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터 Animator:정지된 요동

마크앤솔展 / Mark&Sol / mixed media   2020_1118 ▶ 2020_1209

마크앤솔_영생_피그먼트 프린트_143.6×10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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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앤솔 인스타그램_@markandsol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523쿤스트독 후원 / (주)라텍_라벨스하이디 협력 / 조형문화예술연구소

관람시간 / 10:00am~10:00pm

523쿤스트독 523KunstDoc 부산시 사상구 강변대로532번길 94 3층 www.523kunstdoc.co.kr

2007년 서울에서 시작한 쿤스트독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층위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진지한 대안과 나름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작가공모를 진행해왔다. 이러한 쿤스트독의 행보를 이어나가기 위해 2020년 부산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523쿤스트독은 지난 2월 제1회 전시작가 공모를 실시했다.

마크앤솔_카트_피그먼트 프린트_250×197.8cm_2020

523쿤스트독은 총 66명의 지원자 중 개인전 초대 작가 3인을 선정했다.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고유한 장르뿐만 아니라 장르별 영역을 혼성하는 다양한 유형을 다루는 작가들이 다수 참여했지만 오늘날 현대 미술 현장에서 요청되는 창의성과 실험성을 겸비한 창작을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되었다. 투박하지만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모색하는 작가, 형식은 미술사 속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조형 태도에서 독자성을 선보이는 작가, 새로운 형식적 실험이나 주제의 새로운 방식의 조형화를 도모하는 작가들이 제안을 해왔고, 이들을 상대로 주관적 평가와 상대주의적 평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위치에서 작품을 보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마크앤솔_애니메이터:정지된 요동展_523쿤스트독_2020

523쿤스트독은 공모에 선정된 두 번째 작가 마크앤솔을 소개한다. 마크앤솔의 개인전 『애니메이터:정지된 요동』은 생기와 활기를 뜻하는 animate와 사람을 나타내는 -or가 합성된 단어를 직역한 것으로, 이를 작업행위에 비유하며 작가가 마주한 물성, 사물,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듯 주체적인 역할의 시도를 보여준다. 마크앤솔은 이번 전시에서 모래라는 물성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작업을 다양한 매체와 연결시키면서 개인적인 이야기와 예술적 사유를 드러낸다.

마크앤솔_군함_피그먼트 프린트_250×187.5cm_2020

전시장 안쪽에 위치한 페인팅은 모래의 물성에 대한 탐색의 시작점으로, 캔버스 위에 휴지와 모래를 얹히고 색을 입히는 제작과정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추상적 이미지들은 중첩된 행위의 흔적을 드러내며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 정지된 한 장면으로써 전시장에 옮겨진다. 「영생」, 「군함」, 「지구본」, 「삭막한 도시」, 「카트」, 「신」, 「2020년」, 「덧없음」으로 구성된 7개의 모래작업은 사진으로 변환되어 빔 프로젝터와 모니터 화면으로 내보인다. 모래로 덮인 공간과 건설적으로 쌓아올려진 일상적 사물들은 사진의 평면적 특성에 의해 메마른 사막과 같이 모래의 재질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강한 지각작용을 이끌어내는 사물들은 알레고리를 형성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개개인의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마크앤솔_신_피그먼트 프린트_250×200cm_2020

이전 마크앤솔의 작업들은 조형언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데 있어서 마인드맵과 같이 공간과 이미지의 파편들을 연결시켜왔다. 완결된 작업의 결과물이 아닌 전시공간 안에서 사고의 과정을 보여주는 형태로, 부천 아트포럼리에서 진행된 마크앤솔의 『정의된 이미지』展에서 나타나듯이 미완결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번에 발표되는 모래작업 또한 과정 속에서 도출된, 혹은 도출되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마크앤솔의 작업에서 모래가 가지는 특성은 행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시에 시각적으로는 주관적 기억과 감정을 연결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마크앤솔_애니메이터:정지된 요동展_523쿤스트독_2020

그는 철학과 문학, 심리학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프랑크 베르츠바흐가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에서 서술하듯이 '영적 의미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작가는 순수한 예술적 행위에 집중하며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행한다. 사회로부터 혹은 개인적인 상황으로부터 억압되는 현실 속에서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존재의 인식이다. 그가 스스로 애니메이터라고 명명하는 것은 자신이 쌓아올린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현시대를 바라보는 비관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주체자'로서 삶을 시작하는 기점일 것이다. ■ 523쿤스트독

마크앤솔_Untitled 04_캔버스에 휴지, 모래, 래커, 아크릴채색_163×132cm_2020

성인이 되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멍들고 무너진 숲처럼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있지만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은 머뭇거림일 뿐이라고..." 새롭게 의미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갈대밭에 바람처럼 나 아닌 또 다른 나에게 빛을 줄 필요가 있었다. 목적지에 대한 길로에 선 갈등은 결국 어떠한 선택은 그저 나 자신에게 강요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가 선택할 능력이 없는 경우도 많고, 우리가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곧바로 다른 선택들은 배제되는 것처럼 존재에 대한 이유만으로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이 익숙해졌고 주위 환경이 새롭게 조성되면서 일시적으로 눌러 놓은 정지된 화면과 시간의 행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울에 비친 그 환자였다.

마크앤솔_Untitled 01_캔버스에 휴지, 모래, 래커, 아크릴채색_163×132cm_2020

환자의 눈 깊숙한 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은 분노와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감정들은 누그러지고 홀로 자리 잡은 소파에 기대어서 잃어버린 시간을 마주 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체로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면서 그것은 새로운 공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서 위치를 지어주었다. 정신분석가인 롤프 하우블은 "삶의 예술이 목표로 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머물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항상 지속해서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내면적인 고요함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하지만 뜻밖에도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 앤 라모트는 그 점을 이렇게 압축한다. "나의 정신은 험악하기로 유명한 동네 같아서 혼자서는 그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을 때야 우리는 하이블 표현한 대로 자신에게 머물 수 있는 그곳으로 가게 된다고 말한다. ■ 마크앤솔

Vol.20201120e | 마크앤솔展 / Mark&Sol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