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이주용_이영욱_변순철_정지필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기획 / 라오미
관람시간 / 11:00am~06:00pm / 1월1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C동 공연장 Tel. +82.(0)32.760.1000 www.inartplatform.kr
바다 매립의 현장, 물 위에 아슬하게 지어진 횟집, 금어기(禁漁期)때 선박을 정비하는 조선업 노동자, 철새, 선박에 주렁주렁 달린 부표들, 바닥에 쌓여있는 그물망 더미, 공장 굴뚝의 무심한 연기. 인천항, 그 중에서도 북성포구의 풍경은 최근 매립으로 인해 그동안 소비되어져 왔던 풍경이 생경한 이미지로 생산되고 있었다. 이렇게 풍경은 우리가 깨닫든 그렇지 않든 끊임없이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었다. 2019년부터 인천항, 단둥(丹東)항, 요코하마항 등 해항도시에 펼쳐진 연안의 장소 이미지를 과거의 모습부터 현재의 풍경, 미시사(微視史)적인 서사와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전과 같이 작동하지 않는 듯한 연안, 기능을 상실해가는 해항도시의 풍경에는 서양건축양식의 근대건축물, 시대의 모뉴먼트,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공장들 등이 표류하는 이미지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을 동시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초부터 이 곳 인천항의 연안에 집중하며 주목하게 되었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소멸되고 생성되는 연안 경계선 변화의 전야와 징후에 대해 살펴보며 이를 탄성으로 새로운 가능성으로 실현시켜보고자 했다.
1.소멸되고 생성되는 경계선 ● 인천(仁川)항은 부산(釜山,1876), 원산(元山,1880)에 이어 1883년 세번째로 개항(開港)한 수도 서울의 관문항구였다. 개항 이후 그 어느 지역보다 일찍이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었는데, 외국인 뿐만 아니라 내국인 이주자들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혼종성이 강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한국전쟁(1950)을 거치면서 황해도 출신들이 주가 되어 피난민들이 인천에 유입되었고, 산업화 시기에는 농촌 지역으로부터 기회를 찾아 이주민들이 유입되었다. 인천의 해안선은 97%가 자연 해안선이 변형된 인공 해안선이고 현재 연안에는 공장들, 신도시 건설로 지어진 아파트들, 포구, 부두, 고깃배와 낚싯배, 어시장의 상인들, 횟집, 매립된 토지와 그위로 치솟는 건물들, 군사지역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 화수(花水)부두, 만석(萬石)부두, 북성(北城)포구는 1970년대 말까지 수도권의 3대 어항이었는데, 1975년 연안(沿岸)부두 일대가 매립되고 어시장들이 그곳으로 이전하면서 그 화려했던 명성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개항 시기 북성포구는 제물포(濟物浦)와 함께 물길이 열렸고, 1929년 일본이 북성동 해안 일대를 매립해 수산물공판장, 어시장과 어업용 제빙공장을 설립한 이후 대성목재, 대한제분 등 산업 공장들이 조성되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실향민이 이곳에 터전을 잡기 시작했고 전쟁 이후에는 포구로서 제 역할을 해왔다. 예전의 명성은 잃고 '명소'로서의 이미지 또한 희미해져 가지만 여전히 북성포구는 숨을 쉬고 있고 그것을 확인하려는 발길들이 오가고 있다. 현재 10여척의 어선만이 정박하며 갯벌포구로 지금도 경기만에서 유일하게 선상파시가 열리는 곳이다. 개발과 보존, 매립과 갯벌 살리기 사이에서 인천시와 환경단체들의 대립이 이어져 오다가 2018년 1월 결국 북성포구는 매립이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2.붉고 푸른 기록 ● 마지막 숨구멍이라고 했던 북성포구의 매립이 진행중인 현재, 환경단체들의 절박한 호소는 찾아볼 수 없고 정작 연안의 사람들은 그러한 풍경의 변화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환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 목격한 매립을 풍경의 생산으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지워버린 해안선은 아닐지. 장소의 정체성이 상실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지역적 연대감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이러한 연안 경계선의 변화를 4명의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살펴보았는데 이는 사진이 만든 침묵 속에서 이미지와 감상자 사이에 공간을 창조하는 본질적 특성에서 기인했다. 이번 『연안해방』에서 보여지는 사진 이미지들은 정지된 공간 안에서 읽게 되는 붉은 흙으로 푸른 연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현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이주용은 연안의 풍경을 디오라마와 같은 대형 LED패널로 펼친다. 디오라마의 특징은 그 앞에 서는 순간 우리로 하여금 실제 그 곳에 있다고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다. 실체 없는 것을 표상하려는 듯 마치 물에 부유한 낙원으로 보이는 횟집과 동시에 현실을 일깨워주는 포구를 둘러싼 대한제분공장. 이주용의 작품 「환대의 장소 I」의 사진 이미지 안에서 장소성은 물리적 장소로만 작동하기 보다는 징후적 장소로 화면 속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환대의 장소 II」에서 대성목재는 산업화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그러함을 검은 연기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에게 부재하는 것을 은폐시키고 대상을 철저하게 대상 그 본질로만 바라보게 요청하고 있다.
이영욱은 우리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오롯이 그 장소를 바라보게 하고 이로써 시대적 컨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작품 「물고기 이야기」는 배다리 인근 중앙시장과 수문통, 연안부두, 북성포구 등 이전과 현재의 연안 경계선을 교차적으로 응시하며 바다로서의 장소 상실을 기념한다. 분명 흙으로 가득 매워진 바다인데, 그의 사진 이미지 안에서는 여전히 비어있는 장소이다.
이주용과 이영욱이 시간의 간극을 장소성으로 시각화했다면 변순철은 장소성의 부재를 시간을 초월하는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변순철의 작품 「나의 가족 Eternal Family」은 사진의 환영에 기대어 형상화시킨 결과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가족 사진이자 시대의 상흔이다. 가족의 상봉이라는 환영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간성을 초월하며 구현을 했고, 이때 사진의 장소는 현실에 존재하는 작가의 스튜디오이면서도 그들의 고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지필의 작품 「어서오십시오」에서는 텍스트가 주는 메시지를 색의 판타지으로 감싼다. 어빙 할로웰(Irving Hallowell)은 "장소에 이름 붙이기, 별 이름 붙이기, 지도, 신화와 설화, 건축물의 좌향, 춤과 의식 속에 있는 공간적 함축, 이 모든 것은 개인이 살아가고 행동하는 공간의 패턴을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이렇듯 '장소의 이름'은 정체성에 기반을 두게 되는데, 정지필이 주목한 간판 이름은 여행자에게 방향 감각을 제시해주고 낯선 장소가 친숙하게 느껴지게 해준다. 혹은 거주민으로서 친숙한 이들에게는 다시금 생경하게 바라보게 한다. 북성포구에도 여러 이름이 있다. 매립 전에는 사라진 섬 묘도(猫島) 해수욕장이었고, 포구가 된 후 떠내려온 목재들에서 냄새가 난다 하여 똥마당,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적색 해안(The Red Beach Point of Inchon Landing Operation , 1950년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이란 이름도 붙여졌었다.
3.연안해방沿岸解放 ● 장소의 이미지는 바로 곧 정체성이며, 개인적 또는 집단적,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실제 거주하는 개개인에게 장소의 정체성은 스스로 자각되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게 되고, 외부인은 시대의 장치로서의 미디어(근대사진엽서, 공공의 관광홍보사진 이미지, SNS 개인의 장소 이미지 등)가 조직한 보편화, 일반화된 정체성의 틀 안에서 장소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 장소에서 경험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정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때로는 외부인이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발견할 수도 있다. 이번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두 시선을 교차적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풍경 속에 숨겨져 있던 여러 욕망들, 실패한 욕망과 성공한 욕망이 충돌하면서 생긴 파편화된 곳곳의 풍경, 매립으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지형적 경계선을 작가적 시선의 개입으로 재맥락화, 재장면화 할 수 있는지. 근현대 연안 사진들의 장소 이미지와 현재의 장소 이미지를 비교하는 연구조사에 집중하게 되면서, 장소의 정체성의 변화를 상실로 바라보기 보다는 풍경 스스로 존립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탈경계의 주체로 경계 짓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정체성 또한 과거에 만들어진 규범화되었던 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것이고, 동시대의 정체성 또한 어떠한 공동체의 정치적 개입에 의해 직조된 것은 아닐까. 거듭되는 의심과 답을 스스로 구하는 과정 속에서 기록되지 않은 서사의 이미지들, 소멸되고 생성되는 경계선, 연안 풍경의 변화에 집중하며 긴 호흡으로 따라가보려 한다. ■ 라오미
Vol.20201229c | 연안해방-沿岸解放 Liberation of coastline landscap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