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 화요일 휴관
갤러리 아쉬 헤이리 GALLERY AHSH HEYRI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5-8 Tel. +82.(0)31.949.4408 www.galleryahsh.com
이 정원에 흙벽이 있었다는 말을 듣기 전엔 그걸 상상도 못하셨을 겁니다. 네, 정원에서 갤러리 지하로 내려가는 길목에 단단히 다져진 거대한 흙벽이 서 있었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이끼가 번지고 결국 '안정성'을 이유로 철거를 하게 되었지만, 그 벽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정원에 올 때 마다 그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 정원의 기억은 바로 그 흙벽입니다.
어쩌면 모든 장소는 이런 기억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그 기억의 매개체이자 상속자이기도 하고. 그 기억이란 또 다른 말로 스토리텔링이니까요. 그 흙벽을 직접 보지 못한 방문자라 할지라도 이 스토리를 통해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력을 통해 나름의 스토리를 얹어 줄 수 있다면 이 기억은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이 기억은 또 시공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저는 그 흙벽을 처음 본 순간 예전에 뉴멕시코에서 본 아도비 벽이 떠올랐어요. 지푸라기를 섞은 흙벽돌을 쌓아 만든 벽인데, 특히 성당같이 높은 벽을 올린 경우 그걸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 날개 모양의 흙벽을 양쪽에 포진시킨 게 인상적이었지요. 그 두께는 마치 코끼리의 몸통을 연상시킬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아도비 벽을 이렇게 흙벽돌로 짓는 것은 원래 리오 그란데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고 그 동네 아코마 주민이 말해주더군요. 그 분이 기억하는 흙벽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억지로 강요한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도비 벽은 자신들의 헤리티지라고 했어요. 왜냐고 물었죠. "우리 선조들이 만든 거니까요" 라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흙벽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기억이 우리에겐 다를 수 밖에 없지요. '흙벽'하면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이 떠오른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황토벽'이 '웰빙'으로 연결되어 지친 도시인들의 테라피 상징물이 되었으니까. 허나 흙벽은 끝없는 관리와 케어를 요구하는 대상이지요. 그 물성이 주는 상징성은 지친 내 몸을 던져 치유받고 싶은 프리미엄 소비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내 손으로 바르고 닦으며 늘 보호해야 할 내 애정의 대상이란 점에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 어느 누구에게나 확 바뀌어 버린 'before & after'가 있을 겁니다. 한편으론 상실의 시대이고, 다른 한편으론 회복의 시대일 수도 있지요. 이 정원에 오시는 분들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내가 잃어 버린 나의 '흙벽'을 찾아보시라고. 그걸 돕기 위한 삶의 흔적들이 작품의 형태로 정원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닐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준비된 메모지에 '나의 흙벽'을 적어 붙여주세요. ■ 홍진휘
Vol.20210216f | Searching for the Wall 사라진 벽을 찾아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