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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0_1105_목요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플래닛 GALLERY PLANET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1길 14 2층 Tel. +82.(0)2.540.4853 www.galleryplanet.co.kr www.instagram.com/galleryplanet
이강원 - 촉지적인 물질의 피부 ● 벽에 걸린 혹은 바닥에 놓인 물질들은 중성적인 색채를 다소 불투명하게 머금고 단호하게 응고되어 있는데 그 피부에는 독해될 수 없는, 손금과도 같은 주름들이 지나간다. 약간의 높낮이를 유지하면서, 섬세한 그림자를 동반하면서 펼쳐진 표면은 식물의 어느 부위를 밀어내다가 주저앉는다. 그와 다른 것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조각들로 엉켜있고 이질적인 것들이 곤죽이 되어 뭉쳐있다는 인상을 준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안기는 것도 아니고 물질 그 자체의 물성이나 구조로만 나앉는 것도 아닌 셈이다. 여전히 특정 이미지에 기생해나가고 떠올려주면서도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듯하다. 어딘가의 피부에 붙었다 떨어져 나와 그 흔적을 생생히 감촉시키는 이 인데스적인 조각은 결국 부재의 것을 추억하게 하는 상처와도 같은 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정한 틀에서 빠져나오거나 그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사건, 그러면서도 결코 온전치 못한 채, 다소 불구적으로 혹은 여러 우발적인 것에 의해 그렇게 나오고야 만 모종의 상황성을 생생하게 안겨준다. 따라서 '촉지적인 감각의 축도로 응축된 표면'은 회화와 유사하게 눈으로 보는 것, 아니 눈으로 만지는 것이 되었다. 여기서 회화와 조각은 표면이란 공통 영역 안에서 조우한다. 그래서 작가는 물질의 표면이 거느린 요철 효과에 집중하고, 더 섬세하게 물질의 덩어리감을 파악하게 해준다. 그것은 다분히 생성적인 피부이자 꿈틀대는 피부 같다. 상당히 예민한, 촉각적 피부를 거느린 조각/물질은 벽에 걸리고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부유한다. 회화적 삶의 영역에 붙어나가거나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로인해 관자의 몸, 시선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감각 안에서 이 물질을 향유하도록 한다.
작가는 조각의 전통적인 방법론을 수행한다. 재료를 깎고 붙이고 떠내는 일이고 그 행위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작업하는 시간과 행위 안에 어긋남과 불연속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자체를 고스란히 결과물로 끌어안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분명한 의도를 담은 시도 속에서 출발해 방향을 잃어버리는 경로를 의도적으로, 아니 자발적으로 취한다. 자꾸 엇나가고 예측하기 곤란하며 작업 행위 안으로 우연과 불가피함과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함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하거나 그러한 것들을 그대로 용인한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욕망 내지 선험적인 의도를 지우고 그것의 실패를 자인하고 오히려 그 실패할 수밖에 없는, 당연히 실패되어야 하는 방향을 추적해가는 일이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복제방법의 하나다. 그러나 재료를 붓고 굳히고 떠내는 여러 과정에서 재료들은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한편 시간과 중력에 의해 혹은 알 수 없는 여러 상황, 변수에 따라 어긋나고 뒤틀리고 균열을 일으키는 동시에 이물질과 붙어버리고 불순물과 찌꺼기를 동반한다. 원본에서 출발해 그것과는 결코 동일하지 않은, 등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또 다른 존재가 기이하게 출몰한다. 기존 조각 작업에서라면 방해되거나 불필요한 것들이라 당연히 배제되거나 지워야 할 것들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로부터 출발하고 이 낯설고 무의미한 것들을 전적으로 긍정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위에 인공의 색채를 도포했다. 차갑고 가라앉는 색조들은 자동차 도료나 금속의 피부를 감싸는 색을 연상시키거나 자연과는 다른 불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극히 가벼운 대상들을 역으로 묵직함이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으면서 조각에서 색이 지닌 위상을 높인다.
근작은 대부분 식물 잎사귀의 형태로부터 출발한다. 이 자연물은 조각이 여전히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란 측면에서 차용한 것 같다. 다음으로는 도시 공간으로, 일상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기호들에 대한 주목에서 기인한다. 우리 주변에서 자연은 맹렬히 사라져가지만 동시에 그 자연을 부단히 호명해 자신의 삶의 근저리에 안치시키기도 한다. 공원이나 가로수, 꽃무늬 옷이나 벽지, 그 외에 다양한 식물이미지를 차용한 무수한 이미지들이 그것이다. 이강원은 우연히 호텔 내부에 도배된 식물잎사귀 문양의 벽지를 보았고 자연물이 묘사된 건축자재나 장식품을 접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주거공간을 구성하는 재료들이자 실제 자연처럼 보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덩굴식물의 줄기나 잎 등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실내공간의 몰딩 장식이나 벽지의 무늬를 흥미롭게 본 작가는 이를 부분적으로 따와 형상화 했다. 작가는 그 조각, 파편들을 수습해 이를 떠낸다. 온전한 식물의 형태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자리한 잎사귀는 겨우 줄기와 잎맥의 일부분만을 희박하게, 애매하게 출몰시킨다. 매끄럽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부서지고 조각난 상태의 잔해이자 인공의 것이고 기계적인 힘에 의해 복제된 자연이미지의 일부임을 드러낸다. 동시에 작가는 작업 과정을 통해 불가피하게 남겨진 것들 내지 작업실 바닥에 흩어진 조각난 덩어리와 부서진 파편들을 무의식적으로, 다양하게 붙여나가고 배치를 달리해 무언가를 만들었다.
작가는 이러한 불완전성, 예기치 못한 파편들과 잔해에서 오히려 조각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일찍이 파편들을, 조각조각 난 부위들을 연결해가면서 가늠할 수 없는, 통제될 수 없는 에너지와 동세를 전달하려했던 이는 로댕이었다. 이 조각으로 나뉜 부분들은 추상적인 물질이자 전체로부터 빠져나온 그래서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이상한 물질, 오브제이자 그것 자체로 물활론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된 것들이다. 이강원에게 있어서도 그 조각난 부분은 전체에 봉사하는 대신에 더욱 자유로워 보이고 불완전한데서 기인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알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찬 것들이다. 물질이 지닌 잠재력을 발화시키려는 피부들이고 덩어리들이다. 결코 의식적이 아닌 내가 모르는 것,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힘에 의해 밀려나온 것들에 순응하며 그것들로 인해 가능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아니 이를 그대로 떠내고자 한다. 그러니 그에게 이 조각의 방법론은 여러 의미를 거느린 복합적인 것이다. 고정될 수 없는 세계의 재현을 무화하고 깨트리는 힘이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작업에 대한 추구와 순응이고 이는 결국 하나로 통제되지 않는, 저마다 다른 차이를 발생시키는 자연이 지닌 놀라운 모습과 힘에 대한 동경이고 은유에 해당한다. ■ 박영택
몇 해 전 옮겨온 작업실은 계단이 깊은 지하실이다. 그곳에는 창문이 없어서 밝은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바깥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 지상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만 간신히 들려올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간 머물렀던 여러 작업실에서도 창문에는 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출입문은 언제나 닫혀져 있었던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업하는 공간에는 바깥의 풍경도 없고, 무언가 보고 만들어야 할 대상도 없다. 대신에 그곳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와 이런저런 재료들, 조각난 덩어리와 부서진 파편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 작업실에서 뭔가 하는 일이라고는 재료를 이렇게 저렇게 붙여 나가고, 조각난 덩어리를 한쪽에 놓았다가 다시 여기저기로 옮겨 놓는 것처럼 단조로운 일을 해 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일에 깊이 빠져 있다. 그런 일에 빠져 있다가 보면 종종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야 할 일들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쩌면 그런 일에 빠져 있는 동안 시간은 일상적인 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흐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실은 무언가 무심한 일을 해 나가기에 상당히 적합한 공간 같다. 그래서인지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매일같이 좁은 계단을 따라 그곳으로 걸어 내려가게 된다. 계단 끝에서 만나는 공간은 아주 음습하고 어둡다. 하지만 그곳에 불을 너무 많이 밝히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은 공간 속에서 더 예민해지기 위해서이다.
조각을 해 나가는 과정은 재료를 깎고, 붙이고, 떠내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똑같이 깎아내고, 붙이고, 떠낸 적이 없다.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작업의 과정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차라리 어떤 어긋남의 연속이다. 어긋남을 야기하는 알 수 없는 힘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내 앞을 가로막는다. 작은 불빛 아래에서 나를 홀리는 것이 그 순간적인 변화와 다채로운 움직임이다. 그것은 미세한 떨림으로, 때로는 돌연한 솟구침으로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어떤 간지럽힘으로, 때로는 찌릿한 자극으로 내 안 깊숙이 파고든다. 조각난 덩어리와 부서진 파편들 사이에서 나는 그러한 힘들에 서서히 뒤섞여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이 나를 허물고,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그런 또 다른 시간 속에 나를 맡긴다. ■ 이강원
Vol.20201105e | 이강원展 / LEEKANGWON / 李康元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