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빈스서울 갤러리 Beansseoul gallery 서울 마포구 대흥로 108 Tel. +82.(0)2.706.7022 www.beansseoul.com
'상징 차단성' 또는 '잊혀진 공간'의 얼룩-폐기된 주유소와 '상징 차단성' ● 김근식의 지방풍경, 혹은 외재(外在)하는 '공간(주유소)'을 해석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작가에게 있어서 풍경은 시각적인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대상이다. 이처럼 이번 전시 『21세기 장승』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결과물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는 『21세기 장승』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장승은 주로 마을 입구에 주로 세워져 있었고, 이정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방향을 알려주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마을과 가까운 지방도로에 서 있던 주유소가 폐쇄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 마을을 지켰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장승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장승과 주유소의 결합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지만, 주유소를 장승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자유연상은 상담자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어떤 연결 고리를 만드는 정신분석의 한 기법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시계를 보면서 울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그는 시계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구슬치기하는 모습에서 다시 돌아가신 어머니가 빵을 좋아했던 기억을 함께 떠올렸기에 시계를 보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여기서 공통점은 '동그란 형태'이다. 이것은 마치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가 「눈 이야기, Histoire de loeil」에서 사람의 눈과 달걀을 유희적으로 연결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김근식은 예전에 마을 앞을 지키던 장승을 떠올리면서 이정표 역할과 지표적 기능을 하던 모습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역할이 현대에 와서 주유소로 대치된다. 여기서 공통점은 마을을 연결해주는 상징이 사라지면서 부재한 것으로 해석 된다.
「21세기 장승」은 다양한 함의가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사진을 처음에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진작가는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a)였다. 사진의 역사에서 1970년대 양대 조류에 해당하는 극사실주의와 개념미술이 한때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작가를 논한다면 단연 미국의 개념사진가 에드워드 루샤가 해당된다. 그의 대표작 「26개의 주유소」는 국도에서 마주한 26개의 주유소를 스트레이트하게 촬영한 것으로, 사진 제목에서 의미하는 26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유희적인 습관에서 사용한 것이다. 주유소를 찍은 이유도 가솔린 이란 단어가 좋아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사진 촬영을 했다고 하지만 주유소 단어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루샤가 찍은 주유소는 그 당시에 보급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 미국 자본주의 사회를 한 눈에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는 건조한 주유소를 '기호(간판 글씨)'와 '이미지(주유소)'를 사용한 미니멀한 방식으로 현대의 미국을 보여주었다. 에드워드 루샤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인 특정 도로의 일정 구간의 주유소를 촬영했다. 주유소는 그 단어가 암시하듯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화'한다. 주유소는 명백하게 자본주의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즐겨 사용된다. 1999년에 개봉한 한국의 코메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은 건달 네 명이 돈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서 어느 도심의 주유소에 가서 돈과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그들이 주유소를 간 이유는 상업영화에서 자본주의를 상징화할 때 주유소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김근식은 영업을 중단한 주유소를 소재로 선택했는데 이런 모습은 도시에서 흔한 풍경은 아니며, 현대사회에서 배제된 한국 변두리 지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포착한 주유소는 특정한 장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지역(대전, 충남, 충북, 전남, 전북)으로 지방도로에 있는 곳으로 광범위하다. 작가의 시선은 영업을 하는 주유소가 아니라 영업을 중단한 '폐기된 주유소'에 머문다.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의 발길이 없는 주유소의 흔적만 남아 있는데, 그렇게 남겨진 흔적을 발견하면서 시작한 김근식이 표현한 것은 '시간의 흔적'이다.
김근식의 사진을 살펴보면 오후에 찍은 담담하게 묘사한 주유소의 풍경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공간은 앗제(Eugène Atget)의 사진처럼 파리의 비워진 공간에서 사람들이 떠났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이웃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유소는 원래 아무런 목적 없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 다수의 주유소 풍경은 목적이 사라진 무색함을 알려준다. 주유소가 성업 중이었을 때 바쁘게 움직였을 사람들의 모습은 빠르게 쇠퇴하고 긴 여운만 남아서 건물의 외관 이곳저곳에 흔적만 남아 있다. 실외의 얼룩덜룩한 흔적은 변질의 전조로 해석된다. 자본주의의 상징은 강렬하지만 그만큼 빨리 소진되었기에 깊은 공허함을 남긴다. 작가의 시선이 닿는 주유소 풍경에서 그런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은 마치 주유소를 운영하던 주인이 부재한 공간, 혹은 작가의 말처럼 "주인의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는 처분하고 싶지만 팔리지 않는 애물단지로, 타인의 눈에는 버려진 자식처럼 애처로운 공간"으로 비추어진다. 이런 감정은 사무실 공간 창문에 불쑥 튀어나온 마른 풀과 주유소의 상징인 주유 기계가 비닐 천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 때문에 더욱 극대화된다.
이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폐주유소의 모습은 한때 풍요로웠던 과거를 떠올리면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초라한 모습만 발견된다. 사진 속 주유소는 철거되어 다른 건물이 들어서거나, 다른 업종으로 변경되어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주유소의 흔적만 남아 있기도 한다. 여기서 에드워드 루샤와 공통점을 찾는다면 두 작가가 모두 '기호(간판 글씨)'와 '이미지(주유소)'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점이 감지되는데 루샤의 주유소는 로고나 간판에 따른 차이와 아울러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을 발견했다면, 김근식의 주유소 사진은 로고, 간판의 차이성이 아닌 로고가 사라지고, 지워지고, 녹이 슨 주유소의 상징적인 기호와 이미지의 얼룩만 남아 있다.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는 동안 스스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추하게 보이지 않으나 인공물과 간판이 삭으면서 허물어지는 모양은 처절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상에서 운전 중 고속도로변에 주유소 간판을 보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 는데, 지금 현존하는 낡고 폐허가 된 주유소의 기호와 이미지는 '당혹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런 효과는 주유소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화'하는 것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 차단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읽혀진다. 이번 전시는 주유소를 무대로 여기저기 등장하는 몰락한 풍경을 관람자가 직접 눈으로 마주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런 생생함은 타인의 시선에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 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근식은 일상에서 깨끗하고 익숙한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원래의 기능을 다해서 '방치된 것들을 전면화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 차단성'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 김석원
발전은 속도를 추구한다. 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전국적인 도로망의 확충은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자동차는 대중화되었고 마을을 잇는 실핏줄 도로가 전국 곳곳에 건설되었다. 도로에는 거대한 주유소가 화려하게 들어섰다. 빠른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처럼. 속도는 소외를 재촉한다. 구불구불한 좁은 길은 넓은 직선도로로 바뀌고 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작은 아스팔트 길이, 마을을 우회하며 도시와 도시를 잇는 큰 아스콘 도로로 대체된다. 옛 도로에 우뚝 서 위세를 자랑하던 주유소는 이제 간판을 내린 채 낡고 초라한 몰골로 변해간다. 21세기의 장승처럼. 소외된 것은 사라져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라져가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마이카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주유소가 몰락하고 있다. 지방의 작은 도로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던 주유소는 21세기의 장승이 되어 시대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주유소의 몰락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그들을 기록한다. ■ 김근식
Vol.20210227b | 김근식展 / KIMKEUNSIG / 金根植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