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1003b | 이주용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남북문화예술교류사업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 일요일 휴관
선광미술관(선광문화재단) SUNKWANG ART MUSEUM (SUNKWANG CULTURAL FOUNDATION) 인천시 중구 신포로15번길 4(중앙동4가 2-26번지) Tel. +82.(0)32.773.1177 www.sunkwang.org
선광미술관은 2021년 2월 25일부터 3월 10일까지 올해 첫 번째 기획전인 이주용의 『항해2, 호랑이를 죽여라_푸른 바다가 붉게 물드는 사유』 전시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작가 이주용이 2015년부터 다학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천연당 사진관』 프로젝트를 통해 사진관에서 촬영된 익명의 가족사진으로부터 사회적 계급과 지배를 유추하던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장소 특정적 성향의 『항해』 프로젝트로 확장된 작업이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접경지역, 경계선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 연구를 기반으로 한, 이주와 충돌, 그로 인한 불안정한 심리, 지형적 변화에 따른 문제들에 대한 지정학적인 이슈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번안 되는지를 사진 아카이브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찾고 추적한다. ● 작가 이주용은 사진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근현대의 역사성과 장소의 사물성, 기록과 기억을 통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다. 최근의 전시 『호랑이를 죽여라』 (2021), 『장소, 사물의 기념비』 (2019)에 더불어 『유예된 시간을 기념하며』 (2018), 『백년의 초상』 (2017), 『이주용 사진관』 (2016), 『천연당 사진관 프로젝트』 (2015), 『찰나의 기억』 (2014), 『홀로그램, 사물과 기억을 기록하다』 (2013) 로 이어지는 개인전에서 그는 장소를 갖지 못하였거나 자신들이 어디에 속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은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지역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느낀 장소 상실의 위협과 그 행적을 기념비로 제시한다. 그는 집과 그 터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동물 사회학, 사물의 기념비, 이주와 노동, 이산과 집단을 말하지만, 기억-사물의 발굴과 기록보관소는 기억이 보이지 않기에 객관화할 수 없는 논리를 제시한다. 따라서 그는 무형의 기억 저장소를 현재의 시간으로 재생, 반복하여 회귀시키고자 한다. 작가는 장소의 기념비를 연구하는 학제적 접근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 영상, 홀로그래피 설치, 오브제, 등의 혼합적 매체를 사용한다. ■ 선광미술관
아카이빙과 사진, 영상 설치작업에 기초한 다학제 연구 프로젝트는 『항해』 프로젝트에 와서도 계속된다. 이 작업에 작가는 「장소, 사물의 기념비」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부제를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라고 규정했다. 개인과 집단의 삶은 장소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 지역의 삶을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도 그 장소를 벗어나면 작품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뜻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경향 중의 하나인 소위 '장소 특정적 미술'의 확대적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항에서 시작하여 중국 단둥을 거쳐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으로 연결되는 한중 접경지역의 조선 이주민 마을에 관한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근대 시기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조선인의 집단 이주와 타지에서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들추어내고자 하는 셈이다. ● 실상 이주와 정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곳'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 이주를 하나 목적은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함이다. 이주의 목적은 정착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장소, 요컨대 토포스(Topos)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과 산기슭에서 자란 사람이 다르듯이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토포스는 인간을 지배한다. 그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이 이주가 필요하다. 근대 시기 한국인의 집단 이주도 그렇게 시작됐다.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착취와 억압을 견딜 수 없어서 이주를 선택한 경우도 있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이주한 이들도 있다. 본질은 같다. 자신의 토포스를 버리고 다른 토포스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토포스에 적응하는 과정이 곧 그들의 삶이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추적하여 "우리의 역사를 기억 보존"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임을 작업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 항해1 은 2018년부터 시작된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전시 프로젝트로서 동해-」블라디보스톡,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 접경지역을 거쳐 단둥항-」인천항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동방명주, 동방의 꿈 여객선 상에서 사진 전시 및 설치 작업, 신툰촌 마을에서 가족만 사라진 유령 같은 빈 집, 백두산 내두산촌의 내두소학교(폐교), 모든 가족은 떠나고 홀로 북한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거주하는 삼봉촌 집, 철원의 공동체 생활의 상징인 쌀 창고, 정미소, 그리고 근대화 시기에 생산성이 삶의 근본적 해법이라 믿었던 긴박한 노동 현장인 청계천 바다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사진, 영상, 빛, 홀로그램, 기록 재생장치 기구들의 설치 작업이다. 항해 프로젝트 전시는 이주의 행로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역사성을 기반으로 건설된 건축공간에서 이루어 졌다.
출발은 개항의 요충지 인천항이다. 이곳은 외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수탈의 요지이기도 하며 이주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다. 이주의 경로를 추적하는 시발점인 셈이다. 작가는 단둥을 거쳐 북한과 조선의 접경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그 곳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여기서도 이주민의 가족사진은 그들의 가족사, 나아가 '이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 이주가 자신의 토포스를 포기하는 행위인 이상 모든 이주민들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작가가 소개한 이순자의 사연을 보자. "북한 회령에 사는 이순자는 13세 때 민며느리로 들어와 그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넌다. 그 이후 남편은 1950년 한국전쟁을 맞아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군에 입대 후 그는 다시 조선인민국에 편입되어 한국군과 목숨을 건 전투를 한다. 구사일생 살아나오지만 그는 사망하게 된다. 87세 된 그녀는 북한 회령에 사는 막냇동생이 그녀의 가족사진을 가지고 두만강을 넘어 산 넘고 물 건너 중국 땅, 삼봉촌을 찾아와 이순자를 만난다. 70년 만의 재회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이순자는 회령에 거주하다 13세 때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이주했고, 따라서 남편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참전했던 것 같다. 그녀는 여전히 중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70년 만에 고향 회령에서 찾아 온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다. ● 이 그림의 배는 한국전쟁 당시 황해남도 청단군 용매도의 섬에서 장봉도로 피란할 때 타고 인천 앞 바다의 작은 섬으로 내려왔던 피난민 차학원 할아버지가 기억을 토대로 배의 모양을 기록한 배. (연필 드로잉)
또 다른 이주의 예는 단둥 인근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는 김삼현 가족이다. 그의 부친은 압록강변의 작은 마을 초산에 살았는데, 압록강 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 지구로 변해 어쩔 수 없이 강을 건너 중국으로 이주한 경우다.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인민해방군으로 7년 간 복무했으며, 중국 공안으로 36년을 근무한 후 중국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주민들의 삶은 토포스를 통해 규정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의 적응 과정이 삶 자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장소의 지배를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지 만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항해』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작가가 추적한 이주민들의 주거 형태는 한국인의 그것이어서 중국 땅의 전형적인 형태와 다르다. 그것이 인간과 장소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정되는 이주민의 삶이다.
『천연당사진관』에서부터 『항해』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집요하게 천착해 온 문제는 개인의 삶과 집단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을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동원된 방법은 과거의 기념사진과 가족 앨범을 끌어 모으고 '고전적인' 사진술을 통해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 '첨단 기술'은 별 의미가 없다. 실상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로 만 존재하는 '가상'의 정보인 탓에 시간의 흐름에 영향 받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유의미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사라져 버린 시간으로부터 무언가를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기억은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었던 물질성으로 부터 온다. 물성이 없는 디지털 데이터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시간과 '싸우지' 않기에 기억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말하자면 그 정보가 생산된 시공간 속에 '물질'로 존재할 때 비로소 기억과의 접점이 생겨난다 하겠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사진관사진이 비록 우리가 그 장소에 없었다 할지라도 집단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이유다. 작가가 디지털 기술 대신 물성 강한 다게레오타입이나 앰브로 타입을 택한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느린' 사진술로 제작된 오늘의 초상은 근대 시기에 제작되어 남겨진 가족사진이 그렇듯이 시간과 싸워 살아남아 미래에 자신의 물성을 주장하면서 '기억보관자'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가 불편을 감수하며 더디지만 어렵게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이주용의 비평글 ''느린'사진술로 기억을 보존하다' 의 일부 발췌) ■ 박평종
조선인 이주 마을 프로젝트 진행 중 우연히 발견한 책, 『 호랑이를 죽여라(To Kill a Tiger: A Memoir of Korea)』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대 후반, 가족을 따라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저자 이정화(Jid Lee)의 개인 가족사를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미국 정착 이후에 그녀의 사고와 견문이 넓어지면서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이 재해석되어, 한 여성으로서의 치열한 정신적 성장사를 투영한 과거를 기억해 낼 수 밖에 없었다. 가사 노동, 심지어는 밥상에서조차 희생만 강요 당했던 여성들, 그녀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 근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여성이 당면한 사회 현실을 비판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몰락한 한 유학자 집안의 아버지의 모순이-당신 자신이 그렇게 싸웠던-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에선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사회 사이의 끈이 얼마나 견고한 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비판이란 얼마나 사랑이 결여된 것인지를 배웠던 것이다. 그녀의 5 세대 가족사는 넓게는 조선 말기 과거제도의 폐지, 일제 시대 정신대로 이어지는 식민지에서의 폭력, 빠르게 변해온 남녀 관계 및 결혼관, 해방 전후 좌우익 사이의 갈등, 한국 전쟁, 60년대 이후의 민주화와 여성 운동이 뒤엉켜 있다. 나는 이 한 여성, 이정화(Jid Lee)의 개인사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언어적 환경에서의 이주를 바라보게 되었다. 삼봉촌, 신툰촌, 내두산촌에서 내가 만난 이주 마을의 사람들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모두 여성이었다. 그들(그녀)의 집단 이주와 정착에서 노동과 생산성의 동력의 중심 역할이었다. 그리고 마치 이정화(Jid Lee)의 삶을 투영하는 듯한 여성들의 초상을 조선족 마을을 연구하며 진행했다. ■ 이주용
Vol.20210223f | 이주용展 / LEEJUYONG / 李柱龍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