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가지 못한 길'을 다시 가는, 어느 인문주의자의'세한도' ● 차갑다. 겨울 불광천. 얕은 물과 살얼음. 최소한의 두께로 말라버린 몸을 바람에 서로 부대끼며 서걱이는 잡풀더미들. 그 건조한 갈색 사이 흐린 중채도의 겨울을 소요하는 발길 곁으로 섬세하게 들여다본 천변 구석구석이 을씨년스럽다. ● 불광천변을 묘사한 김경서의 이 그림들은, 도회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천변 물(水)색을 어떤 분위기나 향수(鄕愁)조차 없이 냉정하게 포착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번 그림들이 풍경의 재현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불광천'이라는 김경서의'바깥'공간이 그의'안쪽'내면과 이음동의의 야누스, 혹은 아수라로 읽혀서다. 불광천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듯한 일차적 시각성을 전복시키면서, 뭐랄까, 감정을 자제하면서 소재와 일종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서늘한 양가적 관조랄까. 마치 디지털카메라의 중성적 시선처럼 우수나 멜랑꼬리 등의 서정성과는 거리를 둔 채, 현재 자신의 삶과 작업에 대한 복합적 입장의 미적 표지로 제시한 듯하다. 이는 그리기에 대한 김경서의 본능적 의지와, 그에 반비례하는 현대미술개념에 대한 반성적 인식과의 갈등이나 부대낌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김경서에게 불광천은 자신의 요람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인생의 탯줄과 같다. 서울 서북부.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그의 삶의 근육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째서 김경서는 그가 태어나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하고, 정년퇴직까지 한 이곳 고향을 이렇게도 드라이(Dry)한 을씨년스러움으로 진술하고 제시했을까. 64년을 하루 같이 마주한 이 천변에서의 출퇴근과 소요유(逍遙遊)를, 어쩌면 이리도"한낱"촌음의 정지된 시간에 결박시켜버렸을까. 살얼음 아래 흐르는 물조차 숨을 멈추고 고여있는 것처럼, 화면 내 소재들에 어린 그의 기억들은 고정되어있는 듯 보인다. 신산하다. ● 그 분위기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답은 간단한 듯도 하다. 60대의 그가 지금 도회지가 된 천변을 걷는다손 치더라도, 불광천은 그가 태어난 때나, 청춘기나, 이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불광천이다. 어릴 적 친구가 세월이 흘러 사회적인 지위가 달라졌어도 친구란 사실은 변함없듯 말이다. 이럴 때, 앞니가 빠진 채 앳되었던 친구 얼굴이나, 불량끼를 한껏 뽐내던 청소년기나, 자글자글 주름살이 지고 백발이 된 지금의 달라진 얼굴이 무슨 대수겠는가. 친구는 그냥 친구일 뿐인 것을. 그래도 기억과는 달리 변해버린 친구의 늙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왠지 쓸쓸하다. 마찬가지로 불광천 또한 김경서에겐 거기, 그냥, 그대로 흐르는 그의 삶의 친숙한 공간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과는 달리 천변의 풍경도 지난 60여 년간 모두 변했다. 자연스레 둑방이 있던 변두리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번화가가 되었고, 그나마 흐르는 물길은 어린시절에 비하자면 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 그곳에서 김경서라고 어찌 회한이 없을까. 삶이란 그렇게 덧없는 것인데. 하물며 20대 시절 작업에 대한 열정을 60대에 다시 대면코자 하는 지금의 자신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터, 묵직함과 함께 미술에 대한 자신의 전문적 사유와 지식들 또한 결코 가볍지 않는 부담으로 그에게 작용할 터다.
그래선가. 김경서는 하필이면 겨울의 흐린 날만 골라서 몇 개의 단순한 색으로 절제해서 그렸다. 성실하고 꼼꼼한, 그리고 약간은 기계적인 재현법으로 불광천에 대한 숱한 서사들과 감정을 거세하고, 그것은 또 화면의 이미지를 통한 감성적 소통회로를 무화시키는 듯하다. 왤까. 뭔가 슬며시 감이 잡힐 듯하다. 이럴 때 나는 뻔하고 식상한 크리셰적 해석과 연상을 작동시킨다. 그의 미술에 관계된 이력을 자동으로 연결시켜 보는 게 그것이다. 화가가 되려 작업을 하던 미대생이 전공을 미학으로 바꾸고, 이후 미술교사·미술평론가·저술가로 변모한 인문학자의 모습 말이다. 이는 실제 그의 이력이다. ● 그런 그가 퇴직하고 30년 만에 다시 그림과 재회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작업에의 귀소본능과 같은 그의 원초적 의지를 나는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지 못했던 작업의 길에 대한 이끌림, 그래서 다시 그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끈끈함 같은 것 말이다. 작업을 그만두고 미술판 언저리에서 전시기획이나 글을 쓰며 살아온 내 이력과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그와 나를 동일시한 모양이다. 아무튼 그의 그림에 대한 접근의 단서를 쉽게 잡은, 뻔하고도 무지한 나의 직관이야말로"맨땅에 헤딩하기"와 같은 작업적 저돌성 아니겠는가. 그를 보자 나 또한 무의식 한 끝에서 꿈틀대는 작업에의 본능을 억지로 부여잡고 가라앉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가지 못한 길'을 다시 가려는 그를 무조건 응원하고자 하는 내 태도는, 그런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즉 나는 그를"이해한다"는 것. ● 그러니까 앞의 얘기, 즉 김경서의 흐린 겨울 불광천은 그가 다시 마주한 작업상황에 대한 김경서式'세한도 歲寒圖'임을 나는 말하는 거다. 작가로서 열혈과 분기탱천으로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황홀한 고됨'의 청년기를 흘려보낸 이후, 뒤늦게 다시 그 길을 가려는 힘들고도 고독한 상황을 환유하는 기제가 바로 지금 그의'불광천의 겨울나기'니까 말이다. 그것은 장년기에 그림이라는 걸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평생의 지식을 쌓아온 한 인문주의자가 마주한'작업이라는 삭풍'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문주의자로 살아온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김경서는 내겐 같은 과 선배다. 77학번이니 2년 선배쯤 된다. 학창 시절엔 전혀 몰랐다. 몇 해 전 김재홍 작가 전시 때 알게 됐다. 회화과 학부시절 미학을 공부하면서 그림을 접고 미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한 일이며,'바깥미술회'에 이론가로 참여하며'겨울 대성리'자료집 겸 비평서를 출간한 것, 중학교 교사로 인문교양 미술책을 집필한 스테디셀러 작가란 사실, 그리고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교사란 것도 알게 됐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림을 중단한'동지'적 공통점을 핑계로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을 권했었다."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작가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 보면 어떻겠냐는 미끼로. 한편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어쩌면 내 안에서 울뚝이는 작업에의 발작을 눌러야하는 우울한 나의 하소연이었을지도 모른다. ● 사실 그렇다.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작업에 대한 욕망을 잊을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작업을 지향하는 유전자로 인해서다. 김경서처럼 미학을 하든, 나처럼 전시기획을 하든, 미술의 태(胎)와 태(態)는 궁극적으로 애초 그림을 그렸던 시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와 동질감을 느꼈고, 벌인 일이 많은 나는 차마 작업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곧 자유로워질 그에게 달콤한 악마의 유혹을 시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 나의 이런 취한 오지랖과는 상관없이 이미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만 물색없는 소릴 한 격이었다. ● 작업으로의 회귀. 그것도 미술책의 저자로 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미술지식인의 그것은 일반적인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부담스럽다. 그의 미술에 대한 기존의 이론이나 입장을 작업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가 있어서다. 작가가 되거나, 작업으로 성공하는 따위의 부차적 욕망과는 아예 상관이 없이 출발한, 그저 '가지 못한 길'과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고독한 자기 접근방식만 있을 뿐인데 말이다. 이럴 때 미술에 대한 논리나 말은 그림을 그리는 이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냥 수사일 뿐이다. ● 그가 작업실로 나를 불렀을 때, 나는 직감했다. 60대 중반의 그가 결국 성공과는 상관이 없는, 가지 못했던 길로 들어섰음을. 그래서 사회적 자격증과 같은'작가'가 되느냐, 그림이 팔리느냐는 틀로부터 자유롭게 고통스런 미적 쾌감과 미술에의 곤혹스런 통증을 진정으로 만끽하고자 한다는 것을. 더불어 현대미술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적 인식의 바탕에서 앞으로 자기 작업의 개념을 일탈하면서 펼쳐갈 것인가도 상상하면서…. 그래서 나는 지금 출발 선상에서 두리번거리는 이'중고신인'의 정직한(?) 지금 그림보다는, 다음 개인전쯤에서 그가 서 있을 다른 지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미술에 관한 인문적 내공이 그를 결코 한 지점에 머무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로버트 프루스트는'두 갈래 길'중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함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누구든, 그리고 모든 선택은 다 그럴 것이다. 오늘의 판단과 실행으로 내일이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니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두 번째 바퀴를 이미 시작한 나이에, 과거 가지 않았던(못했던) 길로 가려는 사람의 선택은 아름답다(고 나는 느낀다). ● 김경서의 지금이 바로 그런 듯하다. 평생직장을 마치고 또 다른 평생의 업을 시작한 그가, 미술로 다시 자신의 현재를 진술하려는 것은, 곧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늘 함께 했던 공간인 불광천을 소요하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의 과거의 회상공간이자 여전히 현재 실존의 공간인 겨울 불광천과 그동안 미술로부터 스스로를 위리안치시켰던 그의 작업에 대한 입장은 닮았다. 불광천변을 걸으며 자신의 지금 감정과 심경을 투사한 이'재현적 풍경의 까칠한 문인화'같은 역설은, 미학자이자 이론가인 그가 이제까지 축적해왔던 미술에 대한 모든 지식이나 잣대를 내려놓은 시작점(이자 30여년 전 작업을 중단했던 지점)을 의미하는 것 같다. ● 미국 모더니즘 미술의 가장 중요한 비평가인 그린버그가 임종 직전 마지막 남긴 멘트는 그의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그의 비평에 의해 현대미술의 중심적 사조가 되었던 미국의 추상미술보다 자기에게 가장 미술다웠던 건, 앤드류 와이어드의 구상화였다는 고백이 그것이다. 이론과 마음의 작동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 일치하기도 하지만, 불일치도 한다. 미술비평가로서의 비평적 논리와 죽음을 목전에 둔 한 개인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입장은 간극을 보일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이니까. 김경서의 이번 그림들에서 나는 그와 유사한 입장을 느꼈다. 미술에 대한 이론적 기반보다는 자신의 서사와 실존적 내면을 작업으로 증명하려는 게 현재 그에게는 작업이자 미술이라는 것을. 그래서 겨울 불광천은, 이제야 그림을 다시 시작하는 그에겐 혹독한 작업 시작점인 세한(歲寒)의 기의이자 그 기표라는 것도. ● 물론 나는 이 늦깎이 그림쟁이로 실업화된, 그의 불투명한 미래를 알 수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주제나 형식으로 변모할지도 짐작조차 할 수 없고. 그러나 다만, 사람의 인생에서 원형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질긴 생명력에의 본능적 의지는 안다. 그림은 그런 것이다. 용기 있게 현재를 박차고 작업으로의 불투명한 행로를 결정한 그 야성의 생명력 말이다. 강산에의 노랫말"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이유처럼"역동적이다. 인문적 소양이 그에겐 부담스런 짐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작업에 주마가편의 아픈 채찍질이 되는 소중한 무기도 될 것이다. 연어가 되어, 과거 가지 못했던 길을 거슬러 오르는 한 인문주의자. 그의 그림의 시작을 보면서 느낀 나의 이 중얼거림이, 부디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김진하
Vol.20210414d | 김경서展 / KIMKYOUNGSEO / 金慶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