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Tunnel

나종희展 / ??? / ??? / painting   2020_1125 ▶ 2020_1201

나종희_붕괴_패널에 알루미늄 캔_122×244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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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나종희의 근작전 '터널 Tunnel'에 부쳐 ● 중의적인 단어로 구성된 영어 문장을 그 문장 흐름과 달리 의도적으로 오역하는 썰렁한 유머가 한때 유행했었다. 일테면 "Danger! keep out!"를 "위험, 출입금지!"가 아닌 "데인저야! 그만둬!"라는 식으로.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압권은 "Yes i can"이었다. "예, 나는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예 나는 깡통입니다"로 의미를 정반대로 역전시킨 농담이었다. 아마도 '세계화 시대'라는 미명으로 영어가 각종 시험이나 성적에서 중시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영어야말로 그 당시 일상생활과 문화의 필수불가결한 모던 코스츔이자 사회적 성공을 위한 프로세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던 셈인데, 그런 뜬금없을 정도로 유행한 영어제일주의 상황을 빗댄 의도적 오역과 풍자로, 이 썰렁 유머는 회자 되곤 했었다.● 나종희의 폐기물 캔(Can)을 납작하게 만들거나 오려서 화면 가득하게 집적한 형상의 근작을 보면서 "예 나는 깡통입니다"라는 이 지나간 농담이 생각난 건, 캔이란 재료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론 그런 썰렁한 하위개그가 통용되고 인기를 얻었던 그 시대상과 사회적 구조가 지금과 비슷하단 생각에서였다. 강자 전성시대가 극대화된, "The Winner Takes all"이란 선명한 신자유주의의 개념규정처럼, 자본-학력을 가진 소수가 권력-지위를 얻고 또 그것을 세습하게 되는 자동적 계급구조의 시대. 그런 사회에서의 다수에게 "Yes I can"은 결코 "그래 나는 할 수 있어"가 아니라, "예 나는 깡통입니다"라는 자조적 화용론(話用論)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삼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는 Can이라는 단어를 "할 수 있다"는 동사와 '깡통'인 명사로 의도적 혼용을 할 수밖에 없는 착종된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나종희_욕망의 바다_패널에 알루미늄 캔_82×122cm_2020
나종희_인물_패널에 알루미늄 캔_82×61cm_2020

언급했듯이 나종희의 근작은 일상폐기물인 캔을, 화면을 견인하는 동세나 형태로 바탕을 구축한 이미지다. 대량소비사회에서 시원한 콜라·맥주·쥬스 등 여타의 음료를 담는, 식욕과 소비의 등가물이자 기호인 이 용기(用器)들은, 그러나 나종희의 화면에 등장할 땐 쓰임새를 다해 용도폐기 된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자극적이고도 짧은 인스탄트적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는 캔과 그 표면의 (인쇄된)원색의 알록달록 향연들은 소비시대 욕망의 배설물이다. 그리고 이런 재료에 겹쳐지는,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견인하기 위해 등장한 형상은 바로 우리 시대 도회지의 풍경이자 사람이다. 노숙자·웅크린 사람·화가의 자화상·추락·금수저의 똥·터널·붕괴·블랙홀·욕망의 바다·비정규직 등. 화면은 음울하고도 날카로운 물성과 감각으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대부분은 푸어아트(Poor Art)나 아르떼포베라(Arte Povera)류의 가볼러지(garbology 쓰레기생태학)적 바탕에, 작가 손맛의 인체 이미지를 첨가해서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버려진 재료'와 '소외된 사람'에 대한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말이다. ● 나종희에게서 이 작업은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의도한 주제에 이르는 형식의 통로가, 개념의 전복이나 역전 없이 비교적 일직선상에서 형상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바탕인 오브제의 속성을 어떤 변형이나 전치 없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소재 겸 바탕으로 빌려오는데, 기실, 이 방식은 나이브하고 또 정직하다. 캔의 표면에 인쇄된 하나하나의 상표나 로고가 어떤 가공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알록달록한 발색과 강렬한 반짝임으로 화면에서 이룬 집적이 큰 운동감의 시각적 요소로 작동해서다. 즉 캔의 집적이 이성적 사유의 연장선상에서의 해석학적 전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동적인 시각+촉각성은 전혀 새롭고도 모던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아마도 이런 시각적·물질적 쾌감은 작가 스스로가 표현으로 즐기는 질료의 맛일 수도 있다.

나종희_자본의 똥_패널에 알루미늄 캔_66×92cm_2020

한편, 이런 시·촉각적 맛의 바탕에 덧붙여져서 표현된 인체나 여타의 형상은, 사회적 소외 내지는 배제의 대상으로 몰락하는 노숙인·비정규직·화가의 자화상 등의 소재와, 세월호·붕괴·터널·블랙홀·금수저 똥 등등으로 모순된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화면의 감각적 바탕에 비로소 작가가 의도하는 발언이 실리는 모양새다. 신자유주의 자본체계의 계급적 위계를 형상성으로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종희 작업의 이런 서사성은 여전히 민중미술의 한 궤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바탕 한 것으로 보인다. ● 전형적인 예로 '추락'이라는 작품이 있다. 부착한 캔의 방향과 속도감 위에 밑으로 떨어지는 인체는 신자유주의 시대 서민들의 사회적·경제적 몰락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어법이다. 굳이 어떤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는 하나의 기호처럼 우리에게 쉽게 통용된다. 나·너·우리가 피라미드 구조 아래에 속한다고 자각한 사람들에게, 그 추락은 해석의 기제인 상징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의 기호라는 것이다. 낙하와 추락하는 그 인체는 그림을 바라보는 바로 '나'이고, 이는 21세기 한국사회 서민의 전형이라 할 수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소외된 존재들의 전형을 대부분 작품의 표면에 내세움으로써, 나종희는 근작들의 주제를 명료하게 메시지화 한다.

나종희_추락_패널에 알루미늄 캔_122×82cm_2020
나종희_터널_패널에 알루미늄 캔_82×122cm_2020

이렇듯 캔을 집적한 바탕에 작가가 추가한 사람형상이나 여타 풍경과 같은 이미지의 결합으로 구조화된 화면이 이번 전시 작업양식의 대체적 흐름이다. 그러나 내겐 작가가 인위적으로 추가한 소재나 손맛의 서술적 형상 없이, 캔의 배열만으로 상징성을 확보한 '터널'이란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캔의 부착 방향과 크기에 따른 배치, 그로부터 야기되는 무브먼트와 속도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묵시적인 형상성이 설명이 아닌 울림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와서다. 이런 모호한 상징적 분위기의 제시는, 거대도시에서의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불현듯 깨우치게 해준다. 도시의 암울한 폐쇄성, 일상탈출의 욕망과 그렇지 않은 현실, 중심(도시)과 주변(변두리)을 가르는 공간성 등을. 기호와 같은 서사적 서술이나 연관 소재의 설명이 배제된 채로 조형으로만 구축된 압축적 상징성을 견인하는 형상회화의 힘이 거기에서 느껴진다. ● 내용이나 주제를 강조하다 보면 화면엔 인위적 배치나 부연설명이 자꾸 연쇄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반면 감각적 울림으로만 관객을 "심쿵!"하게 만들려면 그런 서술성을 배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를 극대화해보면 전자는 구상에 후자는 추상에 가깝다. 메시지와 표현성의 쾌감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이 두 경향은 상호 강조되거나 약화 된다. 형상성은 이런 구체적 서사와 표현형식을 동시에 수렴하는 상징성으로 회화적 메시지를 좀 더 강력하게 극대화하는 경향이다. 작가의 체질에 따라 다양한 회화언어들이 그 형상성을 끊임없이 창출한다. 회화적 질료와 작가의 서사와 정서가 어우러진 이 사회적 형상성은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나/사회, 미술/현실, 내용/형식, 낡음/새로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터널'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오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형상성을 이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종희_혼돈_패널에 알루미늄 캔_82×122cm_2020

나종희의 근작은 부단한 변화와 모색의 결과다. 이 변모의 실험이 70대가 다 된 작가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작업적 퇴비가 되면 좋겠다. 작업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작가에겐 평생 풀지 못할 업보 같은 '터널'일 텐데, 그 과정에서의 모색-변주-미적 성취가 있어야 그런 업보의 고통 속에서나마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게 작업하며, 후배에겐 늘 온화한 미소를 짓는 나종희 선배에게, "Yes I can" 이 역설적인 '깡통'이 아닌 성취를 이루어 가는 "할 수 있음"의 과정이기를 바란다. ■ 김진하

Vol.20201125g | 나종희展 / ??? / ???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