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수요일, 작업실에 흔적을 남기러 가는 날이다. 실질적인 생산이 없이도 출퇴근카드에 도장만 찍으면 왠지 뿌듯하다. 출근기록의식이 끝나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서로 마주 보고 앉는다. 긴 숨을 내뱉는다. 적당한 정적 뒤에 천천히 한 주의 *Zerrissenheit가 주절주절 쏟아져 나온다. ● 이전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졌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이제 체감상 아주 짧거나 더 이상 없다. 그 시간은 이제 소란스럽고 분주하고 문득문득 사랑스러운 살림들이 차지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미워할 수 없는 살림들에 한 주간 얼마나 정신을 홀렸는지 알 수 있다. 쉴 새 없이 경험들이 쌓이지만, 대부분이 맛보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것들을 소환해 나열하다 보면 뚜렷한 결과가 없는 것은 살림이나 예술이나 비슷하다는 냉소적인 정거장에 다다르다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환승하기도 하고, 결론은 어쨌거나 keep going이라는 종착지에 이른다.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간은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과 계속해서 도움을 요구하는 소리들, 움직임을 방해하는 사물들 등으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다. 그 분주함 속에서 자주 모든 것들이 삭제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command a, delete...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사려져 방향성을 잃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말 그대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러나 질문을 심화시킬 여유 따윈 없다.
가끔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셔터가 눌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 시간, 그 장면, 그 사물의 처지에 내 자신이 투영되는 순간이. 몇 시간 떠들다 보면 그렇게 얼린 장면들이 테이블 위에 남아있다. 거창하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은 그 장면들을 끄집어내어 활성화시키고 그 안에 부유하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모호한 상태와 감정들을 입체, 설치 작품을 통해 재구성하고 가시화하는 것이 이 시기 할 수 있는 우리의 수행과제라 선택하고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재인식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의 향기』에서 저자는 온정균의 시를 두고 "시간의 정물화"라는 표현을 한다. 우리는 그의 표현대로 "시간의 정물화"를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이리저리 치여 소멸해 가는 자신을 붙잡는"시간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에 더 가깝겠다. ■ 오민정
* 오늘날의 여성생활은 윌리엄 제임스가 독일어로 "체리센하이트 Zerrissenheit" – 산산조각으로 찢겨진 상태- 라고 적절하게 표현한 말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앤 모로 린드버그, 『바다의 선물』 中)
Vol.20210112c | VISI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