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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에 대한 혐오展 인스타그램_@hatred_against_p
오프닝 퍼포먼스 / 2021_0106_수요일_07:00pm
참여작가 교림_김머쉬룸_김제이_박주영A 임리하+박주영B_진지원_치명타
작가와의 대화 / 2021_0118_월요일 인스타그램 라이브 진행
주관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현대미술학회 C.A.S.
관람시간 / 01:00pm~08:00pm / 1월 6일_03:00pm~09:00pm
을지로 OF EULJIRO OF 서울 중구 을지로15길 5-6 5층 55ooofff.com @55ooofff
P는 복수(plural)이자 개인(person), 또 그 외 여럿, 곧 익명이다. 보는 작품, 보는 이에 따라 이 빈 곳에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위치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제목에 익명을 넣는 방식은 20세기 초 사회적 혼란기에, 집단이면서 개인인 불특정 대상을 상징하기 위해 쓰였다. 이러한 형식에는 갈등과 우울의 뉘앙스 또한 스며 있다. ● 혐오는 인간사 이래 지속하여 존재해왔다. 위협이 되는 것, 해로운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 우리를 생존케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혐오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혐오'라는 키워드와 논제가 유례없이 뜨거운 감자인데,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잠복해있던 혐오가 가시화되며 폭발하듯 논의와 의견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혐오라는 화두는 더 이상 우리의 사고에서 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전시는 혐오를 규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 혐오는 생존을 담당했던 본능적이고 강렬한 감정이기에 매몰되기 쉽고, 제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본 전시에서는 혐오의 세상이 된 지금, 혐오 자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휩쓸리기 쉽고 강렬한 혐오의 바다에서 자신의 좌표를 지정해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등장할 혐오라는 감정과 이와 동반하는 사건들 속에서 지표가 될 것이다. ● 본 전시는 감각, 타자, 사회, 개인이라는 네 주제로 구성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 초기에 혐오는 오염과 질병을 피하기 위한 생존적 감각에서 시작되는데, 이가 본능에 따른 감각적 혐오다. 이 원초적 감각은 또 다른 위협인 외부의 타자로부터 자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욕망과 더러움의 투사, 경계짓기를 통해 타자에게 전이된다. 전이된 혐오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속성을 지닌 공동체로 스며들어, 사회 내외적으로 공유되면서 다양한 양태로 확장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해진 혐오는 결국 그 안에 속한 개인에게 되돌아온다. 일방향으로 시작했으나 순환적인 방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혐오의 양상을 비추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조원영
1. 닭은 끊임없이 가공되는 존재다. 쉽게 무르고, 분절되는 표면은 살갗과 닮아있다. 관객은 피부를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생닭을 마주한다. 관객은 그것의 표면 위에 이름을 적는다. 작가의 쓰기 경험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또는 외부의 소리를 듣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무형의 이름을 가시화하기 위한 행위에 의해, 이름은 표식의 기능을 상실하며 미끈거리는 표면 또한 본래의 형태를 잃는다. 개인적 경험이 재연되지만,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 본연의 행위가 왜곡된다. 닭과의 신체적 결속을 시도하며, 관객을 응축한 익명성이 흔적에 의해 전이된다. ● 팔을 뻗어 물체를 특정 대상에게 던지는 그의 행위는 위협과 폭력의 오래된 관습을 표상한다. 던지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폭력의 주체가 되지만, 실재적 이미지로 이를 무력화한다. 관객은 작가에 의해 던져지는 무형의 폭력을 목격한다. 흔들리는 돌 위에 선 채로 끊임없이 상황을 의심하며, 실존하는 경험에서의 당착을 겪는다. 이때 사물과 행위에 깊게 내재한 폭력의 전복이 발생하며, 다수로 뭉쳐진 '탈'을 쓴 사건이 이들을 점차 흡수한다. ● 행위는 점차 관념의 전복을 겪는다. 무형의 관념을 명시하기 위한 쓰기는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관객의 정체성을 은폐한다. 위협을 의도한 행위 또한 관념과 감각의 허물을 쓴 채 폭력성을 잃는다. 행위에서의 쉽게 전복되는 관념은 혐오의 확산과 닮아있다. 혐오는 우연과 의도의 맥락 안에서 쉽게 파생되며, 불분명한 대상에게 무한히 전파된다. 쉽사리 기능을 손실하는 사물과 행위의 가변성은 혐오의 연약한 위치를 대변하여 그 지위를 무너뜨린다. ■ 유가영
2. 김제이 작가는 '남성과 여성', '주체와 대상'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에 대응하기 위해 신체의 아브젝트화(abjection)를 드러낸다. 작가는 페미니즘과 퀴어 문화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젠더와 몸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성별에 따라 구별되는 신체적 차이에 대한 이질감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고전적 미술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신체성의 개념을 문제 삼고, 이에 대안적인 육체를 정의하고 예술적 가치를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 이번 전시에서 김제이 작가는 세 가지 시리즈는 인간의 몸과 관련된 형태나 행위를 아브젝트화 하여 시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Lumps」 시리즈에서는 몸을 살 덩어리, 종양과 자라나는 세포 등의 신체의 가장 본질적 요소로 정의하며, 규정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오브제로 제작해 직관적인 혐오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어서「Drops」 시리즈는 성적 행위에 대한 '로망'을 걷어내 그 과정에서 남은 점막과 그 사이를 뚫고 교환되는 체액을 설치 작업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Toys」 시리즈에서 전시된 작은 조형물은 몸의 일부를 연상케 하는 장난감들이다. ● 과거의 신체성이 보편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면 현대의 신체성은 다양한 입장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아브젝트 역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이를 통해 가장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몸을 직면하게 되었다. 김제이 작가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자신만의 아브젝트를 통해 작가의 언어로 함축된 신체의 충격과 그로테스크를 작품으로써 드러내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안겨준다. ■ 박효원
3. 김머쉬룸은 자신을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이 겪는 내면적 아이러니를 셀 애니메이션을 통해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아이러니(irony)'란 슐레겔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창조와 자기부정이 교대하는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사유 운동이다. '아이러니'는 「XX속으로」와 「Behinds」의 주제 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식적-의미적 요소를 모두 관통한다. ● 작품 형식적으로 표현된 아이러니는 화면 구성요소 간의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장면마다 정교한 표현 기법이 돋보이는데, 한 동작 한 동작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화면이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정교하고 느린 듯한 화면의 흐름과 긴박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아기의 표정과 몸짓의 대비로 인해, 작품 전반적으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 작품의 의미적 아이러니는 작품 주제와 결부되어 드러난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작품 속 '아기'는 작가 자신의 아기 시절을 타자화한 것으로, 작가는 이에 대해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기였던 나를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 작품의 러닝타임 내내 '아기'를 혐오하고 괴롭히는 듯한 장면이 이어진다. ● 이러한 자기 의식적-자기 혐오적 사유들은 작품 속 빈번히 등장하는 '검은 점'을 향해 모인다. 작가는 이 검은 점을 '혐오의 상처가 만들어낸 깊은 구멍임과 동시에 자궁이 연상되는 생명의 근원지'라고 말한다. 「XX속으로」와 「Behinds」 속 아기의 호흡을 따라 블랙홀 속으로 상념을 던져보면, 그 상념의 소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목소리가 들려올 지도 모른다. ■ 이다윤
4. 임리하, 박주영 작가는 스타트업(start-up)을 함께 진행한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공동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기존의 단편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가지 작품으로 구성된 「구멍을 몇 개 더 뚫어야 벽이 무너질까」도 이런 방향성과 연결되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드림 오브 드림하우스」와 「드림하우스」는 영상과 영상 속의 공간을 미니어처로 재현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서로 연계되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타자와 개인의 '경계짓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영화의 형식을 빌려온 「드림 오브 드림하우스」는 "간밤에 꿈을 꿨어요"라는 동그라미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구질구질한 꿈속 현실에 혐오감을 느낀 그녀는 꿈에서 깨어 자신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며 꿈속 이미지를 덮어버린다.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우아한 덮음'이라고 표현한다. ● 동그라미가 꿈 속에서 보았다는 '네모의 방'은 미니어처로 전시장에 함께 제시된다. 이를 통해 네모의 방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이는 영화 속 동그라미의 인형의 집같은 배경과도 연결된다. ● 안개 너머 무엇이 있든 동그라미는 그를 외면하며, 그 행위를 통해 창밖의 공간과 내부를 경계 짓는다. 작품이 담아내는 '경계'는 집의 외벽처럼 안팎을 가르는 명확한 것이자 한편으론 흐리멍텅한 안개와도 같다. ● 이때의 네모의 등장은 동그라미의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구멍이자 균열의 시작점이다. 꿈 안의 낯선 장소와 어느 날 침범한 이방인은 익숙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혐오스러운 꿈 속 현실과 나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기시감을 느끼며 서로를 바라보는 네모와 동그라미를 통해, 우리는 가리고 싶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 강혜지
5. 누구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 하고, 누구는 한국을 떠난 일본인이라 한다. '자이니치(Zainichi)'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소수집단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에게 혐오는 일상의 저변에 은은하게 깔린 물과 같으며 직접적이게도,은연중에도 나타난다.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이방인-민족은 언제나 사회가 제시하는 미봉책 앞에서 긴장한다. ● 교림 작가는 재일교포 3세로, 기록물과 가족의 기억에 기초한 「자이니치 시리즈」 를 제작한다. 흑과 백으로 구현된 기억들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인상을 주며 지난한 역사를 보여준다. 재일교포 1세대인 작가의 할머니는 사회 빈민층이 하는 일들을 부담했다. 공장노동, 바타야バタヤ/쿠즈야屑屋(폐품회수업자), 밀조주密造酒 제조 등의 일이 그것이다. ● 「할머니의 초상」연작은 젊은 할머니와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의 초상을 중심으로 당시를 대표하는 사회 문화적 사건들과 개인적 경험들을 환기한다. 「할머니의 초상 I」 은 고향 제주도의 쌀집, 70년대를 대표하는 북한의 예술영화 "꽃 파는 처녀", 90년대 행해진 재일교포 모국방문 사업의 이미지들로 1세대 재일교포가 지나온 역사를 조망한다. ● 「부서지기 전」 속 중년여성은 늘상 그렇듯 집안을 유유히 가로지른다. 생활감이 짙게 묻은 부락의 모습은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무표정한 모습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듯 작품의 긴장감을 배가한다. 집은 이후 90년대 재개발 정책에 의해 강제로 허물어지게 됐는데, 이는 재일교포의 역사가 그래 왔듯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 반세기가 흐른 지금, 재일교포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문제 사이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주민의 후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본 사회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했다. 직접적인 혐오는 과거와 같지 않다. 그럼에도 미디어의 혐오 조장과 헤이트스피치는 언제나 쉽게 자행된다. ■ 김희근
6. 치명타의 작업은 우리가 아닌 타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때의 타자는 미지의 대상으로서 소외되고 대상화되며, 배척받아야 할 존재들로 '혐오'당한다. 주류사회는 자신의 정체성 확보, 불안감과 금지된 욕망의 해소를 위해 이들을 '그들'로서, 어떠한 대상으로서 이미지를 만들고 차별화하며 치명타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사회에서의 혐오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주류사회 논리의 모순지점을 발견하여 꼬집고 전복하며, 타자/소수자와 연대한다. 또한 이를 직접적인 방식의 언어와 영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발화함로서 '치명타'를 날린다.
메이크업 대쉬 Make up Dash ● '아름다움의 신화', 여성에 대한 억압적 미의 기준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태동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근래의 현상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맞물려 사뭇 독특하다. 특히 유튜브를 위시한 소셜미디어는 미적 기준 재생산의 선봉에 서 있으며, 치명타는 한국에서 뷰티 유튜브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2017년, 뷰티 플랫폼의 언어로 전파되던 '여성적 이미지'를 소재로 다룬다. 본 전시에서는 「서른부터 일흔」과 「문래동 메이크업」이 상영되는데, 메이크업 유튜버들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작가의 주체적 행위로 작품을 채우고 있다.
실바니안 패밀리즘 Sylvanian Familism ● 작가는 '정상적인' 중산층 가정을 재현하는 유명 동물 피규어 시리즈인 실바니안 패밀리 인형을 이용하여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모순을 인형들의 발화로 지적한다. 본 전시에는 난민이슈를 다루는 3편 「진짜 가짜 진실 거짓」과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4편 「레인보우 썸머」가 상영된다. 이 극에서 인형들은 작가에 의해 중성적인 의상을 입고 탈젠더적 성격을 부여받으며, 소수적 공동체와 그들의 연대를 재현하게 된다. 전체 에피소드는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풀버전: youtu.be/LpKyoA10Kz0) ■ 조원영
7. "혐오는 껍데기에서 시작한다." 개인은 대면의 모든 순간 타인에 의해 인식되고, 그 결과물들은 '자아'를 구성한다. 진지원은 이를 피부와 흡사한 얇은 라텍스로 재현한다. 그가 피부 껍질을 재현하는 과정은 우리가 존재로서 지각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 하나의 몰드에서 여러 겹의 껍데기가 찍혀 나오듯, '나'라는 하나의 존재에 수많은 껍데기가 부여된다. 껍데기는 결코 '나' 그 자체일 수 없지만, 동시에 껍데기를 통하지 않고 자아를 재현할 수는 없다. 이 간극 사이에서 진지원은 오인의 필연성에 집중한다. ● 진지원의 껍데기는 전시의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읽힌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상황에 따라 매 순간 스스로를 전시하고, 연출된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주체인 타인에 의해 해석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가 결국은 타자적인 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개인을 혐오 앞에 무력화한다. 이 지점에서 진지원은, 이를 몸의 껍질로 가시화함으로써 판단의 과정이 생각보다 무성의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개인에게 이마고(imago)를 부여하는 과정은 대부분 눈 앞의 얼굴을 혹은 어쩌다 스친 피부를 인식하는 것처럼 피상적인 정도에 그칠 뿐이다. ● 이때, 껍데기는 내가 의도한 것과 상대방의 해석의 혼합물이기 때문에 누구의 마음에도 완전히 들 수 없다. 그는 만연한 혐오 속, 우리의 시선을, 또는 타인의 시선을 본질로 오인하는 것만은 삼가기를 당부한다. 그 해석의 영역을 통솔할 수 있다는 착각 또한 개인을 혐오 앞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엔 규정될 수 없는 '무제'의 존재인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욕망하며 매순간 타인에 의해 제목 지어질 준비를, 언제나 혐오 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이민영
Vol.20210106b | P에 대한 혐오 Hatred Against P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