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시간

박춘화展 / PARKCHUNHWA / 朴春花 / painting   2020_1117 ▶ 2020_1128 / 일,월요일 휴관

박춘화_풍경의 시간_장지에 아크릴채색_150×21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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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임시공간 space imsi 인천시 중구 신포로23번길 48 Tel. 070.8161.0630 www.spaceimsi.com www.facebook.com/spaceimsi www.instagram.com/spaceimsi

불안전한 안정의 시간 ●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둡고 정적인 수평의 풍경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검푸른 바다와 새까만 밤 풍경은 사실적인 묘사와 익숙한 프레임으로 마치 사진 같기도 하고, 아크릴을 사용하여 장지 위 담채(淡彩)로 적묵(積墨)시키듯 층층이 올라온 색채는 중후함을 자아낸다. 박춘화 작가의 개인전, 『풍경의 시간』은 안정(secure)을 향한 불안정한(insecure) 감정을 조심스럽게 담고 있다. 그는 확실치 않고 자신 없는, 알 수 없는 정서를 해질녘 바다 주변이나 암흑 속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며 텍스트를 생성한다. ● 작가는 이번 「포말몽환泡沫夢幻」이나 「해질녘에」에서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여러 번 숙련된 붓질에 의한 발묵(發墨)으로 검푸르고 푸르스름한 시공간을 다룬다. - 색을 위한 이렇게 애매모호한 언어는 한국어만이 가능한듯하다. - 그중 청록계열의 「포말몽환」은 움직이는 파도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포말을 그리면서, 단순한 바람인지 감정의 파문인지 알 수 없는 변화를 묘사한다. 마치 진자의 추처럼 흔들리며 물리적,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을 모호함이라는 정서(affect) 속에 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박춘화_해질녘에..._장지에 아크릴채색_112×163cm_2020

또 다른 「풍경의 시간」에서는 칠흑(漆黑) 같은 어두움을 드러낸다. "칠흑"이란 표현은 옻칠의 흑색에서 유래한다. 누런 회색의 옻칠이 마르면서 흑색이 되는데, 칠흑이란 표현이 밤이 되면서 점점 캄캄해지고 어두워서 분간이 불가능한 상태로 변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하긴 반질반질 윤이 나는 칠기나 옷장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진정 새까만 검은 칠 바탕이 생각난다. 칠 빛도 우리에게 낯선 오래된 색이 되었지만, 도시의 불빛들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렇게 어두운 밤은 상당히 낯설다. 까만 밤바다, 한적한 길, 드문 가구와 인적 없는 지방 풍경은 특수한 상황, 즉 캠핑 또는 여행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아니, 최근 야간 사회 활동이라는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 19 팬데믹(covid 19 pandemic) 상황에서 존재하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이런 풍경, 이런 언캐니함(uncanny)은 우리에게 낯설고도 적응해야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작가에게 양구의 밤, 특히 가을의 밤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최근 양구 - 박수근 미술관 레지던시 - 에 머무르면서 작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쟁터로 유명한 양구의 상황과 치명적 바이러스로부터 살짝 격리되어 있는 듯 한 더없이 맑고 서늘한 계절과 공간은 작가가 불안정한 안정을 그릴 수 있도록 여러모로 일조한 듯하다. ● 사실 작가의 흑색은 먹의 색이 아닌, 아크릴의 검은 색이다. 장지위에 검은 색은 마치 먹으로 그렸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데, 작가는 묽게 한 흑색의 아크릴을 여러 번 겹쳐 칠해 이러한 암흑을 완성한다. 이 어두움에 붓 터치나, 붓질이 지나간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여러 번의 붓질에서 오는 수행과정, 붓질 너머의 작가의 숨결, 또는 총체성(holistic)과 열정, 그리고 감정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평평하고 밋밋한 까만 흑색, 칠흑 같은 밤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흑색에는 뭔가 은은하게 베어 나오는 중후함과 깊이가 있다. 그리고 조용한 수면위로 보이지 않는 반복되고 흔들리는 시간성이 있다.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 영겁의 시간, 작은 불빛과 인기척 없음, 그리고 마치 공기처럼 일상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움직임들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쉼 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바다의 포말들만이 움직인다.

박춘화_밤의 정경_장지에 아크릴채색_90×146cm_2020

작가는 주로 어떤 "풍경의 언저리"를 그려왔다. 그 언저리는 풍경을 풍경답게 하는 데 바쳐진 재현이 아닌, 주변부에 위치하여 중심의 구분을 피할 수 있고, 중심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을 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주변인의 시선은 전통적으로 여성주의적인 시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소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진보를 상실한 동시대인들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과 여러 번의 수행적인 붓질로 인해 장지 위에 녹아든 아크릴은 -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수행성과는 다소 다른 것으로 - 붓질 하나하나의 행위를 드러내진 않지만, 최선의 발색과 깊이를 선사한다. 그가 사용하는 색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색이라고 일컬어져왔던 한낮의 붉은 적색, 비옥한 농토의 색이 아닌 검푸른 색이다. 물론 바다를 그렸으니 푸른색조의 풍경이 그려지겠지만, 그 푸름은 살짝 청록색과의 사이 어디를 오간다. 우리나라 말에 푸른색과 녹색이 혼합되어 사용되어지는 것과 같이 - 청귤은 정확히는 녹색이 나는 귤이다 - 푸르름은 이미 약간의 녹색을 포함한다. 청록색 같은 중간지점은 모호한 표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제 3 지대 같은 생경함을 더해준다.

박춘화_포말몽환(泡沫夢幻)_장지에 아크릴채색_98×163cm

박춘화의 바다풍경에서는 "바다"자체를 온전히 드러내려는 제스처보다는 포말이나, 언저리 같은 주변부를 훑으면서 바다라는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따라간다. 이건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하는 근대풍경화의 공식과 조금은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풍경화는 변화하는 도시의 빛을 쫓거나, 또는 이를 피해 자연 속으로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또는 방랑자 - 캐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운무를 바라보는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 를 통해 자연의 경외감을 드러내고자 하기위해 등장했다. 아니면 풍경화란 주로 토지 소유 및 권력을 드러내 자랑하고자하는 대지주들이 컬렉터가 되어 화가들에게 의뢰하여 제작된 증빙서 같은 것이었다. 이들의 시선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풍경 자체를 고스란히, 그리고 온전히 드러내는 데에 머무르거나, 작가의 개념을 선언-마니페스토(manifesto) 하는 데에 사용되어졌다. ● 반면 박춘화에게 풍경은 감정의 파문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정서affect와 관계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나? 작가의 불안정한 시선과 흔들리는 감정이 머무는 시공간은 어디에 속하지 않음에 대한 안도와, 그리고 반복에 의한 일종의 담담함이란 구심력을 가진듯하다. 그래서 이러한 원심력-구심력 같은 동시대성은 작가의 작업을 안정적이고 공감할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 오세원

Vol.20201123d | 박춘화展 / PARKCHUNHWA / 朴春花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