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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대구시_대구문화재단 본 사업은 2020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창작지원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12:00pm / 02:00pm~05: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2층 3전시실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환대로부터 ● 도시의 일상은 숨 막히게 지루하다.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 내부를 면밀히 따져보면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개개인으로서의 활동 반경은 한정적이고 특별하지 않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들은 호기심과 목표를 상실시키고 그저 작동만을 하게 만든다. 때문에 많은 도시인들은 스스로를 지루한 일상의 감옥에 갇혀있는 수감자로 결부 짓고 살아간다. 또한 그러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이내 파옥을 희망한다. 이렇듯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복잡한 도시인들의 삶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쁨과 지루함 등 서로 상충되는 개념들이 이웃하고 있다. ● 윤우진 작가는 이러한 도시의 삶 속에서 순차적 과정을 통해 파옥을 시도하며 작품으로 끌어낸다. 작가가 시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예술가'로서, 혹은 '예술가'만이 지니는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을 통해 검증된 확실한 방법을 택한다. 바로 '자연에 들어가기와 자연을 바라보기'이다. 다시 서술해도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은 이 방식은 사실 과거의 많은 예술가들을 자극하던 주제였으며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그러나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도시인, 그에 속해있는 작가에게는 대상 자체가 주는 숭고미보다 잠시라도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서 기능하는데, 이 지점에서 윤우진 작가의 작업도 시작된다. 자연과 도시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도시인인 작가는 '자연'에 대하여 이방인이 된다. 또 자연은 그를 향해오는 모든 이방인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환대를 수행한다. 이때 자연은 그곳에 들어온 작가의 이름과 직업 등을 모두 말소하고 하나의 '자연'으로서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환대에 대해 온기를 느끼고 생의 에너지를 충전함으로써 작업의 출발선상에 서게 된다.
두 번째로는 충전한 에너지를 작업화하는 과정에 있다. 때문에 윤우진 작가의 작품은 자연을 형상화하는 듯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일반적인 형식으로써의 풍경화가 아닌 추상적인 형식에 맞닿아 있다. 미술사적 사조로는 표현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윤우진 작가의 작업은 표현주의가 내포하는 사조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소위 표현주의라 지칭되는 사조는 작가 스스로의 주체성이 강조되지만 이에 반해 윤우진 작가의 작업은 주체성보다는 타자성과 연대성을 강조한다. 풀어내자면 작가가 자연의 환대에서 얻은 '생의 에너지'를 작업화하는 과정에서 '표현주의'적인 양식이 다소 나타나지만, 표현주의로의 복귀를 말하진 않는다. 자연에 대한 타자로서 작가가 받아들인 에너지를 선과 색으로 변환하여 드러낸다. 그런데 어떤 감정 혹은 감각 체험을 표현함에 있어 같은 색과 선들은 사용되지 않는다. 즉 'A = a'와 같이 대응하는 형식이 아니라, 'A ≠ a'의 형식으로 감정 혹은 감각 체험인 'A'와 작가가 변환한 색 혹은 선인 'a'가 서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작가의 감각과 무의식 속에서 어떤 일련의 규칙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규칙을 설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이 불특정한 대상에게 행하는 무조건적인 환대를 불특정한 선과 색으로 잇고 있다. ● 작품 자체는 2가지의 순차적인 형식을 통해 완성되지만, 아직 최종 장이 남아있다. 그것은 전시를 통해 관객을 환대하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받았던 환대를 작가로서의 환대로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도피처 중 하나로 선정하여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윤우진 작가의 공간(전시장)으로 들어오며 환대를 받는다.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로 윤우진 작가가 자연과 마주하며 작동된 프로세스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작가와 관객)되어 이방인의 지위로 작가의 공간에 입장한다. 역시 공간은 그들이 누군지 묻지 않으며 이미지로서 그들을 환대한다. 이러한 최종 장을 거친 작업을 통해 윤우진 작가는 마침내 파옥을 달성한다. ■ 박천
Vol.20201206h | 윤우진展 / Ruzin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