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장 프루베 Jean Prouvé_샬롯 페리앙 Charlotte Perriand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_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관람료 / 7,000원(예약관람) ▶ 전시관람예약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L.993 Gallery L.993 서울 강남구 선릉로153길 22(신사동 656-15번지) 헨리베글린로데오스토어 B1 Tel. +82.(0)2.511.1993 www.henrybeguelin.co.kr @galleryl993
헨리베글린 [Henry Beguelin]의 복합문화공간 Gallery L.993에서는 역사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장 프루베, 샬롯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 네 작가의 작업을 한자리에 선보이는"Jean Prouvé: The House | Charlotte Perriand, Pierre Jeanneret, Le Corbusier"를 개최한다. 장 프루베, 샬롯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 네 사람은 생전에 활발하게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장 프루베 아틀리에의 주요 고객이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는 그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샬롯 페리앙이 함께 근무한 바 있으며, 네 사람은 기능과 미를 결합시킨 디자인 철학을 내세우는 프랑스 현대 예술가 연합(The French Union of Modern Artists)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 전시는 이러한 네 사람이 1940-60년대에 걸쳐 디자인한 의자, 책장, 스툴, 테이블에 이르는 다양한 개별 및 협업 작업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프루베의 조립식 주택부터 페리앙과 잔느레를 각각 대표하는 누아쥬 책장과 찬디가르 퍼니쳐, 르 코르뷔지에와 페리앙의 협업하에 디자인된 가구에 이르는 여러 점의 가치 있는 빈티지 가구들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함께했던 네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장 프루베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목재 가구가 주를 이루었던 당시에 금속을 가구에 이용하여 기술적, 구조적 혁신을 이끌어낸 실용주의 디자인의 선구자였다. 1901년 프랑스 낭시(Nancy) 지역에서 태어난 프루베는 예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대장장이의 공방 견습생으로 일했던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금속을 접했으며, 추후 금속 재료를 이용한 가구들은 이후 그의 디자인에서 핵심을 이루게 된다. 그는 건축의 버팀대를 가구에 접목하여 이음새가 튼튼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였으며, 강철판을 포개어 접는 기법으로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여 대량생산 시스템의 개발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정신을 디자인에 도입하여 조립, 분해, 이동이 자유로운 가구와 건물을 만들었다. 프루베는 가구와 조립식 건물을 산업 규모로 생산하는 자신의 공방 '아틀리에 장 프루베(Ateliers Jean Prové)'를 설립하여 샬롯 페리앙과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 같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함께 교류하였고, 이후 이들은 기능과 미를 결합시킨 디자인 철학을 내세우는 현대예술가 연합(The French Union of Modern Artists)에서 함께 활동하였다. ● 프루베는 건축과 가구를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두 가지 모두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만의 철학을 고수했다. 전시장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프루베의 「6x6 Demountable House (6x6 조립식 주택)」은 세계 2차대전 이후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쟁 유랑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조립식 주택이다. 1944년도에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아 설계된 이 임시가옥은 가구부터 집까지 모든 것을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프루베의 신념을 담아 운반과 조립, 해체가 용이하고 건축비용이 저렴한 경량 주택으로 설계되었다. 당시 동부 프랑스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던 이 주택은 세 사람이 하루 안에 조립할 수 있고, 완성되는 즉시 거주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당시 생산된 약 400개의 조립식 주택 중에서 현재는 매우 소수만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가치가 높다. ● 프루베는 사회 속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조형미를 갖추면서도 사회적 기능을 가진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다. 그의 작업들 중에서는 학교나 병원 등 지역사회와 관련된 작품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특별한 공간이 아닌 일상 속의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던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Standard Chair (red) (스탠다드 체어)」는 금속을 가구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가벼운 강철관으로 만든 앞다리로 의자의 무게를 줄이고, 역삼각형 형태의 강철판으로 만든 뒷다리가 뒷부분에 부과되는 하중을 지지하는 실용적인 특징이 강조된 작업이다. 실제 대학교를 위해 설계되어 'School Chair'라는 애칭을 갖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학교 의자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디자인의 실용성을 추구했던 프루베의 철학은 조립과 분해가 가능한 「Rare Demountable "Semi-metal" Chair (red) (조립식 세미메탈 체어)」와 그 옆에 놓인 조명 「Rare Potence Lamp (포텐스 램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조형미가 특징인 이 램프는 운반 및 배치시에 필요한 공간이 적고, 설치가 간편하도록 설계되었다. 일반적으로 벽에서 뻗어나온 부분(potence)의 길이가 길수록 가치가 높고 귀하게 여겨진다. 조립식 주택의 내부에 배치된 「Wardrobe, model no. AP11 (AP11 옷장)」과 「"Cite" Desk (시떼 책상)」은 프루베의 자녀인 프랑수아 고티에Francoise Gauthier가 소장하고 있던 가구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지닌다.
샬롯 페리앙은 20세기 초중반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약했던 대표적인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재단사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린 나이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당대의 유명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던 그녀가 '이곳에서는 쿠션에 수를 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 취업을 거부당한 일화에서도 남성 전문가가 대다수였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1927년, 당시 명망 높던 전시회인 살롱 드 오토메(Salon d'Automne)에 페리앙은 아파트 부엌을 도시적인 식당으로 꾸민 Bar in the Attic (Le Bar Sous le Toit) (지붕 아래의 바)를 출품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마음을 돌려놓은 이 작업은 실제 그녀가 거주하던 파리 생 쉴피스(Saint–Sulpice) 광장의 작은 아파트를 재현한 것으로, 알루미늄, 니켈, 크롬 등 금속과 유리를 재료로 사용해 평범한 부엌을 바로 개조한 독특하고 모던한 공간이었다. 이를 보고 뒤늦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르 코르뷔지에는 곧바로 그의 스튜디오에 페리앙을 채용했고, 이후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많은 협업 작품을 남겼다. 1937년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를 그만둔 후 독립적으로 건축가, 디자이너로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간 페리앙은 이후 장 프루베 아틀리에에서 제작된 주요 가구들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더 나은 디자인이 인간의 경험에 본질적인 부분이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던 그녀의 신념은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한 프루베의 신념과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 모더니즘 인테리어 디자인의 혁명으로 여겨지는 페리앙의 초기 작업은 당시 가구 재료의 주를 이루던 목재보다 알루미늄, 크롬, 강철 등 금속을 자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1940년대 이후에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 체류하며 자연적 재료를 사용하는 수공예와 같은 동양의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이러한 영향으로 이후 전통적인 재료나 목재를 이용해 자연과 삶의 어우러짐을 모색한 작업을 다수 남겼다. 특히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그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된 페리앙은 대나무를 재료로 한 의자를 디자인하기도 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그녀가 금속보다 합판과 같은 목재를 주 재료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건축에 있어서도 페리앙은 해당 지역의 환경 조건을 반영하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는 이후 세대의 건축 양식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 프루베의 조립식 주택 내부에 배치되어 있는 「"Forme Libre" Coffee Table (폼 리브레 커피 테이블)」은 1953년 페리앙이 남편이 있던 일본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처음 디자인했던 작품으로, 대칭적이지 않은 테이블의 상단이 주는 아방가르드한 구조가 특징이다. 1960년대 파리의 스테프 시몽 갤러리에서 소량을 제작한 것으로 현재는 희소가치가 높다.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Nuage Bookshelf (누아쥬 책장)」은 페리앙이 일본에서 파리로 돌아온 후, 일본에서 보았던 벽걸이형 수납장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구현한 작업이다. 누아쥬 책장은 벽면에 거치해 단면만 활용하거나, 비어있는 공간에 배치해 양면 모두를 수납공간 또는 책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여러 환경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갖추고 있다. 50년대 후반 스테프 시몽 갤러리와 장 프루베 아틀리에와의 협력으로 제작되었으며, 주문에 따라 각기 다른 색상의 산화알루미늄을 이용하여 제작되어 각 피스마다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지닌다. 특히 2단보다 3단이 더 희귀하게 여겨지며, 얼마나 다양한 색이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된다. 폼 리브레 커피 테이블과 누아쥬 책장 근처에 배치된 「Berger Stool (스툴)」에서도 페리앙의 디자인에서 돋보이는 세련된 조형미를 살펴볼 수 있다.
생전 사촌인 르 코르뷔지에의 명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피에르 잔느레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공공적이고 진보적인 건축철학을 추구한 뛰어난 건축가이자 우아하고 심플한 미니멀리즘 가구 디자인의 대명사로 재평가되고 있다. 사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에는 건축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잔느레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약 50여 년간 협업하며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중 인도 찬디가르(Chandigarh)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는 피에르 잔느레와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적인 공동 프로젝트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진행된 인도의 산업화와 더불어 두 사람의 건축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인도 북서부의 펀자브(Punjab) 주에 위치한 찬디가르 시를 정부 관할의 행정 도시이자 인도의 랜드마크로 개발하고자 하는 인도 정부의 의뢰로 1951년 시작되었다. 잔느레와 르 코르뷔지에는 찬디가르의 지역사회를 위해 저가의 공공 주택 및 도서관, 학교, 문화시설, 관공서 등 건물을 설계하고, 대법원 등 다양한 관공서를 위한 집무실 책상, 대학교와 도서관을 위한 책상과 의자 등 각 건물의 내부에 비치할 가구를 디자인했다. 두 건축가는 현지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면서 인도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반영하는 건축물들을 통해 인도인들의 삶에 맞춘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 결과 모든 건축물들의 입구에는 덥고 습한 인도의 날씨에도 통풍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베란다와 현관 지붕이 설치되었다. 건물의 내부는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지역의 전통 공예를 접목시킨 가구들로 채워졌는데, 마찬가지로 기후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일반적인 천 대신 케인을 소재로 사용했다. 또한 가구에는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비용을 줄이고, 대량생산한 가구들을 실제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관공서나 도서관에 비치함으로써 계급이 낮은 시민들도 누구나 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잔느레는 르 코르뷔지에가 먼저 프로젝트를 떠난 후에도 15년간 상주하며 찬디가르의 수석 건축가이자 도시계획 디자이너로서 현장을 총괄하며 관리했고, 지역의 건축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며 인도의 근대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당시 만들어진 가구들은 '찬디가르 퍼니쳐'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특유의 세련되고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많은 가구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전시장 곳곳에서 잔느레의 대표적인 찬디가르 퍼니쳐 시리즈의 「Dining Chair (다이닝 체어)」, 「Early Edition Office Chair (오피스 체어)」, 「Easy Armchair (이지 암체어)」, 「"Committee" Armchair (커미티 암체어)」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입구와 안쪽에 놓인 「5x4 Periodical Bibliotheque (5x4 매거진랙)」과 「3x5 Periodical Bibliotheque (3x5 매거진랙)」은 알루미늄 거치대를 세워두거나 밀어 넣음으로써 다양한 느낌을 연출하고 여러 방식으로 공간과 용도를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으며, 매거진랙에 비치된 도서들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하다. 벽면에 위치한 「Bookcase (책장)」 또한 잔느레의 디자인 가구로, 본 전시에서는 도서 대신 빈티지 소품들을 배치하여 장식장과 같이 연출되었다.
본명인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 Charles-Edouard Jeanneret 보다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르 코르뷔지에는 대표적인 모더니즘의 거장으로, 현재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이자 화가,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이론적 연구의 선구자로 밀집 도시의 거주자들을 위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1920년대 초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파리에 건축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이후 샬롯 페리앙을 영입하여 건축물의 내부를 구성할 가구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트 리뷰(Art Review)와 샬롯 페리앙이 1984년도에 진행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페리앙은 그의 스튜디오에서 근무할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항상 사물의 '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이) 앉는 다양한 방법과 그에 따라 어떤 종류의 의자가 필요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르 코르뷔지에는 본인의 저서 「오늘날의 장식예술(L'Art Décoratif d'aujourd'hui)」에서 직접 정의 및 분류한 여러 가지 가구들을 제작하여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세 사람이 독립적으로 또는 협업으로 남긴 수많은 걸작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가 가구 디자인에서 본격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 이렇게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많은 가구들은 그의 이니셜을 붙여 'LC 시리즈'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금속관의 프레임에 쿠션을 더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LC 체어 시리즈는 미드 센츄리의 모던 가구를 대표하는 암체어로 오늘날까지도 디자이너 가구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세 사람의 협업으로 선보인 디자인들은 이후 1960년대에 들어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인 카시나(Cassina)에서 생산, 판매하게 되었다. 본 전시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와 샬롯 페리앙이 함께 디자인한 「Coat Rack (Porte-manteau) (코트랙)」이 전시된다. 벽면의 나무판에는 옷을 걸어둘 수 있는 금속 고리가 달려있으며, 하단의 선반에 가벼운 짐을 올려둘 수 있어 수납장의 기능도 겸하도록 제작되었다.■ 김연우
Vol.20210511e | 장 프루베: 더 하우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