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거 三人居 - 정재진

2020 지역문화진흥사업 N개의 서울: 종로 서촌 네트워크 작가展   2020_1215 ▶ 2020_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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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1215_화요일_05:00pm_갤러리 에무

참여작가 정종미_김미경_정재진

주최,주관 / (재)종로문화재단 후원 / 종로구_서울문화재단_N개의서울

오디오미술평론(정재진 편 듣기) ▶ www.podbbang.com/ch/15363

관람시간 / 10:00am~06:00pm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제2전시실 Tel. +82.(0)2.730.5514 www.emuartspace.com

삶의 이면을 비추는 빛의 샤머니스트 ● 미디어아트는 예술과 관람자를 '혁신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이다. 그 혁신적인 체험을 통해 관람자는 예술에 대한, 때로는 삶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정재진의 작업이 바로 그렇다. 그는 익숙한 소재일지라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표현기법을 고안해 기어이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해낸다. 그 결과물은 관람자에게 대개 감탄(판타지 퍼포먼스 「무사 MUSA : 불멸의 영웅들」)과 감동(전국체육대회 개폐막식 공연)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충격(뮤지컬 「신과함께」과 비탄(뮤지컬 「서편제」)을 제공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만들어낸 환영(일루전)들이 그런 감정의 스펙터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로 관람자를 이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재진이 지향하는 작업은 단순히 인상적인 예술이 아니다. 시각적 쾌감은 물론, 때로 심리적 변화까지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일종의 주술적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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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을 뒤집는 낯선 표현의 위력 ● 정재진의 작업은 대개 익숙한 주제와 소재를 관습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정형화된 방식에서는 관람자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참여했던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폐회식 행사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제작한 블록버스터 공연 「무사 MUSA : 불멸의 영웅들」이 그랬다. 특히 이들은 정재진이 여태까지 거쳐온 전시나 공연과는 그 성격도 규모도 달라 그에게 특별한 도전이 됐다. ● 전국체육대회 개폐막식은 마치 100회의 찬란한 역사를 기념하듯 '뭇별'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정재진에게 던져주었다. 이 스포츠 이벤트의 주인공은 100회의 대회를 거쳐간 선수들이 확실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주인공인 시민들까지도 아우르려는 대담한 기획이었다. 대형 경기장에서 '우주'라는 공간과 '뭇별'이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것은 자칫 전형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때 정재진은 바닥 프로젝션을 활용한 '빛의 바다'를 떠올렸다. 잠실종합운동장 공중에 설치된 270m의 뫼비우스의 띠 구조물과 연동해, 그 아래 430m에 이르는 운동장 바닥을 프로젝션 맵핑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0여 대의 프로젝터를 과감하게 동원했다. 그렇게 관객들은 태초의 빛이 우주의 빅뱅을 거쳐 뭇별의 입자들로 변하는 거대 서사의 목격자가 됐다. 또 빛이 신경망처럼 퍼지며 한반도의 형태로 바뀌고 서울의 지도로 이어지는 '빛의 파장'은 이런 종류의 대형 이벤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 흡사 '태양의 서커스'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 「무사 MUSA : 불멸의 영웅들」에서는 47m 반구(半球) 형태 세트에 프로젝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극장의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니라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휘어진 형태의 무대는 정재진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더욱이 고대 신화를 모티프로 천상과 저승을 오가는 판타지 서사에 몰입을 유도하려면 임장감을 극대화하는 영상 연출이 필요했다. 그때 그가 선보인 아이디어는 공간을 낯선 색감과 디자인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신화의 바탕이 되는 천상이나 저승이 결국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통찰에서 비롯됐다. 즉 기존의 서정적인 천상이나 공포스러운 저승의 분위기 대신 독자적인 형태와 색채감으로 공간을 재해석하여 마치 지구의 공간이 아닌 듯한 느낌을 그려낸 것이다. 익숙한 소재일지라도 생경한 표현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정재진의 개성이 여실히 발휘된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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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철학에서 비롯된 빛의 테라피 ● 뻔한 것을 지양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 태도는 정재진이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한 공연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그는 영상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기존의 무대 관습이 아니라 작품의 텍스트에서 발견하려 했다. 소재나 장르에 따라 이미지 창고에서 꺼낸 듯한 영상만을 반복한다면 결국 아티스트로서의 개성도 퇴색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그런 철학이 제대로 발현된 작품이 뮤지컬 「서편제」였다. 당시 '한국적' 소재나 정서를 차용한 공연들은 한국화의 상투적인 패턴을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형을 따르는 대신 대본 분석에 집중한 그는 주인공의 한이 예술혼으로 승화되는 데서 작품의 정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정수의 매개로 선택된 것은 묵화였다. 주인공의 한을 체화하듯, 원화 작가와 함께 밤을 새워 한 장 한 장 그려낸 묵화에는 주인공과 정재진의 한의 정서가 오롯이 담겼다. 화면을 가득 메운 묵화의 묵직한 필치에서 순도 높은 슬픔과 고통의 정서가 느껴졌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 정재진이 맡는 작품마다 이렇듯 무겁고 진지하게 헌신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치유'의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겪었던 주변인의 잇따른 죽음과 연관돼 있다. 인생의 주요 지점마다 맞닥뜨렸던 중요한 존재들의 소멸과 이별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를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나선다. 라이선스 작품이 아니라 창작 작품 중심으로 활동해온 것도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위안과 감동의 테라피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 그가 샤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삶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과연 샤머니즘과 닮은 데가 있다. 이런 그만의 직업의식은 2017년 박노수미술관에서 작업한 「성하의 뜰」 전시에서 십분 활용된 바 있다. 박노수 화백의 생전 작업 모습과 현장을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재현한 전시는 고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공간에서 그와 만나는 유사체험으로 이슈가 됐다. 활자 텍스트만으로는 대상을 체감하기 어려운 시대, 돌아간 자와 남은 자들의 만남을 주선한 샤머니스트의 존재감이 유독 빛났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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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심지어 죽음 이후에도 ● 그렇게 죽음을 포용하며 살아가는 자의 태도는 뮤지컬 「신과함께_저승편」에서도 나타난다. 무대 바닥에 LED를 설치하고 해학이 담긴 간판을 걸며 저승과 지옥의 느낌을 생생하게 구현한 작품은 윤회의 세계관을 통해 관객으로부터 '더 잘 살아야겠다'라는 반성을 이끌어낸다. 이는 죽음마저도 삶의 일부라는 원작의 메시지가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 예였다. ● 정재진의 작업이 이렇듯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감동과 즐거움 외에도 그만의 독특한 시각에 비결이 있다. 그는 모두가 정면을 바라볼 때 그 후면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익숙하고 전형적인 것 대신 낯설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이다. 이런 개척의 길은 고되고 실패의 위험도 크지만, 성공의 파장은 배가 된다. ● 그의 개척사는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싱잉 인 더 레인」을 시작으로 「팬텀」, 「RAY」 등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상하이음악청의 「꽃처럼 지는 청춘」으로 중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 한국화단의 원로인 운원 신현조 화백과의 협업도 이어가며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적극 수용하기도 한다. 이런 열정적인 행보의 에너지가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은 왠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묘한 이질감이야말로 미디어아티스트 정재진의 희소성을 입증하는 증거일 것이다. ■ 송준호

Vol.20201215b | 삼인거 三人居 - 정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