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감각 : 상실, 몽타주, 팬텀 Disappeared Sense: Missing, Montage, Pantom

김박현정_박서연 2인展   2021_0610 ▶ 2021_0623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오정은 후원 / 갤러리175_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1995)는 어느 날부터 도시에 급속도로 퍼진 전염병과 그로 인한 아비규환 속 인간성의 실체를 묘사한다. 여기서 그려진 전염병은 하루아침에 시력을 상실하는 질병으로 사람들은 이에 무방비하게 일상의 규범을 잃고 쓰러져 가는데, 이러한 상황 설정은 팬데믹이 초래한 오늘날의 사회 현상을 연상시킨다. 『실종감각 : 상실, 몽타주, 팬텀』은 인간이 '눈 먼 자들의 도시'와 같이 비가시적 환경에 놓이거나 생존에 필수적인 감각을 잃었을 때의 상태, 그리고 그다음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미술에서 시각적 환영에 의존해온 회화와 사진을 통해 상상하고 고민한 흔적을 다룬다. 사진의 재현과 이미지 교환방식에 관해 의문을 확장해온 김박현정, 회화가 담아내는 현대적 도상 및 평면과 입체 사이 변주를 연구해온 박서연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중요 감각이 실종된 상황을 작업의 주제로 다루며 개입했고, 그 결과를 여러 매체 간 전이와 차용을 통한 실험 및 감각적인 작업으로 나타내었다.

김박현정_ 눈송이들 #1 Snowflakes 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3×40cm_2021
김박현정_ 눈송이들#2 Snowflakes 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3×40cm_2021
김박현정_ 눈송이들 #3 Snowflakes 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3×40cm_2021
김박현정_ 한겨울에도 팥빙수#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3×30cm_2021
김박현정_ 한겨울에도 팥빙수#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3×30cm_2021

김박현정은 허구와 자전적 이야기가 혼합된 인물 'K씨'의 일상을 상상했다. 자가격리 중인 사진가K씨는 실체가 있는 장소에 카메라를 가지고 찾아가거나 즉물적으로 대상을 마주하며 기록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그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형상처럼 보이기 위한 가공의 노력을 한다. K씨가 직접 가보지 못했던 어느 설원의 풍경은 그가 실내에서 젖은 종이를 촬영하고 오려 조합한 사진으로 대체되는데, 사진의 감도와 인화지의 그레인은 눈이 쌓여가는 연속적 시간성과 눈 입자의 모습을 투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구현한 화면은 언뜻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재현의 강박이 극대화되어 실재와 가상이 서로 호환된 모습에 가깝다. 작가는 사진 이미지에서 추출하거나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설치 오브제를 전시에 더함으로써 조각적인 범주로 확장해 매체의 변주된 시각을 시연한다.

박서연_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_캔버스롤에 유채, 오일파스텔, 수채_265×489cm_2021
박서연_나비풍선_캔버스에 유채, 오일파스텔, 수채_60.6×72.7cm_2020
박서연_식탁 위의 도상_캔버스에 유채, 오일파스텔, 수채_50×220cm_2021
박서연_하얀 알갱이 내리는날_캔버스에 유채, 오일파스텔, 수채_89.4×130.3cm_2021
박서연_미로에서 찾은 조각들_캔버스에 유채, 오일파스텔, 수채_90.9×72.7cm_2021
박서연_Guilty pleasure_단채널 비디오_00:03:15_2021

박서연은 평소 '젤리J'라는 캐릭터를 그림에 자주 등장시켜왔다. 미스터리 사건이 곧 발생할 것처럼 전개되는 추리소설 플롯에서 영감을 받아온 작가는 액체와 고체 중간의 물성을 가진 젤리J 등, 시대의 현전 상태를 은유하는 다양한 알레고리를 만들어 일상의 수수께끼 같은 감각을 드러내 왔다. 서사적이고 유기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고 분절된 상태로 전개되는 불완전한 네러티브, 이를 조장하듯 분할되어 나뉜 화면, 공간에 양각으로 두드러진 회화. 이들은 팝업북처럼 펼쳐져 평면과 입체의 공감각을 오간다. 작가는 잘려 나간 신체나 파편화된 사물이 무작위로 집약된 이미지를 통해 상실과 혼돈의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안의 이야기 본능을 깨우고 감각을 자극한다. ● 동시대는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우리 삶을 분주하게 위치시키는 한편, 위기에 대한 새로운 대안 역시 지속적이고 새롭게 등장해나가고 있다. 『실종감각: 상실, 몽타주, 팬텀』은 그 같은 시절의 이슈와 감성을 드러내는 한 편의 조각이자, 우리가 지각하고 느끼는 자극과 증후를 예사롭지 않게 들여다보려는 일에 관련한다. 그것은 고정되지 않은 채로 또 분절되고 사라질 것이다. 여기, 전시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유령도 포함해서.

#상실(Missing) ● 없는 것을 생각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있었다가 없는 것. 사라졌거나, 잃어버렸거나, 죽은 것. 실종된 것. 실종은 대개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불수의적으로, 자기 의지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긍정적이지 않은 사건이다. 그래서인지 대개 통증을 수반한다. 그것은 몸에 닿아 피부를 옴폭 눌러 새겨지는 압력의 각인처럼, 있었다가 현재는 없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단지, 무엇인가 있었던 감각만이 상흔처럼 몸에 남는다. 빛이 만든 이미지가 미처 다 챙겨가지 못해 공기 중에 남긴 잔상과 같이, 실종을 기억하는 감각은 현존에 대한 부정성의 것이다. 신기루가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라면, 이는 없는 것을 자각하는 보이지 않는 착시와 같다. ● 환상 통증phantom pain은 사지 일부를 절단한 환자에게서 흔하게 발견된다. 없는 신체에서 자각되는 출처 없는 고통이라. 이것은 감각의 어떤 측면을 일깨우는가? 지구에 현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주 별빛의 한계처럼, 감각은 동시간적인 실존을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감각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감각하며, 어느 때에 그 느낌은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선명한 유령을 본 것처럼 착각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감각은 아니다. 있었다가 사라진 감각을 찾는 다른 감각은 대개 혼선을 일으킨다. 감각의 일부가 유실되었지만, 실종을 감각하기 때문에 직관으로부터 완전히 유폐된 상태는 아닐 것이다.

#몽타주(Montage) ● '대상을 재현하는 것'과'그것(재현)에 이르기 위한 행위의 수행' 측면에서 미술을 보자. 여기 두 장의 이미지를 첨부한다. 하나는 사진, 다른 하나는 회화로 구분되지만, 이들 모두 구상적인 특정 대상을 재현한 것이며, 그리거나 편집한 등의 일련의 행위 과정이 한 장의 이미지로 집약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개의 이미지 파편이 결합되어 있다. 작가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하던 설원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진 조각과 효과를 겹치고 덧대었는가 하면, 각종 이야기에서 추출한 수십 가지 도상을 아래위로 배열하고 장면을 이어 붙임으로 해서 긴밀한 층위 관계를 이루어냈다. 이미지는 짜깁기되어 매우 평평한 상태로 존재하지만, 중첩적인 층위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동시대 미술에서 매체의 생존을 위해 전통적 규범을 버리고 다른 매체의 차원과 형식을 침투한다. 이후 입체감 있는 현장 설치와 오브제 연결로 작업은 더욱 얽히고설킨 전체의 부분이 되었다.

#팬텀(Pantom) ● 나는 전시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미술의 생산에서 흩어진 감각의 정동을 찾고 재현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런 의도는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 아래와 같은 지시문 형태로 작가들에게 공유되었다. 전시장은 전시를 위해 특수하게 고안된 밀실과 같다. 우리는 전시를 위해 일시적인 상황 공동체로 약속된 세계에 참여한다. 특수한 밀실에 작품이 설치되고 관람자가 드나들고, 철수되는 일련의 규칙적인 상황에서 지각되는 감각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가는 것일까? ● "저는 지금 특수하게 고안된 밀실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 이상의 감각이 소거되며 잃어버린 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회복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들어오기를 자처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이 회복되지 않아 지금 그 까닭을 명확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저에게 중요했던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것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두 분께 드립니다. 저는 제가 잃어버릴 것 같은 감각을 몽타주로 기록해둔 적이 있습니다. 그 몽타주를 참고해주십시오. 그것은 때때로 차원을 거스릅니다." ■ 오정은

Vol.20210613c | 실종감각 : 상실, 몽타주, 팬텀-김박현정_박서연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