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구민지_김그림_김민지_김보경_김우현_김지우 박수은_박은영_박정언_안유진_최우정_홍지윤
기획 / 임나영
관람시간 / 12:00pm~07:00pm / 공휴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그로브 ART SPACE GROVE 서울 강북구 도봉로82길 10-5 Tel. +82.(0)2.322.3216 blog.naver.com/artspacegrove www.facebook.com/artspacegrove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공상은 대부분의 현실적인 상황에서 환대받지 못한다. 아름다운 시절을 꿈꾸는 일은 매서운 현실 앞에서 돌연 '낭비'나 '쓸모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룸펜과 사회부적응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공상이야말로 "값없이 지천에 널려 있는" 훌륭한 도피처이고 이것은 실질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현실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는 사유는 병든 시대정신에서 비롯된 오해다. 공상과 현실의 영역을 이분화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며 공상의 실천적 방법론은 다양하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Haben oder Sein』에서 '꿈꾸는 몽상가'와 '눈뜬 공상가'를 비교한다. 그는 공상과 몽상이 비현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지만, 공상가와 몽상가는 의지의 측면에서 다르다고 지적한다. 몽상가가 행복을 바라면서 꿈을 꾸지만 실천 없이 마냥 행복을 기다리는 무능한 사람이라면, 공상가는 언제나 실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천 의지를 함축하고 있는 잠재태이다. '눈뜬 공상가'는 현실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에 맞게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며, 그리하여 현실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는 합리적인 인간이다. 공상구락부의 '운심'이 자신의 꿈이었던 희귀한 광맥을 우연히 발견했던 것처럼 공상이 단순한 일탈로 그치지 않는, 뜻밖의 순간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은 공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 만큼 기묘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눈을 크게 뜨고 있지 않으면 포착해내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은 현실에 압도당하고 만다.
길고도 유구한 공상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과학자는 대부분 공상가 기질이 넘쳐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었다. 공상이 현실과 맞닿는 순간 이들의 충동은 폭발적인 추동력으로 전환되며, 그중에서도 예술은 매체와 감각에 집중하는 가장 순수한 포텐셜이다. 예술가는 공상을 현실화하기보다 공상 그 자체의 실현을 추구한다. 선을 긋고 빚어내는 몸짓은 실재를 직시하고 포획하려는 작가 자신의 결연한 의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들이 유희하는 공상의 세계는 더욱 단단하다. 현실의 개입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구민지, 김그림, 김민지, 김보경, 김우현, 김지우, 박수은, 박은영, 박정언, 안유진, 최우정, 홍지윤 총 12명의 작가들이 '눈뜬 공상가'가 되어 남기는 기록물이자 공상과 현실의 접점을 다양한 매체로 제시한다. 일상을 거닐다가 슬쩍 떠오르는 상념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이미 벌어진 사건 안으로 더듬더듬 기어들어가기도 하는 유별난 움직임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존립하려는 의지와 같다. "악착한 현실에서 버둥버둥 허덕이지 말구 유유한 마음으로 찬란하게 내일이나 꿈꾸고 지내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믿었던 공상구락부처럼 말이다. 우리는 지금 공상영화라고 해도 믿을 법한 ―혹은 믿고 싶은― 세상을 살고 있다. 공상구락부처럼 친구를 만나고 카페에서 커피와 음악을 즐기는 단순한 삶이 해악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공상과 현실이 뒤바뀐 시대에 젊은 우리는 스스로의 실존적 태도를 재정립해야한다.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몽상가인가? 낙관주의자인가? 냉소주의자인가? 눈뜬 공상가인가? ■ 임나영
Vol.20201227a | 공상구락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