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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안동문화예술의전당 ANDONG CULTURE & ART CENTER 경북 안동시 축제장길 66 상설갤러리 Tel. +82.(0)54.840.3600 www.andong.go.kr/arts
류윤형의 작품세계-따뜻한 마음이 지어낸 소박하고 순수한 조형미 ● 한 화가로서의 족적은 남겨진 그림에 고스란히 담기게 마련이다. 예술가로서의 행로가 어떠했는지 그림이 말하고 있다. 그림은 조형세계라는 영역에 국한한 듯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 작가의 삶 전체가 녹아들어 있다. 그림은 화가 자신의 인생관에 대한 조형적인 자술서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정신 및 감정은 물론 경험을 모두 쏟아 붓기 때문이다. 그림이 화가 자신의 인생관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류윤형은 경북 안동을 근거지로 하는 지역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의 다양한 전시회 참여하는 등 행동반경을 전국으로 넓혔다. 중앙무대에서 여러 차례의 개인전은 물론 신미술회 및 신작전 등 구상미술의 주요 단체전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에 참여하는 등 지역작가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지방에서 창작활동을 할지언정 고인물이 되지 않겠다는 자각이 선행된 결과였다. ● 작품세계 또한 어느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은 채 풍경화를 비롯하여 정물과 인물을 병행했다. 그가 화단활동을 시작한 1970-80년대 한국미술계는 구상회화 중심이었고, 양식적으로는 사실주의 및 인상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특정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풍경, 정물, 인물을 함께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역시 사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는 견고한 정물을 즐겨 그렸고, 인물화에서는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 형식에 가까운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이와 함께 누드화도 빼놓을 수 없는 장르의 하나였다.
정물이나 인물 그리고 누드에 비하면 풍경은 전체 작품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 풍경화가 조형세계의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풍경화는 그 자신이 살고 있는 안동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시골풍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일상적으로 보이는 현실적인 풍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시골풍경은 그 자체로 가감할 것이 없는 그림의 소재가 된다는 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주변 풍경에 집중했다. ●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풍경, 즉 낮은 언덕과 밭 그리고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논, 산만하게 보이는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 산길과 작은 언덕길, 그리고 외딴 집 등 그림의 소재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은 풍경들이다. 하지만 그 소재들이 지어내는 풍경은 서정적인 분위기에 이끌림으로써 정겹고 따스하게 다가온다. 짐짓 꾸미려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시골풍경이기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정서는 그 자신이 자연 속의 한 부분처럼 녹아들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스케치를 하는 현장의 분위기에 젖어들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미적 감흥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의 풍경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진정한 자연미에 필적한다. 이는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사실 그 안쪽에 자리하는 대자연의 속살에 대한 이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작품은 현장에서 스케치를 하고 채색작업을 하다가 화실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작업과정이 말해주듯이 자연과 한 몸이 되고자 했다. ● 자연풍경과 마주하면서 하나하나 훑어가는 가는 일, 즉 치밀한 관찰이야말로 사실정신의 본질이다. 눈에 보이는 실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물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작업하는 순간 자연미에 감응을 하고 감동을 하며 형태감각을 익히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재현적인 그림이라고 할지라도 단순히 보이는 사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표현감정을 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풍경과의 교감을 중시했다.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 및 감동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작품마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자신의 표현감정, 즉 대상과 마주했던 순간의 감동을 그대로 받아내는데 힘썼기 때문이다. 또한 날씨의 상태나 광원의 이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그 사실을 화폭에 옮기고자 노력했다. ● 이는 명산대천을 주유하면서 빼어난 명승지를 찾아나서는 화려한 일반적인 시각과는 사뭇 다른 태도이다. 집을 나서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이야말로 오래 두고 볼만한 자연미의 본질임을 간파했는지 모른다. 그림이 될 성싶지 않은 평범한 풍경에 이끌린 것은 자연미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기인한다. 이러한 그의 시선은 어느 곳이나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 범신론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자연 그 자체는 가감할 것이 없는, 미의 원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의 풍경화에서는 자신의 시각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감지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나 아니면 구도적으로 남다르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풍경은 단지 소박하고 자연스러울 따름이다. ● 그의 풍경화는 유형별로 보자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순수한 풍경과 인간이 함께 하는 자연이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 상태란 인위적인 흔적, 즉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고, 산길이나 논밭 그리고 가옥처럼 인간의 삶의 자취가 담긴 풍경은 인위적이다. 어쩌면 이런 분류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오늘의 시골풍경은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인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반드시 더 아름답다고 할 수도 없다.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히려 인간의 발길이 만들어놓은 숲속의 오솔길이나 산골 가옥은 자연미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시골길이나 가옥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그로부터 미의 원형, 즉 자연미의 본질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 언덕을 오르는 작은 고갯길이나 신작로 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로 등 길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적지 않은데, 모두가 문학적인 서정미와 일치한다. 길은 인생행로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에 적합한 소재이다. 길을 걸어가는 인물은 대체로 노인들이다. 희로애락의 삶을 경험하며 이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는 노인들의 뒷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는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인간 삶의 행로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구부정한 노인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자연풍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삶의 모습에도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풍경화는 빛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강렬한 햇살에 비치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원색으로 표현한 것은 빛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빛이 강하면 물상의 색채가 한층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원색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원색적인 색채이미지와 더불어 빛의 효과를 주시했다. 아침과 저녁의 햇빛은 음영의 대비를 강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명암대비에 의한 극적인 시각적인 이미지를 얻는데 효과적이다. ● 풍경화 가운데 절반 이상은 강조된 명암대비로 인해 시각적인 인상이 강렬하고 명료하다. 특히 역광을 활용한 작품의 경우 전체적인 인상은 한층 뚜렷하고 힘이 넘친다. 강한 명암대비는 시선을 사로잡는데 효과적일뿐더러 색채를 맑고 밝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상쾌하고 발랄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와 같은 명암대비에 의한 시각적인 효과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풍경의 대다수가 명암대비에 적극적이었음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 이와 같은 빛에 대한 이해는 정물이나 인물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초기의 인물상의 대다수가 형태 감각이 명확한 것은 빛의 효과, 즉 명암대비를 잘 활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부둣가에 앉아 있는 3명의 남성을 드린 1983년의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1979년의 석고상과 함께 하는 여성을 그린 「잊혀진 세월」, 1980년 「시장풍경」,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1981년작 「상념」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달리 빛이 강조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명료하게 명암대비를 강조함으로써 시각적인 인상이 선명하고 경쾌하다.
몇 안 되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견실한 묘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인물화는 작가적인 신뢰도를 높인다. 사실적인 묘사작업으로부터 비구상적인 요소와 결합하는 몇 점의 인물화에서 돋보이는 조형감각을 감지할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표현, 즉 추상적인 이미지를 도입한 작품에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인물화에 대한 이해 및 선호도가 떨어지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지 풍경화에 치중한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 강조된 명암대비는 누드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많지 않은 누드화이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세련된 포즈 및 구도로 이루어졌다. 세부묘사에 치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 및 인상을 중시하며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겨냥한다. 배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곡선 및 볼륨을 가진 여체 자체의 미와 더불어 빛과 색채효과에 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흰 천이 덮인 의자에 앉은 옆모습의 누드는 여체의 피부색을 청회색으로 설정하고, 명확한 윤곽선과 거친 터치의 원색에 의한 추상적인 이미지는 야수파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누드화와 달리 회화적인 표현을 전제로 하는 누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정물화는 꽃과 과일, 도자기 등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소재를 택하고 있다. 1979년작 「토르소가 있는 정물」은 그의 사실적인 묘사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30여 가지의 소재를 한데 모아놓은 이 작품에서는 정물화에 대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 및 구도에서는 정물화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크게 관심을 가진 장르가 아닌 듯싶다. 그런 가운데서 2011년작 「박」은 소재도 그러하거니와 커다란 박을 화면 중심에서 약간 위쪽으로 배치한 구도 및 소재선택이 신선하다. 간간히 정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무엇을 찾아내고자 고심한 결과물의 하나로 보인다. ● 일반적인 풍경화로 분류하기 애매한 야외의 꽃밭에서 취한 일련의 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소재 자체의 형태미보다는 심상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맨드라미와 해바라기 등을 소재로 한 꽃그림이 이에 해당하는데, 사실적인 형태감각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표현에 치중하는 경향이다. 해바라기의 경우에도 샛노란 색의 화려한 꽃잎이 아닌 검게 익어가는 씨앗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 꽃의 화려한 이미지 대신에 그 자신의 미의식 및 감정 속에 들어오는 인상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소박하고 진실하며 따스한 이미지의 조형세계를 소요했다. 그림에서 자기과시가 없다는 것은 오롯이 묘사하고 표현하는 그 행위에 젖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림 하나하나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기쁨을 그림 속에 담았기 때문이리라.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는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진정한 기쁨이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자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 신항섭
Vol.20201204c | 류윤형展 / RYUYOONHYUNG / 柳胤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