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의 깊이 Shade Left Behind

허우중展 / HOHWOOJUNG / 許又中 / painting   2020_1119 ▶ 2020_1221 / 일,공휴일 휴관

허우중_정적의 자취(3)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404f | 허우중展으로 갑니다.

허우중 홈페이지_www.hohwoojung.com 인스타그램_@hohwooju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_01:00pm~06:30pm / 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NEGATIVITY POSITIVITY ● 우리는 밝고 어두운 도상 중 무엇을 본 것일까. 만약 우리가 밝은 도상을 볼 수 있다면 어두운 도상은 볼 수 없는 것일 테고, 만약 우리가 어두운 도상을 볼 수 있다면 밝은 도상은 볼 수 없는 것일 테다. 여기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배치 구도를 잠시 차치해 본다면, 밝고 어두움은 그저 서로 대비하는 개념이라는 명제를 윤활을 위한 기유(基油) 삼아 이 상충적 조건을 주관과 객관의 문제로 미끄러뜨릴 수도 있다. 여기서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일반 기준을 다시금 예술의 범주에서 통용되는 용어의 상부 구조의 영역으로 포괄해 보자면, 그것은 소위 양화(positivity)와 음화(negativity)라는 대립적 관계의 구도로 전치된다. 이처럼 단순 배치 구도로 침수했던 밝음과 어두움은 미학-문법적 이전이라는 수식적 전치를 통해 수평적 대치의 스칼라(Scala)를 돌출과 함몰, 부상과 침전, 상승과 강하와 같은 수직적 스칼라로 회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의 구도를 한편으로는 순의 방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역의 방향으로 평면 회화라는 매체의 하위 구조의 영역에 적용할 때, 이 회전하는 스칼라는 표현이 구성 혹은 해체하는 도상 그리고 색채가 파열 혹은 축조하는 색채에 관한 논의를 우리 앞에 불어 세운다.

허우중_여백의 지층(6)_캔버스에 유채_162×162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일전 허우중의 작업은 여전히 (주관적) 관념을 시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지만, 사뭇 최근의 작업과는 꽤나 다른 형상을 취한다. 이는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미적 주체로서의 제 위치 설정에 있어서 일으켜진 변화에 기인할 것이다. 초창기 작가의 작업은 사회적인 여러 사건을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몇몇의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콜라주의 방식으로 붙여내어 새로운 서사-있음 혹은 서사-없음을 의미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그가 흑백 만화의 이미지적 특징을 차용하며 그것에 "픽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 사건들로부터 그것의 서사를 제하려는 자세와 관계가 있다. 화면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별 서사는 본연의 맥락을 소거 당하는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서사-없음의 서사를 한 컷의 삽화적 이미지로 대변한다. 이에 더해 평면에서 배경의 이미지를 삭제함으로써 단지 도상만을 어색하게 내버려 두고 스스로 무엇과도 무관하게 부유하는 콜라주의 집합 이미지는 인간 일반을 아울러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관념"이라는 작가의 주제 설정에 선형적인 연장 또는 쌓아 올림의 단초가 된다.

허우중_그늘 쌓기(1)_캔버스에 유채_194×97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이후 등장한 허우중의 백색 추상 작업은 이렇듯 (존재에게) 상호적인 기준으로서의 (존재의) '없음' 그리고 (존재가) '그러하지 않음'과 같이, 누구나 한 번쯤 돌이키게 되는 관념의 문제를 향한 접착이 남긴 마지막 흔적의 일부이자 전체이다. 도상을 떼어내고 남은 선의 흔적은 벽과 도상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형성되는 지지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적 위상을 어지럽힌다. 허우중이 지워낸 이 인식의 체제 안에서 에르곤(ergon)은 곧 파레르곤(parergon)이 될 수도, 파레르곤은 곧 에르곤이 될 수도 있다. 옅고 어두운 선들은 더는 도상의 변을 나타내지도 숨기지도 않으며, 흰색 면은 이로써 도상의 면을 양화하기도 음화하기도 한다. 이때 '의미'는 그 자체로 (의미를) '하기도' (의미를) '하지 않음을 하기도'라는 동사와 함께 쓰일 수 있다. 그림자는 절대 그 원래의 형상일 수 없음에도 분명 그것을 이루는 일부인 것처럼 백색이라는 없음의 색채적 의미는 분명 어떤 도상의 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은 또한 절대 그 원형의 있음일 수 없는 것이다. 궁극에 그가 남긴 것은 흐름이자 지층이고, 다름이자 차이이며, 기척이자 자취일 뿐이다.

허우중_가장 먼 곳의 기척(1)_캔버스에 유채_194×295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허우중_가장 먼 곳의 기척(2)_캔버스에 유채_194×295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허우중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송은 아트큐브, 2020)에서 새로이 선보인 이번 신작들은 명료성에 관한 역전의 논리를 통해 지금까지 지속해 온 관념과 그 이면에 대한 태도를 한층 더 강렬한 대비로 현현케 한다. 이제 백색은 주변이나 음화를 위한 객체의 지위를 완전하게 벗어던진다. 이를 위해 최소한으로 허우중이 마련한 깊이감의 차원은, 청색과 붉은색의 배경 위에 흰색의 면을 덧칠했음을 있는 그대로 가시화하며 작가가 이로부터 무엇을 밝히고자 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 유색(有色)과의 대비와 함께, 무엇인가를 보이지 않도록 하기에 익숙했던 비가시성의 백색은 이제 전면에서 보통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시하는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면서 그것의 가시성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당연하게도 도상이라고 인지했던 것은 배경이었으며,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게도 도상이었다. 양화했던 것은 음화하고, 음화했던 것은 양화한다. 여백은 사실 채움이었고, 채움은 사실 여백이었던 것이다. 명확한 모호함도, 모호한 명확함도 논리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이 현실이라는 세계에서는 참의 명제일 수 있다.

허우중_정적의 자취(1)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허우중_정적의 자취(2)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중요한 것은 모든 기준과 판단은 상대적일 수 있다는 실재다. 그러한 실재는 관념이라는 선명하지 않은 범주 안에서 도리어 논리적일 수 있다. 불안의 표현으로서 출발했던 허우중의 구상은 철학적인 추상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다르게 인식도록 했다. 이 '다른' 인식으로부터 소위 불가한 것으로 여겨졌던 진리의 영역은 밝혀진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의심과 의심이 도달하게 한 그곳에서, 실체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일 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 장진택

허우중_잔상의 깊이展_송은 아트큐브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허우중_잔상의 깊이展_송은 아트큐브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허우중_잔상의 깊이展_송은 아트큐브_2020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재)송은문화재단은 2020-2021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공모 프로그램의 첫 번째 선정 작가인 허우중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을 11월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개최한다. 송은 아트큐브는 신진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고무하고 전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2002년 1월 개관 이래 매년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해 개인전 개최 및 향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 허우중은 지난 작업들에서 보지 못했던 실험적인 시도를 내포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광막한 불안과 공허를 비췄던 지난 모습들에서 나아가 평면적인 회화 작업에 다차원적 사고를 구현하고 깊어진 작업 세계를 구축한다. 작가는 연필로 그려내는 얇은 선들을 훼손시키지 않으며, 유화를 활용해 새로운 도형의 공간들을 그만의 고유한 작업 방식으로 나타낸다. 물감을 한 겹 입힌 캔버스 위에 계획적인 선들을 긋고 다른 색의 물감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메워가는 방식으로 미세한 선들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면들을 수면으로 드러낸다. 이전에는 주로 흑백으로 작품을 연출하여 검정색의 배경을 칠하고 연필 선만 남겨둔 채 흰 물감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면, 『잔상의 깊이』에선 원색을 더해 주체와 배경의 공간을 더욱 극명하게 나타내고 만들어진 공간들에 일종의 존재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리의 시선은 벽면에 걸린 파란 회화와 조우한다. 눈앞에 놓인 캔버스의 푸른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존재를 주체로 인식하고, 그 후에 보이는 흰 공간을 배경이라 인지하게 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비로소 존재성을 갖게 된 대상들에 관람객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작가는 평소 창작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이번에도 역시 파란색으로 배경을 먼저 구성한 뒤 연필의 흔적을 남겨둔 흰 유화로 주체의 공간을 부각하고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흰 여백의 공간은 배경이다'라는 관념을 전복시킨다. 신작들을 통해 배경과 주체의 차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가는 관람하는 개개인의 해석을 기대한다. ● 그가 창작해낸 공간 속 각기 다른 도형들은 관객들로 인해 새로운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점에서 허우중은 '존재'에 대한 고뇌를 표출한다. 허우중이 그려낸 도형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온전한 어떤 대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단층의 도형들이 중첩되어 서로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기에, 겹쳐진 대상들이 어떤 모양을 띠고 있다는 우리의 판단은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눈으로 인식이 가능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판별이 가능하더라도 인식한 '존재'가 실제 그 대상이라는 사실관계가 성립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중점에 두고 특정 대상을 바라보고 쉽게 결론짓는 우리의 인식을 비집고 들어와 가시적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볼 수 있는 단면에 의존하여 비가시적인 부분까지 추측해 완전한 모양의 존재로 정의 내린다면 과연 그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작가는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작가의 작품 속에 정녕 어떠한 대상이 가려져 있는지 혹은 육안으로 구별한 모양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 현대인의 삶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안과 공허가 쉽게 사라지지 않음에도 사회가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과 같이, 어떠한 대상의 존재가 불분명할지라도 인간은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품고 살아간다. 존재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에 대해 연구하는 근작에서는 부가적인 요소들이 최소화되고 움직임과 내러티브는 절제된다. 철저하게 절제된 캔버스 속 단순화된 선과 곡선만으로 연출한 그만의 컴포지션에서 주체와 배경은 명확하게 나뉘는 듯싶지만 그렇지 않으며, 구성하고 있는 대상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불확실하기에 작가는 인간의 관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 김민지

Vol.20201118d | 허우중展 / HOHWOOJUNG / 許又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