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수창청춘맨숀_대구현대미술가협회_대구광역시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수창청춘맨숀 SUCHANG YOUTH MANSION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27 Tel. +82.(0)53.252.2566~70 www.suchang.or.kr
김나윤 ● 정서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한 방어기제로 발현된 것이며 이는 사회 혹은 타자와의 소통을 도모하면서 자아를 찾으려는 실존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신체의 부분을 자르고 변형시키는 파편화 작업을 진행하며 그 외형을 하나의 조형적 정체성으로 재정립한다. '여성 신체를 얼마나 변화시킬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파편화된 신체가 가진 '반 미학적 미학'이 관람자에게 새로운 미의 대안으로 보여지길 바란다. ■ 김나윤
파편화된 육체, 그리고 새로운 유기체들의 결합 ● 김나윤의 작업은 작가 스스로의 내면의 구속받고 있는 부정적 감정을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특히 여성의 신체를 물질로써 파편화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정체성, 또는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과정을 이행하며 타자화된 존재가 아닌 주체적 존재로서 생산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 작가의 "신체를 통한 정체성 탐구"는 회화, 사진,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를 기반으로 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표출된 작업은 대상이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형상들과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다. ● 그가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표출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의 육체를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새로운 생물학적인 종(種)의 탄생을 이루어내는 어떠한 '힘'을 가지는 주체로서의 욕망이 더욱 감지된다. ● 결국 타자화된 여성의 신체를 해방시키고 그에 속한 자신마저도 해방시키려는 실험들은 파편화된 신체를 그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의 속과 겉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재편시켜 기존의 구조를 전복시키는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려는 시도라 하겠다. ● 작품 「거울」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여성의 얼굴은 거울에 비친 왜곡되고 일그러진 얼굴과 공존한다. 거울에 맞닿아 있는 여성의 얼굴은 거울 속의 대상을 보며 매혹과 욕망, 그리고 좌절을 상징하며, 하나가 아닌 무수한 자아를 반영하고 있다. ● 작품 「더미」는 인간 신체(피부 아래) 내의 기관들과 분절된 신체가 뒤섞인 더미들이 보인다. 대상물들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애브젝트(abject) 개념을 작품 속으로 일부 끌어들인 듯하다. '애브젝트'는 주체도 대상도 아닌 어떤 것이며, 비천하며 더럽고 역겨운 것을 가리키기 위해 쓴 용어인데 해체된 신체와 내장, 근육들이 뒤엉켜 더미를 이룬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작품 속 신체의 파편더미들은 새로운 구조를 이루려는 듯 보인다. 작품은 해체된 신체기관들이 새로운 유기체를 이루는 과정의 한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 새로운 유기체를 생산하는 이행과정은 「New woman」시리즈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여성의 얼굴을 뒤덮는 체액, 파편화되고 콜라주한 이미지, 체액으로 뒤덮인 생식기 등의 모습은 화려한 색채와 감각적인 형상으로 생물학적 혼성체의 탄생을 이루어내고 있다. ● 이렇게 김나윤의 작업세계는 여성의 신체를 주체적으로 해부하고 분절하여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며, 작가 스스로 통제권을 가진 주체로 등극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 박진희
김아라 ● 반복, 중첩, 대칭의 특징을 가진 단청 문양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구조물, 화면 속에 조형적 균형감을 찾아간다. 전통 건축 속 하나의 구조물을 선택하여 입체 또는 평면 안에 수직, 수평의 형상들이 교차하는 순간 대립하면서 이루는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입체와 평면이라는 매체의 연결, 동양과 서양의 결합, 캔버스 틀과 고건축 속 짜 맞춤이라는 구조적 접합 등의 의미를 담은, 나무 캔버스 틀을 이용한 「Untitled-Connection」 시리즈 작업 진행해오고 있다. 전통 건축의 구조를 하나의 조각으로 이해하고 본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 안에 조형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공간에 대한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 김아라
탈주하는 시선, 확장하는 세계 ● 김아라는 전통 건축의 구조와 단청의 패턴의 회화작업으로 독자성을 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의 전통 문양과 색감을 조형적 언어로 풀어낸 평면작업에서 작가는 모든 구조물 형태의 기본을 단순한 직선(수직, 수평)으로 인지하며 기하학적 추상과도 연결되는 작업들의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하였다. ● 평면작업뿐 아니라 캔버스의 틀(나무)의 짜 맞춤의 구조를 고 건축물의 구성과 일치함을 인지하고는 전통 문양을 입혀 입체작업인 「Untitled-Connection」과 같은 입체 시리즈로 확장하기도 하였다. 계속된 실험은 작가의 환경 변화와도 맞닿게 되는데, 전주의 오래된 건물 창문들의 형태를 배치, 수치화하여 문양과 결합한 평면회화인 Window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전통 건축물의 구조와 구조물을 넘어 현시대 건축물의 구조물(기둥)을 전통문양과 색감과 결합하며 새로운 시공간을 탐구하는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 2021년 신작 「Untitled」는 김아라 작업세계를 대표하는 캔버스 회화 작업이다. 단청의 문양을 재구성하고 전통이라는 위계를 현대화하여 이상적인 조형적 균형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수직, 수평의 직선화된 기본 요소를 강조함과 동시에 보색대비를 강하게 이루며 색상의 균형감과 조화를 동시에 이루어낸다. 이는 단청의 색채와 패턴에 매료되어 수년간 작업해 온 기본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라 하겠다. ● 그러나 김아라는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듯하다. 전통 건축물의 구조와 색감에서 모티브를 찾아 작업을 지속해 온 패턴, 즉 역사의 위계와 가치를 고수한 건축물에서 눈을 돌려 '일상성', '동시대성', '현장성'을 담은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이전의 작업 중에 캔버스의 틀을 건축적 구조물로 치환하여 단청 패턴과 결합한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작업을 발표하며 '동시대성'을 이미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의 형식의 실험과 확장으로 볼 수 있다면 이번 작품들은 시선의 확장. 실험하는 태도의 변화에 시도에 더욱 초점을 둔 결과물이라고 본다. ● 작품 「Vertical Line」은 전시장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획득한다. 단청의 패턴이 덧입혀진 샤시문의 철기둥이 등장한다. 이 오브제(기둥)는 작업실 근처 공구거리, 즉 일상의 장소에서 만난 건축 철구조물인 '중주'(샤시문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작가는 전통의 위계와 가치가 삭제된 일상의 거리, 치열한 삶의 현장인 어느 가게의 셔터문 기둥을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전시공간에서 천장과 바닥을 관통하는 기둥으로, 전시장 건축물의 한 구조로써 재구조화된다. 기성품(레디메이드), 기능만을 위한 철기둥은 전통문양과 색을 장착하고 전시공간에서 혼종 되어 새로운 위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 더불어 바닥에 설치된 작품 「Flat Pieces」는 소박한 전통문양의 대량생산품인 타일과 작가의 캔버스 작품이 뒤섞여 거친 콘크리트 전시공간에서 새로운 현장성을 획득한다. 권위와 힘의 상징인 고 건축물의 패턴을 우리는 주로 올려다보았지만 이번에는 내려다보게 된다. ● 김아라는 치열한 일상과 삶의 현장에 눈을 돌려 기존 작업과 접합하며 새롭게 구조화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의 세계를 품고 더 큰 세상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형식의 변화보다 태도의 변화가 이루어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작품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 김아라
박용화 ● 일상의 경험이나 사건 속에서 발현되는 생각들이나 반응하는 감정으로 공간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현대사회에서 겪는 직간접적인 경험의 감정은 즉흥적 감각을 통해 주변의 이미지와 공간을 인지하고 작업으로 이어 나가게 된다. 나는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주어진 상황이나 선택적으로 여러 공간을 이주하게 되었다. 유목적 삶의 태도는 자연스레 낯선 주변의 사물과 장소를 관조하고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주변의 공간을 또 다른 공간으로 환유하여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공간 작업을 하게 되었다. 현재 진행하는 작품은 우리가 인지하는 통상적인 생각들을 전복 시키고 작품을 통해 이중적이면서 불안한 현시대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 ■ 박용화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유목적 주체와 동물원 ● 내 집 마련,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갖는 주제이다. 생후 4개월의 갓난아기가 강남 압구정동에 위치한 24억 원대의 아파트를 매입했단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은 이러한 관심을 반증할 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주거 안정성은 그중에서도 생존권과 직결되기에 언제나 민감한 주제가 된다. 집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현재,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규명으로 이어진다. 박용화는 이러한 '공간'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작가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규정되고 삶의 공간적 차원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그 상호작용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주어진 상황이나 선택적으로 여러 공간으로 이주한 경력들 때문일까. 작가는 이러한 유목적인 삶 속에서 낯선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을 관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 공간이 없었던 작가는 성장하고서도 항상 노출되어 있는 공간에서 생활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공용 공간인 복도에서 작업했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도 전국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유목적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작가라는 직업 역시 작품과 자신을 대중에게 보이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자신을 디스플레이하는, 일종의 진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대전의 ArtSpace 128에서 열린 개인전인 《진열된 풍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구석으로〉(2020) 이었는데, 곰이 구석진 곳에서 숨어 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무대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안식처에서 쉬고 싶은 곰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레지던시는 그 공간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오픈스튜디오 등의 행사 시마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말 그대로 '오픈'해야만 한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유목적 주체, 즉 작가 자신에 대한 위로처럼 보였기에 더욱 눈길이 간 작업이었다. ● 이처럼 여러 장소를 유목하며 겪었던 경험과 그로 인해 유발된 감정으로 공간을 재해석하는 작가는 물리적인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환유하여 표현하거나 공간에 직접 들어가 진행하는 형태의 작업으로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동물원'이라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채집된 이미지를 회화와 설치로 제시하며 개인적이지만 집단적인 논점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다음과 같다. 작가가 반지하 작업실에서 생활하던 중 우연히 창문 밖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된 순간이다. 반지하 쇠창살 사이로 마치 관람을 당해버린 순간을 경험한 후로는 불안한 공간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원 근처 지역에 살았던 유년시절에 자연스럽게 동물원에 자주 방문하던 기억과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다시 관람자의 위치에서 동물원을 방문하니, 이전과는 다른 동물원의 풍경이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관람당한 대상이 되어버린 경험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적인 관계, 관람 대상과 관람하는 주체의 전복을 생각하게 했다. 이러한 경험은 〈Human cage〉(2018~) 인간 스스로를 인공적인 공간에 갇힌 동물로 인식하는 설치 작업으로 구현되었다. 이후 작가는 새로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동물원에 방문한다. 박용화는 이처럼 동물원과 우리가 살아가는 인공적인 현대 사회의 생리(生理)와 유사함에 착안에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자연을 가장한 인공문명과 현대의 모습을 병치시켜 작업으로 풀어낸다.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자연을 가장한 인공문명 ● 박용화 작가와는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 지원전인 《넥스트코드 2019》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넥스트코드 2019》당시에는 동물원이라는 공간적 설정 외에도 〈불안이 담긴 동물원〉(2018), 〈억압된 공간의 본능적 표현〉(2018) 등 말라비틀어진 동물들의 사체, 배설물로 뒤범벅된 새들과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동물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이 본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진귀한 동물을 수집했던 데서 유래한다. 동물의 생활공간이 아닌 철저하게 인간의 눈요깃감을 위해 설계되었기에 동물원 속 동물에게 자율성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늑대가 사라진 우리〉(2021). 〈늑대의 우리〉(2021), 〈우리 안 얼굴〉(2020), 〈박제된 불안〉(2019) 등에서는 동물 사체, 배설물, 해골, 불, 고깃덩어리 등 죽음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동물원이라는 공간 소멸을 향한 작가의 기원을 보여준다. ●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미술원, 우리와 우리 사이》이나 대전 ArtSpace128 개인전인 《진열된 풍경》에서는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구성 요소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인공 자재물 등의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구조물이나 새의 배설물로 흘러내리는 나뭇가지들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꺾이고 불편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관람객의 시각적 유희를 위한 인공구조물들과 거친 마감의 벽화들은 그저 관람객들이 동물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인공적이고 통제된 구조물일 뿐이다. ● 현재 도시에서의 나무, 돌, 풀들은 자연적으로 자라거나 놓여 있는 것이 아닌 모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그리고 역시 동물원의 우리를 구성하는 나뭇가지나 철제 등 인공적 구조물을 그린 드로잉 역시 모두 인공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자연의 인공적 재구성」(2019~) 연작의 수많은 드로잉 중 겹치는 장면은 하나도 없이 인공적인 구조물로 가득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동물원은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기에 어김없이 동물의 종(種) 간 위계질서가 등장한다. 소위 잘나가는 호랑이라고 할지언정 그 꾸밈새는 피해 가지 못한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2020)는 웅장한 벽화, 가짜 폭포, 타일 벽화 등 동물원의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보다도 못한 실제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이 대조된다. 흐릿하게 표현된 호랑이는 그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마르고 힘없는 모습이다. 작가의 조약한 구조물 중 요즘의 관심사는 암석이나 돌을 표현한 구조물이다. 천 위에 폴리우레탄을 색칠한 구조물로〈펭귄〉(2021) 등의 작업에서 확인 할 수 있다. ● 작가는 동물 개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넘어 동물과 인간이 맺고 있는 양가적인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원 안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는 동물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박용화가 표현하려는 것이 동물권 그 자체는 아니다. 〈생존을 위한 식사〉(2020), 〈그가 먹고 남은 고기〉(2020), 〈그들이 먹고 남긴 고기〉(2020)를 병치시킨 작업은 작가가 대전의 동물원인 오월드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자신이 식사가 아닌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동물의 그것이나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화면에서 고깃덩어리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본인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렇듯 작가의 관심은 동물, 인간을 나눌 것 없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열려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상징적 공간의 동물원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박용화를 읽는 세 가지 방법, 미술 생태계 속 이상주의자 ● 박용화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다. 현실과 이상이 한 문장에 동일한 의미망으로 읽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박용화는 그렇다. 《진열된 풍경》은 인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인공 생태공간을 담은 동물원 풍경을 담아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풍경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 그리고 현존하는 동물원이 사라진 미래를 보여주는 〈그들이 사라진 공간〉(2019)이나 〈미완의 모뉴먼트〉(2020)는 사라진 동물원이 기념비로 남게 될 가상의 설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동물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현실의 통제된 공간을 반영한다. 그리고 공간 소멸을 향한 염원을 담은 상징을 화면 곳곳에 드러내거나 숨겨둔다. 내게는 그것이 예술의 사회적인 실천과도 적절한 균형이 맞아 보인다. ● 박용화 작가는 공간에 대한 특유의 관심으로 무드를 만들어 낼 줄 안다. 박용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갈 때면, 개별적인 작업의 흥미뿐만 아니라 공간과 어우러지는 디스플레이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만족하며 나오곤 한다. 개인적으로 〈무제〉식의 제목을 성의 없다고 생각하기에 성의 있는 작명 센스 역시 주요 만족 포인트 중 하나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 세계가 명확하고 이를 최소한의 텍스트로 전달하고자 노력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직접 설계와 감리, 제작까지 진행하는 인간 우리(cage)를 보여주는 공간 설치 작업인 〈Human cage〉(2018~)를 시작으로 기획 전시를 시작하게 된 작가는 올해 대전의 테미오래에서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전 지역 미술대학의 연합전시를 추구했다는 점인데, 개인 작업에 몰두하는 미술 대학의 기질적인 특성상 뚜렷한 구심점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용화 작가는 함께 잘 되는 건전한 미술 생태계를 꿈꾼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묵묵히 걷고 있는 작가를 보고 있노라면 비장한 엄숙미마저 느껴진다. 나 역시 미술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또 실천하리라 마음먹게 된다. 자조적으로 하지만 비관적이지 않은 박용화 같은 동료가 가까이 있어 큰 위로가 된다. 그의 행보를 응원하며, 박용화가 꿈꾸는 미래가 도래하길 기원한다. ■ 홍예슬
이연주 ● 나는 빠르게 변해가는 일상 속에서 익숙하고 변하지 않는 대상들과 나의 거리에 관심을 가진다.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이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었고, 그중 산은 나에게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산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머물렀고, 그러한 산을 바라보며 편안함을 느꼈다. 더불어 나의 일상을 차지하는 반복되는 주변 인물의 모습에서 마치 산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워있거나 잠들어있는 등 가까운 주변 인물의 모습 또한 산처럼 내가 머무른 자리에서 늘 바라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내가 가깝게 느끼는 산과 사람이라는 대상의 유사점에서 시작하여, 마치 산과 같은 사람 이미지를 표현한다. ■ 이연주
시선이 머무르는 곳 ● 대구의 수창청춘맨숀 작업실에서 이연주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는 어떤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과 함께 수줍게〈산 드로잉〉(2016~)을 연작들을 펼쳤다. 크라프트(kraft) 종이를 바탕으로 산의 형태와 색을 색테이프로 표현한 명함 크기 정도의 작은 사이즈의 작업이었다. 2016년부터 시간 날 때마다 작업하고 가끔씩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는〈산 드로잉〉은 작업량이 상당했다. 그만큼 다양한 선, 면, 색채로 비구성적인 '산(山)'들이 선택지로 존재했고, 나는 파란색과 녹색을 고민하다가 녹색을 선택했다. 〈산 드로잉〉밖에도 이연주 작가의 〈서재리〉(2016~) 연작, 〈카파도키아〉(2016) 연작, 〈꿈〉(2021) 연작의 대부분은 '산'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작가가 표현하는 산은 작가의 눈에 자주 익은 산으로 걸어가다가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명의 산이다. 우리의 주변에 늘 자리하는 풍경으로 작가에게는 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위로를 주는 풍경이다. 작가에게 산은 머무른 자리에서 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이루는 흙, 나무, 돌, 요소들의 조합들이 덩어리를 이루는 방식으로 절제된 구성의 화면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익숙함을 채워가는 시간, 오전 5시 ●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산 풍경을 보고 자랐다. 특별한 이름이 없는 뒷동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68.3m의 동네의 산이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눈에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산이 현재까지 일관되게 모티프가 되어 작업하고 있다. 산은 작가의 주변 환경에 항상 자리했고, 그 자리에서 늘 바라볼 수 있었기에 작가에게 익숙하고도 편안한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서재리〉(2016), 〈서재리〉(2018), 〈서재리〉(2019) 등은 각기 다른 채도와 명도를 갖고 있지만 대게 푸른색으로 산을 표현한다. 계절이나 날씨, 그날의 온도에 따라 시시각각 산의 모습과 색 또한 변모한다. 하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산은 외양새가 아닌 산 자체가 주는 익숙함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작업에서 색은 우리의 선입견대로 사용되지 않는다. 산의 외면인 녹색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심리적인 재현으로 색이 선택된다. 〈서재리〉(2016~) 연작의 경우 울트라마린 계열의 푸른색을 선택했는데, 그 푸른색 안에서 작가가 느낀 산의 익숙함, 따뜻함을 담아내는 동시에 깊고 단단한 의미망을 구축한다. 사소한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차이를 두고 프러시안 블루, 코발트 블루, 피콕 블루 등 다양한 색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서재리의 푸른 산들은 새벽 5시쯤 조용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하늘 역시 모래, 땅을 연상할 수 있는 갈색 톤이 자주 보인다. 이처럼 작가에게 산은 단순한 풍경화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오는 따뜻함 등 감정으로 간주된다. 화면 안의 여러 가지 형태와 색채, 질감 등의 회화적 요소들은 작가의 감정을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익숙함을 채워가는 시간, 오전 9시 ● 이연주 작가에게는 산의 유명세보다는 늘 그 자리에 시선이 머무를 수 있는 산이 중요하다. 한창 〈서재리〉(2016~) 연작을 진행하던 중에 터키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형학상 산지 면적이 전국토의 약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해발 고도는 높은 편은 아니며 200~500m의 저산성 산지가 40% 이상이다. 하지만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약 8배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여행 중 둘러본 각 도시들은 각기 다른 다양한 기후로 인해 산 역시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터키의 산은 한국에서 바라본 산과는 확실히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터키에서 바라본 풍경 중 특히 카파도키아의 암벽산은 수평으로 낮게 깔리고 하늘이 함께 시야에 들어와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작가는 여름 무더운 날 탁 트인 하늘과 강렬했던 바위산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붉은색의 산과 하늘의 색으로는 샌드 파스텔, 금색을 선택하여 화면에 옮겼다. 한국의 산은 푸른 나무와 숲이 함께 큰 덩어리를 이루어 푸른색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터키의 산은 한 여름의 날씨와 강렬한 기억이 함께 어우러져 붉게 표현했다. 하늘은 주로 샌드 파스텔과 금색을 섞어서 표현했는데, 광활하고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과 또 새로운 풍경에 대한 신비한 느낌이 어우러진 터키의 하늘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터키어로 오후 3시의 풍경을 그린 〈Üç 위치〉, 오후 4시 풍경을 그린 〈Dört 되르트〉 오후 6시의 풍경을 그린 〈altı알트〉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특정 시간에만 마주할 수 있는 산의 풍경들로 작업을 진행했다.
익숙함을 채워가는 시간, 오후 1시 ● 이처럼 작가는 익숙한 대상인 산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해왔다. 최근 작업은 작가가 바라본 산의 모습을 인물에 투영하여 마치 산과 같은 사람 이미지를 표현하는 〈꿈〉(2021) 연작으로 확장되었다. 작가는 매일의 기록에서 시작된 드로잉을 통해 일상 속 반복되는 주변 인물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잠들어 있거나 누워서 편히 쉬는 주변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치 산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업실에 있는 여러 작업 중 드로잉 또한 눈에 들어왔는데, 어느 일정한 시간대와 공기층을 포착하는 동시의 산의 구조적인 형태 또한 잘 드러난다. 산과 주변 인물 모습을 탐구하며 작가가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끼는 대상들이라는 유사점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주변 인물의 모습 또한 산처럼 머무른 자리에서 늘 바라볼 수 있었다. 작가의 기억 속에 축적된 산의 잔상은 무의식적으로 주변 인물들의 형상에 투사되었다. 작가가 산의 모습으로 투영한 대상들은 주로 누워있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 등을 맞대고 기대 있는 등 편안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상을 더 확대하여 바라본 시선으로는 포개진 두 손이나 마주한 등, 굽이진 무릎 등 신체의 부분적 요소들 또한 산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른 자리에서 바라본 주변 인물 모습 또한 산처럼 늘 그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풍경이다. 이처럼 산을 바라보듯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가족 등 익숙한 존재들을 그려내는 〈꿈〉 연작은〈언니 꿈〉(2021), 〈아빠 꿈〉(2021), 남동생을 그린〈같은 자리〉(2021)로 이어진다. 이렇듯 작가에게 반복되고 익숙한 장면들을 층층이 겹쳐진 레이어 속 작은 변화들을 포착하여 담아내고자 한다. 신작에서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형상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색채로 느낌을 가져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엄마를 표현한 〈엄마 꿈〉(2021)은 난색이 두드러지는데, 작가가 엄마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감정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힘이 있는 작업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산과 사람을 결합한 풍경에서는 주로 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확실히 이전의 산 작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는 '산'이라는 대상을 두고 그에 따라 작가가 느낀 감정대로 색을 선택했다면, 최근의 작업들은 '인물'이라는 대상을 출발점에 두고 산과 유사한 색이나 형태 등의 지점들을 찾으며 작업을 진행한다. 동시에 산이라는 대상에 매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특정 대상과 산의 특성을 중첩지어 녹색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푸른색, 붉은색 등 한 가지 계열의 색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고자 하는 분위기 안에서 좀 더 다양한 색을 조합하려 시도한다.
익숙함을 채워가는 시간, 그 이후 ● 어떤 색을 좋아하냐는 질문과 함께 수줍게 건넨〈산 드로잉〉(2016~)은 지금 우리 집 거실 벽에 소중히 걸려 있다. 1996년생의 이연주는 이제 막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점심 식사를 하고 난 오후 1시쯤 일 테다. 진지한 작업 태도와 맥락으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이연주의 오후와 저녁 시간들은 어떤 빛깔을 보일지 궁금하다. 현재 수창청춘맨숀 입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앞으로의 작업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익숙하다는 것은 능숙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차분하고 겸손한 성격의 작가는 눈에 익고 손에 익은 대상을 성실히 그만의 조형언어로 채워나간다. 2016년 터키에서의 여행 후, 마치 스핀 오프처럼 붉은색의 산이 등장한 것처럼 앞으로 작가에게 크고 작은 다양한 색상의 산들이 작가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되길 바란다. ■ 홍예슬
임지혜 ● 신문을 풀과 가위로 오리고 붙여서 콜라주를 만들고 있다. 신문은 매일 새로운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지만, 시기에 맞춘 계절 이미지를 어김없이 반복해서 보여준다. 작품은 하늘, 산, 바다, 아파트까지 위에서 아래로 층층이 담아낸 여름 풍경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어쩌면 기념비적인 여름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바다의 파란 물결은 쏟아질 듯한 파란 덩어리가 되고, 소란스러운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끝에 모여있다. 여름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 임지혜
시각적 알레고리 ● 임지혜의 콜라주는 신문기사와 이미지를 수집, 기록, 재구성하면서 상상의 문이 열리는 마당, 즉 새로운 장(Field)으로 '시각적 알레고리(allegory, 우의)'를 시도한다. 그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오늘날 사람들은 뉴스를 인쇄 매체가 아닌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로 공유한다. 텔레비전 화면을 리모컨으로 넘기고, 컴퓨터를 무한한 하이퍼링크로 연결하고, 손바닥만 한 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스크롤 하면서 뉴스를 접한다." 디지털로 소비되는 뉴스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이 자리한다. 뉴스는 공기와 바람처럼 현대 도시인의 삶의 일부다. 작가의 현실 인식에서처럼, 뉴스는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읽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많은 뉴스 중에서 읽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찾아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이슈가 되는 특정뉴스일 경우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정보가 실시간 생생하게 전달되는 시대에 임지혜는 종이신문이 전달하는 뉴스를 선택해 꼼꼼하게 스크랩하고 신문의 활자와 이미지 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시각적 알레고리'를 제시한다. ●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이 제공하는 정보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읽어내고, 시의성과 사회성을 담아 비판과 풍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뉴스 콜라주와 일상 속 즐거운 상상을 콜라주로 풀어내고 동화 같은 풍경 속으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보고 읽고 감각하는 종이 신문이라는 아날로그 매체가 단지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풍자를 통해 사회를 간접 경험하는 통로이자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임지혜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마치 일기를 쓰듯, 일간 발행 뉴스에 위트를 더해 A4용지에 콜라주를 해 오고 있다. 그리고 뉴스레터를 만들어 아카이빙 하는 작업을 지속해 가고 있다. 그중에서 6년간 매일 뉴스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확장해 가는 프로젝트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한 권의 책으로 출판도 했다. ● 이처럼, 작가는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접하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을 작업적 소재로 삼고, 나아가 동시대적 사회 문화의 변화를 매일매일 보고 감각하면서 이를 창작활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읽고 보면서 특정 사건이나 이슈를 창작의 의미로 인식하는 작가는 작업을 위해 하나하나 오리고 붙이는 정교한 신체적 노동의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어제와 오늘이 만나고 겹치고 가로지르는 가운데 어렴풋하게 내일의 여명을 보는 시간이리라.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 바로 상상의 문이 열리고 창작에 눈 뜨는 '새로운 장'일 것이다. ● '새로운 장'에 발을 딛고 그 시선의 깊이와 넓이를 설정하는 작가적 태도에 따라 보고 읽는 것, 시각 너머에 있는 실체를 향한 통로, 이쪽과 저쪽 안과 밖으로 연결된 길, 확실히 임지혜의 종이신문 콜라주는 새로운 통로를 연결하는 가운데 시대인식을 꽃피우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글과 이미지의 상징과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의 다양한 차이를 인식하는 지점이자, 세계인식을 위한 작가의 시선이 가닿는 지점, 시각적 알레고리가 저마다의 눈을 통해 마음이 통하는 장이다. ● 예컨대 지난해 임지혜 개인전 주제였던 「무지개 너머 아포칼립스」에서는 5년간 발행된 신문 중에서 세계적인 재난뉴스를 뽑아 전시했다. 이 전시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무방비한 인간의 모습과 이러한 재난을 손바닥만 한 사진으로 편안하게 감상하는 나 자신이 대비되는 현실에서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또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의 삶 속에서 재난도 일회성 뉴스로 소비되고 있다는 의미로 스마트폰 액정 비율인 16:9에 착안한 디지털 화면의 소비방식을 전시한 것에 대해 작가는 '누군가의 삶에 닥친 비극이 가상현실이나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각성과도 같은 시도였다고 한다. ● 임지혜의 '시각적 알레고리'는 손바닥 안 디지털 화면을 벗어나 종이신문 콜라주를 통해 보거나 들었지만 지나쳤던 길을 되새겨 새로 난 길을 보여준다. 그 길에서 만나는 것은 비가 오는 날에도 해는 떠 있었고, 깜깜한 하늘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아도 그 깊은 어둠 어딘가에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을 상상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향한 시선이 가닿는 곳, 소비가 아닌 사유와 창작으로 보이는 것을 다시 보고 새롭게 보는 장이다. ■ 김옥렬
Vol.20210710f | 2021년 제3회 레지던시창작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