긋다

김정란展 / KIMJUNGRAN / 金貞蘭 / painting   2020_1111 ▶ 2020_1115

김정란_선 긋다1_숙선지에 선묘_190×97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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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11월13일_11:00am~08:00pm

가고시포 갤러리 GAGOSIPO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16(화동 99번지) Tel. +82.(0)2.722.9669 gagosipogallery.com

옛 선비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 몸을 씻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평정하게 한 후 한 획을 그었다고 한다. 이런 절차가 아니더라도 붓으로 한 획의 선을 그을 때 긴장감은 과녁을 집중하는 궁수와도 같다. 가는 면상필로 선을 긋는 동안 호흡은 멈추고 팔은 긴장하며 몸은 필과 함께 움직인다. 본래 그림의 필은 서예의 필법을 따라야 한다는 고전과 같이 필 하나에 예를 갖추고 숨을 고르게 한 후 필을 움직인다. 동양화의 필은 선과 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 필 하나가 선이 되었다가 면이 되었다가 다시 선이 되는 변화의 조형미를 가지지만 나의 선은 직각의 중봉을 애착한다. 선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 붓은 눕지 않아야 하며 붓이 눕지 않기 위해서 몸은 붓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김정란_선 긋다2_숙선지에 선묘_190×97cm_2020
김정란_선 긋다3_숙선지에 선묘_172×93cm_2020
김정란_선 긋다4_숙선지에 선묘_172×93cm_2020
김정란_비단위의 라푼젤_비단에 채색_147×58cm_2020
김정란_비단위의 메르다_비단에 채색_147×58cm_2020

농담을 맞추고 붓을 세우고, 집요하게 반복적인 선은 손이 허락하는 한 하루 종일 그을 수도 있다. 의미 없이 강박(强迫)처럼 보여 지는 선들에 집중하다보면 멈추지 않는 기계와 같은 복잡한 머릿속이 하얘진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 "처음 한 점을 찍으면 저 어딘가에 다른 점을 찍고 싶어진다." 했던 이우환 작가의 말과 같이 선을 하나 긋고 다음 선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다음 선을 생각해 본다. 이우환 작가는 조응하는 몇 개의 점을 찍는 것으로 마치지만 나의 선은 계속 반복된다. 그러다 어느새 화면에 가득 찬다.

김정란_긋다展_가고시포 갤러리_2020
김정란_긋다展_가고시포 갤러리_2020
김정란_긋다展_가고시포 갤러리_2020
김정란_긋다展_가고시포 갤러리_2020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고 담론을 생산하려던 욕심은 사라지고 단순히 선의 작용에만 마음을 맡겨본다. 그러나 연필과 펜의 선과는 달리 힘 조절이 중요한 모필 붓으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해 본다. 의미 없는 선이 반복되는 이 시각 이미지들이 작품으로서 유의미한가는 모르겠다. 단지 나의 고단한 노동이 하나의 즐거움으로 유희가 되었다. 고통을 즐기는 사디즘과 같이 쉬는 즐거움을 잊은 채 반복적으로 그리고 강박적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화면에 담겨 있다. (2020) ■ 김정란

Vol.20201111e | 김정란展 / KIMJUNGRAN / 金貞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