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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그린 풍경 ● 마음으로 그린풍경의 핵심 주제는 '칼라로 그린 남도풍경'과 '하늘에서 본 풍경'이다. 두 개의 주제를 하나의 큰 제목으로 묶기 위해 화가인 나의 감정을 개입 시켜 제목을 짓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풍경을 그린다는 일이 참 무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 하나를 그리기 위해 수 십 번 고개를 들어야 하고 같은 곳을 보고 또 보고 하는 일이 참 수고스럽다는 피곤이 밀려왔다. 그럴 즈음인 2018년 일본 야쿠시마 원령의 숲을 스케치하러 가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비행기를 탔던 곳이 전남의 무안공항이었다. 당시 공항으로 가고 오는 버스에서 무심코 바라본 무안의 평평한 풍경이 왠지 모를 매력을 느끼게 했다. 의정부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그 이튿날 스케치도구를 챙겨들고 남도로 내려갔다. 나는 일주일 동안 고창과 영광, 무안, 장성에 머물면서 60여장의 스케치를 했다. 언덕을 다 차지한 붉은 밭 위에 까맣게 쳐진 비닐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나는 하루종일 언덕을 따라 헤매며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그것은 대지에 펼쳐놓은 현대의 수묵화였다. 나는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있는 그대로 그냥 욕심없이 풍경을 그렸다. 붉은 땅과 초록의 보리밭 그리고 빨간 땅에 죽죽 선을 그어 놓은 검은 비닐과 하얀 비닐들이 마치 대지에 펼쳐 놓은 추상미술로 보였다. 그 일주일의 경험은 내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풍경을 강열한 색채로 해석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0년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봤던 애월의 땅은 나에게 '하늘에서 본 풍경'을 그리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남미 페루의 아스카라인 문명을 목격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겹쳐져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상상하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2010년부터 나는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 다음지도의 스카이뷰로 많은 스케치를 했다. 처음엔 내가 아는 장소를 찾아 스케치를 하다가 점차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지인이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검색해 그곳의 풍경을 그렸다.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여주의 풍경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제주나 남해, 청송, 영월, 정선, 예산, 제천, 하동, 구례 지리산 일대의 풍경을 그렸는데 대부분이 내가 이미 다녀온 곳들이라 어느 정도 지형을 잘 알고 있는 곳들을 그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음지도나 구글 지도를 보지 않고도 내가 마치 하늘에 떠있는 드론의 시점에서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을 여행하게 되면 내가 그곳의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면서 내가 걷거나 차를 운전하고 지나갔던 길을 상상해 지도 같은 화면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최근 코로나로 암울의 시대가 되면서 밖으로 스케치를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자 나는 더욱 열심히 인터넷의 스카이 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하늘에서 본 풍경은 누구나 비행기에서 목격했던 장면이고 특히 동양화의 부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내게는 매우 익숙한 구도법이다. 또한 그것은 밭과 논의 고랑이 만드는 선들이 질서 있게 혹은 무질서하게 배치되면서 현대의 추상미술을 연상케하는 매력이 있다. 이미 나의 그림이 풍경을 재현하는 단계를 넘어선지 오래됐기 때문에 추상적 표현의 시도라는 측면보다 더욱 다양한 표현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위대한 대상을 그리려고 하기보다 다가가고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곳에서 상상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다. (2020.5 작가노트) ■ 박병춘
Vol.20210602i | 박병춘展 / PARKBYOUNGCHOON / 朴昞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