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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1:00pm / 02:00pm~05: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자연의 숨결, 존재의 숨결 ● 박경희가 모티브로 삼는 것은 자연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자연의 이미지를 찾기란 용이하지 않다. 작가는 자연의 외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연에서 경험한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자연의 재구성,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회화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선들을 혼합하고 그 색과 선에 대한 응답, 그 변주로서 또 다른 색채와 선들을 추가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간다. ● 이런 작업의 단초는 2010년경에 발표한 「The path」에서 찾을 수 있다. 「The path」이라 명명된 그의 작업은 노랑이나 황색, 갈색과 같은 온화한 색깔 위에 보라나 연두, 초록과 청록 등의 칼라가 부가되면서 분명하지는 않으나 어떤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의 작품 자체가 서술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무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거나 안개에 가린 저 너머를 바라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런 변화는 2012년 인사아트센터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좀 더 뚜렷해진다. 역시 「The path」이란 주제로 열린 개인전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계단이 보이고 주위는 따뜻하고 온화한 색채로 물들여진 것을 볼 수 있다. 모나지도, 꾸미지도 않은 붓질에 정감이 묻어나는 천진스런 그림이다. 배경이 계단을 위한 단순한 무대인지 미지의 공간인지 파악할 수 없으나, 이 무렵부터 숲의 이미지의 도입을 검토하지 않았나 싶다. 큰 붓을 이용해 아래로 내리그은 필치는 속도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후련함마저 느끼게 해준다.
근작에서도 자연의 모티브는 화면에서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생동하는 자연의 움직임에 착안하여 숲속의 왁자 지껄한 분위기로 약동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바람결은 붓질의 강약으로 나타냈다. ● 무성한 나무숲 사이를 걷다가 한적한 곳에 핀 꽃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처럼 그의 그림은 생명과의 조우, 자연과의 조우를 수반하고 있다. 이런 만남은 보는 사람에게 청량감과 반가움을 안겨준다. 길목에 자리잡은 코스모스가 환한 웃음을 짓듯이 그의 작품은 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바이런 경(Byron)의 말처럼, 자연의 속삭임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숨길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근작 「The sleepy conscience)에선 색채의 유희가 재현적 기능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런 점이 두드러진 부분은 필선인데 화면 곳곳에 덩굴인지 니뭇잎인지, 또는 나뭇가지인지 정확한 형체를 갖지 않은 필선들이 들어차 있다. 필선들은 서로 만나고 교차하고 엉키고 겹치며 미끄러지는 등 다양한 접촉을 꾀한다, 중심과 주변이 나누어지지도 않고 한 호흡으로 화면을 꾸려가고 있으며 속도감이 붙은 공간은 그 원심적 작용에 의해 확장성을 띤다. ●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가 유달리 필선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작업으로 볼 때 붓질의 효과는 종종 있었지만 선을 주조로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의 선은 성격상 드로잉에 가깝다. 신체의 움직임을 화면에 그대로 실어내며,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준법(峻法)이나 필획의 사세(四勢)같은 것이 적용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화면에 적극적으로 신체활동을 개입시킴으로써 대상과의 교감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가 이처럼 드로잉을 적극 기용한 것은, 한마디로 생명의 적극적인 교감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드로잉은 몸으로 겪고 느낀 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색상과 형태, 표면에 골고루 퍼져있지만 드로잉에서 그 점이 가장 뚜렷하게 찾아진다. 화면정황을 고려해볼 때 그 교감의 세기나 강도는 대단히 강렬하고 힘차다. 그러나 그 선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오히려 평온하고 다정스럽게 다가오는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회화의 장점이다. 그것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생명있는 존재의 체험이요, 그 생명율과의 교감이랄 수 있다.
중국속담에 "새가 노래하는 이유는 어떤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면에 부를 노래를 지니고 있어서다"는 말이 있다, 그림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를 자연의 이미지를 빌어 표현할 따름이다. 새의 노래가 내적 기쁨의 표현이듯이 박경희의 노래 역시 내면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 몇 년전부터 「The Sleepy Conscience」 란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나는 신체와 기억을 통해 느끼는 색과 선을 통해 인간내면의 실재를 찾아가고자 한다"고 한 것도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곧 '살아 있는 자아'를 확인하는 첩경임을 알 수 있다. 그림에 몰입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이것이 다시 작업에 에너지를 주어 창작열을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티브로 첫 포문을 연 이후 그것은 물결의 파문처럼 더욱더 커져가는 셈이다. ● 박경희의 추상은 충동이나 욕망의 발로라기보다는 자연의 관조와 사색에서 건져 올린 것이며 그 자체가 존재의 숨결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회화가 호소력을 지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형식 논리에 빠지지 않고 작가는 자연과의 교감에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획인하고 있다. ■ 서성록
Vol.20210525b | 박경희展 / PARKKYUNGHEE / 朴京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