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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인스타그램_instagram.com/choi_jaehyu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마리 GALLERY MARIE 서울 종로구 경희궁 1길 35 Tel. +82.(0)2.737.7600 www.gallerymarie.org www.facebook.com/gallerymarie.org www.instagram.com/gallerymarie_
갤러리 마리는 2020년 마지막 특별 초대전으로 12월 15일부터 최재혁의 『Still Life of Planet』를 개최한다. 최재혁 작가는 좀 더 충격적이고 좀 더 튀어야 살아남는다는 동시대 대한민국 젊은 작가들의 각축 가운데 차분하고 꾸준하게 그러면서도 새로움과의 균형 맞추기로 자신만의 화풍에 천작하는 작가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 이른바 시인이자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주장한 소격효과Verfremdung는 다른 말로 낯설게 하기로 지나친 과몰입과 감정이입을 경계하여 객관적 시각을 갖게 하는 기법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동안 바쁘고 성취지향적인 우리 일상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보다 새로운 것,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사이 소중한 것들과 냉철한 의식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예술과 미술 작품에 대한 소구와 태도 역시 지나친 과몰입으로 작가와 작품 모두 본연의 정체를 잃고 부유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 이번 최재혁 작가의 『Still Life of Planet』展에는 사물에 대해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편집해 차려낸 온기 가득한 그의 정물화 30여 점이 전시된다. 그의 Still Life들은 언젠간 사라져버리는 한갓 물건들이 아니다. 모든 색色은 공空이고 무화無化 되지만 그의 작품 속 사물들은 아직 스러지지 않고 살아있는 중이며 그래서 공허한 허무가 아닌 것이다. 그의 정물화는 우리와 함께 했던 일상의 물건들에서 시간을 지운 낯설게 하기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의 캔버스 안으로 이송된 그의 영원한 현재 소환 프로젝트 『Still Life of Planet』展이 난세에 위로가 되는 예술 작품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길 기대한다. ■ 갤러리 마리
바니타스vanitas_한순간 피어나 꽃처럼 지고 마는 허무에 관하여 ● "그들은 책들로 가득한 이 벽들 사이에서, 그들이 언제나 유일한 사용자로 창조했다고 믿을 만큼 완벽하게 길들여진 아름다운 사물들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고 단순하며, 부드러우며 반짝이는 이 모든 사물들 속에서 앞으로의 삶도 언제까지나 평안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1) ● 영원할 것 같이 보였던 권력과 부와 명예, 그 어느 것도 타나토스의 운명 앞에서는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온갖 물건들 사이에서 인간은 행복했고 욕망을 꿈꾸었으며 자만할 수 있었다. ● 과거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는 중세 말의 비극적인 세계 경험과 이어진 칼뱅주의의 감화로 인간의 세속적 쾌락과 성취,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불가피하게 상실할 수밖에 없고 무한할 수 없는 인간 삶의 근본적인 갈등을 회화의 소재로 삼으며 탄생했다. 화가들은 과일이나 꽃, 화려한 장식품, 촛불, 깨진 술잔, 죽은 새, 해골 등 정물을 배치하고 재현하며 여기에 바니타스 암호를 숨겨놓았는데 물질과 육체가 지닌 무상함을 은유와 알레고리로 표현했던 것이다. ● 한편 반짝거리는 고가구와 장식품, 화려한 꽃, 탐스러운 과일과 매끄러운 도자기, 광택이 반지르한 빈티지 자동차까지 최재혁의 정물화에 숨겨진 은유와 풍유를 찾아내려는 시선은 어느새 각각의 그것들이 시간이 탈각된 채 배열되어 우리의 시각의 장 앞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가구의 경첩은 녹슬지 않았고 도자기의 이는 빠지지 않았으며,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이제 공장에서 막 출하된 것처럼 보이며, 청동 향로는 이끼를 내뿜지 않고 자리하고 있고 꽃은 시들지 않았고 과일은 과육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보인다. 사실 모든 정물화는 바니타스다. 그렇다면 최재혁은 사물들에 어떤 바니타스를 숨겨 놓았을까? 작가는 여기서 제각기 모든 기물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채집하여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유한한 인간의 삶을 대비시키는 대유법을 사용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_죽음의 기억과 재현에 관하여 ● 과거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돋보이는 모티프는 책과 시계, 꺼진 등잔과 촛불 그리고 해골이었다. 책은 지식의 무용함을, 그 외 물건들과 해골은 죽음과 부패를 상징하며 보는 이에게 번역을 요구해왔다. 정물화는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지시어를 내린다. 그러나 죽음이 가져오는 허무함은 삶의 의지를 상실하는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유한함에 대한 자각이고, 영속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허무함으로 겸손과 절제를 우리에게 가르치며 매 순간 가슴 뛰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 최재혁의 정물은 그러나 죽음의 직설적인 번역을 요구하는 대신 다른 어휘로 돌려 놓는다. 즉 사라질 것들의 몰락이 아닌 존재하는 것들의 찬란한 현재이다. 각각의 현재에서 돌출되어 나온 그것들이 하나의 장에서 새로운 조합을 이루고 재현된다. 원래 그것들의 소유주였던 인간의 시간과 흔적은 지워지고 맑고 투명하게 본연의 자태를 드러냄으로써 현재성을 부각시킨다. 깨지고 부식되고 부패하고 꺼져버린 그것들이 아닌 납작하게 만들어진 현재 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과거를 투영하고 미래를 선취하여 생기는 상처와 불안이 주는 공포의 각질을 제거시키고 오로지 현재에 머물게 해준다.
사물의 온기_욕망과 절제 사이 그리고 'Still Life of Planet' ● 사물은 인간에 의해 생산되어 인간의 부족과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이지만 인간은 늘 새로움이라는 판타스마고리(마술환등, 환영과 같은 허깨비)에 도취되어 새로운 욕망과 새로운 자극을 원하기에 사물은 이제 인간을 지배하는 우상이 되어 버린다. 소유하는 그 순간에 다시 또 새로운 사물에 대한 욕망의 꿈틀거림은 사물에게서 온기를 빼앗고 인간을 조작된 욕망의 물신주의자로 전락시킨다.
최재혁의 정물들은 시간을 지운 유려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지만 이른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속 쇼윈도의 조작된 욕망의 매커니즘으로서의 차가운 사물들이 아니다. 새로움의 가면을 쓰고 외형만을 바꾸며 업그레이드 되는 자본에 의해 조작된 번쩍거리는 욕망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과잉 소유와 무절제한 탐욕으로 삶에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물신에 지배되는 삶을 오히려 경계시킨다. 현재의 삶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물화 되고 각질화된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렇기에 매순간 각성과 절제가 요구된다. 그가 오래된 골동품에게서 시간의 각질을 벗겨내고 깨끗하게 닦고 광을 낸 이유이다. 욕망과 상품성으로 본래의 온기를 빼앗긴 사물이 그의 정물화에서 온기를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물화 속 오브제의 하나인 김환기의 그림은 옥션 최고가 경신과 오버랩 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좋아하던 혹은 좋아하는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다. 작가는 또한 사물들의 배열을 위해서 민화의 책가도와 오방색을 차용했다. 오방색은 곧 우주와 행성을 표징表徵 한다. 시간과 욕망으로부터 유리된 그의 'Still Life of Planet'이 유유히 제 온도를 지키며 유영할 때 물신성에 내어준 우리 자신의 자리도 찾게 될 것이라 희망해본다. 그렇게 최재혁의 정물은 헛된 집착과 환멸의 순환에서 벗어날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하며 우리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 차경림
* 각주 1) GEORGES PEREC, 『사물들』, 허정은 역, 세계사, 1996.
Vol.20201215h | 최재혁展 / CHOIJAEHYUG / 崔在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