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권남희_박미진_정은혜_최승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세인 GALLERY SEIN 서울 강남구 학동로 503(청담동 76-6번지) 한성빌딩 2층 204호 Tel. +82.(0)2.3474.7290 www.gallerysein.com
일상을 제시하고, 경험하고, 소통하는 작가 권남희 ● 우리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시 같은 사람, 신문기사 같은 사람, 공상과학 소설 같은 사람, 탐정소설 같은 사람 등 저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권남희 작가는 시 같은 사람이다. 작가의 작품도 시 같은 작품이다. 시처럼 함축적이라는 말이다. 작가의 작품은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 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함축미가 작업에 녹아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텍스트'가 빠지지 않는 점,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해 나가는 방식을 보았을 때, 개념미술에 가까워진다. ● 개념미술은 작가들 간의 어떠한 공통점을 갖지 않고 여러 유형이 어우러진 미술사조 중 하나이다. 개념미술 작업방식의 종류를 이야기하자면 현대미술의 표현방식을 다 읽어내야 할 정도로 많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주제 및 표현방식, 소재가 다양하고 범위는 무한하게 폭넓다. 개념미술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관람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소통'의 방식을 일깨워 줌으로써 현대미술에서 그 중요도가 높다. '비물질화', '과정(process)', '기록', '소통' 등이 개념미술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전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에서는 예술가 자신의 '주체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 '주체성'이 개념미술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관람자의 감각자극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것이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미술에 단초를 마련하였음이 분명하다. ● 미술을 형식이 아닌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비평과 분석적 작업의 개념미술이 권남희 작가의 작업 기반이 된다. 작가의 작업에서 '시각'이란 단지 작가가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극도로 절제된 형식과 재료들로 구성된 전시공간은 또한 '의미가득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가 가져다 놓은 간판이, 작가가 제시해 놓은 텍스트들에 무수히 많은 내용을 담아 함축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작가 개인의 일상성과 관람자와의 소통이 중요시되는 작가의 작업이 개념미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텍스트를 읽어보고 경험해보라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미술'작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고민처럼 작가는 자신의 생각, 우연한 발견을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한다. 「난 안전해, I am safe」(2001)의 작품에서 'I am safe'는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글 중 "I am safe, nothing can injure me whatever happens"문장이다. 작가가 감명받은 문장을 광고판처럼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자들은 누구의 글인지, 왜 굳이 영어를 사용하였는지, 글씨체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모든 배경적 요소들은 작가만 알고 있다. 작가의 사적인 일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설명들을 배제한 채, 메시지만 전달한다. 이 작업을 통해 작가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해소했고, 감상자들은 이 작품 속 문장을 읽어보며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안도감을 찾길 바라는 것이다. 비슷한 어조로 작업된 것이 있다. 「고요한 세상, Quiet World」(2009)이다. "Quiet World(고요한 세상)은 잡음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인상을 담은 작업"이라고 작가가 설명한다. 이 시리즈는 2001-2009년까지 계속된 만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강하다. '숨막히는 침묵'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침묵으로 인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생긴다. "… …" 라는 문장을 공공표지로 세워 둠으로써 작가가 제공해주는 고요한 휴식을 느껴볼 수 있다. ● 권남희 작가의 작업에서 '문학성' 상시 녹아 있다. "'시각예술'과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의 어떤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다. 작가가 관람자와 소통하는 수단도 시각, 지각, 그리고 '텍스트'이자 '언어'이다. 누가 미술작품을 관람하러 전시장에 가서 글을 읽다가 오고 싶을까. 그러나 작가의 보여주는 '언어'는 대화가 된다. 작가와 또는 불특정 타자와 또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게 한다. 작가가 일상에서 선택한 문장과 단어들은 작품이 되었다. 작가가 노트속에 모아둔 영화티켓, 쇼핑백을 그대로 혹은 확대하여 전시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문장들은 작가의 경험과 기억인 동시에 관람자에게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낸다. 저마다 다른 경험을 투영하여 작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투명한 과정, Transparent Process」(2010) 작품은 작가의 노트속에 보관되어 있던 영화 티켓이다. 티켓에 적혀진 시간, 영화제목, 날짜는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우리에게 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 숫자 외에 아무것도 읽을 것도 볼 것도 없는 작업이 있다. 빈 무지 공책을 읽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번호 그림들, Numbered Paintings」(2007) 작업은 캔버스의 평면회화에서부터 시작한다. '미술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비전공자들이 제일 먼저 떠올릴 매체는 평면회화 일 것이다. 작가는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캔버스를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작가는 '그림'이라는 타이틀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작가에게 회화는 캔버스들의 나열일 뿐이다. 따라서 작가는 캔버스를 나열하여 숫자를 매겼다. 캔버스에 숫자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흰 바탕만 보면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작업은 「A book」(2011)시리즈에서 좀더 명확하게 된다. 이 작업은 공간에 네온사인의 숫자만 남아있다. 책의 페이지 번호를 공간으로 옮겨왔다. 작가는 서점에서 수많은 책들과 정보를 보며 현기증이 났고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상상을 했을 때,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번호 그림들」도 수많은 작품들 속 고민들을 모두 없애 버린 짜릿한 흥분이 아니었을까.
장소-특정적(site-specific) 프로젝트 ● 권남희 작가는 공공미술의 영역에서도 작업하고 있다. 공공미술의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려는 의도가 작가의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는 작품세계와 상응한다. 공공미술은 누구나 볼 수 있고, 작품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진술이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작품들은 피하게 된다. 또한 그 작품이 놓이는 장소(site)가 중요하게 된다. 공공미술의 일부인 '장소-특정적(site-specific)'미술이 작가의 공공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장소-특정적'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은 그 '곳'이 아니면 작품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빈 바람, 빈 하늘, 빈 글, 그리고 빈 강물. Empty Winds, Empty Sky, Empty Words, and Empty Waters」(2007) 은 홍은동 주민들의 유일한 산책로이지만 삭막했던 홍제천변에 설치된 작품이다. 몇 개월을 걸친 홍은동의 자료조사와 현장답사, 주민 설문조사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홍은동과 그 주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다. 경기도미술관의 간판역할을 하고 있는 「경기도미술관에서 만나자. Meet me at the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2010), 미술관의 건물 사이즈를 측정하여 수치를 넣은 「측정. Measurements」(2010) 또한 같은 맥락이다. 경기도미술관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 '장소-특정적'작업이 다른 장소에 설치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남아 있는 작업이 있다. 「역에서 만나자. Meet me at the train station」(2014)이다. 역과 역사이 "오래된 여관이 없어지면서 그 여관에 관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프로젝트에서 발전"된 것이라 작가가 말한다. 오래된 여관 앞에 떨어져 있을 메모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했다. 이 문장이 주는 떨림은 네온이라는 매체로 표현된다. 이 작업은 여러 곳에 전시되지만 이질감이 없다. 감상자들은 '역에서 만나자'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기억, 실제 기차역의 모습, 역 앞의 수많은 여관들, 역에서 떠나는 사람들, 역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또한 작가가 관람자들에게 건네는 소통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작품과 우리 사이는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작가가 우리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식이다.
작가와 관람자의 교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매개체 ● 권남희 작가에게 네온은 중요한 매체이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작가들 중 구조주의적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아닌 형상학적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주로 네온을 포함한 빛을 사용했다. 네온이 주는 빛으로 관람자들에게 '지각(perception)'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에게도 네온은 작품을 벽에서 공간으로 확장시켜주는 매체이다. 그러나 네온이라는 즉물성이 드러나기에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A book」시리즈에서도 단순할 수 있는 벽에 네온으로 된 책 페이지를 나열하면서 벽이 아닌 공간으로 완성된 것이다. ● 관람자의 지각경험과 소통, 작가에게 관람자는 항상 고려하고 있는 대상 중 하나이다. 「침묵사탕, Quiet World Sweets」(2009)프로젝트는 관객소통형 퍼포먼스였다. 공공표지판에 침묵을 제시하는 「고요한 세상」의 연장선이자 다른 형식의 작업이다. "상징적으로 침묵이라는 '사인(sign)'을 사탕이라는 달콤한 매개물로 받아먹게 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 …"가 쓰여진 사탕을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프로젝트이다. 한입에 가득차는 크기의 막대사탕은 먹는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 먹고 나면 사탕에 쓰인 "… …"도 사라지고 침묵의 시간도 끝나게 된다. 작가가 이런 의도에서 사탕이라는 소재를 선택하였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침묵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사탕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통해 잠시나마 고요한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공공표지 작업보다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무의미성을 강조하는 행위 ● 권남희 작가의 작업세계를 '무의미'라고 하기엔 너무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의미보다는 관객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번에 갤러리세인에서 전시된 「Meter paintings」(2020)도 그렇다. 의미나 철학 없이 그냥 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드로잉 작업이다. 작가는 정확한 의도는 없지만 숫자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숫자로 작업했던 페이지 작업과 연결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책장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듯 작가의 드로잉의 시작 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 의미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관람객이 개념미술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따라서, 작가의 작업을 텍스트적인 것, 또는 미니멀한 시각에서만 보기에는 어렵다. 미술을 위해서 마련한 장소들과 공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관람자가 경험하는 기능을 하기 위한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우리는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볼 때, 거대한 대작을 보며 웅장함을 느낄 때, 혹은 소설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등 모든 예술을 접할 때, 우리의 경험과 생각, 가치관을 이입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내용'이 관람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관람자의 세계관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하여, 무의미한 것이 될 지라도 우리가 다양한 예술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관계 속 소외된 것과의 '공존'에 대한 관심 ● 고대 선사시대부터 미술은 동물과 함께 시작했고, 최근 현대미술계에서도 동물을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이 많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상품을 디자인을 하는 상업디자이너들에게도 동물의 형상은 다양한 영감을 주는 소재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필자의 아들에게도 동물은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이자 친숙한 대상이다. 동물이 나오는 책을 보며, 동물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필자의 아들의 일상이다. 인간을 제외한 세상만물 중 소리로 소통이 가능한 것이 동물이다.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로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에게 위로 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 정은혜 작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을 소재로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다. 작가에게 동물은 조각이자 회화이며, 작가를 위로해주는 대상이자 작가가 품어주는 대상인 핵심적인 조형언어이다. 정은혜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작품처럼 작고 왜소한 몸이지만 무척이나 밝은 인상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보았을 때, '작가의 저 손이라 가능한 조형이구나' 생각했다. 마르고 조막만한 손이 섬세하고 따뜻하고 강하게 보였다. 흙을 만지는 작가라 작은 손이지만 내공이 있구나 생각했다. 작품에서도 손의 온기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 종종 정은혜 작가는 명확하게 정의되곤 한다. '동물을 의인화해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필자 또한 그 이상 깊이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작가는 동물복지차원의 생명존중을 외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내 작품이 현실 비판과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길 원한다."고 작가는 전한다.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매우 공적이면서도 사적이다. 또한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내면서, 모든 소외된 약자와 함께 공존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 정은혜 작가의 작품 시작은 동물의 위로와 인간의 이기적인 잔인함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작가가 동물을 소재로 작업하게 된 단초는 약자를 위한 마음이었다. 약자의 최전방에 있는 비인간 동물이 작가에게는 가장 위태로워 보인 것이다. 작가는 2007년 태국 여행 중 학대당한 코끼리를 본 이후, 줄곧 동물의 형상으로 작업하였다. 동물들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직접 목격하고는 작업의 의미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보기엔 생김새가 다 같은 하나의 '돼지들'일지라도 작가에게는 하나하나 존중 받아 마땅한 '한 마리의 돼지' 인 것이다. 작가의 작업방식에서도 동물 한 마리에게 소중한 생명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성형작업의 과정에서 틀이나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서 형태를 만드는 '핀칭(pinching)기법'을 사용한다. 같은 모습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이 동물들에게도 작가의 손을 통해 각각의 개성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 내기 힘든 존재 ● 작가의 작업은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시리즈가 있다. 이 작업은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동물의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가능한 작업이었다. 「너는 늙어봤느냐」(2017)시리즈이다. 작가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잔인함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관점에서 그들의 소원을 이뤄주었다. 단지 식용을 위해 비윤리적인 행태로 사육되어 기본적인 생을 다 살아보지 못한 안타까운 동물들을 위해 작업하였다. 동물들의 나이 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연민의 감정과 사회의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동물도 생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게 주는 사랑과 살육해 먹으려는 욕구가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면 계속해서 충돌한다. ● 「Together_가족사진」(2013), 「family picture」(2016), 「Dream family」(2017)와 같은 작업을 보면 작가는 동물을 인간의 존재만큼 승격시키고자 함은 아니다. 생명의 소중함에 있어서 인간과 동격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 무분별한 학살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친구처럼, 가족처럼 늘 곁에 있어주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다시 환기시켜준다.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며 인간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던 동물들에게 우리가 위로를 해 줄 차례이다.
인간과 동물 그 사이 ● 작품 속 등장하는 작가의 모습 등, 작품에서 인간의 본질도 빠질 수 없다. 젊은 작가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혹하다. 안타깝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실제 작가가 겪은 이야기이다. 작가는 늘 소외되어 있었다. 동물과 다른, 어쩌면 동물과 같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작가는 계속 고민했을 것이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지난 작가의 경험이 작가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순되게도, 아픈 경험이 작가가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동기부여였다. 정은혜 작가는 위축되거나 스스로 감추려 하지 않았다. 작가의 밝은 성격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따뜻하게, 밝게 작가의 방식으로 동물을 포함한 모든 약자에게 손을 건네고, 그들의 외침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어 준다. ● 동물의 의인화, 작가의 작품에서 전반적인 표현방식이다. 인간이 작업에서 계속 언급되는 이유이기도하다. 「등파고랑(騰波鼓浪)」(2014-2017)시리즈에서는 토끼, 염소, 돼지, 소 등이 노 없는 배를 탄 채 어딘가로 나아가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가 말한다. 인간이 모두 개성이 있듯 동물들에게도 인간처럼 특기와 개성을 부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이 작품은 동물에 대한 관심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절실히 느껴진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접한 후, 작가는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배를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3년간 작업하는 동안 세월호의 아픔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애쓰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물들을 통해 인간사의 비극을 전해주고 있었다. ● 「Untitled」 시리즈(2018)에서는 동물들이 요가를 하고 있다. 「너는 늙어봤느냐」시리즈에서 동물들이 늙어 보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던 것과 비슷한 어조로 작업되었다. 작품에서 동물들이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몸통에 비해 팔다리가 길고 근육이 자유로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요가라는 행위를 동물들에게 이입하면서 인간과 다를 것 없는 동물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작가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등함을 알 수 있다. ● 작가의 동물에는 감정이입이 된다. 섬세함을 넘어선 눈빛과 인간적인 행동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말그대로 인간성을 얻은 작가의 동물들을 보고 우리는 인간성을 느끼고 잔인함을 혐오하게 된다. 「Beloved」(2020) 시리즈를 보면 동물의 감정과 그리고 작가의 감정이 더욱 세밀하고,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무차별한 폭행을 당하는 송아지 영상을 보고 작업하게 되었다. 작가는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떠올라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또 어디선가 송아지처럼 힘없이 당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가슴 아팠을 것이다. 그 참담함이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기존에 밝고 따뜻한 느낌보다는 무채색의 어두움으로 힘겨운 감정이 묻어난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 작업과는 달리 작품을 바라보고 미소나 웃음이 나지 않는다. 분명 이 송아지도 어떤 소의 자식이었고. 어떤 소의 친구였고. 사랑받아야 마땅할 생명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연민과 사과 ● 이번 전시에 선보인 「뭉치와 코코」(2020), 「뭉치와 호호」(2020) 작업에도 작가의 공장식 축산시스템에 고통받는 동물을 품어주고 있다. 작가는 최근 집중하고 있는 것이 동물의 뼈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가 축산시장에서 소와 돼지 뼈를 포대자루에 이고 작업실로 갔다. 그 작업실에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뭉치가 있었다. 말해주지 않으면 어떤 동물인지, 어떤 모습이었을 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뼈 옆에 사랑을 가득 받고 자란 반려견과 함께 보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뭉치 옆에 기대어진 소와 돼지를 애도하는 마음에 작가는 이름을 지어주고 뭉치의 색을 입혀주었다. 그들은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작가가 작업을 통해 마음껏 주었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인간에게 유리하게 살기 위해서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과 약자들에게 연민과 위로, 그리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존과 공생 ●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일관된 관심사는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생명과 본질에 대한 관심이었다.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생물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서로 더불어 얽혀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동물과 공생(symbiosis)한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존(coexistence)해야 하는 관계이다. ● 작가는 오늘도 홀로코스트적인 도축장을 떠올리면 무자비한 학대에 고통받는 동물들에게 자신이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눈물지을 것이다. 그래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작가의 작품을 본 이후로는 고깃집에 붙어있는 귀여운 돼지, 소, 닭 등을 보며 애잔함을 느껴 보길 바란다. 작가는 우리들에게 소외된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여 달라는 메시지로 매순간 일깨워 준다. 작가는 감상자에게 육식을 거부하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굳이 참혹한 도축장에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작가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다면 작가는 자신의 노력에 보람이 될 것이다. ● 누군가는 작가의 작업을 소장하고 싶을 것이다. 단지 작가가 작품에 담은 내용과 상관없이 의인화된 동물이 귀엽고 따뜻해서 일 수도 있다. 관람자가 꼭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메시지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마주한 이후에는 우리에게 작은 변화를 기대한다. 쉽게 깨지는 특성을 가진 '도자'작품을 애지중지 다루 듯, 동물을 소중히 다루어 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꼭 전해지기를 바란다. ■ 김연혜
Vol.20201224c | 네이버 아트윈도×갤러리세인 서울아트쇼 초대작가 온∙오프라인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