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0_1215_화요일_05:00pm_갤러리 에무
참여작가 정종미_김미경_정재진
주최,주관 / (재)종로문화재단 후원 / 종로구_서울문화재단_N개의서울
오디오미술평론(정종미 편 듣기) ▶ www.podbbang.com/ch/15363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휴관
페이퍼 갤러리 PAPER GALLERY 서울 종로구 효자동 자하문로 68-19 제1전시실 Tel. +82.(0)2.3290.2388 blog.naver.com/sosimhun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 정종미의 채색화 재구성과 여성주의 미학 ● 1. '채색화'를 질문하기 ● 정종미는 한국 채색화의 역사적 흐름과 의미, 특색을 탐색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데 열정을 쏟아왔다. 여기서 '나름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방향성 혹은 영역으로 수렴된다. 천, 종이, 안료 등 채색화를 이루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가 그 하나라면 '어머니'로 대표되는 한국역사 속 여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표현욕구가 다른 하나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한국화 내부에서 배척되어야 할 일본적이고 비정신적인 것으로 폄하된 채색화의 위치성에 동의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구려 벽화나 고려불화, 조선시대 궁중의 영정화나 민화 등 채색화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는 한편, 재료의 물성과 재현 대상과의 관계를 질문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화 작업의 토대를 마련한다. 채색화에 대한 상이한 가치 규범적 판단이야말로 미학체계가, 아니 미적 감수성조차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역설하고 있기에 화가 자신과 재현 대상, 그리고 재료의 관계는 정종미의 채색화 실험에 핵심적인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채색화로 체현된 '한국적 미감'과 전통문화의 현재화를 시도하는 정종미의 작업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민족이나 전통 등 본질주의적 성향이 짙은 범주로 환원시킴으로써 문화민족주의로 읽힐 위험도 있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미학이 열등하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한 채색화와 문화 이데올로기로서의 가부장제가 지속적으로 역사에서 배제시켜 온 여성을 만나게 함으로써 그녀의 채색화 작업은 미학 규범 체계와 가부장적 사회 규범 체계 모두에게 명백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 특히 근대 이후, 정치ㆍ경제 등 공적 영역에서는 배제된 채 양육ㆍ돌봄 등 사적 친밀성 영역의 주 담지자로 호명되어 왔다. ● 여성주의는 이러한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항해 '사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는 명제를 정립하고 여성의 평등한 시민권 확보를 위해 투쟁해 왔다. 여성주의 미학 또한 제도로서의 상징규범 체계가 남성/적 권력 구조의 산물임을 밝히면서 지워진 여성예술가들을 발굴하는 한편, '무엇이 가치 있는 작품인가'에 대한 질문을 '누구의 관점에서 왜 어떻게'라는 맥락적 논쟁의 장으로 이동시켜왔다. 여성주의 미술사 연구는 미술사가 교육체계, 후원제도 등 여러 가지 사회 세력들과 문화 이데올로기적 담론체계가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밝혀냄으로써 '위대한 예술가'의 신화적 성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여성'의 문제가 함축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비판적 관점을 강조해 왔다. 미술사의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근본적인 전제들을 정치경제적ㆍ사회문화적 맥락 속에 새롭게 위치시킴으로써 여성주의 미학은 가치판단체계나 미술사 기술, 여성(성)과 남성(성) 등 정체성의 구성 그 자체를 주류권력의 담론적 효과로 밝혀낸다.
서구화가 곧 근대화였던, 그리고 근대화의 구체적 양상을 식민공간에서 경험했던 한국에서 현대 미술은 문화제국주의와 문화민족주의의 기묘한 착종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서양화'를 도입ㆍ번역하는 과정에서 서구 모더니즘의 정언 명령에 따라 '형식적 성찰'의 길을 가면서 동시에 이것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전통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한국적 회화양식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서화일체를 토대로 하는 수묵화/문인화가 발견되었고, 이것은 채색화와 동일시된 '일본화'와의 대립 속에서 한국적인 양식으로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로써 '서양화'의 영역에서는 가장 전통적인 것으로 간주된 문인화와 (회화의 자율성 추구라는 관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간주된 서구 추상표현주의가 만나 독특한 형태의 한국식 추상화가 정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나중에 탈식민 관점에서 '한국화'로 명명된) '동양화'의 영역에서는 채색화의 전통이 철저하게 지워지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생활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이식된 서구 미술의 이념과 사대부 남성들이 주도했던 한국 문인화 전통의 이러한 접합은 캔버스에서 지속적으로 구상성과 현실 관련성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으로서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의식을 갖기 힘들게 만들었다. 여성적 주체로서의 표현양식이 분명한 작품들 또한 그에 합당한 해석과 이해를 받기 힘들었다. ● 정종미의 '채색화' 작업들은 바로 이러한 미적 정치학 또는 정치적 미학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정종미의 작업은 민족주의적 문화전통 복원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혹은 실제로 일정 부분 맥을 같이 하지만) 여성으로서 '여성들'을, 다시 말해 그녀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채색화로 표현할 것을 고집함으로써 바로 그 민족주의적 문화전통의 핵심인 남성중심성을 여성/주의적으로 질문하고 재구성한다. '종이 부인'과 '보자기 부인' 작업은 무엇보다도 여성주의 미학이 강조해온 내용과 형식, 그리고 매체의 상호연관성을 확연히 보여줌으로써 여성/적 표현을 향한 그녀의 강한 의지를 더욱 강조한다.
2. 젠더 관점에서 본 장인적 예술과 여성주의 미학 ●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운명처럼 종이를 '만난' 정종미는 이후 장인의 태도로 채색화 재료를 연구하고 직접 만들고 변형시키며 재료 자체를, 아니 재료를 만들어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창작의 본질적 구성요소로 포함시키게 된다. 이번 전시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지속된 이러한 작업태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으로 주목했지만 이것을 여전히 장인 대 예술가의 대당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장인의 능수능란한 기술과 예술가의 상징적 의미 생산을 차별적인 것으로 보는 바로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오랜 시간 여성들의 창조적 활동과 그 결과물들을 예술과 무관한 것으로,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해온 주류 제도 미학규범의 핵심이었다. 자수나 퀼트, 보자기 등 여성들이 생활세계를 꾸려가면서 혼자서 혹은 공동체적으로 만든 다양한 생산품들은 예술이 아닌 '공예품'으로 분류되었고 이로써 오랜 시간 여성'예술가'는 탄생할 수 없었다. 여성들이 '손'으로 만든 이 생산품들은 위대한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간주된 것이다. ● 그러나 손(몸)과 머리(정신)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심지어는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보는 이런 관점은 후기근대의 반성적 사유 속에서 통렬히 비판받았다. 몸과 마음/정신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상호규정적ㆍ상호구성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이제 인간 이해의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토대일 뿐 아니라, 장인이야말로 모든 것을 화폐자본의 논리로 환원시키고 노동자를 철저하게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현 금융/재난자본주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의식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종미의 작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장인'은 '생각하는 손'을 지닌 사람이다. 장인은 '일 자체의 객관적 가치'를 믿기에 외곬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다. 현대문명은 바로 이 장인의 '생각하는 손'을 잃어버렸다. 안료를 포함해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만들거나 장지, 천 등 재료의 물성에 깊이 천착하며 재료와 하나가 되는 정종미의 작업태도는 장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공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재료가 지닌 그 미세한 질감과 미감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그녀의 손은 만드는 일과 생각하는 일, 그리고 심미적 쾌감을 창조하는 일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보여준다. 여성예술가 정종미가 지니는 장인으로서의 면모는 또한 장인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기에 흥미롭다. 예술과 기술이 서로 명백히 구분되지 않던 시절에 존경받는 장인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열함과 답답할 정도의 외곬로 상징되곤 하는 장인에 여성은 속할 수 없었다. "여자로 살면서 수묵화를 그릴 수는 없었다. 다른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아 일품을 그려내는 일은 살림하는 여자로서 가능하지 않았다." - 그녀는 채색화에 더욱 몰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정종미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예술가들에게서도 나는 비슷한 말을 종종 듣는다. 아무리 살림에서 자유롭다고 해도 결코 '살림'과 무관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여성들에게 작업의 형태와 재료, 추구하는 의미는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작업을 하는 여성일지라도 그 여성의 작업에는 살림하는 사람의 실존적 조건이 드리워져 있다. 수묵화든 명품을 만드는 일이든 일체의 생활세계적 실존에서 해방된 채 (고립된 채) '그 일에만 몰두한다'는 건 여성들에겐 우습게 들린다.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으로 보인다. 여성 장인의 '생각하는 손'은 살림, 즉 (사람이든 환경이든) '살려내는 일'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종이 부인'이나 '보자기 부인'이 심미적으로 우리에게 역설하는 '여성의 진실'이다. 이 진실의 척도로 보면 일품화적인 수묵화보다 여성이 한땀 한땀 바느질을 떠서 만든 보자기가 더 격조 있(을 수 있)다.
3. 지화/보자기 부인 ● 이번 전시에서 '지화/보자기 부인'은 아미타여래와 관음보살, 그리고 지장보살의 몸으로 현신한다. 전 세계적으로 그 화려함과 세련된 섬세함, 수려함으로 극찬 받는 고려불화를 일종의 배면처럼, 후광처럼 깔고 등장한 이 '부처/보살이 된 지화/보자기 부인'은 정종미의 작업주제가 도달한 어떤 지평 혹은 비전의 단계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려불화를 '진리의 꽃'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가 주는 메시지는 "지화/보자기 부인은 깨달은 사람이다. 지화/보자기 부인의 삶이 바로 진리의 꽃/밭이다"는 사실이다. 아미타불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를 중심으로 하는 정토계 불화는 현존하는 불화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다. 이것은 불화를 둘러싼 의례의 핵심이 행복과 위로 그리고 구원에 대한 기원이었음을 드러낸다. 즉 갈등이나 고난, 도전이 그치지 않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삶의 내세적/초월적 지향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삶이, 그 현장이 고려불화의 찬란하고 미려한 아름다움의 토양이었던 것이다. 종이 부인/지화부인/보자기 부인에게서 우리는 부드럽고 강인한 장지(壯紙)처럼, 대상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감싸 안고 품는 보자기처럼, 갈등이나 고난, 도전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품고 지켜낸 여성들의 모습을 또렷이 본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는 물이 생명수임을 깨달은 바리공주처럼 이들에게 더 이상 내세와 초월의 구별은 없다. 이들은 해탈해서, 즉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서 부처나 보살이 된 것이 아니라 진흙탕의 삶과 진리의 꽃밭이 한 몸임을 알기에, 그 앎을 몸으로 살아내기에 '이 여자', '그 여자'이면서 관음보살이고 지장보살인 것이다. ● "우리 집에는 위안부로 갔다 돌아온 할머니가 함께 살았다. ... 아버지가 길에서 발견해 집으로 데려와 치료해서 살렸다. 전쟁이 끝나 한국으로 되돌아왔는데 갈 곳도 없고 황달에다 간도 상한 채 길에 쓰러져 있었던 거다. 오갈 데 없는 분이라 나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정부 비슷하게 함께 살았다. 내 바로 위 오빠, 나, 그리고 동생을 그 할머니가 키웠다. 내 동생에게는 거의 엄마 같은 존재다. 나도 친할머니보다 그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대학 1년 때 돌아가셨는데, 살면서 그분 생각이 자꾸 자라나는 걸 느낀다. 남의 가정에 들어와 평생을 희생만 하다 돌아가신 분 ... 이런 분들에 대한 생각이 나한테는 중요한 화두다." ● 이 할머니가 관음보살이고 지장보살이고 아미타여래다. 이 할머니의 삶에는 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해야 했던 그녀 어머니의 삶과 할머니의 손에 의해 성장한 그녀의 삶이 중첩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민과 전쟁과 가부장제와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 할머니의 보살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종미의 작업세계가 한국의 미, 한국의 색, 한국여자 등 어떤 전형성을 표출하고 있다면 이 전형성은 각각의 여성들이 살아낸 삶의 구체적이고 질료적인 특성과 이야기를 지우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숨은 역사(役事)를, 주류 역사(歷史)가 삭제한 바로 그 역사(役事)를 그 안에 다 품어 안는 '지화/보자기'의 전형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각각의 여성들 안에는 일정한 능력과 힘의 용량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지화/보자기는 그 용량들의 총합이며, 동시에 그 용량들이 구현된 개별적 삶 하나하나이다. 지화/보자기 여성'들'의 역사(役事/歷史)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우리를 기다릴지, 좋은 전시가 그렇듯이, 이번 전시를 두고 벌써 다음 전시가 궁금해진다. ■ 김영옥
Vol.20201215c | 삼인거 三人居 - 정종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