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8·10 성남(광주대단지)민권운동 50주년 기념 기획展
주최 / 성남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일,공휴일 휴관 코로나19 관련 당국의 방역 지침에 따라 전시 일정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공감갤러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대로 997 성남시청 2층 Tel. +82.1577.3100
어디에도 없던 비범한 도시의 울퉁불퉁한 지도 ● 서울의 남쪽에 성이 있다. 조선시대 가장 슬프고도 위대한 건설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그 성의 남쪽에 도시가 있다. 20세기 가장 참혹하지만 경이로운 건설의 신화를 만든 곳이다. 강제 이주로 내던져진 사람들은 흙과 돌과 피를 뭉쳐 집을 짓고, 무소불위의 힘에 맞서 '성남시'라는 이름을 얻어냈다. 이어 50년, 갖가지 삶의 지층이 쌓였음에도 이 도시는 결코 평범할 수 없다. ● 최호철과 앙꼬는 60년대생 스승과 80년대생 제자로 인연을 맺었고, 닮은 듯 다른 눈으로 도시의 사람, 사건, 지형 들을 그려왔다. 앙꼬는 거주민으로, 최호철은 방문자로 성남의 속내에 매력을 느껴왔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각자의 스케치북에 이 도시를 담아왔다. 그리고 이제 최호철이 멀리서 굵게 본 성남과 앙꼬가 가까이서 세세히 본 성남이 겹쳐진다. ● 화가는 기묘한 안경의 대여점이라 우리에게 도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렌즈를 빌려준다. 최호철이 하늘과 골목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눈이라면, 앙꼬는 옆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이다. 최호철에게서 호기심과 관조가 겹쳐진 방문자의 시선을 본다면, 앙꼬에게서는 애정과 아픔이 뒤섞인 거주민의 숨결을 맡는다. 앙꼬는 안에 들어가 있지만 차가운 거리감을 드러내고, 최호철은 바깥에서 구경하지만 따뜻하게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둘 모두에게서 우리는 발견한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던져준 가짜 지도를 내던지고 자기들만의 지형을 만들어낸, 이 생명력 넘치는 시민들의 매력을. 어떤 도시도 이렇게 살지 못했고, 어떤 도시도 이런 방법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최호철-성남 원도심 ● "사람이 좋아 줄곧 그렸고, 이어 그들이 사는 골목과 마을을 그렸습니다. 이제 나만의 방법으로 도시의 지도를 그리고 싶습니다." ● 최호철은 서울의 와우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경기도 여러 곳에서 살며 그리고 가르쳤고, 성남에도 작업실을 두고 태평동의 골목길, 신흥동의 산동네 등을 그렸다. 화가는 사람이 좋아 줄곧 그 모습을 그리다가, 그들이 사는 골목과 마을로 시선을 옮겨갔고, 그러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 "나만의 도시 지도를 그리고 싶다." ● 「성남 원도심」은 이런 꿈의 발현이다. 물론 그 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조선 초기의 실경화, 18세기 이후의 도성도와 군현지도, 20세기 조감도를 관통하는 미술사적 맥락이 있다. 산수 혹은 도시라는 세계를, 기술적 정확함만이 아니라 화가 특유의 세계관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제 위성지도, 드론, VR과 같은 지리와 광학의 기술이 평범한 도구가 된 시대, 화가는 땅 위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풍경을 상상해 보여주는 데 만족할 수 없다. 「성남 원도심」의 화가는 구름 위 어디선가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 같지만, 실제는 골목길 하나하나를 더듬고 있다. 그렇게 주운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도시로 조합하는데, 그것은 퍼즐 맞추기가 아니다. 화가는 도시 자체가 되어, 꿈틀거리는 지형들을 화폭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 지도앱에서 보던 납작한 직선의 거리는 넘실거리는 굴곡의 생명체로 변신한다. 시민들은 산과 도로, 아파트와 상가, 교회와 운동장 등의 장소를 더듬으며 그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미래의 허상을 위한 청사진이 아니라, 과거의 진실을 반추하는 시간의 지도다. 개발의 시대에 위정자를 만족시키려고 그린 조감도가 아니라, 천막집에서부터 시작해 이 도시를 직접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투시도다.
최호철-골목 풍속화 ● 성남의 골목은 대한민국의 모든 골목들과 닮았으면서도 또 다르다. 「주차싸움」은 어디서나 일어나는 그 일을 주인공과 관람객이 있는 연극처럼 보여준다. 플라스틱 화분과 타이어로 만든 계단 위의 정원, 어른들이야 싸우든 말든 태연하게 노는 아이들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모란장」의 풍경은 멀리서 보면 전통 놀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대형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귀를 따갑게 하는 현대의 시장 풍속이다. 「판교 택지 개발지구」와 「도로 접속 분쟁」은 성남이 태어났던 때의 산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앙꼬-집으로 가는 길 ● "성남은 달라요. 광주, 하남과 다른 성남이 있어요. 은행동, 하대원동, 수정동의 사람도 서로 달라요. 옷차림, 표정, 움직임, 말투..." ● 앙꼬는 성남에서 태어나 자랐다. 토목업을 하던 아버지가 이 도시를 처음 건설할 때 찾아와 일했고, 이후 일가들이 모여 살았으니 그의 가족사가 곧 성남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겪은 일들을 그린 「열아홉」 「나쁜 친구」로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수상하고, 미국 「드로운 앤 쿼터리(Drawn and Quatery)」를 통해 '진정하고 진실된 한국 젊은 세대의 목소리'라는 평을 받았다. 세계 여러 도시들이 예술가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며 작품을 요청하는 시대인데, 앙꼬는 존재 자체가 성남의 레지던시 작가인 셈이다. ● 「집으로 가는 길」은 '가장 성남다운 거리'의 풍경과 풍속을 긴 화폭으로 이어, 마치 길을 가듯 그림 속을 여행하게 한다. 중국 북송의 「청명상하도」나 단원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를 떠올리게 하지만, 현대적인 선화(線畵)에 인물, 건물, 배경에 다양한 시점을 부여하고 재조합해 매우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림 속의 화가를 발견하고 동행할 수도 있고, 그와 떨어져 자신만의 탐험을 이어갈 수도 있다. 화폭 속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서사를 가진 존재이지만, 또 이음매 없이 연결되어 '한 순간의 성남'이 되기도 한다. 겹겹이 숨어 얼굴을 내미는 간판들, 제각각의 길을 가는 행인들, 그 뒤로 보이는 기이한 경사도의 언덕길... 그림 속의 성남은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처럼 분주한 생명력이 넘친다. ● 이곳은 가짜 도시였다. 위정자들이 지도에 자를 대고 상자를 만든 뒤, 대책없이 사람들을 실어다 놓은 곳. 천막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삶은 거칠고 팍팍했고, 그들이 사는 골목길이 성장기의 화가에게 결코 평온한 세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증이 겹겹이 쌓인 길을, 화가는 다시 담대하게 걷는다. 그리고 이것은 성남을 기록하는 어떤 거대한 일기의 시작이라는 예감이 든다.
앙꼬-살아오고 살아갈 풍경의 채집 ● 예민한 거주자의 감각만큼 한 도시를 적절하게 채집할 도구는 없다. 도로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도 사뭇 달라지는 그 정서를 잡아낼 방법은 없다. 「모란시장」은 화면을 튀어나올 듯 역동적인 표정들과 넘실거리는 언덕의 집들을 군집 생명체처럼 보여준다. 「The Life」의 은행동 골목은 지친 어깨와 굽은 발로 걸어가는 길을 개와 매점으로 위로한다. 「나쁜 친구」의 수진동 골목은 자신과 또래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애증이 깃든 길과 가게들을 흑백의 대비로 보여준다. 「할머니」와 「탐정」의 하대원동은 시간과 계절이 깃든 동네를 만나게 한다. ■ 이명석
Vol.20210810d | 성남에 새겨진 기억-최호철_앙꼬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