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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대구신세계
관람시간 / 11:00am~08:00pm / 금~일요일_11:0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대구신세계갤러리 DAEGU SHINSEGAE GALLERY 대구시 동구 동부로 149 동대구복합환승센터 대구신세계백화점 8층 Tel. +82.(0)53.661.1508 www.shinsegae.com
커다란 윈도 너머로 예사롭지 않은 자태의 도넛 탑에 이끌려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황홀경에 휩싸여 미각과 시각의 혼돈에 빠져들게 된다. 곧 벽면의 곳곳을 메우고 있는 도넛들과 눈길을 주고받다 보면 구수한 빵 내음과 달콤한 시럽의 향이 코끝을 감돌 만도 한데, 비근을 이리저리 힘주어 보다가 감각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의구심에 고개를 삐딱하게 놓아 보기도 한다. 한 발짝을 더 디뎌보면 노릇하게 잘 부푼 빵의 표면을 걸쭉한 글레이즈가 윤기를 내며 뒤덮어 흘러내리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반짝이는 각양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조각들은 하얗게 내려앉은 슈거 파우더와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이 되어 걸음과 시선이 이동하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고 동공을 요동치게 만든다.
신세계 갤러리는 「도넛」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감정을 유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미적 경험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김재용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90년대 후반부터 해외를 무대로 다수의 전시를 꾸준하고 활발하게 이어온 작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내의 개인전을 갖게 됐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설치된다. 전시의 제목 『SHOOT!』을 함축적으로 풀어낸 첫 번째 방에는 붉은 동심원의 과녁이 부착된 벽면을 향한 포구가 시선을 이끌며, 이내 사방이 폭죽의 향연에 놓이는 일루전의 유희를 품어 볼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공간에는 거대하게 두드러진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이례적인 경험과 실험적인 의식에서 비롯하여 구현된 잠재적 인지의 함의 과정들을 정제하고 응축하여 펼쳐 보인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파악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일련의 오랜 단계들을 통과한다. 그리고 삶에서 가치를 발견해 계획하고 목표로 삼아 실행했던 체험들 속에서 하나의 공통된 의의를 거쳐 결속된 결과를 도출해 내게 된다. 누구나 비슷하게 겪는 경험과 달리 저마다 직면한 체험이 내적인 연관을 맺어 다르게 발현하는 것이 작품이다. 김재용의 「도넛」 작업에는 상반과 상보의 관계로써 역설과 깊이를 반추해 볼 수 있는 투영의 작용이 담겨 있다. 작품에서 밝고 화려하게 비치는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게는 쾌의 감정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감의 상대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이면과 의구의 측면 모두를 수용하고 되짚어 줄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도넛」에 부여했다.
김재용의 작품이 개별적으로 소통과 확장의 창(window)으로써 직결되는 개념이라면, 동심원과 방사형으로 취산이합(聚散離合)을 반복하는 형태의 벽면 설치 작품들은 단순히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의 섬광을 연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전시의 제목으로 사용한 「SHOOT」이라는 단어가 김재용의 작품을 말 그대로 부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물에서 연속적으로 분열하여 만들어지는 조직인 「SHOOT」은 종자가 발아해서 꽃이 되기도 하고 열매와 잎을 형성하며 가장 활발한 증식이 일어나는 부위를 말한다. 「도넛」은 이제 세포처럼 작용하여 분열하고, 고유의 지각 방식으로 작가의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변형의 가능성은 이제 정적이고 고정된 이미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동적이고 임의로 조작이 가능한 이미지로 발현되어 공간의 확대와 함께 더욱 역동적인 설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김재용 작가의 작품과 전시에서 관람자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요인들을 찾고자 한다면 서슴없이 그 꼬리를 이어 나열해 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그가 남다르게 가진 특유의 유머 코드는 작가와 관람자의 태도와 위치를 벗어나 서로의 거리감 없이 소통하는 더듬이로써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무거운 짐일지도 모를 집을 짊어진 채 포 앞에서 엎드려 어딘가 목표를 향해 도넛을 쏘아대며 표정 짓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도, 누군가의 목표물이 되어 과녁에 매달려 신세를 한탄하는 처량한 신세일 수도 있는 달팽이의 모습 속에서. 작가이기도 하고, 또 우리 모두이기도 한 그 자리의 달팽이가 되어,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뜨고 가다듬은 호흡으로 희망을 향한 도넛 슛을 힘차게 날려본다.
이번 전시가 팬데믹의 어려운 환경과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시점에서, 많은 분에게 긍정과 극복의 메시지가 되어 보다 나은 앞날의 준비와 계획에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 대구신세계갤러리
Vol.20210118a | 김재용展 / KIMJAEYONG / 金載容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