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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20_1206_일요일_03:00pm
후원 / 강원도_강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수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0)64.755.2018 www.culturespaceyang.com www.facebook.com/culturespaceyang www.instagram.com/culture.space.yang
미결정 사건 ● 용해숙 개인전 『왓, 18컷』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사라진 어느 봄날 밤에서 시작된다." 전시를 위해 작가는 먼저 글을 썼다. 글의 제목은 전시 제목과 같은 『왓, 18컷』이다. 이 글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해 열일곱 장면, 작가 의도대로 말하자면 17컷으로 엮여있다. 한 장면은 짧게는 한 문장, 길어도 한 장을 넘지 않는다.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의 구조도 논리적 흐름도 없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관성도 찾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문득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도 같다. 전후 맥락 없이 한순간 또는 한마디 말만 떠오르듯, 이야기는 이어진다. 시간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어떤 장면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다. ● 각 장면의 장소도 시간만큼이나 불분명하다. 『왓, 18컷』에서 왓은 제주어로, 밭을 뜻한다. 제목만 보면 장소는 밭일 것 같다. 그러나 베를린이라 여겨지는 장소에서 시작한 이야기의 배경은 도시를 알 수 없는 온천으로, 방으로 이어지다 결국 특정할 수 없는 장소가 된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장면마다 심지어 한 장면 안에서도 바뀐다.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기보다 감각으로 느껴진다. 형용사와 상황 묘사로 가득 찬 이야기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시간과 장소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야기가 전시로 바뀌면서 이야기 속에서는 모호하던 시간과 장소는 지금 여기로 구체화한 반면 내용은 더 모호해졌다.
이야기 『왓, 18컷』은 전시에 앞서 먼저 쓰였다는 점에서 전시의 출발이자, 전시장에 책의 형태로 전시되었다는 점에서 전시의 일부다. 또한, 이야기는 곧 전시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공간 안에 시각화한 작업이 전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전시로 만드는 과정에서 두 가지 형식을 사용했다. 우선 청각화다. 이야기 중에서 몇 장면을 골라 몇몇 지인에게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녹음된 이야기는 영상이나 오브제와 함께 설치되기도 하고, 목소리만 듣도록 설치되기도 했다. 전시에서 음성 외에도 소음이 중요한 청각적 요소로 등장한다. 작가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만들었다. ● 형상화는 전시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두 번째 형식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오브제, 사진, 영상 등으로 풀어냈다. 형상화의 과정에서도 이야기의 일부 장면은 선택되지 않고 글로만 남겨졌다. 이야기의 한 장면과 시각화된 작품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두세 개의 장면이 하나로 형상화되거나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 미리 형상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형상화되지 않고 남은 장면도 언젠가 어떤 형식이든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어떤 장면은 삭제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장면' 대신 '컷'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했다. 이야기를 확장이나 삭제 가능한 상태로 놓아두기 위해서다.
전시장에 설치된 대부분의 오브제는 제주도에서 작가가 우연히 만난 사물들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리던 미역, 어느 집에 있었던 타일, 공터에 버려졌던 고무공, 신발가게에 놓여있던 괴목(槐木)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동문시장, 추자도, 거로마을, 화북동이라는 발견된 장소를 듣지 않고는 전시된 오브제와 제주도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사진과 영상은 제주도라는 장소의 분명한 특성을 보여준다. 파인 땅에서 드러난 커다란 돌덩이, 천변의 현무암, 돌로 만든 집, 동백꽃, 말, 귤은 제주도라 말해주지 않아도 제주도임을 알 수 있다. ● 제주도에서 발견되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오브제도 있다.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서 제주도에서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가가 주워온 나뭇조각은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제주도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가발, LED 전등, 각목 등과 같이 누가 사용한 적이 없는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은 출처가 중요하지 않은 오브제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러한 오브제들은 제주도와 연관해 작품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를 가로막는다. 유일하게 작가가 만든 작품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제주도 모양의 바퀴가 달린 조각이다. ● 전시장 안과 밖의 경계에 놓인 유리문 안으로 미역이 보인다. 추자도산 미역이다. 벽 전체에 미역으로 빽빽이 드로잉을 했다. 미역으로 뒤덮인 벽은 검고 구불거리고 번들거렸다. 그 광택은 기괴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역은 쪼그라들며 금이 갔다. 광택도 사라졌다. 기억이 이런 것일까? 생생했던 것들이 메마르고 조각나고 틈이 벌어진다. 유리문 위에 "이 이야기는 어느 봄날 밤에서 시작한다."라는 문장이 붙어있다. 이 문장은 전시와 이야기의 연관성을 확증한다.
거로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할머님은 질문 없는 인터뷰에서 4․3을 이야기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뷰는 전시장에서 이루어졌고, 바로 그 자리에 모니터를 세로로 세워 할머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모니터의 검은 틀, 영상 속 할머님의 자랑인 난초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고전 초상화처럼 보이게 만든다. 작가의 숨은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작가가 화북천의 골이 깊은 현무암을 정성스럽게 닦는 영상이다. 화북천에 고인 물을 걸레에 묻혀 바위를 닦는 행위는 4․3 때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일종의 의례다. 죽은 자를 위한 의례는 남은 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이기도 하다.
추자도에서 발견한 타일은 회오리 모양을 따라 시각상 바람을 불러일으켜 공간을 장악한다. 제주도의 풍습인 등돌 들기를 작가 방식으로 바꾼, 공을 사이에 두고 돌을 쌓으려는 시도는 실패한 채 놓여있다. 연북로의 나머지 구간을 완성하기 위한 공사 현장 사진은 A4용지에 흑백으로 출력되어 파노라마 형식으로 붙어있다. 파헤쳐진 땅에 드러난 돌덩이가 얼마나 큰지 그 위에 올라간 작가가 아주 작게 보인다. 해녀, 바람, 역사, 개발 등의 말들이 제주도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전시장 입구에 서면 왼쪽 기둥 뒤로 흰 머리카락이 살짝 보이고, 오른쪽 벽 끝에서는 천 뒤에서 '쉭쉭' 소리가 들리면서 천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천 뒤에 감춰져 있는, 모터에 달린 대나무, 스펀지 등이 천을 스치며 내는 소리다. 구불거리는 괴목이 놓여있는 방에 다가가면 곧게 뻗은 LED 전등 덩어리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순식간에 켜진다. 이러한 요소는 관람객을 당황하게 만들어, 제주도를 재현, 지시, 참조, 상징하며 만들어가는 작품의 의미망에 구멍을 낸다.
전시 동선의 끝에 설치한 사진 「동백향」은 2019년에 열린 작가의 개인전 『파국의 삼각』에 전시되었다. 작가는 대한민국의 개발 지상주의 경제성장 과정을 최근 약 10년 동안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는 제주도에 관심을 두고 작업했고, 그 결과물을 『파국의 삼각』에서 보여주었다. 전시를 했으니 제주도 작업을 일단락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백향」을 촬영 후 제주도가 작가의 몸에 미역처럼 들러붙어 버렸다. 작업으로 개발의 폭력성, 그로 인한 상처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면서, 떠나지도 못하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기도 못한 채 작가는 제주도의 경계를 맴돌고 있다. 종을 달고 둥근 무쇠 욕조 주변을 스치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대나무처럼 말이다.
단기간에 막대한 양의 투기자본이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마을 한가운데로 큰 길이 나고, 밭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개발로 공동체가 깨어지고, 마을의 역사는 잊혀간다. 결국 과거는 조각나 뒤섞이고 심지어 일부는 사라졌다. 작가는 『왓, 18컷』에서 과거의 조각을 현재의 어떤 것에 붙여놓았다. 사라진 과거는 찾지 못해 기표를 빌려왔다. 그래서 의미는 글, 소리, 형상 어디에도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진다. 전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화북천과 연북로의 미완성 구간에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시작한 뒤에도 작업을 이어갔다. 이 작업이 작가를 제주도의 안으로 밀어 넣을지 아니면 밖으로 밀어낼지 궁금하다. (어떤) 작품으로 완성될지 기대해 본다. ■ 김연주
Vol.20201127h | 용해숙展 / YONGHAESOOK / 龍海淑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