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은경_김자이_문선희_윤연우_정덕용
후원 / 광주광역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광주 드영미술관 De Young Art Museum 광주광역시 동구 성촌길 6 Tel. +82.(0)62.223.6515 deyoungmuseum.co.kr
드영미술관은 지역의 청년작가를 발굴하며 이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2018년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청년작가 기획전시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이번 전시로 8회를 맞이하였다. 2021 청년작가 기획전시 『무의식의 그림자』展은 인간 의식 아래에 잠재하는 무의식에 주목하며 사진, 직조(태피스트리), 영상, 설치의 다양한 시각작품으로 구성되었다. ● 무의식은 일반적으로 각성되지 않은 심적 상태,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자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자아는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중요한 내용은 의식화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내용은 의식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무의식이라는 내면의 창고 안에 저장시킨다. 따라서 무의식이란, 의식의 층까지 도달하지 못한 불필요하다고 치부된 것들의 집합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무의식은 깊게 자리하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의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무의식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기획되었다. 전시에 참여한 5명의 작가는 개인의 시각적 언어로 우리의 무의식을 소환하여 의식에 동화시킨다.
미술관 외부에 설치된 김은경의 「개체」 시리즈가 지닌 눈과 마주할 때 우리는 불편을 느낌과 동시에 그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와 비슷한 개체들을 찾는 재미를 느끼며 전시공간에 들어서기 전 자연스레 무의식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한 영상작품 「가시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꿈속에서는 세면대에서 매일 한 마리의 물고기가 생성된다. 여기서 물고기의 종류는 '가시어'와 '가시어 외의 다른 종' 두 가지로 제한된다. 가시어는 작가가 새롭게 고안한 단어로 가시가 돋친 물고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면대에 어떤 물고기가 생성되느냐에 따라 주인공의 반응은 달라진다. 가시어가 생성된 날, 가시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다양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수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조금의 지체도 없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 내던져진다. 주인공은 곧 꿈에서 깨어난다. 작가는 개인과 사회가 설정한 기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가치와 기회를 스스로 폐기해버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오만한 인간의 편협한 사고를 꼬집고 더 나아가 현재에 매몰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사색의 시간을 부여한다.
자기탐구라는 큰 맥락 속에서 무의식 속의 자신의 언어를 꾸준히 시각화해온 김자이는 이번 전시에서 개인이 숨기고 싶은 불쾌하고 원시적인 측면에서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집'을 매개체로 활용한다. 작가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수집의 형태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을 진행했다. 수집은 본래 취미나 연구를 위하여 여러 가지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으는 행위를 일컫는다. 하지만 전시실 안의 설문지와 사진들은 시간, 정성, 노력 등의 긍정의 의미가 아닌 결핍과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암면(暗面)을 부정하게 되면 이는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의 내부로 저장된다. 작가는 수집의 형태로 드러난 내면 깊게 자리한 무의식을 드러내보이며 이를 통해 자신을 반추하고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본인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문선희는 현대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2015년 발굴금지기간이 해제된 구제역, 조류독감 매몰지 100여 곳을 살핀 「묻다」 연작은 효율만으로 판단하는 사회시스템을 고발하며 살처분된 동물들과 함께 매장되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묻다」에 이어 선보이는 작품은 「라니 프로젝트」의 일부로 졸업사진의 형식을 차용한 고라니들의 흑백 초상사진이다. 고라니는 한국과 중국에서만 서식하는 사슴과의 동물로 해외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됨에도 한국에서는 농작물 피해 등을 이유로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었다. 인간들에 의해 서식지를 파괴당하며 현재는 정기적으로 포획되는 지경에 이른 사진 속 고라니들은 인간에 의해 부모를 잃은 새끼들로 눈빛과 표정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작가는 철저하게 인간의 입장에서 설정된 피해와 가해의 프레임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던 태도를 반성하며 사회의 이면을 응시하게 한다.
전통 직조기법인 태피스트리를 이용해 이미지 작업을 하는 윤연우는 「재현의 재현」 연작에서 동물 구상화와 구성화를 보여준다. 구상이 구체적인 것과 관계가 있고 추상이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할 때, 윤연우의 구성화는 추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상과 추상을 두 가지 화면에서 동시에 혹은 각각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평면의 프레임 속에서 마치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통하는 듯하다. 작가가 작업에 몰입했던 시간을 비유한 「동굴의 오후」 연작은 무의식적으로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철저하게 의식으로 잡아둔 작가의 작업정신을 보여준다. 무의식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창조적 근원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무의식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를 의식으로 붙잡고 소재화하여 작업으로 표출해오고 있다. 윤연우의 태피스트리는 단정한 전면과 정리되지 않은 후면을 동시에 볼 때 재미가 더해진다. 전면에서는 심미적인 측면이, 후면에서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가의 고뇌와 노동의 깊이가 전해진다. 보이지 않는 작가의 근면한 시간이 고스란히 표면으로 드러나 한 작품으로 탄생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사유케 한다. 작가는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드로잉-도안구성-직물노동'의 세 가지 과정을 고집한다. 쉽고 빠른 방법을 택하기보다 깊은 고민으로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안온(安穩)한 자세는 우리가 수면 아래의 무의식을 마주할 때 지녀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듯하다.
정덕용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대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거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은유적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개인의 콤플렉스(complex)에 집중한다. 여기서 말하는 콤플렉스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열등의식이 아닌 무의식 속에 연합된 사고, 감정, 기억의 저장소를 말한다. 영상작품 「how to clean」은 드로잉으로 가득한 천이 세탁 후에도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 현상을 보여준다. 영상과 함께 선보이는 설치작업은 관객을 직접 시각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극대화시킨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은 소멸되지 않고 무의식의 내부로 들어가 잠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필요에 의해 영감과 충동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무의식 또한 또 다른 나 자신임을 인지하게 한다.
무의식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언제나 의식화가 가능한 심리적 요소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무의식에 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는 미지의 정신세계라 말하며 인간 정신 활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거대한 영역이라고 정의하였다. 자신의 그림자인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하는 이번 전시가 자기발견으로 확대되어 성숙의 삶을 추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김수정
Vol.20210418a | 무의식의 그림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