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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9월30일~10월3일 휴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PROJECT SPACE YEONGDEUNGPO 서울 영등포구 영신로 22-4(영등포동 616-4번지)1층 Tel. +82.(0)10.7148.2805 facebook.com/PROJECTSPACEYDP
일상이 만들어 내는 그림 ● 배미정의 그림에는 옥상에서 올 해 키우기 시작한 무화과 열매가, 밤 늦게 집 안으로 들어 온 나방이, 어딘가에서 주워 온 조약돌이, 소나기 내리고 간 후의 무지개가, 한 낮의 뜨거운 햇살이 그리고 그녀…그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림 위에 하나 하나 올라와 쌓이다 보니 두꺼운 레이어가 나타난다. 그림 위에 나타난 레이어는 작가의 일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옥탑의 작은 작업실에서, 캔버스 위에 그의 무수히 조각난 시간을 붙여내는 과정에서 조각난 이미지들은 쌓이고 쌓여 그림의 질감을 만들고 표면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그림의 표면이 되었다. ● 배미정은 비록 세상의 언저리에 있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고 사랑하며 살아가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의 글과 그림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알고 보면 그림의 한 알, 한 알 무화과가 그녀이고, 화려한 각기 다른 색의 나방들이 그녀이며, 층층이 쌓여있는 조약돌이 그녀이고, 언제라도 보고 싶은 무지개가, 따사로운 햇살이 그녀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림은 물론, 작가의 글에서도 오묘한 색과 신비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짝이는 갈색 등 짝의 그녀, 다홍색 복숭아, 그리고 노란 꿀의 그녀, 지금도 분홍빛, 자줏빛이 나는 그녀. 그렇게 상상되는 그녀들의 모습, 냄새, 몸짓, 색깔.. 문득, 어떠한 연유로 작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는지 그리고 그리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한번 더 읽은 글에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글을 써 내려가고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이제서야 알아낸 것 같은 그때의 감정들이 글 안에 가득하다. . 다시 살아 난 감정들은 그림 곳 곳에 세상 처음 보는 색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에겐 세상 처음이지만 배미정에겐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 색. 자줏빛 보라, 아니 그것보다 훨씬 어둡고 진한. 빛이 나는 노랑, 아니 그것보다 연하고 투명한.핑크, 네온 핑크? 아니 그것보다 더 끈적끈적하고 생기가 도는… 모든 것들이 신비로워지는 현상을 마주하고 나니 나의 일상 또한 이렇게 컬러풀하고 빛이 나며, 선명했는지 묻게 된다 ● 작가는 말보다 빨리 빛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그림으로 그리고, 사소하고 내밀하지만 구체적인 순간들은 기억하고 존재시키기 위해 말로 풀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배미정의 그림은 그냥 흘려 보냈을 수도 있었던 일상을 멈추어 그것의 순간들을 꺼내고 다시 나열할 수 있는 지혜인 것 같다. 일상을 특별하고 신비롭게 만드는 지혜. ■ 지현아
아는 여자 프롤로그 ● 마흔이 되던 해 길을 걷다가 이유 없이 넘어졌다. 바지가 찢어지면서 무릎이 깨지고 피가 철철 났지만 창피해서 그 순간은 벌떡 일어나 걸었다. 무릎에서 흘러내린 피로 회색 운동화가 빨갛게 물들어서 축축했다. 퉁퉁 부어 오른 발이 아픈지도 모르고 살이 까져 피가 흐르니까 무릎 뼈가 부러졌겠구나 생각하면서 병원에 걸어갔더니 왼쪽 발 뼈 골절이었다. 몇 개월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다. ●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계단 가파른 오래된 다가구 주택 3층에 살던 나는 집을 오르내리는 것도 버거운 나날이었다. 온전하게 걷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에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마흔이 된 그 때 처음 알았다.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제야 남들도 조금 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니까. ●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드디어 깁스를 풀었다. 절뚝거리는 걸음에는 아직 땀이 삐질 거리게 나오게 하는 여름 공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날이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 날 혼자 청계천을 걸었다. 목발이 사라진 겨드랑이가 가끔 부는 바람에 시원하고 자유로웠지만 걸음은 아직 예전 같지 않았다. ● 여름내 생명력을 뽐내며 자란 풀과 나무들 사이로 물이 낮지만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반짝이며 흐른다. 누군가 흩뿌려놓은 과자를 주워 먹느라 날개 짓을 잊은 비둘기 한 무리가 돌계단과 한 덩어리가 되어 꼬물거린다. 그것마저 아름답다 생각하던 찰나 돌계단 가장 아래쪽에 앉아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두 손을 허리춤 근처에 모으고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아저씨를 보았다. 순간 멈칫했지만 아직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절뚝이는 다리가 방향 전환을 빨리 못하고 계속 아저씨 가까이로 나를 이끌었다. 움직이는 아저씨의 모은 손 사이로 언뜻 보이는 물체. 그것은 분홍빛 살을 드러낸 하얀 틀니였다. 자신의 틀니를 사포 같은 것으로 열심히 다듬고 계셨던 것이다. 그 장면이 정지된 그림으로 훅 다가왔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는 사람들.
특히 내가 잘 아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어떤 순간은 말하기 전에 튀어 오르는 그림이 되어 다가오는가 하면 말로 이야기로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약속된 언어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 그렇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 장면을 그대로 기억해 줬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내밀하고 사소한 순간을 기억으로 남겨 내가 사랑했던 혹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 몸속 어딘가에 보듬고 다니고 싶은 순간이 있다. ● 말보다 빨리 빛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그림으로 그리고 사소하고 내밀하지만 구체적인 순간들은 기억하고 존재시키기 위해 말로 이야기로 풀어내어 보았다. 에세이인지 일기인지 소설인지 알 수가 없는 글이다. 어떤 부분은 박제한 것처럼 겪었던 그 순간을 그대로 적었다. 하지만 각자의 기억은 다르게 적히기 때문에 완전한 허구일 지도 모른다. 내 그림이 현실을 그대로 그리지만 색과 형태가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것처럼.
달은 보이지 않을 때도 존재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 달처럼 내 몸 속에는 내가 알고 사랑하고 겪어왔던 모든 여자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나는 내가 겪어왔던 모든 여자들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렇게 느끼고 있다. 세상의 언저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보이지 않다가 사라진 그녀들 혹은 여전히 중심 아닌 변두리에 있지만 삶을 지속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 내 손톱이 된 그녀 내 머리카락이 된 그녀 내 젖가슴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다. 계속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존재하는 달의 순환 주기로 아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본다. ■ 배미정
Vol.20200927a | 배미정展 / BAEMIJUNG / 裵美貞 / painting