데 그림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이 작업은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해찰하듯 번갈아 미끄러진다. 동시에 모란꽃의 형상을 일정한 패턴으로 안기지만 특정 꽃의 재현이나 민화 자체의 구현은 아닌 듯하다. 상과 색채, 형과 배경 역시 분리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몰리지도 않으면서 나름 균형을 잡고 있다. 중용적이랄까 혹은 미묘한 균형의 감각이 이 그림의 전체적인 힘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른바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생각도 든다. ● 박지현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색이다. 그것은 여전히 수묵에서 비롯되는 단색 톤의 흑색, 회색 계조 속에 명명하기 어려운 색채를 안겨준다. 이름을 짓기 어렵고 따라서 호명과 지시에서 비껴나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파고드는 이 색채는 묘하게 수묵화나 혹은 단아한 백색계열의 도자기, 한복 혹은 그 외의 여러 기물들을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그런 기억 속의 심상을 이 색이 건드려주는 편이다. 모란의 형태를 지시하는 형상들이 빽빽하지만 화면을 점유하고 있는 색들은 기존 모란을 보여주는 흔한 색채의 계통에서 한 참 벗어나있다. 밝고 맑은 맛이 고급스럽게 입혀진 회색 톤, 은색에 가까운 색으로 상당히 낯선 모란을 선사한다. 이 색은 분명 흰색으로부터 파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적인 색채로 흔히 거론되는 흰색이란 실은 무색이 아니라 자연의 바탕색인 '소색'을 말한다. 그것은 재질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의 색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바탕색을 의미한다. 나무껍질로 만든 흰색의 종이가 그렇고 가공하지 않고 바탕색을 살려 만든 일상용품들이 모두 그렇다. "한국인의 색 취향이란 바로 이러한 소색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강영희)이라고들 말한다. 은은하고 투명하면서도 깊은 맛을 지닌, 미묘한 뉘앙스의 매력과 천연 그대로의 색을 간직한 격 있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이 복합적인 뉘앙스를 지닌 소색을 박지현의 그림 표면에서 생기 있게 만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소색을 연상시키는 표면의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색채는 모종의 형상(모란)과 여백을 구분 없이 품고 있다. 배경과 형상 모두를 풍성하게 감싸고 있다. ● 앞서 언급했듯이 이 그림은 이름 지을 수 없는 미묘한 색채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렴풋이 말하면 은빛과 회색 톤인데 이 미묘한 색상은 스스로 오묘하게 빛을 낸다. 물론 빛을 받아 표면에서 발생되는 효과일 것이다. 음각과 양각이 엇갈려 이룬 요철효과가 가득하게 차오르는 화면은 저부조의 표면인데 여기에 집중적인 빛/조명이 강도를 달리해서 얹히면 형상의 경계들로 이루어진 예리한 선들이 더욱 날카롭게 드러나면서 꽃의 형태감, 모종의 상의 윤곽선을 다분히 추상적으로 안겨줌과 동시에 상당히 촉각적인 질료성을 은밀하게 감촉시킨다. 그것은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적이다. 양각과 음각 사이를 격렬하게 유동하며 그 순간순간 모란 무늬가 얼핏 얼핏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이 율동적인 화면은 마치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보여주기와 은폐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듯하다. 결국 다양한 '틈'에 대한 메시지가 스며들어 있는 그림이다.

박지현_모란무늬도_한지, 종이 컷팅_130×90cm_2018
박지현_모란무늬도_한지, 종이 컷팅_90×90cm_2018

한편 관객들은 정면에서 화면을 응시하지만 몸을 움직여 옆에서 볼 수도 있다. 마치 사시의 시선을 요구받는 것이다. 이 그림은 회화의 일반적인 정면성의 법칙에서 비껴난 시선을 권유한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때마다 지속해서 화면은 다른 장면, 상황을 연출한다. 시간과 빛, 관객의 거리, 몸의 이동에 의해 그림은 매번 다른 장면을 안겨준다. 그림의 내용을 규정짓는 주체가 작가라기보다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시선, 몸의 반응이 실질적으로 그림의 내용을 결정하는 결정적 주체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관객참여형의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는 편이고 보는 이들마다 다르게 교감할 수 있는 피부다. 그림은 그림 안에 있지 않고 그림 너머에 존재한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 또한 박지현은 조선민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민화를 소재로 차용해서 이를 새롭게 번안하는 편이다. 옛사람들은 이 모란의 꽃과 잎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어나면 복된 미래가 다가오는 조짐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꽃 중의 왕을 그린 「모란 그림」은 부귀, 행복, 사랑의 표상이자 다양한 길상의 뜻을 상징한다. 전통미술이란 전통사회를 구성하는 삶의 체계, 말씀의 도상화다. 그것은 특정 텍스트를 이미지화한 것이고 그 문자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른바 주술적인 이미지다. 여기서 특정 텍스트란 종교, 신화, 이데올로기, 가치와 인습의 문맥 등을 일컫는다. '미술'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 그 이미지는 한 문화권과 시대를 통해 전승되어온, 약속된 믿음의 내용들을 기호화 한 것이자 형상화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민화 역시 전승되어 온 거대한 텍스트를 상징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현실계에 가설된 이미지, 프레임에 의해 또 다른 희망의 세계를 환각처럼 열어보이고자 했던 의지들이 이미지로 수놓아진 것이 바로 민화다. 여기서 이미지와 삶이, 생의 욕망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현대작가들에게 민화는 여전히 고갈되지 않는 샘, 작업에 대한 영감과 새로운 해석을 무한하게 안겨주는 텍스트로 다룬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와서 민화라는 텍스트를 개인의 서사로 전환시키거나 전통에 대한 메타비평의 단서로 삼거나 혹은 이미지 물신주의의 환생, 미술의 소통 등등으로 관심을 넓혀나가며 그에 따른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이 주목된다. ● 박지현은 조선민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모란꽃 형상을 패턴화해서 독특한 무늬로 만들고 이를 단색조 그림과 한지조형으로 함께 버무려냈다. 그로인해 상당히 개성적인 모란그림이 탄생했다.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고민 대신 원본(전통)의 자유로운 참조와 이에 대한 독창적 변역을 과감하게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민화 혹은 전통이미지라는 텍스트들은 고유한 의미를 발현하는 오리지널리티로서의 권위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원본의 무게가 탈각된, 언제든지 인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들 중의 하나로 기능한다. 그에 따라 이 복수적 텍스트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작가에 의해 조작 가능한 수많은 기표들로 다루어지고 서로는 자유롭게 접합되고 연쇄된다. 당대인들의 간절한 생의 염원을 드러냈던 조선시대의 민화, 특히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은 작가에 의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재구성된다. 우리 문화 속에 내장되어 온 시각적 텍스트가 다차원의 공간으로 재영토화 하고 그 의미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산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을 통해 독특한 표현어법으로 모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신선해 보인다. ■ 박영택

Vol.20210817c | 박지현展 / PARKJIHYUN / 朴志賢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