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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13(서울일삼) Seoul13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79-3 Tel. +82.(0)2.707.0130 www.3rdpl.co.kr
고귀한 평범함과 장엄한 소소함 (찻잎 찌꺼기와 말라비틀어진 포도 줄기) ● 에피소드 1. 2013년 여름 조은령 작가의 인사동 전시 때 작품들을 꼼꼼하게 뜯어보던 한 품위 있는 노신사가 마지막에 단언했다. "이거 난이 아니잖아!" 오, 정확한 감식안을 가진 분이었다. 작가가 '사군자 四君子' 중 한 분처럼 정성을 다해서 대접했던 주인공은 다른 뼈대 있는 난들이 실내에서 까탈스럽게 자라고 있을 때 마당 한쪽 구석에서 과하게 물을 주어도 썩지 않고 몇 달간 잊고있어도 말라 죽지 않고 버티던 풀포기였다.
에피소드 2. 2021년 봄 오랜만에 본가에 들른 배고픈 동생을 위해서 바쁜 언니는 작업실에서 올라와서 우전차를 적당한 온도로 우리고, 포도와 올리브, 루꼴라, 염소젖 치즈로 정성껏 샐러드를 만들어주었다. 황송한 동생은 식탁 가장자리에 모아놓은 찻잎 찌꺼기와 비틀어진 나뭇가지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웠다. 뿌듯이 돌아서는 등 뒤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졌다. "누가 또 내 작업물 버렸어!" ● 작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매체와 소재라는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정석적 탐구를 통해서 동양과 한국의 미술사적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해왔다. 일탈과 반항, 화려함이 키워드가 되는 현재의 미술계에서는 쇠 절굿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작업이다. 이 고된 과정에서 작가는 일상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작고 평범한 사물들에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우리가 먹고 마셨던, 매일의 삶에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던 작은 주인공들은 이제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결코 쓰레기나 잡초가 아니라 서로 군집하면서 광활한 대지의 흙과 장대한 숲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조은정
별 것 아닌 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흔히 그렇듯 우리 집에도 난 화분들이 있다. 그 화분들의 대부분은 키우기 까다로운 성격으로 그리 푸릇푸릇하지 않다. 근데 그 화분들 사이에 모양은 비슷하면서도 생명력 강한 풀이 있다. 어디에 심던지 주욱 번식한다. 이 풀은 줄난으로 불리는 듯하다. 그것을 난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지만 잎사귀와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형태는 충분히 高潔 해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과연 뾰족한 잎 몇 개로 만들어진 모양새를 고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너무 당연시 말하는 내가 우습긴 하다. 그러나 칼 같은 잎사귀가 공간을 베어내는 단단함을 그리고 싶었다. 그 작업이 전시장에 걸리고 나니까 다들 아니 거의 모두가 蘭으로 보아주었다. 그러나 지나가던 한 분이 유심히 보다가 '이것은 난이 아니네'라고 말했다. 그분에게는'난초과의 식물-난'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 풀의 蘭다움'이 좋았다.
한 학생의 글이 생각난다. 국어시간에 무소유의 즐거움을 쓰다 보니 자신은'부富'를 지녀 본 적도 없는데 무소유를 찬양하고있다는 점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뭘 갖어보지 못했는데 청빈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도 마찬가지이다. 매화나 난의 미덕을 글로 배웠다. 도시에 사는 나는 산수의 가치를 관광지에서 구경했을 뿐이다. 좁은 벽안에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영위되는 평범한 나의 삶은 그 행위에 의해 그 보다도 더 평범하게 소실되는 대상들과 함께 할 뿐이다. ● 내가 먹고 남긴 비틀어진 포도 줄기나 혹은 우리고 남겨진 마른 찻잎에 무엇인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있다. 아무리 일상 속에 스치듯 잊혀 질 대상이지만 들여다보면 기억에 남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전에는 '풀에서 난다움'을 즐겼 듯이 여전히 나는 산수화나 사군자의 형태를 일상적인 사소함에서 충족하고 있나 보다. 올해는 포도를 다 먹고 남겨진 포도줄기와 차를 우리고 남은 찻잎과 커피 찌꺼기를 제시하려고 한다. 잊혀지기 전에... ■ 조은령
Vol.20210606d | 조은령展 / CHOEUNYOUNG / 曺恩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