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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신사동 630-25번지) Tel. +82.(0)2.725.2930 gallery-now.com
시선과 수평에 놓인, 또는 시선과 수직에 놓인 흔하디흔한 피사체의 연속 기록이 엄효용이 전시에 내놓은 전부다. 나무와 하늘. 선택된 나무는 도심 대로변에 통상 줄지어 세워진 가로수인데, 인화지에 담긴 나무에선 가로수 고유의 규격화의 몰개성이나 조경의 손길이 지나간 인위적인 질감을 느낄 수 없이 그저 비현실적이다. 가로수 한 그루인양 보이는 나무는 품종이 같은 가로수 100-300 여점을 정교하게 중첩시켜 완성한 한 그루처럼 보이는 100-300 그루의 나무다. 한편 하늘 사진은 2009년부터 매일 기록한 연월일이 다른, 미묘하게 다른 수천 개의 하늘을 나열한 것이다. 같은 대상을 기록하되 나무 연작은 한 장 위에 쌓아올렸고, 하늘 연작은 한 줄로 열거했다. 100여 겹으로 층층이 쌓은 한 그루처럼 보이는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의 모습은 각 품종별 나무의 보편성을 불명료하게 담고 있을 뿐 나무의 개별성은 지워져있다.
나무 연작은 중세 보편논쟁Controversy of Universal이라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화두와 잇닿아 있다. 이 세상에는 구체적인 존재보다 그것을 아우르는 보편적 개념이 우선한다는 실재론實在論과 이에 반해 보편적 개념은 추상적인 명칭에 불과할 뿐 개별적 존재가 우선한다는 유명론唯名論의 힘겨루기를 철학사에선 보편논쟁이라 한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을 빗대어 풀이하면, 작품 '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 2020'은 100여 그루의 개별적인 독일가문비나무들을 재현한 게 아니라, 독일가문비 나무라는 보편성을 재현한 사진이라 하겠다. 보편성을 재현한 만큼 대상이 선명하질 않다. 사진은 가시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무언가의 보편성을 기록하진 못한다. 요컨대 거실에 놓인 조명 스탠드를 찍건, 선착장에 막 입항한 크루저 호를 찍건,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찍건, 그것은 개별적인 조명기와 호화유람선과 참새를 재현한 것이지, 조명기 호화유람선 참새 각각의 보편성을 재현했다고 보진 않는다.
도시의 길가에 일렬로 조경된 가로수의 조성 목적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것에 있다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 무수한 가로수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가로수는 부지불식간에 도심 풍경을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여러 단위에 하나로 이따금 지각될 뿐 각별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그처럼 별 볼 일 없던 가로수의 존재감을 층층이 쌓아 인화지 위에 단 한 그루의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로 출력한 연작 속에선, 자연 사물이 아닌 인위적이고 각별한 볼거리처럼 각 나무 품종의 보편 이미지가 가공되어 나타난다. 한 점을 구성한 각 100여점의 개별 사진 속에는 정중앙에 놓인 나무의 배후로 아파트 단지며 민가 등이 원거리에서 작게 잡혀있지만, 단일 품종 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한 그루의 나무 사진을 보면 아파트며 민가 같은 배경은 모두 파스텔 톤 화면에 흡수되어 비현실적인 나무의 자태를 구성하는 망점으로 대체되어 있다.
전면화 된 화풍의 전매특허는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추상회화에 있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처럼, 추상회화도 개별 대상이나 구체적인 서사에 관한한 '말없는 그림'으로 일관했으며, 세계 공용어라는 미의 보편성을 취한 점까지도 서로 닮았다. 이처럼 전반적인 파스텔 톤 화면으로 개별 대상을 지워버린 작업은 엄효용의 초기작부터 나타난 바 있다. 동전, 전원 스위치, 그림 캔버스 따위의 일반 사물의 앞뒤 혹은 좌우를 한 면에 중복시켜서, 피사체를 '준' 입체적으로 재현한 2010년 연작은 개별 피사체의 정면성을 직시하지 않고, 피사체의 본질을 다루려 한 점에서, 그리고 동일한 대상을 한 면 위에 중복시킨 점에서 나무 연작의 맹아 격이라 하겠다.
혈혈단신으로 착시하게 만든 종래 가로수 연작과 대비되는 2020년의 후속작업은 숲의 중심을 찍은 나무 군집 연작이 많다. 비록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포착되었으나 화면 정중앙엔 핵심 나무를 위치시켰고, 균질적인 파스텔 톤 화면이 전보다 훨씬 전면화 되어 나무의 정확한 품종을 식별하기 어렵다. '백두대간로 소나무 여름 2021'이나 '하추로 낙엽송 여름 2021'이 그런 경우다. 한편 '봉강가수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20'처럼 반복적인 이미지의 중첩은 사진에 담긴 나무를 그저 간단명료한 삼각형 도형으로 치환시킨다. 후속작업 속의 나무들은 개별적인 품종의 분류보다, 전면화 된 그림의 단계로 접어든 사진처럼 나타난다. 이는, 현상을 고스란히 옮겼던 종래의 사진 언어에서, 현상을 새롭게 가공하는 그림의 언어를 쓰는 동시대 사진의 문법이기도 하다. ● 실재론의 시초로 할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선, 시공을 초월한 본질을 이데아로 봤고 개별 사물은 이데아의 그림자,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으로 평가 절하한다. 플라톤의 견지에서 그림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을 또 다시 복제한 만큼 '그림자의 그림자'로 과소평가 되었다.
한편 하늘 연작은 카메라 렌즈를 90도 수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어서, 하늘에서 추락하는 빗물과 눈의 모습이 평소 우리가 비와 눈의 낙하 장면을 수평으로 볼 때와는 다르게 재현되었다. 흡사 재물대에 얹은 관찰 대상을 현미경으로 본 것처럼, 자잘한 물방울이 나선형으로 확산되는 그림처럼 나타난다. 하늘 연작은 2009년 6월부터 매일 매일 찍은 하늘 기록물로 작가가 말없이 적어내린 개인 일기와 같은 것이 되었다. 이는 나무 연작에 붙인 작품 제목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죽향대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15, 위례성길 은행나무 가을 2020 나무 연작 가운데 작품 두 점의 제목이다. 메타세쿼이어의 보편성과 은행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이 두 사진의 제목처럼, 나무 사진 연작 모두에 나무 품종, 해당 가로수를 식목한 장소, 연도 그리고 계절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보편성을 띤 특정 품종의 나무가 놓인 시공간을 함께 표시한 것이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때 그 곳에 작가가 함께 있었음을 기록한 개인 일기를 제목에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사진에 담는 피사체들만 바뀔 뿐 반복적으로 피사체들을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면서 자기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일 게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대립 개념들이 편 가르기를 하며 이분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실은 서로 의존하고 있음이 우주의 본래 질서라는 생각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나의 작업은 대응, 대립되는 개념(겉과 속, 앞과 뒤, 빔과 참....)들 속의 숨겨진 조화를 프레임 속에 담고자 했다."
피사체의 일면이 아닌 중층의 면을 줄곧 담은 엄효용의 작가노트 중 일부를 옮겼다. 당도한 결론은 아마 나와는 다른 것이겠으나, 그가 사유한 시작점 만큼은 요 몇 년 사이 내가 격렬하게 경험해서 얻은 통찰과도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선악의 대립을 전제할 때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 쉬울 것이다. 세상의 갖은 갈등들 역시 지향하는 위치가 엇나갈 때 촉발된다. 단순명료한 이분법이야 말로 선동 메시지의 효과를 높인다. 그렇지만 진실이란 '예'와 '아니오' 사이에 중층적인 스펙트럼을 지니는 걸 깊은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예'의 입장이어도 20%의 '아니오'를 담은 유보의 입장은 우리 내면에 흔히 존재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외국어 학습이 어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를 생각해 본다. 현지인에게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고작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만 골라 전달하는 미숙한 자신의 표현력 한계에 번번이 부딪힐 때 외국어 학습에 좌절하게 된다. 경험칙에서 얻은 진실의 실체는 파스텔 톤 그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나무이되, 어떤 품종인지 선명한 확신을 주지는 않는 엄효용의 사진과 닮았음을 현인이라면 알 것이다. ■ 반이정
언젠가는 양들이 노니는 양떼구름으로언젠가는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으로언젠가는 비 가득 품은 비구름으로 언젠가는 노을빛띤 뭉게구름으로....... ● 어떤이에게는 빵 굽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벽돌 쌓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옷 만드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피리 부는 재주를...... ●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나를 담기 위해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 엄효용
Vol.20210402h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