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릴. 귀. 듣. 는. 발. 흐. 를. 저

2021 프로젝트 팀 팬시 기획展   2021_0810 ▶ 2021_0910

아트 퍼포먼스 장오경_바싹한 시간 Dried Up Time & 움직이는 오브제_2021 2021_0819_목요일_01:00pm               2021_0826_목요일_03:00pm, 05:00pm

참여작가 김보경_문지영_왕덕경_장오경_정재운_조정환

주최,기획 / 프로젝트 팀 팬시 후원,협찬 / 부산광역시_부산문화재단_예술지구 P

2021_0810 ▶ 2021_0828 관람시간 / 11:00am~06:00pm / 8월 11~18일, 일,공휴일 휴관

예술지구 P ART DISTRICT P 부산시 금정구 개좌로 162(회동동 157-6번지) ADP1 Tel. 070.4322.3113 www.artdp.org www.facebook.com/artdp

2021_0901 ▶ 2021_0910

온라인 전시

2021년 프로젝트 팀 팬시의 기획전 『달. 릴. 귀. 듣. 는. 발. 흐. 를. 저』는 빈 집과 유휴 공간 그리고 고립공간을 유목하듯 옮겨 다녔던 '리 - 서벌턴 : 인위선택-2020' 이후, 스스로 찾아낸 6개의 능동적 장소를 중심으로 풀어낸 이미지 아카이브형태의 전시이다. 전시는 당연하게 인식 되었던 ' 그 어떤' 것이 당연하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스스로 '무엇을, 어디를, 어떻게' 등을 고민하게 한다. ■ 프로젝트 팀 팬시

김보경_뾰족한 고립 The Acuminate Isolation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김보경_뾰족한 고립 The Acuminate Isolation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_부분

팔다리에 힘이 풀릴정도로 걷고 또 걸었던 어떤 날, 뾰족하게 높이 솟은 지붕을 발견했다. 스위스 어디즈음에나 있어야 할것 같은 그 어색한 외형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알수 없는 공포심을 가지게 했다. 아마도 한없이 고개를 꺾어 위를 볼 수 있는 좁은 입구, 가파른 지붕과 방치된 낡음을 위장하는 외벽돌이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가지게 했을 지도 모른다. 방치된 입구, 버려진 집기들, 공터에 배치된 알수 없는 의자와 술병들 그리고 말라버린 수영장. 틈 하나하나에도 무엇인가 얘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그곳은 마치 먼길을 헤매다 만난 나만의 '발견된 성' 같았다. 잠깐이라도 쉬면서 그 성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천천히 둘러 보았다. 그렇게 공포는 호기심이 되고 안락이 되었다. ■ 김보경

문지영_두고 나온 집 A House Left Behind_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21
문지영_두고 나온 집 A House Left Behind_디지털 프린트_39×54cm_2021

참 많이도 이삿짐을 싸고 풀었다, 짧을 땐 6개월만에도. 길다 하더라도 짐을 일부러 풀지 않았다, 곧 다시 싸야 하니까. 내 방, 네 방을 가르는 것도 큰 의미는 없었다. 엄마와 자매는 거실과 주방 사이 어디쯤에 모여 밥을 먹고, 안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서도 나의 공간은 룸메이트와 나눠 쓰는 방 반쪽이거나, 먼 친척조카로부터 앗은 방, 혹은 친구와 함께 세를 냈던 반지하의 2분의 1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고향(이라기보다 엄마와 동생이 사는)집에 가도 내가 사라진 공간은 버리지도, 풀지도 못하는 짐들로 금세 채워졌다. 항상 돌아갈 곳이 그리웠다. 고통의 끝의 끝에 가서라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공간. 가장 안전한 공간. 마음 편히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나의 집. ●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꿈속의 배경이 되는 집이, 정말 자신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심리학적으로나 정신의학적으로 검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식간에 나는 그 집으로 가 있었다. 나의 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집은, 늘 하나였으니까. 김해군 장유면 내덕리. 동생의 건강을 위해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과감히 선택한 낯선 곳. 식구들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있던 문패, 볕이 잘 들던 마당, 처음으로 가져 본 나의 방, 보리수 열매가 열리던 시큼한 여름이 있던 곳. 하지만 어둡게 드리운 그늘이 우리를 집어 삼키기 시작하자, 원망과 좌절이 이어지던 곳. 엄마의 신전이 늘 차려지고, 끝없는 기도와 절망이 반복되던 곳. 결국 도망치듯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집. 어쩌면 나는 집을 두고 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유년을 두고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걱정 없이 천진했던 시간들, 내가 필요할 때 돌아갈 피난처. 내가 그토록 꿈속에서 현관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그 때문일까? ● 30년이 지난 후 나는 그 집 앞에 섰다. 망망대해 같이 펼쳐졌던 논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먼지가 풀풀 날리던 2차로는 8차로로 바뀌었다. 집이 아직 외형을 갖춘 채 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주변은 변해 버렸다. 대문 틈 사이로 들여다 본 집은 굳게 닫힌 현관문 말고는 모든 것이 엉망이다. 양 옆으로 우뚝 선 건물 사이에서 볕도 제대로 못 받은 채 부서져 있는 집을 눈으로 매만져 본다. 내년 즈음엔 없어져 있을지도 모를, 나의 유년을 두고 다시 나선다. 이제 새로운 피난처를 찾아서. ■ 문지영

왕덕경_빈집의 조건 Find Useles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왕덕경_빈집의 조건 Find Useles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_부분

공간은 어떻게 보여지는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발견될 수 있을까. 무엇이 있어야 하고 어떤 것을 찾고 있는가. 눈앞에 보여 지는 것에 대해 얼마나 의식하고 있을까. 나는 보는 법을 알까. ● 기능이 결여된, 그 무엇으로도 사용되지 않는 공간은 늘 거기에 있고 또한 없는 것과 같다. 단지 우리가 고려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것일 뿐이다. 그동안 수집한 이미지 속 빈 집들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정의되지 않고 한정짓지 않는다.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과 소외된 자리, 부딪히는 조건들, 학습된 감각과 소심한 반항적 의심. 드러내기 위해 감추어야하고 보기 위해 차단되어야 하는 아이러니. 공간은 끊임없이 질문된다. 더욱 천천히, 흥미롭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애써 들여다본다. ■ 왕덕경

장오경_바싹한 시간 Dried Up Ti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장오경_바싹한 시간 Dried Up Ti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_부분

시간을 잡아두려 손을 뻗었다. 감각이 말라도 시간은 흘러간다. 변해간다. 내게 의미있는 빈 공간을 생각해보았다. 오랜 타지생활 때문인지 방이 비고 차는 것에는 무감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이 닫혀있는 안방과 눈이 마주쳤다. 긴 유랑생활에 마침표를 찍던 날, '집'으로 돌아왔고, 안방의 마지막 온기도 사라졌다. 그 후, 방문을 여는데 몇 년, 창문을 여는데 또 몇 년이 걸렸다. 과거를 끌어안기 위한 발걸음은 더디다. 방문을 열고, 창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옛 흔적을 덮으려는 나의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음에도 과거의 냄새는 고스란히 베여있었다. 어린 내가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시간이 스며있었다. 기억의 시간 속에 나를 두었다가, 다시 오늘에 서서 그 시간을 바라보았다. 반복했다. 어떻게든 시간의 흐름을 붙잡고자 하는 모습과 마주한다. ● 지도좌표 40.77752, -73.98301 좌표를 이탈한 곳에 점이 찍혔다. 안방을 통해서 이어지는 먼 곳에서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빈 공간에 대한 탐색은 내가 거쳐간 시공간이 중첩 되어야만 성립되었다. 뿌리와 멀어질수록 자유로워지는 기묘한 역설. 나를 찾기 위해 나의 근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달려 나간다. 누군가의 누구로서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여유와 자유가 느닷없이 꽃 한다발을 품에 안고 찾아왔다. 생애 한번 뿐인 시간이 고요 속으로 줄지어 흘러간다. 생생하게 그려진 시간들은 손과 맞닿는 지점마다 사라졌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핸드폰 번호처럼, 자다가 깨서 핸드폰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전화 걸 곳이 없어졌음을 깨닫는 순간처럼. ● 몸에 구멍이 난 것처럼 힘이 새어나가던 때. 눈앞에 나타난 푸른 잎들이 몸을 깨우고 마음을 닦아주었다. 그들이 바싹 말라갈 때, 끈끈한 물을 끼얹으며 다시 잡아두려한다. 놓아주지 못해 자신이 삼켜져 버리는 거대한 욕망을 가로지르는 시간. ■ 장오경

정재운_인디언 텐트 Indian Tent_한편의 소설, 나무 외_150×300×130cm_2021
정재운_인디언 텐트 Indian Tent_한편의 소설, 나무 외_150×300×130cm_2021_부분

빈집, 하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어느 시편부터 주워섬기게 되는 저는 염팡 책상물림입니다. 너그러이 말해도 문청티를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톱질을 하고, 전시장 바닥에 기거나 엎드려 하는 작업을 잘 할 리 없지요. ● 빈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실패가 예정된 모험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그 속에 들어가 춥고 더운 공기와 눈비를 막고, 나아가 살기 위해 지은 구조물을 집이라고 하지요. 거기에 어떤 개체(벌레 따위는 차치해야겠지요, 애초에 집을 지을 때 그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테니 말입니다)도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전제는 집이 그 목적을 잃었다는 걸 뜻합니다. 왜, 날이 슬어 무얼 자를 수 없는 가위를 가위로 부를 수 없고, 찢기거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책을 폐지로 취급하질 않습니까.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도 종래의 명명을 잃지 않는 건 생명을 지닌 유기체에 한해서만 그렇습니다. 집만큼 확고한 물성을 지닌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러니 집이면 집이지, 빈집은 뭐냐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빈집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너끈히 갈마들어와 국어사전에 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집에 단순한 무기물 이상의 영성을 부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성주신, 조왕신... 같은 가택신들도 이 같은 연유에서 발명된 것이겠지요. 앞서 '발견'이라고 하였지만, 가만 생각할수록 빈집이란 근대적 시선에 의한 발견의 대상이 아닌 듯합니다. 없던 것을 찾아내어 의미화하고 전유하는 것이 아닌 본래 지니고 있던 것, 인식주체인 나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을 더듬어 다시 감각하는 재인식(recognition)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그곳에서 일 푼이라도 조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살만 남은 인디언텐트를 지었습니다. 그곳의 주인인 아이는 떠나 빈집으로 남았습니다. 육신은 썩어 분해되지만, 인골만은 쉬 분해되질 않죠. 그처럼 부모의 속에 묻은 자식도 하고 많은 세월 동안 썩질 않고 남아 숨을 쉴 때마다 저이를 찌르고 또 찌를 것입니다. ● 빈집, 이라는 제목의 시편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토막으로 닫습니다. 제가 만든 빈집에는 잠글 수 있는 문도 없지만, 외부와 연결된 창문도 없습니다. 계단을 지어 놓았기로서니, 갇힐 수도 있습니다. ■ 정재운

조정환_이상공간 HETEROTOPIA_혼합재료_480×160×160cm_2021
조정환_이상공간 HETEROTOPIA_혼합재료_480×160×160cm_2021_부분

작년 프로젝트팀팬시 전시 『RE-Subaltern』 이후,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공간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졌다. 내 직업의 특성상 필요한 공간의 면적을 산정해보면 도심 한가운데서는 대안을 찾기 힘들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시세는 이루 말 할 수 없거니와 과밀화된 공간에서 이웃끼리 서로 경쟁하듯 미어터지는 생활도, 서로를 위아래로 구분 짓는 사람들의 관계에도 몸서리가 날 정도다. 도시 외곽에 '내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소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요즘 가로를 거닐 때면 이곳 환경에서 알고 지내온 사람들, 익숙한 건물들과 구조물들의 풍경은 차가운 낯으로 나를 대하는 듯 느껴진다.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행인들의 표정, 깨지는 유리창처럼 내려앉을 듯한 시선들,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리는 바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걸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너무 예민한 탓일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규모가 기술과 개발의 발전으로 인체의 척도에 비해 기형적으로 커짐에 따라 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부쩍 위축되고 소외된 듯 느낀다. 내 집 같지 않은 비대한 아파트 건물 중 고작 내부 인테리어 자재들과 물품들만이 실재하는 내 소유인 반면, 집 자체는 마음에 드는 형태로 구조변경을 할 수조차 없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허상의 공간이다. 사람이 사는 환경에서 이질적으로 느끼는 공간, 좀처럼 친근해지지 않는 구조물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오늘날 가장 효율적인 주거형태로 여기는 아파트는 내게는 소유할 수 없는 허상과도 같다. 어차피 손에 쥐어지지 않을 소유물이면 그다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불혹의 나이에 이전과는 다른 삶의 공간을 나의 직업과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서 계획도면을 그려보기로 한다. ● 욕망 가득한 내 몸뚱이를 놓아둘,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다가도 언제든지 날아들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매일 떠올리며 꿈꾼다. 비록 현실의 땅에서 쉽게 이룰 수 없을지라도 하나 둘 그려낸 도면 조각들은 현실을 닮은 이상세계다. ■ 조정환

Vol.20210810g | 달. 릴. 귀. 듣. 는. 발. 흐. 를. 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