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재각_남진우_부지현_왕현민 윤진초_이승희_인송자_전영일_최정화
관람시간 / 상시관람가능
수성못 일대_두산폭포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2020 제2회 수성빛예술제의 일부 행사로서 수성못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공공미술프로젝트입니다. 제1회 수성빛예술제가 지역의 대표작가들로 구성된 전시였다면, 제2회 전시는 확산과 공유의 의미를 담아 햇살처럼 모두에게 다가가는 작품으로 준비했습니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조용히 일렁이는 호수 표면을 보고 떠오른 문구입니다. 수성못은 1927년 조성된 인공호수입니다. 호수 위에 떠있는 둥지섬은 새들의 집이기도 합니다. 수성못에는 나비넥타이를 맨 오리배가 있습니다. 조금씩 때국물을 묻힌 채 돌아다니는 오리배는 1970년데 휴양지 정서를 풍기면서 회상과 동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수성못에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미술가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주는 장소가 있는데, 근대미술가 박명조의 후손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그곳입니다. 수성못은 대구시민에게 문화적 영감을 주는 매우 아름다운 도심 속 휴식처입니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에 참여한 작가들은 수성못을 보고 단번에 그리고 기꺼이 참여를 결정하셨습니다. 이렇게 모여 제2회 수성빛예술제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 전시가 구성되었습니다. ● 2020수성빛예술제의 예술제는 주민참여형 축제를 보조할 목적으로 구성된 것이기는 하나아주 가까이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으므로 예술이 지닌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현장 속에서 생생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본령이자 감성학의 현장이 아닐까 합니다. ●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 예술제는 자연과 예술,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잔잔하게, 끊임없이 흩어지고 모이는 물결에서 우리의 관계를 반추해봅니다. 물결과 물결이 이어지고 서로 융합되는 관계망(網)의 일원으로서 다양의 가치가 공존하며 예술 또한 우리 삶에 기여하는 중요 가치라는 점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왕버들에게 말을 건네는 붉은 꽃(최정화), 수성못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 엄마곰 핑크베어(윤진초), 회화도자로 만들어진 탑(이승희), 항상 깨어있는 물고기와 보름달, 나무(전영일), 한밤의 수면과 둥지섬을 비추는 등대(부지현), 소쿠리 오솔길(최정화)과 무한 망의 스텐레스 구름(김재각), 신전기둥에서 유추해낸 빛의 기둥(왕현민), 빛나는 사람 속에서 자라나는 사유의 가지(남진우), 낮게 드리운 푸른 달의 꿈(인송자)이 상화동산과 도로 옆 산책길에서 호수의 정령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천천히 거닐며 혹은 잠시 머물며 자연, 예술, 사람이 섞이는 우주적인 관계 속에서, 흐르는 빛을 따라 삶 속에 예술이 스미고 예술 속에 삶이 들어오길 소망합니다. (2020. 12.) ■ 남인숙
공공미술로 재현된 문화풍경-수성못에 예술의 빛이 머물다 ● 미술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서 시작되지만, 단순히 사적인 감각의 놀이만이 아니다. 미술은 본래적으로 문화를 만들어가고 열어가는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미술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미술일 수 있을까? 우리의 대답은 분명하게도 '아니오'이다. 미술은 미술가의 조형적 언어를 통한 소통을 자신의 본래의 이름으로 갖는다. 물론 미술에서 촉발되는 소통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현대미술에서 소통의 문제는 1960년대를 전후해서 큰 변곡점을 맞이한다. 미술의 소통이 미술관을 벗어나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여실히 읽어낼 수 있듯이, 이제 미술은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자신의 소통의 계기를 발견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의 역사에서 미술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미술관 초기의 형태가 르네상스 이후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근대 이후, 특히 19세기에 많은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달리 말해 1960년대 초반 이후의 미술은 이전의 미술과는 그 내용과 형식에서 훨씬 더 다양한 조형적 결들을 보여준다. 단토가 주장했듯이,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미술에서 환경, 자연, 생태 등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향과 더불어 미술의 공공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미술관이라는 제약된 공간에서 벗어나자 현대미술은 환경과 새로운 만남을 도모하고, 또한 공공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게 되면서 그 표현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공공미술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시작된 미술이며, 오늘날 공공미술은 특정한 장르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미술이다. ●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왜 공공미술이 요청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간단히 내리기란 어렵다. 공공미술이란 닫힌 개념이 아니라 언제나 열린 개념이고, 규정될 수 없고 언제나 진행 중인 미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가적 의미가 아니라 분류적 의미에서 굳이 정의해 보자면, 공공미술은 공공영역에 설치된 미술작품이나 미술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공공영역은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적 공간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기에 공공미술에서는 장소만이 아니라 소통 또한 중요하다. 실상 지난 50년간 전개된 공공미술을 전체적으로 가늠해 보자면 장소와 소통의 문제가 핵심적으로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경우 2000년대를 전후해서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고, 공공미술과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가 많이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과 실천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을 터이다. 첫째, 무엇보다 공공미술을 하는 각 주체들이 생각하는 공공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정부와 지자체가 생각하는 공공성, 민간기업이 생각하는 공공성, 미술작가가 생각하는 공공성,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공공성 등이 상당할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공공성에 대한 생각의 다름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공성이란 어떤 주체의 이해에 따라 단순히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주체가 동의할 수 있는 공공성이란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다름은 공공미술의 다양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심지어 긍정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각 주체들이 생각하는 공공성의 차이를 미학적으로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중점을 둔 진정한 공공미술의 표상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공공미술에 대한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논의, 특히 공공미술이 행해질 지역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공공미술의 초기 담론을 돌아보면 문제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한 예로 외국의 공공미술의 담론이나 선언문 또는 이론 등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적용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공공미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곳에 공공미술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물음이다. 지역성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 없이 외국의 공공성 담론을 도입해서 공공미술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공공이라는 허울을 쓴 가짜 공공미술의 발언이다. 그러기에 공공미술에서 지역성의 문화와 지역민들의 일상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고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이름만 공공미술이지 진정한 의미의 공공미술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20년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점을 충분히 숙고한 후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참여 작가들의 예술적 조형성은 물론이거니와 수성못이라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미술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고, 또한 어떻게 미술을 시민들의 일상문화에 접목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한 기획자의 심층적인 고민의 흔적을 오롯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 자체에 대한 성찰과 수성못 주변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면밀히 미학적으로 검토하면서,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를 방문한 시민들로 하여금 미술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공공미술을 기획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미술은 시민과 함께 하는 미술이라는 점에서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대중이 함께하는 미술이 아니라 한낱 겉치레만 요란한 미술행사로 전락할 수 있다. 대중의 기호에만 초점을 맞춰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성급한 시도는 공공성에 상응하는 미술을 형성할 수 없을뿐더러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성이 수반되는 공공미술을 이루어낼 수도 없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에는 어정쩡한 이벤트 미술이 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공공미술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이러한 점들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면서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공공미술은 미술관의 전시를 야외로 옮긴 것이어서도 안 되고, 야외 축제나 이벤트의 성격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공공미술은 어디까지나 미술인 것이고, 그러기에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성, 공공성, 시민의 참여 등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간 활용의 측면에서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이러한 어려운 공공미술의 과제를 매우 적절한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 공공미술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핵심은 미술에서 말하는 공공성이란 결국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 호흡하는 곳에서 현존한다는 점이다. 공공미술은 전통적인 작품 감상과는 사뭇 다른 감상의 차원을 보여준다. 공공미술에서 시민들은 작품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감상에서 벗어나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런 점에서 공공미술의 또 다른 이름은 참여미술이며 관계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시민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미술의 아우라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수성못 주변에 있는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 호흡하면서 자신의 일상과 미술이 만나는 순간들을 능동적인 미술의 아우라로 만들어간다. 기획자가 참여 작가의 고유한 예술적 조형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동선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품들을 설치한 덕분에 시민들은 저 멀리 있는 미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곧 자신의 삶에서 현현하는 미술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수성못에서 만나는 빛의 예술은 일상에 숨겨진 예술적 계기들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일상이 미적 경험으로 변용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표상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 수성못에서 만나는 예술의 빛은 일상의 미학을 드러낸다. 빛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빛은 예술로서 우리에게 이 현실과는 또 다른 현실로 인도한다. 실상 빛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이해 또한 달라진다. 19세기 전기가 발견되면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빛은 서서히 뒤로 물러가고 일상으로 깊이 들어온 친숙한 빛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일상의 빛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성못에 흐르는 빛은 예술로 환기되고 변용된다. 이제 이곳은 미학적 표상이 다채롭게 촉발되는 예술적 공간이 된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어떻게 공공미술이 지역의 문화 풍경을 만들어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공공미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지점, 곧 예술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미술의 형식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이번 예술제에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삶과 예술의 관계 양상을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성못의 지역성과 역사성에 상응하는 공공미술의 형식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기에 공공미술로 인해 생겨나는 예술적 감흥이 더욱 증폭된다. 2020년 대구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이러한 공공미술의 난제, 곧 미술과 공공성을 예술적으로 결합하는 어려운 문제를 수성못이라는 지역성과 문화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를 예술의 빛으로 이끌어내면서 풀어내고 있다. 겨울, 해질 저녁 무렵 수성못에서 빛으로 현현하는 예술이 만들어가는 문화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임성훈
예술은 소통을 원한다-자연과 문화의 대립을 넘어선 공공미술 ● 밤은 도시인들에게 중요한 휴식과 여가의 시간이 되었다. 평일에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며, 고단한 하루 일과를 뒤로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 밤에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 많지는 않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은 더욱 제한되었다. 공연장, 미술관 등의 문화공간들이 문을 닫거나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여러 사람이 모이는 동호회 활동이나 술자리도 현저히 줄었다. 영화를 보거나 커피나 술을 마시는 것 외의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콘텐츠나 공간이 필요한 상황에, 야외에서 밤에 열리는 축제는 시민들에게 큰 위안과 휴식을 선사한다. ● 제2회 수성빛예술제의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남인숙 예술감독이 기획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전시는 빛 예술을 통해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게 하였고,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초청하여 문화적 경계를 허물고 확장과 흡수를 시도했다. 한편 예술이 일상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에 개입하여 예술과 일상을 교차시킨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인 미술관과 갤러리를 떠나 대중을 위한 공간으로 옮겨 전시할 때 다양한 환경적 변수를 계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술감독은 이런 부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작품 제작 과정에 참여해야 하므로 공공미술 기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는 공공미술 경험이 없는 작가들도 있었음에도 완성도와 야간 야외전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었다. ● 이번 수성빛예술제는 2회째를 맞이하였다. 다른 빛 축제와 달리 '예술제'의 이름으로 야간 축제를 기획한 것도 인상적이다. 과잉 조명, 익숙한 도상이 난무하는 일반적인 빛 축제와 달리,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예술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수성구와 구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공미술 작품은 예술성과 공공성 그리고 대중성을 적절히 절충하여야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미술이 예술성에 천착하여 일방적으로 주제나 예술적 독자성을 주장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나 대중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쉽고 현란하게만 꾸며져도 안 될 것이다. 공공미술은 교육적이고 시대성을 앞서가는 미술관의 현대미술과 대중 예술산업의 중간 정도의 위치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면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구민들의 소중한 세금을 누군가의 업적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모순적 상황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유명 미술가들이 친근하게 소통하기 위해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의미나 작품의 완성도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미술은 오랜 기간 소수의 취미와 소수만이 방문하는 공간에 갇혀 있었다. 이미 공공미술과 행동주의적인 개념들이 미술계에 이론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실천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많은 기획자들과 행동가들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견고한 시스템의 온실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해왔던 많은 미술가들과 시스템을 수호하던 비평은 새로운 도전에 대해 과도한 찬사나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소통을 원해왔다.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기 위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도 해왔고,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작품도 만들어 왔지만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 미술은 어렵고 불편한 것이었다. 이번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규정된 미술 시스템에서 나와 작품이 보호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공공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공공성을 성취하는 형식으로 전시되었다. ● 김재각 작가는 「Infinity Network」과 「즉흥조각-기억의 구름 2020」이라는 두 작품을 출품하였다. 원래 스테인리스 스틸 망을 이용한 철조를 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간접조명을 사용하여 밤에도 작품을 볼 수 있게 했다. 야외전시의 특성에 맞게 작품의 형식이 일부 변형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과 주재료를 유지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이 공공미술 기획 단계에서 전체의 통일성을 주기 위해 작가의 개별적 스타일과 재료를 바꾸도록 하는 것과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재각 작가의 작품은 단단한 재료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적인 부분을 잘 살리면서도 관람객이나 바람 등의 환경 변수에도 변형되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미술관의 미술과 공공미술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 남진우 작가의 「Thinker in Thinking Place」는 빛이 만드는 공간과 조각적 입체가 만드는 공간이 겹쳐지며 물질적, 비물질적 공간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주제는 조금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사유의 개별성과 보편성에 대한 것이다. 빛은 비물질적인 사유를 상징하며, 조각적 요소들은 물질적인 신체, 혹은 세계를 구성한다. 남진우 작가는 낮에는 태양빛이 반사하여 드러나는 조각의 형태로, 어두워진 후 인체 속에서 빛나는 불빛으로 물질적 형상이 드러난다. 작품은 우리의 생각이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 내부에서 빛을 내며 또 한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부지현 작가는 폐집어등(fish-luring light)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에는 집어등으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등대를 만들었다. 「사이(In Between)」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의 상징적 의미를 담아 문명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배가 육지에 들어올 때 걸림돌이 되는 암초를 피해 시각적 위치를 파악하게 해주는 등대의 역할처럼 작품이 개인적인 문제들과 자신의 위치를 반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작품이 발산하는 푸른빛은 내향적이며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며 기억의 감성적인 측면을 건드린다. 부지현의 작품은 상징적 형상들을 사용하여 이성적으로 해석하도록 하는 현대미술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미적이고 감성적인 울림도 동반한다. ● 「Light Column」의 왕현민 작가는 구조의 문제를 탐구한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적 조형물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낸다. 왕현민의 작품은 이렇게 최적화된 자연의 구조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추출하여 예술적 형상으로 승화시킨다. 단순한 조명이 아닌 성찰로 이끄는 형상을 완성하는 빛 조각을 만들어낸다. 야외라는 환경적 조건 속에서도 안정성과 견고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Light Column」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구조적 형상이라는 점에서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요소인 환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윤진초 작가의 작품은 전시의 랜드마크처럼 수성못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거대한 핑크색 문양이 새겨진 곰 모양 벌룬의 제목은 「엄마 곰 : 핑크 포레스트 (MOTHER BEAR: PINK FOREST)」이다. 윤진초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원시미술과 신화적 모티프를 소재로 어린이 미술 콘텐츠 및 다양한 형식의 예술적 콘텐츠들을 생산하는 작가이다. 「엄마곰」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를 나타내기도 하며, 신화 속 한민족의 어머니인 웅녀를 의미하기도 한다. 겨울에 열리는 전시를 위해 제작된 이 작품은 「핑크포레스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추운 겨울이라는 환경적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간직하고 있는 숲의 강인함을 의미한다. ● 젠(禪) 타오(道)와 같은 동양철학과 종교를 주제로 작업하는 이승희 작가는 원래 공예의 영역이자 3차원적 생산물인 도자를 고정된 장르와 형식을 통합시켜 평면도자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평면작품은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에 입체로 변형하거나 재료를 변형하여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승희 작가의 「스투파」는 작품은 그대로 둔 채 탑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야외 공간에 전시할 수 있었다. 작가는 작업 방식을 바꾸지 않고 설치 방식만 변화시켜도 충분히 공공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했으며, 예술감독과의 소통과 협업의 중요성을 짐작게 하였다.
이번 전시에 「보름달」, 「조화」, 「푸른 나무」 등 6점의 작품을 출품한 전영일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였고 이후 전통 등을 연구한 작가이다. 우리나라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등의 형식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스테인리스 스틸로 작품의 프레임을 만들고, 한지를 덧대어 그 위에 정교한 채색을 하는 방식은 기존의 등 제작자들과 다른 예술성과 노련함을 보여준다. 등조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조명이 없이도 어두운 밤에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국적 전통 이미지에서부터, 역사적인 사건들, 현대적 삶의 단편들을 하나의 연속적 사건으로 엮어 한국적 미술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제안한다. ● 최정화 작가의 「겨울 정원」과 「겨울 꽃」은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올리고 그 안에 조명을 넣은 작품과 나무에 꽃을 설치한 작업이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된 플라스틱을 소재로 반짝이는 상품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통행로에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만든 여러 개의 구조물은 초록빛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며, 나무에 붉은 꽃을 달고 조명을 설치하여 한겨울 밤 마른 가지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이 두 설치작품은 생명력이 숨을 죽이는 한겨울과 밤에도 빛을 발하며 인공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만들어내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 상화동산에 설치된 인송자의 「푸른 달의 노래」는 도시인의 밤을 달래주는 달을 주제로 제작되었다. 도시인에게 달은 하루의 일상 끝에 만나게 되는 휴식이며 근시안적인 시선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만나게 되는 경이로운 대자연이다. 인송자 작가는 다섯 개의 푸른 달을 낮은 곳에 설치하여 우리의 시야가 머무는 곳에서도 달을 볼 수 있게 하여 쉽게 달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인송자 작가의 작품은 조명과 예술의 경계에서 조화를 이루며 시각예술 영역의 고답적인 형식을 넘어선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익숙한 풍경을 소재로 형식을 실험했듯이 인송자 작가는 달이나 꽃과 같은 단순하고 접근하기 쉬운 주제를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형상으로 재현하여 빛과 색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전시에는 위에 언급한 아홉 명의 작가 외에도 국외 작가들이 참가하였다. 톰 프루인(Tom Fruin)과 제이슨 크루그먼(Jason Krugman)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톰 프루인의 「오두막(Odumak)」과 제이슨 크루그먼의 「Digital Geology- Boulder」는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거쳐 제주와 대구에도 오게 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신작일 필요가 없는데, 어떤 장소에 어떻게 설치되고 어떤 관객들과 호흡하며 완성되는가가 작품의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공공미술 작품은 이제 장소-특정성의 개념을 넘어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러버덕」처럼 하나의 작품이 특정 장소를 찾아가며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지역과 국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대구 수성못에 모여 편견 없는 문화예술 교류의 장으로 만들었고, 국가와 지역 간에 줄어든 교류를 문화로써 충족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 문화교류는 코로나 이후 제한된 물리적 교류와 소통을 해소해 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란 자연과 같이 당연한 환경 중 하나이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처음부터 자연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불을 발견하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지었으며 점차 복잡한 문명을 개척해나갔으며 압도적이지도 않고 너무 하찮지 않아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을 주는 자연을 만들어 왔다. 수성못도 인공 호수이지만 거의 100년의 시간을 거치며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석양이 내려앉은 호수는 바다처럼 거대하지 않고 강처럼 변하지 않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서정적인 감동을 전달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밤은 도시인 뿐 아니라 일을 마치고 돌아와 드디어 개인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이유로 밤까지 운영하는 시설들과 조명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모든 것이 갖춰져야 자연과 여가를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자연'과 '문화 혹은 문명'을 대립시키며 후자를 깎아내려왔던 것은 아닐까? ● 밤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 시간에 소소하지만 기억에 남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삶의 의미는 풍부해질 것이므로 야간 축제의 의미가 특별하다. 매일 산책하는 호숫가에 또 다른 풍경이 생기고, 밤의 낭만이 생기며, 예술의 향기가 퍼져나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무리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가끔은 반복적인 경험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한다. 예술작품과의 만남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익숙한 도상, 예측 가능한 경험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일부러 특정 장소에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 전시는 그런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공공미술 전시임에도 미술관의 작품 못지않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동안 전시공간에서 속닥거리던 미술이 하나 둘 굳게 문을 닫은 미술관을 뛰쳐나와 소통하고자 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공공미술이 활성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야외 설치 심지어 야간 설치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문법을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미술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점차 지역과 환경과 사람과 어우러지는 전시들이 많이 만들어질 거라 기대해 본다. ■ 이수
축제 속 공공미술프로젝트 ● 1. 축제가 대중화, 보편화되었다. 낯설었던 페스티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대형 축제가 보편적인, 대중적인 지역 행사로 자리 잡은 형국이다. 서울특별시가 2003년 5월에 개최한 '하이서울페스티벌(Hi! Seoul Festival)'을 시작으로 각 지자체가 도시 특성을 반영한 문화 전략으로 하나둘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20년 역사다. 이제는 지자체별 특성과 특화 전략으로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지역축제를 열고 있다. 주로 매년 열리는, 이른바 지역 브랜드화된 연례행사로, 하나의 분명한 축제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이들 대부분은 시각예술(visual arts)과 공연예술(performing arts) 등이 결합된, 함께 꾸린 종합적인 성격을 보인다. 관(官) 주도의 축제가 갖는 이러 저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회를 거듭하며, 형식과 내용에 있어 스스로 자정 작용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리예술제, 마임페스티벌, 애니메이션 축제 등등 이른바 지역별로 성격과 형식, 주제의 종다양성도 보이고 있다. 지자체 저마다의 특색을 보다 구체화하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건강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살아남은 축제들은 나름의 기존 전략을 수정, 보완하며 지자체의 정체성을 로고 타입과 엠블럼, 슬로건 등으로 브랜드화하는 등 기획 틀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 올해로 두 번째 맞는 '수성빛예술제', 『수성빛, 행복의 길을 비추다』는 대구시 수성구가 선보이는 연례 축제다. 최근 들어 지자체 내의 자치구가 주도하는 소규모 형식의 축제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얼마 전에 성료 된 서울 노원구의 '노원달빛산책'이 그중 하나다. 노원문화재단이 주최한 달빛 축제는 자칫 생소할 수 있는 도시 야간 예술축제의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빛축제는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여러 형식의 지역축제 중 가장 대중적이며 가히 최고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빛은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인류 공통의 미래적 지향이며 도시의 비전과 성장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예비하고 제시한다. 지역민과 관(官) 내외 관광객 등 참여 관객 구분 없이 적극적으로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감대가 담보되어 있는 매력적 형식이다. ● 이번 예술제의 일환이자,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마련한 바깥미술제,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 역시 도시예술축제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생 '수성빛예술제'의 의미와 비전을 대내외적으로 더욱 강조하고 축제의 전체적인 힘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빛을 테마로 기획된 이번 프로젝트는 '수성못'이라는 호반 일대에 마련되었다. 수성구가 자랑하는, 시민의 사랑을 받는, 생태 공간 호수의 장소 특정성과,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삶의 빛이 빚어내는 생태적 관계의 미학을 통해 공유와 공존의 미래를 추구한다는 프로젝트의 의제 특정적인 성격을 함께 녹여냈다. ● 출품작들은 모두 빛을 원용한 것들로, 크게 보아 이른바 '빛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역 내 시민 휴식공간인 수성못의 물리적, 심리적 지형을 생태적으로 증폭, 확장시키며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데 기여한다. 기획자가 기획의도에서 밝혔듯이 지역의 가치를 널리 확산하고 개방과 공유의 가치를 담아내고자 마련되었다. 예술과 일상이 함께하는 것으로 축제의 의미와 외연을 확장하는 긍정적 가치와 기여를 지향하고 있다. ●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은 수변이라는 생활공간에서 빛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담아내고 해석한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관객이 빛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시민이 전시 연출자로서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전시 준비 기간 동안 감내한 일정한 불편과 공공프로그램을 위해 기꺼이 지불한 이런저런 기회비용을 바깥미술이라는 공공의 형식으로 주인공인 시민에게 오롯이 돌려주고 있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서로 상조하며 축제의 전체 주제를 빛내는 등 시민참여 축제가 보다 풍성해질 수 있는 긍정적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 낮에는 빛을 반사하거나 작품이 지닌 조형적인 특징을 통해 작품과 만나지만, 일몰 후 관객은 수변을 자유로이 거닐며 마치 빛의 터널을 지나는 듯한 착각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출품작들은 저마다의 형식과 방식으로 하늘과 땅, 도처에 빛을 비추고 있다. 시선을 잡아매고 한참을 바라보며 머물게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빛조각은 사회적으로 위기가 있을 때 자국민들을 하나로 묶고 단합시키는 매력적인 동인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인정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3. 앞서 말했듯 이번 프로젝트는 야외에서 열리는 이른바 아웃도어 개념의 전시다. 그것은 삶의 공간이자, 일상의 현장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최근 코로나19 상황도 그러하지만, 기존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는 일정한 제약을 가지고 있다. 수변이라는 열린 휴식공간에서의 전시는 실내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상대적 매력과 소통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번 '수성빛예술제'의 경우처럼, 시민참여 형식의 열린 축제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주객 관계로 작품을 마주하기보다는 때론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 등 생활공간에서 보다 가깝게 미술작품과 소통하고 메시지를 공유할 수도 있다. ● 이번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는 공공의 장소에서의 공공적 기능과 역할을 새로이 부여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미술에 대한, 축제에 대한 선입견, 혹은 막연한 거리감을 좁혀 나간다. 보다 긴밀하게 상호 소통에 기여하며 축제를 더욱 풍성하고 보다 열린 형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관객 친화형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는데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축제의 대내외적 기능과 역할을 공유와 소통 중심으로 확장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소통이 빠진 축제는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 관객, 즉 수용자와의 소통과 공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급자로서의 작가, 또는 공급자로서의 행사를 마련한 기획자 그리고 주최 측의 기획의도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이번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관객과 수평적으로 건강하게 만난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 제한된 소통이 아닌, 대중의 눈높이에서 조우하며 관객은 작품의 일부로 역할을 하며 끊임없는 구성 요소로 개입, 작용하기도 한다. ● 설치된 공간과의 어울림, 주제를 풀어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축제의 주제와 프로젝트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자신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일상을 주체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공감 가능한 삶의 공간에서 작가의 새로운 해석과 전시 형식을 통해 삶의 시공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혹은 미술작품과 감상이라는 행위에 대한 거리감과 선입견을 좁히거나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보다 유연하게 관객을 참여 형식의 축제 주체로 이끌고 자칫 축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막연한 거리감을 서로를 향해 열어둘 수 있는 쌍방향 형식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4. 최근 들어 지역 축제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즉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참여 관객도 적지 않아 주로 해당 지자체의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이할 점은 축제가 끝나면 이들 모두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하며 물리적으로 휘발된다는 점이다. 일회성이 강한 점이 특징 아닌 특징이라 하겠다. 오래 두고 마주하는 시민 인프라로 작용하며 행사의 출품작이 먼지처럼 쌓여서 지자체의 든든한 물리적/심리적 문화 인프라로 기능하는 전략적 행사 기획이 필요한 때다. 지자체 내의 예술인에 대한 단순 구휼책에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며 휘발성 강한 문화소비적, 오락적 행사여서도 안 될 것이다. ●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뮌스터에서 열리는 조각 프로젝트처럼 주요 작품이 도시 생활공간에 남아 있는 방식에 대한 세심한 관찰도 필요하다고 본다. 관성적 반복, 돈 잔치, 지자체 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중심의 힘'을 보이는 공공의 프로젝트로 거듭나야 한다. 서울시가 관주도 형식의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축제 콘셉트를 10년이 되던 해에 거리예술 중심으로 전환하고 2016년부터 그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한 『서울거리예술축제』로 명칭을 변경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제2회 수성빛예술제' 중 '공공미술프로젝트' 파트로 기획된 이번 공공 프로젝트는 축제 전체 주제인 빛이라는 주제를 이런저런 조형언어로 풀어낸 11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출품한 작가들이 함께하는 이번 전시에는 대구, 수성이라는 지역의 매력을 확산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참여 작가 저마다의 다양한 미학적 어법으로 빚어낸 빛조각들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대중들의 눈은 물론 마음을 즐겁고 밝게, 환하게 밝혀 줄 것이다. ● 공공 프로젝트로서의 미술 전시가 삶의 공간으로 치고 들어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개념을 결여하거나, 작업실에서의 작업을 그대로 가져온다거나, 기왕의 작은 작품을 뻥 튀겨서 크게 설치하는 식의 방식을 반복한다면 대중의 외면에 직면할 것이다. 강조했다시피 이번 공공 프로젝트는 생활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바깥미술 프로젝트다. 축제의 전체 주제는 물론 전시공간의 물리적 지형과 심리적 표정 등을 예의 삼투한, 이른바 로컬리티가 생명이다. 관성적 출품과 기획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현장성을 삼투, 강조한 작업형식이 강조되어야 한다. ● 이러한 공공의 기능을 강조한 방식으로서의 바깥미술, 즉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기능하고 또 가능하려면 주최 측의 인식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산과 인력 등의 지원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야외 공간, 공공의 공간에서의 전시에 대한 인식과 이해 부족 같은 문제가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일정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체 축제의 성격과 바 깥공간에서의 프로젝트 전시라는 특성, 또 전체 주제인 '빛'과 수성구, 수성못이라는 '로컬리티'에 부합하는 형식 등은 주목할 만하다. ■ 박천남
Vol.20201211a | 빛이 흐른다, 예술이 담긴다-제2회 수성빛예술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