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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 www.facebook.com/INDIPRESS
시간 감각을 위한 회화적 거리 ● 왜곡된 형상, 뒤틀린 구도, 흘러내리는 물감, 움직임의 시각화, 짜깁기, 입체의 평면화. 이들은 사윤택 작가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얻었던 몇 가지 이미지이다. 이는 과학적 정교함에 기반을 둔 안정적 짜임새와 현실 이미지의 완벽한 회화적 재현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지난 약 20여 년 동안의 그의 회화가 지닌 특징들 일부이다. 그리고 회화의 한계에 대한 고민, 평면의 견고함을 깨는 독창적 방법에 대한 탐색을 이어왔던 그의 작업에는 상기한 요소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긴장감이 스며들어있다. 특히 초기 작업은 일견 초현실주의자들의 꿈의 언어를 보는 듯하고, 인상파나 입체파 화풍의 흔적이 곳곳에 포착된다. 그는 후기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던 매너리즘 양식과 어떤 미술사적 결이 닿아있다고 언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굳이 회화사의 이러한 특정 양상들에 기댄 접근이 아니더라도 여러 양식의 실험적 토대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한 그의 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친한 지인의 죽음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두 차례나 경험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죽음은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더불어, 기억의 영향을 받는 시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고, '기억 속 시각 이미지의 역사를 헤집으며 드러난 감수성'은 작업의 여러 동기 중 하나가 된다. 이후 2006년부터는 유난히 운동 경기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경기 장면의 짧은 순간을 포착하여, 변화하는 시공간의 층위를 비롯한 시간성을 이미지와 결합하는 방식 안에서 나타난 것들이다. 그리고 움직임이 일어난 특정 순간의 미세한 연속성이 어떻게 화폭의 시공간을 가로지르고 나아가 현실의 균열을 일으키는지 탐색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역사가 주목해 온 견고한 인식의 틀에 대한 태생적 거부가 회화의 고착화된 양식의 틀을 와해하고자 했고, 나아가 미시적 안목과 비시각적 현상에 더욱 무게를 둘 수밖에 없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어떤 종류의 움직임들이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는데, 때로는 시공간에 대한 현상학적 감각과 경험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좀 더 근원적인 회화라는 속성에 대한 관찰적 사유를 담는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인간의 관측 범위를 넘어서 CCTV와 블랙박스가 담아낸 장면을 대리관찰자의 시선으로 진술하기도 하고, '스치듯 포착되는 무수한 시간의 고리를 재발견하게 하는' 작업(「CCTV-빛과 어둠」)처럼 구현하기도 한다. 이들 역시 회화의 정형성과 견고함을 깨고 순간-운동성의 맥락을 살피고자 하는 작가의 독창적 표현방식의 일환이다.
한편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또 다른 흥미 있는 지점은 자유로운 구도로 배치된 사물과 사건의 조합 안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와 장난기이다. 이들은 화폭에 담긴 중첩된 이야기들에서 부지불식간에 개입하는 의외의 요소이기도 하고, 캔버스 틀에서 천을 분리해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걸어두어, 흔들리는 표면이 실내 불빛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다룬 '굴절 넣기 회화'처럼, 그 작업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CCTV의 개입이나 굴절 넣기 회화 모두 결국 작업의 온전한 주체로서의 '작가'개념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여러 에너지의 상관 관계를 밝히고, 그들의 얽힘이 예술적 실행을 위한 작업의 통로를 열어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와 사유만이 오롯이 담긴, 그래서 '개인적 서사의 의미에 매몰되는' 세계 내 닫힌 존재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현실을 구축하는 여러 타자적 존재의 움직임을 인간의 감각이 포착하지 못하는 그 지점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작가적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를테면 두꺼비 모양의 수석을 야외에 놓아두고 그린 「암각화를 위해 그린 암벽」에는 그 표면에 순간-운동성을 위한 장면이 나타나는데, 이는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미술 비전공자의 손과 감각을 대리해서 새겨 넣은 것이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암벽 위의 고대 벽화와 같은 아우라를 느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오래전 벽화가 일종의 주술적 맥락을 지니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외부의 초자연적 에너지가 주는 감각과 주술적 힘에 대한 갈망마저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듯 대리관찰자의 시선 개입, 시스템 장치의 순간-장면과 관계하여 직접적 눈의 접촉과 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회화의 매체적 속성을 들여다보고, 재현에서 탈출하는 회화가 시간과 맺는 관계를 좀 더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순간-운동성 작업'의 맥락을 다양한 형식적 실험으로 살피고자 한다.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고 이동이 잦은 편인 작가의 일상에 드리워진 이러한 동적 이미지는 그의 회화가 자꾸만 정적 몰입감이나 고정적 상태를 이탈하려고 하는 단서가 된다. 특히 작업에 등장하는 몇몇 경기 장면에서, 내던져진 공이 그 이동 경로까지 상세히 드러내는 이유는 실제로 테니스와 탁구 경기를 하면서 상대의 서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운동신경과 감각을 동원해 그 이동 경로를 살폈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공의 동선은 그 예민한 감각이 반영된 순간들의 연결성을 드러내고 어쩌면 '망상과 강박'과 같은 심리적 기제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짧은 순간의 긴 충격이 주는 생채기 모형'처럼 느껴진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일련의 긴장감은 화폭에서의 긴장감으로 전이된다. 그렇다면 운동성과 시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움직임의 사건이 발생하는 어떤 지점, 혹은 이동 경로는 인식 구조 안에 자리잡힌 비가시적 시간의 흐름을 내포한다. 그런데 시간은 예측과 기억의 작용을 통해 세상과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범세계적이며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 객관적인 현재가 존재할 것이라는 관점은 이미 물리학의 여러 논증을 통해 그릇됨이 밝혀진 지 오래다. 즉 하나의 시간 이미지를 지니고 모두 같은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부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은 개체 수만큼 다양하며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변화하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과 맺는 관계,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생성하는 다층적 성질을 회화적 실험으로 연결하려는 작가의 작업이 우주의 무질서만큼이나 난해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거처의 잦은 변화는 그의 몇몇 작업에서 등장하는 컷아웃 방식의 원인이 된다. 여러 그림의 일부 요소들을 오려내어 다시 조합하는 이 방식은 이동 경로마다 작업 공간을 달리 두고, 이동 중에 맞닥뜨리는 순간과 장면을 그때마다 회화적 기록으로 모아두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화면에 조립하고 연결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잘리고 포개어진 흔적들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맥락과 시차로 그 대상들이 재조합되었을지 유추해보는 것도 작업의 흥미를 더하는 지점이다. 나아가 이렇게 한 공간에 담기기에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공간과 그 층위, 중첩의 형태를 살피는 것이 어쩌면 작가가 인식하는 시간의 구조에 가 닿는 방식이 될 것이다.
"사실, 소년은 졸고 있었다!" ● 이 문장은 작가의 욕망을 대변하는 '졸음'이라는 상태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작가는 보통 어떤 장면을 마주하며 일어나는 번쩍임의 순간에서 작업의 동인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어느 지점을 멍하니 응시할 때나, 주로 졸린 듯 멍한 상태에서 나타난다. 즉 어느 순간 '시선이 멈추고 긴 호흡으로 포착되는 지점에서 시간은 늘어지고 더 구체적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일종의 '끊어짐으로, 다가오는 순간-포착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제'가 그에게 '졸음' 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의식이 개입하는 순간 번쩍이는 계기는 단절된다. 그래서 방해받지 않는 '졸음'은 '내면과 현상 이면에서 감지되는 세상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 경계에 머무를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그 경계에는 다양한 시간의 겹들이 감각된다. 작업 「두 번의 깜박거림」에서 작가는 이러한 '졸음'과 깨어남의 순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의 얽힘과 여러 시선의 층위가 증발하는 듯한 감각을 시각화한다. 인식체계가 구축하는 현실에서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다층적 시간 안에서 이질적 감각과 원본 없는 실재의 변화 값들은 재현적 회화로부터의 일탈을 자유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의식과 신체의 감각이 가장 '깨어있을 때' 경험하는 우리의 직관적 시간 구조보다 잠든 상태에서 경험하는 비논리적 시공간이 오히려 시간의 다층적 성격을 더 잘 나타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의식과 멀어지는 '졸음, 잠'과 같은 '거리 두기'의 안에서 관념적 시간은 해체되어, 외부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연결될 수 있고, 심리적 시간의 틈이 열리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이고, 시간 자체가 감각의 대상이 된다. 즉 감각의 대상을 시간으로 상정하여 거리 두기를 시도해보면, 시간은 그것에 함몰될 수밖에 없어서 애초부터 거리 두기라는 게 불가능하긴 하지만, 적어도 시간의 길이와 같은 심리적 단위들을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심리적 시계를 잠시 멈춘다면, 그 시점時點 에서 우리가 향할 수 있는 무한한 시점視點이 열린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Giorgio Agamben)은 그의 저서 『장치란 무엇인가』에서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고,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 그래서 비현실적인 자이다. (..) 동시대성이란 거리를 두면서도 들러붙음으로 자신의 시대와 맺는 독특한 관계'라고 언급한다. 앞서 언급한 거리 두기는 현재라는 관념적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분할 및 변형하고 다른 시간과 연결 짓기를 시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작가에게 졸음의 영역은 이를 위한 직접적 계기이다. 그리고 그의 회화적 실험과 태도는 결국 시간'들'을 감각 하고 이들과 관계 맺기 위한 거리 두기의 일환이다.
「펼쳐진-순간」에서 작가는 인물의 신체에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다. 지인의 죽음에서 비롯한 시간에 대한 고찰은 몇십 년 동안 그의 작업의 주요 화두였고, 이 과정에서 흐름, 운동성, 순간, 층위와 같은 요소들이 여러 형식적 양상으로 작업의 개별성을 일궈냈다. 축적된 기억과 미래의 불투명성을 토대로 끊임없는 관계에 놓여있는 시간의 구조에서 유일한 불변의 진리는 죽음이라는 것이 그 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고 모든 것의 유한성을 드러내는 타자적 존재. 작가는 회화가 맺어주는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이러한 타자적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다층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세부 사건들에 솔직하게 반응해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순간-운동성의 재현을 넘어, 다자적 존재들을 마주하며 형성, 변화하는 관계적 시간의 순간-운동성 그 자체가 된다. ■ 차승주
Vol.20210620b | 사윤택展 / SAYUNTAEK / 史潤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