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8:00pm / 월,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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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걸음으로 걷는 밤 ● 잠 못 드는 밤, 꺼지지 않는 형광등 마냥 빛을 머금은 눈. 꿈인지 아닌지 모를 이 순간을 무게로 친다면 몇 그램일까? 석다슬의 개인전 『잠이 없는 눈동자』는 「동공과 눈꺼풀」이라는 회화로 문을 연다. 노란색, 연두색, 어느 색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색으로 반쯤 뜬 눈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로 하나의 순간이 명명된다면, 반복되는 궤도 안에서 다가올 것에도 지나간 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익숙한 걸음으로 걷는 시간들도 마찬가지이다. 부재에 관해 다루어온 작가는 무뎌진 삶의 굴레로부터 지금의 무게를 새로이 인식하게 하는 낯선 걸음을 제안한다. ● 작가의 작품들에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생소한 조합으로 만난다. 이 조합은 의식의 관념적인 흐름을 낯선 방향으로 유도한다. 「정빙시간」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아이스링크와 분수라는 두 이미지가 콜라주 된 영상이다. 물이라는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두 요소는 각각 오랜 시간에 걸쳐 정제된 얼음과 치솟는 분수로서 상반된 정서적 에너지를 자아낸다. 서로 다른 두 에너지는 영상 안에서 소리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교집합을 이루는데, 얼음과 분수는 결국 한 끗 차이로 서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태이자 하나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과 연계된 「분수」는 신문지 위에 분수를 그려 넣은 회화인데, 분수의 모습이 평면적이고 견고한 도상처럼 보이지만 눈물처럼 흘러내린 수채 물감의 흔적을 동시에 담고 있다. 작품의 바탕이 된 일간지는 얇은 종이이지만 그 위에 여러 번 덧칠된 젯소가 무게감을 더한다. 매일 생산되고 버려지던 하루치의 가벼운 종이는 작가의 손길을 거쳐 오래 산다. 이러한 양가적인 특성들을 조합해낸 작가의 개입에서 그가 천착해온 부재의 주제가 존재라는 주제와 불가분의 양가적 관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작가는 소중한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한 이후로 부재에 관하여 탐구하기 시작했다. 종종 부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며 당시의 시각적 잔상으로 소품이나 풍경만이 남아 그 순간의 무게를 담아낸다. 존재와 부재를 가르는 거창한 순간에 결국 가까이 잡히는 기억은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일 것이다. 「캄캄한 밤에 찾을 수 있는 것」에서는 철제 캐비닛에 고무장갑의 파편이나 조개껍데기, 냅킨으로 만든 조각, 껌 포장지 등 일상을 이루는 구체적인 사물들, 혹은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영예로운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존엄한 별을 연기하는 오브제들의 배경에는 신성한 분위기를 더하는 오르간 음악이 흐른다. 작가는 쉬이 얻어지고 버려지는 것들을 쉽지 않은 방식으로 가꾸어 조명했다. 오브제들을 정성스레 다듬어 그것들의 일회적이고 기능적인 가치와 달리 본디의 존재가 지닌 제각각의 미적인 가치를 드러냈다.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도시 하늘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고 했다. 사실 별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기가 탁해지고, 팍팍한 현실에 마음도 탁해진 연유에서였다. 별을 바라보기 힘든 현실에도 주변의 오브제들을 활용하여 별자리를 그려낸 것은 손에 닿기 어려운 것을 가까이 존재하게 하는 작가의 의지이자 애도의 태도로 볼 수 있다.
작가가 만든 오브제들은 실재하는 별들, 즉 이데아에 대한 그림자인 셈이다. 별은 실재하지만 마치 부재하는 것 같은 거리감을 지닌다. 실재하는 것이 부재하는 인상을 주는 것처럼 어쩌면 부재하는 대상도 다른 세계에서는 감각으로나마 실재할지 모르는 것이다. 작가는 이 사물들로 하여금 지금과 병행할 또 다른 지금을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실재와 부재를 가르는 실질적 경계, 그리고 감각으로서의 부재 사이를 사유하게 하는 그의 작품은 곧 지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열고 새로운 걸음을 딛게 한다. 아마도 그것이 별을 찾지 못해 더 이상 가슴에 별을 품지 못하는 우리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채 버려지는 값싼 것들에 이 작품이 남기는 것일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일상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작품에 반영한다. 눈, 분수, 나방, 모기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상들이지만 작품 안에서 이 요소들은 작가가 그려내는 부재라는 세계로의 상징적 단서가 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작품의 각 요소들을 공감의 대상이자 아니마(Anima, 영혼, 애니메이션의 어원)의 존재로 여기며 마치 감정이나 생의 단계를 대리하는 것처럼 가다듬는다.
「세 개의 점」은 여름날 잠 못 드는 밤에 들을 법한 모깃소리, 전류가 흐르는 소리 등 매우 구체적인 일상의 소리를 추상적 패턴의 화면과 조우시킨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전류 소리나 모깃소리, 즉 운동 에너지의 파장은 모기 채에 의해 모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으로 한순간 멎는다. 추상 화면은 학을 접는 종이의 배열로 만들어졌는데, 학종이의 무게처럼 미물의 무게이지만 한 생명이 끝을 맞게 되기까지의 생의 파장을 시각적으로 현시한다. 작품의 요소들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를 비유한다. 스톱모션 기법이 사용된 애니메이션은 반전된 색면의 요철, 그리고 컷과 컷 사이의 투박한 연결 사이에서 지나간 컷들이 남긴 환영, 즉 부재하게 된 것이 존재했던 흔적으로 영상이 이어진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파장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시각적으로는 부재하나 청각적으로는 존재한다.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의 탐구 과정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증명해내는 여정과도 같아 보인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부재는 마치 진실의 영역처럼 실제 삶에서는 닿기 어려운 영역이다. 작가는 부재라는 무한한 영역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거창한 관념이 주는 무력감을 주변의 것들을 새로이 감각하는 유희적 경험으로 대체한다. 서로 다른 기호를 지닌 작품의 요소들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조합을 이룬다. 작품이 유도하는 낯선 의식의 흐름 안에서 각각의 요소들은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징성을 갖게 된다. 원래의 상징은 죽음에 이르지만 새로운 상징은 생(生)을 얻는다. 부재는 존재의 흔적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다. 전시장에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부재라는 이데아의 세계를 연극하는 그림자처럼 모여 하나의 몽타주를 이룬다. 아득한 밤의 꿈처럼 말이다. 반쯤 뜬 눈으로 의식의 낯선 흐름을 따라 걸으며 부재의 세계를 상상해보자.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의 시간이 아닌, 실존하는 현재의 무게를 감각하는 시간 속에서 부재할 수 있는 것들은 곧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낯선 걸음을 따라 지금을 이루는 것들에 공감하는 일은 곧 현재를 위로하는 일이자 새로운 지금을 여는 일일 것이다. ■ 방초아
Vol.20210403j | 석다슬展 / SEOKDASLE / 石多璱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