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고 미끄러지는

김찬송展 / KIMCHANSONG / 金讚頌 / painting   2021_0625 ▶ 2021_0713 / 일,월요일 휴관

김찬송_a night walk_캔버스에 유채_65×91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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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송 홈페이지_www.chansongkim.com       인스타그램_@chansongkim_studi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아터테인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터테인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63-4 (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생명과 삶의 가장 깊은 의미에 대해, ● 생명은 여러 과학적으로나 다른 그 어떤 이유들로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그 정의와 의미가. 과연 생명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 그것이 생명인데.. 그리고 그 생명이 그 생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우리의 삶은 그리고 생명은 도대체 왜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일까.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 한번도 궁금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구의 명령과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있다. 생명이라고 하는 엄청난 의문의 힘으로.

김찬송_a deeper place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9

그 중, 늘 궁금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식물들이다. 그 엄청난 생명력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 봤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식물이 얼마나 무서운 생명력을 가지고 지구를, 감히 지배라고 할 만큼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래만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도, 식물은 존재한다. 아니,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발길이 평생 단 한번도 닿지 않는 그 오지에도 식물은 꽃을 피우고, 삶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 그것의 생명과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김찬송_a vanishing field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0
김찬송_Mimosa Forest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1

김찬송 작가는 식물, 혹은 생명들 간의 에너지의 부딪힘에서 그 생명의 지속성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 있던 한 정원에서 바라 본 식물들이 결국, 그 지역 토종 식물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환경의 식물들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럼에도, 그 식물들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환경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삶을 연장해 나가는 생명력과 함께 부딪힘으로부터 생성되는 조화의 에너지에 대해 집중하게 된 것이 작가의 식물 시리즈인 듯 하다.

김찬송_soft wave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19
김찬송_the eternal waves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1

일반적으로, 식물은 스팟, 포인트 중심의 생물이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가지를 뻗는 만큼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생물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식물의 모습 그대로 뿌리는 지구, 땅에 뻗어져 있다고 보면 맞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땅을 우리의 지구를 붙들고 있는 유일한 생명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우리(동물)은, 그 위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러나 그 둘은 엄청난 공생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움직이는 동물들의 바탕을 만들어 주면서 동물들을 움직임을 활용해서 번식하게 된다. 결국, 식물은 모든 것을 다 주면서 자신들을 번식하게 된다는 것. 지구상 모든 생물들을 통틀어 이것보다 무섭고 확실한 번식 방법은 없을 것 같다. 해서, 김찬송 작가의 식물은 이러한 생명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찬송_산책자(Flaneur)_캔버스에 유채_41×31.8cm_2021
김찬송_산책자(Flaneur)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21

또한, 이러한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 김찬송 작가는 본인을 포함해, 그 어떤 모방이 불가능한 순간성을 강조하는 기법으로 표현한다. 물감 그 자체가 지니는 물질성을 그대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입함으로써 캔버스와 작가의 행위가 최초의 만남으로써 표현되는 그 에너지와 생명력들. 작가가 세련된 붓이 아닌 오래되어 닳은 붓의 뭉툭함을 가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면서 또한, 그리는 것 이상의 감정의 발현일 수 도 있겠다.

김찬송_자리잡지 못한 풍경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9
김찬송_Windy Memory_캔버스에 유채_각 60.6×60.6cm_2021

그의 식물들이 여전히 작가의 작업실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식물들과 또한, 그 식물들과 적응해 나가고 있는 작가를 보면서.. 생명이라는 것이 어떻게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하고 그것으로 어떻게 서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더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김찬송의 정원에서. ■ 임대식

Vol.20210625f | 김찬송展 / KIMCHANSONG / 金讚頌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