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2021

巫堂 2021展   2020_1129 ▶ 2020_12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구래연_박현철_손우아_신민주 이유나&유성웅_이윤경

지역문화진흥사업 N개의 서울 「관악 교집합」 A.S.P 봉천동 점성촌 프로젝트

주최,주관 / 관악문화재단 후원 / 서울문화재단

총괄 / 하얀정원(@jardinblanckorea) 기획 / 윤지혜_홍예지 글 / 윤지혜_정민기_홍예지 포스터 디자인 / 구래연

관람시간 / 11:00am~06:00pm

관악아트홀 Gwanak Art Hall 서울 관악구 신림로3길 3 전시실 Tel. +82.(0)2.828.5700 www.gfac.or.kr

2020년 겨울,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남부순환로가 지나는 이 지역에는 대로변을 따라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다. 겉보기엔 지극히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로 좁게 나 있는 골목을 따라가면 순식간에 재래시장이 나타난다. 정육점과 생선 가게, 떡집, 각종 야채를 파는 좌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건물들은 대체로 키가 작은데, 그 중에서도 제일 좁고 오래된 집에 무당이 산다. '○○보살', '○○선녀', '○○암'이라고 써 있는 원색의 간판들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연등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문이 열려 있는 곳은 많지 않고, 몇몇 집이 비밀스럽게 불을 켜 두고 손님을 맞이한다.

무당 2021展_관악아트홀_2020
무당 2021展_관악아트홀_2020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던 일 년을 보내며, 안녕하지 못했던 일상을 붙들어 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 2021년을 앞둔 시점에서, 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무속이란 어떤 믿음을 줄 수 있을까? 고작 한 블록만 지나면 다른 세계로 갈라지는 경계면에서, 어떤 위로의 말과 몸짓이 오갈까? 이런 물음을 품고서 아홉 명(팀)이 모여 골목골목을 누볐다. 『무당 2021』은 이들이 보고 듣고 느꼈던 파편들을 그러모아 두 개의 소설과 함께 펼쳐 놓는다. 낯설면서 친숙한 무속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누군가의 일상을 비껴가거나 부지불식간에 침투하는 이야기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구래연_엮인 공간들_천에 아크릴채색_300×300cm_2020
구래연_지리적 공생의 관계_아크릴 박스, 혼합재료_80×130×90cm_2020

구래연은 무당이라는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봉천동 안에 공존하는 여러 이질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봉천동 거리와 점집 내부에서 봤던 사물들을 기호화하고, 이를 규칙적인 패턴으로 확장하여 판화 및 설치 작업을 진행한다. 연꽃, 놋쇠 그릇 위에 올린 초, 산수화, 간판에서 추출한 요소를 활용하여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이미지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뒤섞인다.

박현철_행하다_염료, 물, 가죽, 피딩백_250×300×300cm_2020 박현철_그럴싸해 보이는 무언가_글루건, 무점접 릴레이 모듈, 실, 붉은 형광등, 가죽_270×200×230cm_2020

박현철은 만신이 사용하는 무속 도구를 해체하여 그로테스크하거나 키치한 느낌으로 재구성한다. 시대에 따라 무속 도구의 소재와 기능도 달라진다는 발상으로, 부적을 쓰거나 굿을 할 때 활용되는 닭피를 대체할 만한 소재를 탐구한다. 주술이 일종의 의료 행위로 간주되는 맥락에서 링거를 도입하고, 그 안에 붉은 액체를 넣고 서서히 떨어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속도로 떨어지는 방울들은 바닥에 깔린 가죽의 표면을 불규칙하게 물들인다. 원시성과 현대성이 맞닿는 자리에 '비정형(informe, formless)'의 무늬가 나타나는데, 이는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무속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가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상황을 암시한다.

손우아_휘두르기 1,2,3_장지에 먹, 채색_150×40cm×3_2020
손우아_사람방울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0 손우아_봉천동 한 뼘_디지털 프린트_가변설치_2020

손우아는 현대인이 무속신앙을 일종의 유희로 받아들이는 경향에 주목한다. 점집에서는 강렬한 칠성 방울 소리에 압도되며 무당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만, 막상 돌아서서 쉽게 잊어버리는 모습을 흔들리는 방울 인형의 이미지와 조각으로 표현한다. 속이 비어 있는 방울과 그렇지 않은 방울들이 함께 부딪치는 모습에는 현대인의 피상적인 관계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

신민주_확장된 세계_전구, 천, 플라스틱 후프, 케이블, 사운드_220×84×84cm_2020

신민주는 초자연적인 세계의 언어를 세속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만신, 점집 공간이 지닌 비밀스러운 특성을 파고든다. 오방색 천을 활용하여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봉천동 무당을 인터뷰한 녹취 파일을 틀어 둔다.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비밀 공간 안에서 어떤 유대와 감정적 교류가 발생하는지 추적하고, 그 과정을 부적과 점집 검색 페이지, 무당 관련 유튜브 영상, 명함, 영수증을 모아 둔 아카이브를 통해 공개한다.

이유나&유성웅_민야화_종이, 천, 철제 프레임_200×100×95cm_2020

이유나는 무당의 생애에서 끝자락에 와 있는 만신의 이야기를 만화가인 할아버지와 협업하여 동화로 구현한다. 신은 오기도 하지만 떠나기도 하는데, 할머니 만신에게서 신이 떠나는 모습을 민들레 홀씨와 '길'이라는 상징을 통해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다.

이윤경_산소이예_한실 충무, 재활용망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광폭 원단, 실, 방울, 스프레이_98×60×13cm_2020 이윤경_맺힌 응어리를 어루만지다_TV 스크린_00:05:48_2020

이윤경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당의 지위와 자격이 변화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운명론'적인 관점은 붕괴되고, 이제 직업적으로 접근하여 무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만신의 연령대도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1세기 무당이 행하는 소극적 의례의 몸짓을 무용으로 재해석하고 영상으로 담아낸다. 특히 병리학적으로 무속 행위가 치료로 간주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전통 한국 무용의 요소를 차용한다. 영상과 함께 설치된 조형물은 점집들이 위치한 좁은 골목의 틈을 해석한 작업이다. 여기서 틈은 서로 다른 세계의 간극을 가리키면서도, 이 세계들을 동시에 지탱하는 교차점을 의미한다.

윤지혜_부적소설_2020

윤지혜와 정민기가 각각 써 내려간 소설은 앞서 언급한 작업들을 느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의 텍스트는 각 작업과 연결되는 요소를 포함하거나, 그것과 관계없이 뻗어 나가는 상상으로 관람객의 동선을 형성한다. 『무당 2021』을 방문한 누군가에게, 무속신앙은 여전히 난해하고 신비로운 무엇,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먼 이야기로 읽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무속신앙을 다양한 결로 소개하는 이번 작업들을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일상의 불안과 위안을 다루는 무속인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홍예지

Vol.20201129b | 무당 2021 巫堂 2021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